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깎기의 정석 - 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
데이비드 리스 지음, 정은주 옮김 / 프로파간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을 보고 진짜 기절초풍했어요! 그런데 질문 있는데요,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열대 과일은 뭐예요?

-나일라(Nailah, 초등학교 3학년생)


나일라가 내 감상을 아주 잘 말해주었다. 연필 깎기의 정석은 이런 책이다. '그런데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열대 과일은 뭐예요?' 묻고 싶어지는 것. 나일라는 귀엽게도 이렇게 말한다. 연필 깎기 잘 봤구요! 이제 아저씨가 좋아하는 걸 알고 싶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연필 깎는 이야기만 나오므로 당연히 열대 과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궁금해지는 것이지. 혼이 담긴 연필 깎기를 보면서 아, 이 장인은 대체 뭘 먹으려나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하게도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아주 적절한 질문이다. 그냥 과일도 아니고 '열대 과일'로 한정해서 물어본 것은 당해낼 수가 없다. 나일라는 장인이 즐겨먹는 과일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없다면 자신이 구하기 쉬운 것으로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왜 <연필 깎기의 정석>에 대한 리뷰를 쓰지 않고 나일라의 '고객 증언'에 대한 이야기만 쓰고 있느냐고?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다 읽고 나면 더이상 '연필 깎기의 정석'이 궁금하지 않고(다 알게 된것 같으니까), '연필 깎기의 정석'에 대해서 말하는 이가 궁금해진다. 이 설명이 그래도 너무 하는 것 같다면, 기대를 저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말해둔다.


책 중간쯤 가면 '폭포에서 연필 깎기'가 나오고 마지막 장에 이르면 대망의 '마음으로 연필 깎는 법'이 나오는데 모든 과정을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사진이 과정을 따라서 친절하게 곁들어져있다. 사진은 흑백인데 어찌나 생생한지 장인의 혼이라든가 고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도저히 '나는 못하겠어'라고 잡아 뺄 수가 없다. (시도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내가 한번도 못 본 데이비드 리스가 좋아하는 열대 과일이 무엇인지 계속 궁금해 지는 것이다. 오렌지? 바나나? 이쯤되면 집념을 이해할 거라 믿는다. 가련한...그러나 나일라는 알테지


굴러다니는 연필 한타를 모아놓고 노려본다. 엄지손가락에 가해질 수도 있는 무리를 예방하기 위해 몸푸는 동작은 필수다. 무엇보다 연필을 깎으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연필의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모른척 해야 한다는 것이다연필 끝에 매달린 지우개 말이다! 연필의 비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는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에 대해선 '미스터리'라는 네 글자로 일축하고 책의 어디에서도 더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이 책에 연필 깎기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우리 모두 모른척 해야 할 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모름지기 장인이 가져야 할 태도일 것이다. 장인은 비밀의 끝까지 달려나가 캐내고 마는 이가 아니라, 비밀을 소중하게 잊어버려 마침내 지켜내는 이니까 말이다.




꾸밈없는 담흑빛의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가

숙명의 포물선을 그리며

폭풍우 속에서 균형을 잡네.


엘리너 와일리(Elinor Wylie), 「나의 영혼에 부치는 시」부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4-03-1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제목부터 흥미진진합니다. 저도 가끔 연필을 깎을 때 혼신의 힘을 다해 칼질을 합니다. 제 목표는 항상 칼로 연필을 깎되 연필깎기 기계에서 뽑아내는 것과 똑같이 둥글게 깎을 것이었거든요...

봄밤 2014-03-13 16:33   좋아요 0 | URL
그런 깎기를 추구하신다면 이 책을 보셔야 합니다. 도움이 될지도...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출판사 프로파간다는 이런 희한한, 통념을 보기좋게 빗나가는 책을 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