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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닌 1
아사노 이니오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예감을 모른 척 하는 마음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에 들어온 다네다. 오자마자 쓰러져 자는 다네다에게 메이코는 유성매직을 든다. 다네다의 얼굴에 가면 같은 그림을 그리고 깔깔, 재밌다. 스물네 살. 그들은 6년을 만났고, 동거 1년 차다. 메이코는 구질구질하기로는 세계 제일인 그냥 그런 회사에 다니고 있고 다네다는 신문사에서 그림을 그린다. 다네다는 생활을 일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급여를 받는데. 이들이 동거하는 이유는 둘이 떨어진 시간을 견딜 수 없는 '사랑'을 위해서라기보다 둘이 함께 있지 않으면 제대로 지속될 수 없는 '생활'을 위함이다. 물론, 사랑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미래...? 를 생각해 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식사 당번은 정할 수 있다. 카레와 생선구이 카레, 다시 생선구이와 카레로 묘하게 바뀌는 날들에 함께 앉을 수 있다. 평화로운가. 그러나 일상의 '평화'는 무엇이 일어날리 없다고 확신하는 상태다. 이들의 생활은 평화롭다는 포장아래 무엇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모른척한다. 다만 그 속에서 익숙한 기쁨을 느끼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을 뿐이다.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라고나 할까_다네다
가면을 모르는 다네다, 가면을 보는 메이코
아침에 들어온 다네다는 점심 무렵에도 자고 있다. 조퇴를 하고 돌아온 메이코는 오늘이 얼마나 좆같았는지, 그런 건 말하지 않는다. 생각할 뿐이다. 이 회사의 어른들은 별 것도 아닌 일로 호통을 치며 체신을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희롱을 일삼는다. 함께 다니는 후배는 (이걸 패줄 수도 없고)엿을 먹인다. 도대체가 재미라는 것이 없다. 이러려고 어른이 되었나. 혼자 중얼거린다. 다행히 다네다는 자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본다. 나, 회사 그만 둘까...미안해서 푸념이라도 하지 못했을 말. 회사를 그만 두고 싶다는 말은, 생활이 되지 않아 함께 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다네다를 출구 없는 곳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될 테니까. 그러나 자고 있어야 할 다네다는 갑자기 일어나 우스꽝스러운, 가면이 그려진 얼굴로 대답한다. '그만 둬. 정말 네가 그만 두고 싶다면.' 메이코는 눈이 커지며 놀란다.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메이코는 다네다를 껴안는다. 다네다라고 생각하고 싶은 다네다를, 껴안는다. 그리고 다음 날 메이코는 회사를 그만 둔다.
가면이 지워진 풍경
다음 날 함께 밥을 먹으며 메이코가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말을 듣고 다네다는 화들짝 놀란다. 어떻게 하려고? 우리의 생활은, 돈은, 빗발치는 물음이 다네다를 조른다. 그러나 메이코는 즐겁다. 모아둔 돈도 있고, 무엇보다 다네다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다네다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생각도 못했을 용기가 다네다 자신을 누르고 나왔던 것을 말이다. 그가 잠결에 일어나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면을 잘 쓰는 에스키모족에 대한 연구를 보면 가면을 쓰는 일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고, 가면이나 역할은 쓰는 사람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보는 관중의 집합적 힘의 확장을 뜻한다고 한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다네다 자신이 원해서 쓴 가면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인 메이코에게 얼굴을 무방비하게 내줌으로써 그려진 것이었다는 점이다. 스물네 살, 대학을 졸업한 이들에게 꿈이나 현실은 모두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멀다. 생활을 위한 아르바이트는 답이 없고 그냥 다니는 회사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수도 없게 한다. 꿈이 없는 삶. 답답함에 몸에 독소가 쌓이고 시퍼런 뿔이 나온다. 감자의 먹지 못하는 싹 솔라닌. 메이코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다네다의 얼굴에 '가면-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신'을 그린다. 자신이 원하는 말을 겨우 하고 그에 합당한 대답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말을 발화한 이를 다네다 같은 인물이라고 '혼동'해 버린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세수를 하고 가면이 지워진 다네다는 '그랬다'는 설명에 경기 같은 반응을 보인다. 어느 인류학자의 논의를 참고해 보면 다네다는 '가면'으로 자기 자신을 벗어났으며(그러나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니며) 가면이 보여주는 '힘'은 가면을 쓰는 사람의 확장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메이코'의 힘이 확장으로 발현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감자에 싹이 나서...이파리에 감자감자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고 장난스러운 일로 이날은 지나가지만 이들에게 변화를 꾀는 사건으로 중요하게 기록된다. 이렇게 다네다 자기가 자신을 벗어나고 그것을 종용한 메이코의 들뜸이 일상을 채워갈 때 한쪽 베란다에 쌓인 감자는 소라닌이라는 독을 가진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땅속의 감자는 과연 알맞게 익었지만 밭을 떠나자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며 혼잡한 도쿄, 빌딩과 빌딩, 길가와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다. 무엇이 되기 전에 빛을 받으면 먹을 수 없게 되어 쓸쓸하게 버려지는 이 작물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 자신을 뜻하면서, 만화의 첫 장 메이코의 고향집에서 한 박스 날라져 온 '실제' 생활에 곤란함, 고민거리에게도 작용한다. 박스를 보며 메이코는 턱을 괸다. 이걸 어쩌지. 이걸 어쩌지, 자신을 향해 발화된 말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꼈을지 모르면서 말이다.
