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는 예수 - 종교의 거짓말과 철학적 지혜
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지음, 유승종 옮김 / 어문학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이미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통해 고대 지중해 세계에 일반적으로 퍼져 있던 미스테리아들을 비교하고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역사를 역추적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밝히는 책을 내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책에서 그리스도교가 본래 자신의 모델이었던 고대 미스테리아를 말살하고 문자주의 종교로 탈바꿈했던 역사의 진실을 퍼즐처럼 맞추어 나간다. 그러면서 고대 미스테리아의 유대인 판본이었던 예수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로 위조·가공되고, 고대의 신비주의 신앙이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문자주의 신앙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살펴본바가 있다.  이는 어찌보면 예수의 상(像)을 실제 주변의 신화나 이야기를 차용하여 재 편집하여 만든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반향이 매우커 2002년 첫 출간과 동시에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단의 강력한 반발로 강제 절판까지 되었던 그의 전작이 있었기에 이 책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예수 이야기의 원본이 바로 과거 지중해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신비주의 신앙이었다고 주장하며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천한 나사렛 예수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기독교계에서는 금서로 여길정도로 취급한 책이었다. 신간인  이 책 '웃고 있는 예수' 역시 전작과 같은 맥락에서 종교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유일신 종교의 경전과 교리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해부하며 철학적 지혜와 영지주의적 영성을 설명하고 있다. 

 

종교의 문제점과 그 극복방안에 대해 다루면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던 종교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오래 전부터 연구되어 왔다. 종교적 체험이나 삶의 위안이 주된 이유이다. 개인적으로 신을 체험했다는 종교적 체험을 결코 부정하지는 않는다.  <예수가 성서의 문자 그대로 존재>했다고 해도, 그 의미가 세퇴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으며 종교적 비합리성이 인류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가설은 전혀 백해무익한 논쟁이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원형은 유대인 메시아를 신인으로 내세운 예수 미스테리아였고, 그것이 바로 ’영지(靈知ㆍgnosis)주의적 영성’이다. 영지주의는 우리 스스로 영지를 경험하고 깨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삶 자체가 깨달음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한다.즉, 영지주의의 목표는 각각의 신도가 입문하여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었다.

또한 영지주의는 크게 광의와 협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광의의 영지주의는 삶 자체가 깨달음의 과정임을 강조하는 신비 사상으로, 모든 종교에 열려 있으며 영지주의적 영성은 모든 존재간의 사랑과 일치를 노래한다. 이런 광의의 영지주의 시각에서, 궁극적 실재의 의미는 동서양 종교를 막론하고 모두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협의의 영지주의는 서양 고대 미스터리야 종교에서 기원한 초기 기독교를 의미한다. 초기 기독교와 로마 교회의 대립은 바로 영지주의와 문자주의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예수 이야기는 은밀하고 신비한 가르침을 암호화한 하나의 비유일 뿐이고, 깨달음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고통 받았던 인간, 즉 역사에 실존했던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를 상징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화적인 영웅으로 보았을 뿐이며, 만일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삶이 얼마나 훌륭할 수 있는가를 알고, 이러한 삶에 고취된 사람들이었다. 유대인 민족주의와 파벌주의가 교묘하게 삽입되어 있으며 중세에는 종교와 신국이라는 악몽에 가위눌리고 억압받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중세의 귀환이라는 오늘날에도, 종교는 희망 바이러스보다는 공포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자라나게 하는 사악한 온상이 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듯이 가장 위험한 생각은 자신만이 옳고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독단을 경계해야 할것이다. 절대적인 진리는 인간의 인식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진화해 나가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은 합리적 사고에 바탕을 둔 과학과 인문학적 지식도 쌓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문자신봉주의를 벗어나서 진정한 영지, 깨달음을 얻으려면 철학적 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