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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 기획 사무소 ㅣ 니노미야 시리즈
구로카와 히로유키 지음, 민경욱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날 깔보지 말랑게. 나는 자네 동료가 아녀! p. 89
'투톱'의 역사는 길다. 기록된 처음을 살펴보자면 '성경_창세기'까지 가야한다. "카인과 아벨"로 대표되는 남자 투톱의 서사는 이야기가 있으려면 적어도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형제가 겪는 갈등과 파국은 질투와 폭력이라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돌아보게 했는데.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에게도 유서 깊은 투톱이 있으니 얼마나 유명한지 노래가 있을 정도다. "흥부가 기가막혀, 흥부가 기가막혀, 흥부가…." 이처럼 남자 둘이 끌어가는 서사는 흔하고 오래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형태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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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男'이 꾸릴 수 있는 구도는 자칫 굉장히 단조로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갈등과 해소, 경쟁과 화합, 혹은 갈등과 배신. 여기에 인물이 처한 상황, 지위 등의 높낮이, 각기 다른 성격을 조합하면 흥미진진한 대결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살펴볼까. 영화 <의형제>에서 국정원 요원과 남파공작원으로 등장한 송강호, 강동원이 그랬고 <완득이>의 선생과 학생으로 묘한 애정을 과시했던 김윤석과 유아인을 기억할 수 있고 <범죄와의 전쟁>의 공무원 출신 건달과 건달 생활자 최민식 하정우를 떠올릴 수 있겠다. 투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물 건너 온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의 두 주인공을 만났다. 생생한 캐릭터, 현실감 있는 이야기에 이들의 한국 진출을 가히 '투톱의 귀환'이라 할 만 했다.
일본의 산업구조에서 쓰레기가 줄어들 일은 없고 처리장은 어디나 꽉 찬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사장님, 앞으로는 산업폐기물 비즈니스가 대세요. p.80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는 건설 컨설턴트로, 1인 사업자 니노미야는 종종 '흥신소'라고 오해 받지만 가오를 지키기에 게으름이 없다. 흥신소라는 단어가 들릴 때매마다 '컨설턴트'라고 힘주어 교정하는데.(무엇이 다른지는 알 수 없지만) 건설에 관한 거의 모든 음지의 일을 맡는다. 업계를 이해해야 하며 신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소식통이 될 수 있는 업소의 여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에 따라선 야쿠자 뒤를 밟고 유력한 개인에게 협박을 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몸싸움도 불사한다. <니노미야 기획>에 들어온 의뢰는 무엇인가. "폐기물 처리장 허가"를 둘러싸고 미묘하게 일이 틀어지는데, 여기서 드러나지 않는 알력 다툼을 밝히는 것이다.
폐기물 처리장이라고 하면 플랜카드를 걸고 반대하는 일을 우선 떠올릴 수 있다. 혐오시설, 간단하게도 인상의 전부였다. 이 '혐오시설'이 없다면 그 쓰레기들은 모두 어디에 가야 할까,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 문제에는 우선 권력층의 움직임과 시의원들의 협의가 있고, 정보를 받고 알리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발 빠름이 있으며 그 지역의 유지들의 이익 다툼이 있고, 얼마 되지 않는 보상을 받고 물러나야 하는 그 지역의 주민들과 그리고 각 업체마다 협력하며 뒤를 봐주는 야쿠자들까지 섥혀있다. 이 가지를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드러나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를 조망한다.
설치미술가 하 슐트의 '쓰레기 인간'_산업 폐기물 20톤으로 만들었다고.
햇빛이 들어오는 풍광 좋은 욕실, 온기가 잘 도는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거나 동경하는 이들은 자신이 버리는 쓰레기, 그 밝은 건물이 세워지면서 메꿔야 했던 땅, 건물을 지을 때 발생한 수많은 건축 폐기물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일련의 일을 상상하거나 논리적으로 생각을 연결하는 이도 거의 없다. 그러나 쓰레기는 언제 어디서라도 나온다. (하다못해 몸 뒤집지도 못하는 신생아조차 쓰레기를 생산한다) 처리할 수 없는 쓰레기를 발생하는 생물은 세상에 인간 밖에 없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조차 내 손이 아닌 다른 손을 이용해 버리도록 하는 이 세상은, 폐기물 매립장이 세워지는 불가피하며 어려운 일, 어떤 변명의 여지없이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비단 '돈'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상 누군가는 맡을 수밖에 없는 수직적 구조,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층의 생활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풍경은 거대한 돈을 밀고 당기며 움직이는 이들과, 니노미야와 구와바라처럼 셋돈을 받으며 일 돌아가는 꼴을 살펴야 하는 종속된 개인을 만들어 낸다.
