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깎기의 정석 - 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
데이비드 리스 지음, 정은주 옮김 / 프로파간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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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을 보고 진짜 기절초풍했어요! 그런데 질문 있는데요,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열대 과일은 뭐예요?

-나일라(Nailah, 초등학교 3학년생)


나일라가 내 감상을 아주 잘 말해주었다. 연필 깎기의 정석은 이런 책이다. '그런데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열대 과일은 뭐예요?' 묻고 싶어지는 것. 나일라는 귀엽게도 이렇게 말한다. 연필 깎기 잘 봤구요! 이제 아저씨가 좋아하는 걸 알고 싶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연필 깎는 이야기만 나오므로 당연히 열대 과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궁금해지는 것이지. 혼이 담긴 연필 깎기를 보면서 아, 이 장인은 대체 뭘 먹으려나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하게도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아주 적절한 질문이다. 그냥 과일도 아니고 '열대 과일'로 한정해서 물어본 것은 당해낼 수가 없다. 나일라는 장인이 즐겨먹는 과일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없다면 자신이 구하기 쉬운 것으로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왜 <연필 깎기의 정석>에 대한 리뷰를 쓰지 않고 나일라의 '고객 증언'에 대한 이야기만 쓰고 있느냐고?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다 읽고 나면 더이상 '연필 깎기의 정석'이 궁금하지 않고(다 알게 된것 같으니까), '연필 깎기의 정석'에 대해서 말하는 이가 궁금해진다. 이 설명이 그래도 너무 하는 것 같다면, 기대를 저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말해둔다.


책 중간쯤 가면 '폭포에서 연필 깎기'가 나오고 마지막 장에 이르면 대망의 '마음으로 연필 깎는 법'이 나오는데 모든 과정을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사진이 과정을 따라서 친절하게 곁들어져있다. 사진은 흑백인데 어찌나 생생한지 장인의 혼이라든가 고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도저히 '나는 못하겠어'라고 잡아 뺄 수가 없다. (시도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내가 한번도 못 본 데이비드 리스가 좋아하는 열대 과일이 무엇인지 계속 궁금해 지는 것이다. 오렌지? 바나나? 이쯤되면 집념을 이해할 거라 믿는다. 가련한...그러나 나일라는 알테지


굴러다니는 연필 한타를 모아놓고 노려본다. 엄지손가락에 가해질 수도 있는 무리를 예방하기 위해 몸푸는 동작은 필수다. 무엇보다 연필을 깎으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연필의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모른척 해야 한다는 것이다연필 끝에 매달린 지우개 말이다! 연필의 비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는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에 대해선 '미스터리'라는 네 글자로 일축하고 책의 어디에서도 더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이 책에 연필 깎기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우리 모두 모른척 해야 할 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모름지기 장인이 가져야 할 태도일 것이다. 장인은 비밀의 끝까지 달려나가 캐내고 마는 이가 아니라, 비밀을 소중하게 잊어버려 마침내 지켜내는 이니까 말이다.




꾸밈없는 담흑빛의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가

숙명의 포물선을 그리며

폭풍우 속에서 균형을 잡네.


엘리너 와일리(Elinor Wylie), 「나의 영혼에 부치는 시」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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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1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제목부터 흥미진진합니다. 저도 가끔 연필을 깎을 때 혼신의 힘을 다해 칼질을 합니다. 제 목표는 항상 칼로 연필을 깎되 연필깎기 기계에서 뽑아내는 것과 똑같이 둥글게 깎을 것이었거든요...

봄밤 2014-03-13 16:33   좋아요 0 | URL
그런 깎기를 추구하신다면 이 책을 보셔야 합니다. 도움이 될지도...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출판사 프로파간다는 이런 희한한, 통념을 보기좋게 빗나가는 책을 내더군요!
 
 전출처 : minumsa님의 "[민음인신간]「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서평단 모집"

'진짜 나'를 아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나'를 보여주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 같아요.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고 지켜내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사람들 사이의 '나'에게는 대체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책으로 말미암아 건강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보고 싶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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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inumsa님의 "[민음사] 신간 "청춘 파산" 서평단 모집!"

