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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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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은 단순히 '보이지 않는'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투명인간>은 죽었으나 죽지 않은 '유령'을 포함하고 내가 나를 벗어나는 '유체이탈'적인 상황도 설명한다. '존재감'의 진하기로 투명인간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그리고 무엇보다 <투명인간>, '세어지지 않는 사람'을 과장한 말이라고도 생각한다소설의 이해를 위해 '투명인간'이라는 명쾌한 비유를 가져왔지만 구체적인 의문은 '세어짐'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얼마나 세어지는 사람인가하는 것은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나는 얼마나 보이는 사람인가'는 묻는 것부터 통하지 않을 염려가 크기 때문이다.

 

천만의 시민들 중에 나는 기꺼이 한 사람으로 세어지는가이 물음은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알려져야 구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다대답이 더디고 어둡다그들은 '나를 모른다'라는 명확한 사실에 더해 '나도 그들을 모른다'라는 사실이 길을 막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내가 '나를 제외한 천만의 시민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밝은가'라는 물음이며 물어보나 마나 '못하다'라는 뜻을 안고 있는 무거운 조소다그러니까 더 들어가서역사를 청소하시는 바랜 파란색의 제목의 아주머니와 허리가 굽어 리어카를 끄시는 폐지 가득한 그분의 삶을 ''는 모를 뿐더러더 정확하게 말하면 알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완성된다한편에선 이런 목소리다모르면 다행이지알고서 지나친다말뜻을 알았다면 광화문광장은 발 디딜 틈 없어야 한다특별법 좌초를 무겁게 받는다.

 

"오천 명이 죽었다는 일은 한 번의 죽음이 오천 번 일어났다는 것으로 말해져야 한다*" 라는 말에 깊이 아프다면 나 역시 한 명으로 세어질 수 있는지 깊이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명 죽음 이라는 기사는 현실감이 없다한 줄의 기사는 너무나 빠르게 사라진다이 사건은 한 번 일어남으로 인해 그 안에 수많은 죽음도 한 번으로 뭉뚱그려지는 기이한 현상이 사건과 별개로 또 일어난다역사도 깊어서 언제부터인가세어지지 않는 사람들을 세는 행위가 갖은 핍박을 받았던 것은여기서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저 위에서 까맣게 보이지 않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산 이와 죽은 이가 섞여 진도 앞바다와 밀양과 청와대 앞에 두껍다.

 

<투명인간>은 세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진화인 '투명인간'이 과연 언제부터 생겨났나라는 의문에 대한 추적이다성석제는 자신이 복원할 수 있는 끝까지 밀어 올라가 원인 같은 것을 찾으려 샅샅이 살핀다그 결과 만수의 삶이었고자신의 나이와 같은 만수의 탄생이었다자전적인 요소가 없으되 자신의 삶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만수의 조부모 이야기부터 석수의 아들 태석의 이야기까지 아우르는 그네들의 반백년 이상의 삶은 현재 우리가 시시로 만나고 기꺼이 되고 말았던 투명인간의 탄생기다그러나 흔하게 있었을 사람들이 성실하고 안타까운 삶을 살다가 어느 날 투명인간이 되버렸다는 허무한(?) 결론에 이른다. <투명인간>을 읽기 전까지 만수의 속삶을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 공들여 적었으니 나는 더 이상 만수를 모른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나는 만수의 세간을 알고 있고 만수의 어릴 적을 알고 있으며 만수의 놀이를 알고 있다만수가 자신의 동생들을 어떻게 위했는지 알고 있으며만수의 동생들은 각각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있다. <투명인간>을 읽는 이는 만수의 삶을 다 꿰어버렸으니만수는 소외되고자 노력해도 그럴 수 없다만수의 삶은 오십대의 만수만큼 많은 삶의 대표하고 있으니한국 현대 삶 일부를 이해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투명인간>이 이루고자 하는 이해는 무엇일까,

 

우와우리 같은 서울에 사니까 오늘 천만분의 일의 천만분의 일을 만나는 거네요확률로 따지면 백조분의 일이에요. p.359.

 

라는 감탄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추임새인가그러나 이것은 백조분의 일의 확률을 '기적'으로 치환할 수 있는 생각의 트임이다성석제는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라고 썼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함께 느끼고 있다고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다이것은 소설이 갖는 목표 같은 것은 있지도 않고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그보다 작은 '느낌'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대답이다나와 다름없이 그저 살아오는데 온전히 생을 다 바치는 사람들이 있음을 느낄 뿐이해보다 작은 느낌의 문제에는 긍정도 부정이 개입하지 않고 그저 다른 존재를 감지하는 데에 있다.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 느낌의 문제에서 얼마나 멀었었나 하는 반성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나와 다른 이들이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반증그리고 이것은 다른 이에게 뿐만 아니라 가족 내에서부터 얼마나 가혹한 일이었는지 되 집는다가족이란 얼마나 외부에 잘 보이기 위한 울타리로 치장되기 쉽던가가까이서 보면 살대가 다 썩어 있는 지경을. <투명인간>은 곰팡내 난 부분까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그래서 가장 아픈 곳 중에 하나는 만수 아내의 독백이었다.


