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 폭력과 추방의 시대, 촛불의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다 당비의생각 2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어느덧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은 5월 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는 서울역과 서울광장·청계광장 등에서는 경찰의 원천봉쇄가 이루어 졌으며 봉쇄하려는 경찰과 시위대간의 충돌도 잇따랐다. 또 일부 시위대의 무대 점거로 '하이서울페스티벌' 봄 축제 개막 행사가 전면 중단됐으며 이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 가운데 112명이 연행됐다는 씁쓸한 기사를 접했다.  이 책은 “1987년 이후 가장 강렬하고 심지어 화려했다 할 정치적 동원인 ‘촛불시위’가 정작 아무런 정치적 효과도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더 이상 정치엔 희망이 없다는 체념적이고 반동적인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고통스럽지만  '촛불시위'에 대하여 사유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은 '당비의 생각'이 두번째로 펴낸 시대의 담론을 엮은 책으로 모두 3부로 구성되어졌다. 1부는 '운동의 사회학을 넘어 민주주의의 정치학'에서는 촛불을 '운동의 정치'로 분석하고 있다. 섣부른 낙관론에 투항하는 것을 넘어서는 비평도 담고있으며  그것은 무엇보다 촛불을 민주주의적 사태로 무조건적으로 단언하려는 암묵적인 주장에 거리를 두려는 시각이다. 2부는 촛불의 '문화정치학'적인 해석으로 다양한 문화적 감성과 의례, 상징과 지식들이 동원된 실천이었다고 본다. 애매하고 막연한 불만과 공감을 통해 형성된 촛불이 효과적인 정치적 행위로 이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물론 거기에 참여하는 주체가 자신을 지배받는 주체로 스스로를 의식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3부는 촛불에 참여한 주체들의 정체성을 보다 섬세하게 짚고 있다.

 

 

“…촛불집회를 분석하는 이론들이 보여주는 ‘낙관주의’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론은 촛불집회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자율성의 낙관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그 자율성이 넘어서지 못하는 경계들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그 한계를 드러내는 입장을 채택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론은 늘 오히려 ‘비관주의적’이어야 하며, 대중에 대한 상찬으로 가득한 이론적 낙관주의는 결국 대중 스스로 환상에 빠져들게 하고 정세의 엄혹함을 회피하게 만드는 알리바이에 불과할 수 있다. 더욱이, 정세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해, 절망 속의 대중들이 표출하는 탈정치화의 전망을 대중적 봉기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시점에 등장하는 이론적 오해는 대중에게 독이 될 수 있을 뿐이다.”(p.49. 경계를 넘어서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다 -촛불의 낙관주의에 대한 어떤 우려, 백승욱)

 

촛불은 확실히 기존의 정치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초장집이 말허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 위기가  촛불을 발생시킨 것이다. 촛불이 기성 정치권을 부정하는 양상을 띤 것은 여기에 참여한 세력이 지금까지 정치에서 배제 당해왔던 이들이었다. 보수도 진보도 수렴할 수 없었던 요구가 분출한 것이다.  이런 "이례적 현상"을 만든 이들은 바로 10대들이었다. 촛불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10대들은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10대들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필요 없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10대 들은 어른들의 분신으로 존재했을 뿐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대들은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10대들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연약한 존재이거나 아니면 '머리에 피도 안마른 주제'에 어른 흉내나 내는 건방진 존재였다.(p.57 ~ p.58)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지난해 5월 2일부터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던 촛불집회는 국민주권시대를 열었던 신화창조의 신호탄이었다. 시작은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전면 수입 개방함으로써 촉발되었지만 그 저변에는 민심을 거역한 독재회귀 정권에 대한 강한 분노와 불신이 촛불로 승화된 것이다.
초기 촛불집회의 주연은 분명 10대 청소년들이었다
. 촛불의 상징과도 같았던 10대 청소년들은 분명, 20대 대학생들보다 훨씬 사회 참여적이었다.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장학사와 선생님이 동원돼 학생들 집회 참여 못하게 막으려고 청계광장에 배치되었고 경찰은 촛불집회에 참여 했다가 검거당한 학생들에게 다시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쓰게한  처사나 모두 비판받아 마땅한 어른들의 행동이었다. 그들에게도 인권은 분명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겐 선택권이 없다. 0교시 부활이나, 미국 쇠고기 급식이나, 일제고사 응시여부를 청소년들이 선택할 정치적 통로는 사실상 막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학생들이 강력한 상실감에 거리로 나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휴머니즘과 민족주의와 웰빙 정서가 묘하게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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