제목을 보고 '급기야.' 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파산'이라는 단어가 '청춘'뒤에 붙는 형국. 이제 이상할 것은 없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곳을 건강하게 빠져나가고 싶어 '다음'을 벌써 두리번 거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생경한 이름의 신춘문예, 한 작가의 책이 묶여져 나오는 것을 '응원' 하고 싶어 신청합니다. 잘 읽어낼 수 있는 보통의 2030십대 독자 여기 있습니다. 서평단을 내준 민음사에게도 고맙습니다. '청춘' 그 자체가 파산된 것일지도 모르는 중의, 무겁게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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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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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봉책-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그는 말수가 적었다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투명한 눈망울이나 의미 없는 고개짓, 그늘진 등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일이 어리석다고도 했다그래서 말이 많은 곳에서는 그를 찾기 어려웠다시끄러운 곳에는 사람이 많았고그들은 대개 없어진 무엇을 찾느라 분주했다없어진 것에 대한 관심이 끊길 때 비로소 그는 옷깃을 털며 오후를 걸었다.


-진실이 산책하는 법



 


진실이란 말수가 없어서 거짓말 할 가능성조차 없는 것이다구로프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안나 세르게예브나의 사랑이 진실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이들은 거짓말 할 가능성을 만들지 않는다. <그녀를 만나러 가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아마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272> 둘만의 만남둘만의 시간둘만이 기억하는 곳. <지금 기온이 3도인데그래도 눈이 내리는구나.271> 라고 구로프가 말하는 것은 실은 ''을 빌려 딸에게 '나는 이곳에 있지만 실은 다른곳에 있단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따뜻한 건 땅의 표면이지대기의 상층에서는 기온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다정하면서 명쾌하다길 걷는 사람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과그 구름에서 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전혀 다르니까구로프와 안나가 비밀스럽게 만나는 곳에서도 사람들을 분명히 만나지만, 그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구로프와 안나는 다른 차원에 있는 것과 같다땅에 있는 우리는 이곳에 눈이 내리거나 내린다고 해도 하늘의 일은 짐작할 수 없는 것처럼지금 기온이 3도가 아니라 30도라고 해도 하늘 꼭대기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을지 모른다.

 

흔하고 뻔한 불륜에 진실의 장관설을 늘어놓는 것은우리가 지치는 일은 대게 진실을 보호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실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숨겨짐으로써 이해하는 것이다말해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비로소 '진실'할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세상의 모든 것들은 말을 할 가능성을 갖는다진실조차도. 그래서 위태로운 삶이다. 구로프가 자신의 비밀을 정당화 하면서 다른이들 역시 자신처럼 상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누구나 밤의 덮개 같은 비밀 아래서 자신만의 가장 흥미로운 진짜 생활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각자 개인의 생활은 비밀 속에서 유지되며아마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에 교양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예민하게 사생활의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지도 몰랐다. 272

 

구로프는 안나와 바닷소리가 평온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평온 자체'일 것으로 보이는 바다에 빠지지는 않는다. 위험하기 때문에. 구로프는 바닷소리에서 영원에 대한 '비밀'을 감지하지만, 바다와 거리를 좁히지는 않는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매미들이 울고 있었다아래에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공허한 바닷소리가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영원한 잠평온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그렇게 아래에서는 바닷소리가이곳에 아직 얄따도 오레안다도 없었던 때에도 울렸고지금도 울리고 있고우리가 없어진 후에도 똑같이 무심하고 공허하게 울릴 것이다어쩌면 바로 이 변화 없음에우리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에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지상의 끊임없는 삶의 움직임에 관한완성을 향한 부단한 움직임에 관한 비밀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262


안나와 헤어진 구로프는 돌아와 저녁을 먹어야 하고 시시한 이야기를 해야했다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다그곳에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는 듯이 모두 열중한다그리고는 구로프에게 장소와 시간에 어울리는 말을 끊임없이 요구한다이렇게. <조금 전 당신이 한 말이 옳았소그 철갑상어는 냄새가 아주 고약했어.> 머리 속에는 온통 안나와안나를 만났던 바닷가 생각 뿐이지만, 그는 중요하지도 않은 '당신'에게 비유 맞추는 말을 짜내고 있다유연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대화가 동시에 원하는 세계에 갈 수 없도록 족쇄를 채운다스스로에게 구로프는 환멸을 느낀다. 그때 들었던 바닷소리에 삶의 비밀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곳을 떠나온 자신이 지겨운 것이다.