앞으로도 누군가 내 삶 앞에 쳐놓은 거미줄 같은 덫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앞으로도 남편이 가져다주는 알량한 수입을 쪼개 살림을 해야 하고 감당할 수 없는 아이를 감당해야 하고 내 한 몸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면서 시누이를 돌봐야 할 것이었다내 아이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앞으로도 삶에 지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지친 사람이면서 지쳤다 하소연도 못하고 그들이 배설하는 비정상적인 감정을 모두 받아내야 할 것이었다그게 제일 힘들었다나는 김만수라는 사람을 사랑하고 남편으로 맞아들였다는 죄로 이상한 방식의 희생을 강요받고 그것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앞으로도 영원히. p.338-339.

 

아멘이라고 나도 모르게 말을 잇는다오십대 남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그와 비슷한 유년을 거친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삶에 가장 지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지친 사람이면서 지쳤다 하소연도 못하는” 이 이자 이상한 방식의 희생을 강요받고 그것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 어머니요새 가정의 거의 모든 어머니의 모습 아닐지투명인간은 가장 '작은 사회가족에서부터 시작하는 '투명인간화'를 그리고이윽고 사회에서도 발견되는 사태를 그린다그러나 꼭 투명인간이 사회의 크기별로 발전하거나 양상 되는 것 같지는 않다소설 뒤편에 다소 엉성하게 들어가 있는 <투명인간>문답 내용은 소설이 더 커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독자에게 맡기고 물러서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끝났고그 이후는 알아서 생각하라는 주문이랄까.


소설이 과거를 그리는 것이 그저 이야기를 풀기 위한 장치거나 풍경을 선명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박물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그것을 재현하는데 힘을 쏟았던 까닭은 지금 이 책을 보는 이들에게 과거를 선물하기 위해서먼 날을 품에 안고 '스마트'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금은 어디 없을 아궁이북데기나 검불솔가지처럼 매운 연기가 많이 나는 것. "내가 부엌에서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밥을 짓다보면 방 안에서는 갈라진 구들 사이로 연기가 솟아올라 동생들이 울고 굴뚝에서 나온 연기에 무슨 밥 냄새라도 숨어 있는지 소와 돼지가 밥 달라고 울었다." p.70. 이 날들이 배어있는 이름 모를 모든 만수를 위하여사라진 그날을 복원하는 소설의 ''을 다시금 확인한다. 종합해 <투명인간>은 무엇보다 지고 있는 오십대의 존재감을 알렸으며이들을 나 어린 세대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으나 과묵했던 세대여책을 읽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없음을 지켜볼 수 있었다당신은 투명인간으로 사라지지 말아라투명해 질 것은 아궁이 군불에 맵고학교를 졸업하면서 읽었던 답사의 울먹임과 아침과 장성한 여동생이 시집가는 어느 정오그리고 어느 날 무심코 지나온 늙음을 헤아릴 수 없는 어머니손, 위로 떨어지는 눈물뿐이다


<투명인간> 읽기의 마지막은 이 소설에 기대고 위안할 수 있었던 이야기의 힘을 나의 읽기와 쓰기로 돌려놓는 것이다투명해 지는 것을 붙잡아 그 자리에 놓기 위해서그곳에 내가 '있기위해서그리고 나는 '나의 있음'이 내가 있는 거의 모든 곳에서 투명하지 않을 일을 기다린다내가 확실해지는 만큼 다른 이와 확실하게 부딪힐 수 있을 테니까.

맨 앞을 다시 생각하건데 신문에 나지 않는 산적한 일들삶을 자신의 뒤에 놓고 외치는 가장 중요한 호명이 가슴 아프게 잦아드는 것은, 그토록 명백한 구호와 절규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을 외치는 이가 투명해서가 아니라 이들을 지켜보는 그 밖의 사람들이 투명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 모르고서 멀리서 아플 뿐이었던 나는 더이상 투명해 지는 것을 거부한다. 그곳에 내 일부를 보태고 싶다목소리와 무릎과 눈빛그리고 이렇게 무용한 글쓰기 같은 것을.






*문학동네 팟캐스트 채널1. 10회 에서.

옮긴 내용이 확실하지 않습니다들어보시기를추천합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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