길이 막혔잖아?
꿈, 입을 다물게 만드는 말
대학시절 밴드를 했던 다네다는 곡 하나는 끝내주게 쓴다는 세간의 평가를 모른 척 하고 자신의 재능이나 욕망을 그저 '취미'로 포장해 숨긴다. 그래서 다네다의 꿈속에서 넥이 없는 기타, 바디만 남은 기타를 등에 지고 걷는 것은 웃음보다 안타까움이 출몰하는 것이다. 넥이 없는 기타를 지느라 손이 묶여 버렸다. 연주를 할 수 없는 미래를 들고서, 그의 손은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자신을 배고프고 가난하게 할 뿐이다. 그런 건 재능이라고 할 수도 없고, 꿈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어른스러움', 아직 어른이 아닌 이들이 느끼는 어른스러움을 보일 수밖에 없는 도쿄에서의 생활.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묻는 것이 때로 사치스러운 상황에 있는 이들의 마음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때로는 폭력적인 마음들
메이코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아직 모르지만 다네다가 하고 싶은 것은 명확하게 알고 있다. 다네다에게 음악을 다시 하라고 권유한다. 때로는 이러한 권유가 폭력적이라는 것을. 생활에 대해서도 자리를 빼앗긴 다네다는 이제 꿈이라는 약점, 꿈이라는 보기 좋은 이름을 흔드는 메이코, 흔들리는 다네다. '어떻게든 될 테니까' '젊으니까' 다시 할 수 있으니까. 요금이 밀려서 가스가 끊기고 찬 물이 나오고 에어컨이 고장 나는 여름을 넘기며, 다네다는 함께한 친구들과 녹음을 하기로 한다. 죽어라 해보고, 안되면 이번이 마지막이다. 씨디를 보내서 데뷔를 하자.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로 포기, 라는 다네다의 말. 6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베이스와 가업으로 물려받은 약국을 하는 드러머, 모두 삶이 그와 같기는 마찬가지다. 곡을 쓰고 노래를 하는 다네다가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네가 움직인다면 어디든 가야지. 여름날, 이들은 치기와 열정이 섞인 노래를 부른다.
메이코와 다네다
소라닌, 자신에게 보내는 레퀴엠
그날 이후 메이코가 다네다의 기타를 치는 것은 이 둘을 무엇보다 잘 설명하는 은유로 이해된다. 무엇을 위해 태워야 할지 모르는 열망을 갖고서,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가면을 그려 나의 욕망을 대입하고, 생활로서의 끝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모자라서 마지막 남은 한 자락 꿈에게까지 다네다를 밀어붙이고 말았던 비극적인 결과다. 이 둘은 하나인데, 비유적으로 한 몸이라는 것이 아니다. 결코 두 번 살 수 없는 청춘의 두 얼굴을 연인이라는 두 사람에 화한 것이다. 애인의 죽음 이후, 자신이 꾸릴 수 있는 현실을 되살기를 거부하고 메이코는 애인의 꿈을 집어 든다. 한번도 쳐보지 않았을 기타를 부르트게 치면서 노래를 한다.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자신을 위해 던져진 이별의 노래나 다름없는 가사를 부르며 메이코는 마침내 무대에 서는 것을 목표 삼는다. 소라닌은 다네다가 메이코에게 보낸 미리 쓰여 진 이별 노래가 아니라, 자신과 메이코와, 베이스와, 드럼에게 보내는 청춘과의 이별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 싹을 언제까지 틔우는지 자신을 다 소진해 버리고 마는 바보 같은 젊음이 돼버린 우리들, 헤어질 수 없는 끈질긴 날들, 퍼렇게 썩어버린 20대를 노래로 부르며 마음과, 몸을 버리고 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떠나보내는 '레퀴엠'이다.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길 원했던 짙은 보라색의 날들에게
그래서 비로소 메이코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이 노래는 내가 서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불리고 있다. 스물세 살, 메이코와 같은 나이일 때 이 책을 처음 보았고 지독한 우울이 밀려왔었다. 일 년에 딱 한 번만 읽겠다는 약속을 두고 책등을 뒤로 꽂아 놓았고 매년 나이를 먹지 않고 똑같은 어리석음과 똑같은 죽음을 반복하는 이들을 봐왔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2권이 없다. 1권만 읽고 쓰는 리뷰가 미완성임에 분명할 청춘을 대변이라도 하듯 라임이 맞아든다. 비로소 이 책을 보고 무엇을 쓰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내가 그곳을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수차례 여름마다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서, 아픔이 점점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을 문득 '아프다'고 생각하면서, 무엇을 하지 못했던 나의 이십대를 연민하지 않고 나를 믿지 못해 내게서 물러나고 당신에게서 물러났던 나를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기울고 멀어진 그림자에게 전한다. 소라닌. 징그럽게도 나를 다 뒤덮었던, 다른 감자를 키워낼 수 있을 것처럼 속이며 자랐으나 실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길 원했던 짙은 보라색의 날들에게 말이다.
*클라이브 갬블, 『기원과 혁명』, 사회평론. 142쪽 요약 발췌.
#소라닌1,2는 영화가 개봉된 후, 개정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