뱉은 침을 다시 삼키당가? p. 24
그러나, 이 바닥 최하층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만드는 세계가 눅눅함과 비루함만 있을쏘냐. 이들이 힘을 다해 움직이는 것은 일에 '돈'이 걸려서라기보다, 돈을 받을 수 있었던 '니노미야', 즉 자신의 이름 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인물들을 마냥 미워만 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구와바라와 니노미야는 서로를 재수 없어 여기면서도 결코 콤비를 벗어나지 않는데. 이 둘조차 결국 돈에 엮인 관계이겠으나, 끝에 가서는 끈질기게 의뢰받은 일의 성사를 위해 분발하는 모습이 묘한 감정을 남긴다. 작가는 이들이 겪는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실소가 터지는 상황을 서핑 타듯 스릴 넘치게 그린다. 이 와중에 이들의 입말이 어찌나 입에 잘 붙는지 가령 "뱀은 뱀이가는 길을 알제" 라는 구와바라의 구성진 사투리며, 바닥의 세계를 이해하는 이들이 촌철살인 까는 니노미야의 말씨가, 돈을 받아 둔 일에 대해서 어떻게 몸을 굴려서라도 단서를 찾아내는 건설-산업폐기물이라는 음지의 분야와 예측 불가능한 시너지를 낸다. 이들이 물속에 빠지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폐기물 건설을 둘러싼 거미줄 같은 '인물 관계도'를 표방한 '이해 관계도'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또한 작가는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린 세계를 더욱 실감나게 환기하는데 공들인다. 세상이 원래 이렇게 부조리 한 것이다. <산업폐기물 처리법>, <산업폐기물의 처리 및 청소에 관한 법률 개요> 등 전문서를 참고해 일반인들이 미처 몰랐던 건설, 특히 산업폐기물과 관련한 현실을 세밀하게 구현한다.
"이거 받아."
"뭔데요?"
"노래방 우대권이야."
가게 이름은 '캔디스'. 내일이라도 망할 것 같다. p. 536
오백페이지를 넘는 소설 끝에 남는 대화다. 이 썰렁하며, 들리지 않는 냉소며, 이들의 대화는 이렇게 쿨함으로 점철되어 피식 웃을 수밖에 없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 정작 자신들은 웃지 않으면서 뭉뚝한 대화만으로 서로의 친밀과 관계를 드러내지 않는 대사를 어떻게 할 거냐. 49년생 노련한 작가는 이십대 젊음의 니노미야, 세상만사 쫄것 없는 '쏘쿨'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만들고, 함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능구렁이, 노회한 너구리 구와바라를 만들었다. 동고동락, 몸 뒹굴며 다치며 서로를 구하고 욕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고작 ‘노래방 우대권’을 건네 그동안의 고마움을 1/10로 희석시킨다. 끝이 아쉬워 당장 처음을 펼치고 다시 따라가고 싶게 만드는 매력 있는 소설은 고맙게도 작가의 첫 작품이다. 이후 소설에서 이들 ‘콤비’를 볼 수 있다는데 '다행'을 느낀다. 소설의 ‘힘’이랄지. 작가는 이 소설의 연작 <파문>으로 2014년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덧붙임_니노미야의 독백이 '니노미야는~했다'로 처리된게 아쉽다. 주인공 이름이 없어도 이해 가능한 것이 다수다.
536페이지 원래 인용글은 다음과 같다.
"이거 받아."
"뭔데요?"
"노래방 우대권이야."
가게 이름은 '캔디스'. 니노미야 생각에 내일이라도 망할 것 같았다. p. 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