평소에 하던 이 평범한 말이 어쩐지 갑자기 구로프를 짜증나게 했다이 말이 모욕적이고 불결하게 여겨졌다얼마나 야만적인 습관들이며 야만적인 사람들인가정말 의미 없는 매일 밤이고흥미도 가치도 없는 나날들이다미친 듯한 카드놀이,폭식폭음끝없이 이어지는 시시한 이야기들쓸데없는 일과 시시한 대화로 좋은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도 결국 남는 것은 꼬리도 날개도 잘린 삶실없는 농담뿐이다정신 병원이나 감옥에 갇힌 듯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266

 

구로프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만나는 것은 '이곳'의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자신에 대한 환멸을 거두고, 거추장스럽게 자신을 말해줬던 구로프를 떠나고 싶다. 그렇다면 삶의 '비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자신이 모르는 구로프를 찾아 떠나는 여행, 오랫동안 '안나'로 불행했던 안나 역시 주저하지만 뛰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벗어남은 불안정해 보인다. '공개된 나'를 버릴 수 있을까? 평온을 이야기 하는 바다를 듣는 것. 그리고 평온 자체인 것만 같은 바다와 거리를 두는 것처럼 알려진 나를 두고 오는 것은 감수하기 어려운 위험이다. 용기있게 내던졌다고 하자. 이중의 삶 하나를 버린다고 해도, 나는 다시 '나'와, '좀더 나'인 것으로 분리해 나갈 것이다. 삶이 온통 진실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나는 언제나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당하다. 안전한 곳으로 나를 피신하는 동안 다른 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진실하다.


추측이 난무하지만 소설은 끝났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페이지에는 없지만 저들은 우선 옷을 가볍게 하는 것 같다. 질주 하려는데 3피스 정장과 모자바닥에 끌리는 치마와 양산은 필요 없으니까. 단조롭고 공허한 바닷소리와 어울리는 옷을 입고. 그곳에 도착하면 미봉책이나마, 진실이 말을 하지 못하도록 깊게 입맞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의 거짓과, 그 거짓들의 틈에 끼여있는 진실로써 숨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적한 바닷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만난다면, 나는 그 개 이름을 물어보고싶다. 진실은 궁금하지 않다. '공개된 나'의 가벼움에 조소를 거두고 오늘은 이해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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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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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과 무관하게-침묵의 거리에서




1제곱은 선이고 2제곱은 사각형, 3제곱은 입방체를 의미한다. 
이보다 더 큰 지수를 도형으로 시각화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자연은 그 이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 지롤라모 카르다노가 지수에 관하여 남긴 말*



그러나 허락되었건 금지되었건 간에, 4 제곱(제곱의 제곱)과 6 제곱(세제곱의 제곱)은 존재가 인정되었다카르다노 역시 5차, 7차 등의 거듭제곱을 다루면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고차원 거듭제곱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기하학적인 해설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과 사각형, 입방체로 대응되는 3제곱 이상의 것은 머리에서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 고차원 거듭제곱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쾌하게 알리는 수학의 목소리다.  

책 『침묵의 거리에서』의 '어떤 죽음'을 우리가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 말한다. 학교와 집, 친구와 가족이 세계의 전부처럼 보여 죽음의 인과 또한 그처럼 간단해 보이는 중학생의 죽음이라도 말이다. 중고등 학생의 사고 뉴스를 보면서 시기를 지나온 어른들은 그들의 죽음을 쉽게 짐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왔기 때문에 이 짐작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쉽사리 이해할 수도, 이유에 닿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 

오쿠다 히데오가 작가의 말에 쓰고 있듯 이것은 '어디에나 있는 중학생 왕따'가 소재다.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를 이보다 다면적이고 치밀하게 추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은 아이의 죽음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지역'을 통찰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한 페이지를 넘어가지 않는 평범한 서술이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리한다.

농협 시설도 일류 기업 못지않았다. 옛날부터 지연이며 혈연이 강세인 지역이고 사찰이 큰 영향력을 가진 까닭에, 전통 있는 단가는 마을 유지로써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곤 했다. 농협과 절, 그리고 보수 정치.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지방의 풍경이다. 공무원 채용도 공정하게 이루어진 전례가 없었다. 선거법 위반도 늘 있는 일이었다. 1/27
대부분 자영업에 종사하던 시민들은 월급 생활자가 되었으며 외국인 노동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레 지역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겨, 전체주의적인 풍조가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가을 축제 보조금은 벌써 5년 연속 최저액을 경신했다. (...)늦은 밤 편의점 앞에서 중학생들이 담배를 피워 대도 아무도 주의를 주지 않았다. 이 변화 또한 전형적인 지방 풍경이었다. 1/28

