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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박혜성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3월
평점 :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집에서도 온전한 휴식은 잠시 뒤의 일, 음식을 차리고 접시를 치우고, 모두 잠든 밤. 굳어버린 어깨와 퉁퉁 부은 다리, 식탁위에 앉아 몰래 펼쳐 끄적이는 글귀들, 그렇게 식탁위에서 누군가는 깊은 밤, 아린 눈을 애써 누르며 작가를 꿈꾼다.
일을 끝내고 식탁위에서 꿈을 꾸는 작가, 그리고 하루 일을 마치고 혹은 일요일이면 설레며 붓을 들고 여기 저기 다녔을 화가.
어쩌면 차라리 쉬라고, 집안일이나 더 하라고 혹은 그 외 기타등등의 조롱을 받았을 수도, 혹은 응원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해도 참 고단했을 그들. 그렇지만 순수하게 꿈을 꾸고 즐거움으로 쓰고 그렸을 그들의 마음은 전염되어 타인들을 행복하게 한다.
성공해서 일요일의 작가, 혹은 소박파라 불리기도 하는 그들이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선 아무도 몰래 낮의 직업을 벗어놓고, 행복을 쓰고 그리는 이들이 많겠지.
루이 비뱅도 그런 소박파 화가이다. 파리의 우체부로 정년퇴임 후 꾸준히 그림을 그린 화가.
세관원이었던 앙리 루소처럼 제대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의 붓질은 더 자유롭고, 그들의 시선은 더 거칠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원근법도 소실점도 명암을 제대로 주거나 기교를 넣는 법도 모른다. 그냥 내가 보고 행복하면 되는 일, 그래서 비뱅은 파리를 그리지 않고, 그가 기억하는 행복의 파리를 그린다. 골목 사이로 삐뚜룸하게 그려진 그의 그림 속 사람들도 울퉁불퉁한 회색빛 벽돌들도 그의 감정들을 담아, 새롭게 그만의 파리를 만들어낸다.
한 화가가 있다.
작고 누추한 방, 쥐꼬리만한 연금이지만,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등유를 담아 불을 밝히고 그림을 그린다. 그가 행복해하며 누비던 파리의 골목, 상심하며 헤맸던 비 오던 거리. 웃음이 넘쳤던 누군가의 결혼식.
그만의 색과 그만의 리듬으로 그림이 채워진다.
소실점도 원근법도 중요하지 않은, 그만의 세상이다.
그러다 엽서들을 뒤적이며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여행이란 무리지만, 그래도 그는 낙심하지 않는다. 누추한 그의 방은 곧 베네치아의 밝은 햇살과 곤돌라를 타고 흐르는 노랫소리로 가득하다. 퇴직 후 62세부터 뇌졸중으로 73세에 마비가 오기 전까지 그림을 그린 루이 비뱅의 이야기다.
그런 그를 발굴한 빌헬름 우데 또한 남다른 면이 있다. 소박파들을 발굴했고, 소박파란 이름도 붙여 준 이다.
가정부로 잡역부로 일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세라핀 루이, 그리고 이 책의 루이 비뱅, 세관원이었던 일요일의 화가 앙리 루소, 원예사였던 앙드레 보샹, 인쇄공에 레슬링에 서커스단원이기도했던 카미유 봉부아를 발굴한 이다.
그가 발굴한 이들 외에도, 모드 루이스나 모지 할머니 또한 유명한 소박파 화가다.
<내 사랑>이란 영화에서 샐리 호킨스가 맡은 모드 루이스 역할이 감명깊었다. 그녀의 그림들도 소박하지만 대범하고 아름다웠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들은 따뜻하다. 삶의 추억들, 그리고 열심히 노동하며 살아가는 성실과 진심이 담겨 있다.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소박한 그림에서 깊은 감동과 기쁨을 갖게 된다. 세라핀 루이도 <세라핀>이란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책에는 루이비뱅이 그린 파리의 모습과, 그림에 얽힌 작가의 감상등이 담겨 있다. 파리를 사랑한 작가들이나 파리의 풍경과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들도 담겨있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좋은 건 루이 비뱅의 그림들이다.
그의 그림은?
애정이 가득한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걷다 만난 낯선 이에게, 아껴둔 소중한 사탕 한 알 꺼내 수줍게 건네는 소년의 모습이다. 아마 볼이 조금은 발그레하겠지. 소박한 포장지 속 평범한 사탕 한 알이 입 속에서 녹아내리면, 익숙하고 달콤한 그 맛에 소년의 순수함이 더해져 오랫동안 기억되는 추억이 되겠지.
그의 그림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소박하지만 확고한 그의 개성, 그림이 좋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타인의 잣대 대신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그림. 그런 자유로움과 그리면서 가진 그들의 행복이 보는 이들에게 전염되기 때문이 아닐까.
평면적이고 납작한 색깔들의 동화, 한 장에 앞면과 옆면이 나란히 그려진 성당의 노래부르듯 쌓여진 벽돌들을 보면, 비뱅 그림이 갖는 묘한 편안함과 위로가 느껴진다.
(아래 그림은, 루이 비뱅, 카미유 봉부아, 앙드레 보샹, 세라핀 루이, 앙리 루소, 모드 루이스, 모지스 할머니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