작은 지방에서 일어난 중학생 죽음을 수사하는데 지역이 어떠한지 원거리에서 바라본다. 중학교가 작아서 4반 밖에 없고 근방 2개의 초등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이 그대로 진학하는 것,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과 이것을 수사하러 온 형사가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점 등은 마을이 얼마나 집약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알린다. 이곳에서의 관계는 부모에게서 아이로 소개될 뿐만 아니라 아이와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서도 지속 된다는 흰트를 얻는다. 게다가 죽은 아이의 부모가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포목상을 운영한다는 설정까지. 피해자 부모는 아이의 죽음 이후 학교를 압박한다.  

밑그림을 그린 후, 사방에서 아이의 죽음을 설명하고자 서로 다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죽음을 조사하고, 밝히고, 정리하려는 이는 모두 다른 '위치'에서 온다. 모두들 '정의'롭고 싶다. 정의가 유일무이한 것이라면 죽음이 일어난 곳엔 그 연유를 밝히는 것이 단 하나의 정의여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 나오는 이들을 자신의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른 바람을 갖고 있다.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상황에 따라 '다른 정의'를 내걸고 기도하는 것이다. 어떤 죽음(사건)도 본질에 닿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 담임 선생님은 아이의 죽음이 '사고'이기를 바란다. 죽은 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남은 아이들이라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우선하는 것이다. 는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표면적이다. 조금더 들어가 보면 이 사고가 사건으로 기록되었을 때 그 무게가 감당 되지 않는 것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2. 가해자-로서 조사를 받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사건과 자신의 아이를 분리한다. '상해했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에도 '거기까지'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가 내몰았을지 모르는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와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경찰을 '위험'으로 규정한다. 그곳에서 '보호'하려고 한다. 파렴치한가? 그렇다면 이들의 정의가 틀렸다고 할것인가? 명확한 증명이 있을때까지 이들에게 정의는 이것 하나뿐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구출해내는데 촉각을 내세운다. 이 촉각이 두드러질수록 애도가 옅어진다. 자신의 아이의 친구가 죽었는데도, 슬픔은 마음에 미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죽은 아이는 물론,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로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회사일이 먼저인 남편이 그려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가족이 더이상 끈끈하며 하나의 목적과 사랑을 갖는 집단이 아니게 되었다. 남편은 자신으로서의 삶이 먼저다. 

[남편에 대한 불만은 점점 커져 갔다. 시게유키는 이번 일에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 니구라 가족에 대한 대만 해도 그랬다. 아버지라면 아이가 돌아오자마자 그 집을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겐타와 함께 고개
를 숙였어야 하는 게 아닌가.(...)어째서 가족을 지키려 하지 않는 거지. 1/355

3. 그런가 하면 경찰들은 그날 지붕 위에 나 있던 발자국, 그 아이들에게만 집중한다. 죽은 아이가 가졌을 관계의 가지수를 생각하지 못한다. 이 아이들을 구속 수사하는 것은, 이들로 한정하기 때문에 이미 실패라는 조짐이다. 아이들의 발자국이 지붕에 나 있었다. 그리고 죽은 아이는 이들에게 괴롭힘 받은 상해흔이 몸에 있다. 아이는 그곳에서 추락사했다. 이렇게 간단하다니, 이렇게 명확한 죽음이라니 말이다. 정황이 뚜렷한 죽음 앞에서 경찰에게는 다른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에게 중학생은 우선 거짓말을 쉽게 해서 수사를 어렵게 하는 대상이다. 이들이 혹여라도 느낄 '죄책감'을 알지 못하며 '영웅심리'같은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4. 이것을 취재하는 기자는 사건을 쓰지만 '쓴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감추지 않는다. 난처하게도 자신이 취재한 것이 1면에 실린다는 흥분도 있다. 자신의 기사가 무엇을 더 환기할 수 있을지, 그것이 정의에 가까운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기사화가 된다. 그러나 사건의 '알림'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곳에는 '죽음의 정의'가 아니라 그녀가 '바라보는 정의'가 깃들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선의 '정의'에 혼동하기 쉽다. 나의 가치 역시,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책의 전반적인 목표라면, 책의 백미白眉 학생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미묘한 세계를 자세하게 써내려 가는점이다. 가해자-피해자가 쌍방의 관계에서만 불리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피해자(죽은 아이)는 가해자로 불리는 아이에게서는 피해자로 불렸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을 내버려둔 가해자로, 또한 피해자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보다 더 어리고 허약한 아이를 괴롭힌 것도 중요하다. 아이는 또래 세계의 룰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쉽게 저버리면서 어른을 끌고 들어온다. 결정적으로 아이들에게서 따돌려졌던 '캠프에서 일'은 그것을 고자질한 아이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선생님은 아이들만의 세계를 모르는척 눈감고 넘어갈 줄도 알아야 했다. 자신이 정말 슬프다며 훈계하는 장면은 막막하다. 슬프도록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정말 슬프다. 왜 아무도 규칙을 어기는 걸 말리지 않았지? 왜 아무도 선생님에게 알려 주지 않았지?" 아무도 안 할 게 당연하잖아. 도모미는 마음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러면 선생들은 자기가 중학생일 때 어른들에게 고자질을 했다는 거야? 만일 그렇다면 정말 왕재수 아냐. 중학교 다닐 때 일은 벌써 잊어버린 거냐고. 2/168]
선생은 슬픈 훈계로 아이들만의 세계를 쉽게 무너뜨리고, 아이를 일방적으로 비밀을 발설한 배신자로 만들어버렸다. 이 밖에 죽은 아이가 외동이었으며, 부자인 까닭에 또래보다 원하는 것을 쉽게 가질 수 있었고 그것으로 환심을 사려고 했거나 권력으로 이용(되었던)했던 장면이 세세히 적힌다. 죽음의 무게에 짓눌려 그저 '불쌍한 아이'로 단정짓는 것을 피한다. 그 아이가 살아있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죽음의 연유를 밝히는 것만큼이나 그 아이가 살아있을 때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일본에 리갈하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법정드라마를 표방하며 사회의 폐부를 유쾌하게 비트는데, 스페셜로 다뤘던 테마가 중학생 이지메 사건이었다. 겉으로는 유쾌한 드라마여야 하기 때문에 아이는 건물에서 떨어져 다친 것으로 설정된다. 아이가 다쳤다는 점을 빼면 놀라울정도로 책의 시선과 비슷하다. 책에서처럼 왕따문제를 깊게 다루지 못했지만 거의 같은 부분을 노려보았다. 이곳에서는 우선 교사가 이지메를 알았느냐에 최대 중점을 둔다. 그렇다면 가해자로 지목되는 아이들보다 학교에 책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중학생 이지메 사건을 말하면서 학교의 은폐, 내부고발, 가해자로 지목된 불량해 보이고(덩치 큰) 아이는 과연 리더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괴롭히는 아이의 리더를 찾는 것은 매우 부질없는 짓이다. 중학생 아이들은 '혼자라는 선택지가 없어. 중학생이란 생물은 연못 속의 물고기 같은 존재라, 모두 같은 물을 마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60)

다친 아이의 배상을 위해서 노력하는 배금주의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후, 놀라운 말을 듣는다괴롭힘을 당했던 것도 맞고, 왕따였던 것도 맞았으나, 건물에서 떨어져 내린 것은 다쳤던 아이 자신이 직접했다는 . 괴롭혔던 아이들의 성화를 진실이라고 밝혀내 수사가 끝났으나, -다친 아이는 전학을 가고, 배상 받은 돈으로 가난한 집을 이사한다- 그럼에도 그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진실이었다. 5제곱근과 7제곱근이 자연의 허락과는 무관하게 실재하는 것처럼 진실이 있는 장소는 그려지지(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침묵의 거리>에서도 이와 비슷 대답을 돌려주었다. 이 책을 덮고 취할 수 있는 포즈는 '허탈'이 아니다. 밝혀지고 '있다는' 모든 사건에 거대한 상상 불러오는 것. 상상력을 (이미)허락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허락과는 무관하게, 형체로 현 수 없는 '사람'과 '사회'의 문제가 있다. 우리에겐 그것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언제나 조금 더 필요하다.   



*, **배리 마주르, 『허수(시인의 마음으로 들여다본 수학적 상상의 세계)』, 승산, 2008.

***연기파 국민배우 사카이 마사토 주연. 일본 후지TV 

: 1/12 = 1권 1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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