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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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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당신이 읽을 차례-기 드 모파상





믿음직스러운 선택은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내가 알거나당신이 알거나그래서 우리가 알거나한 스푼 맛에 대한 만족이 그렇지 않나. 31개의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고 그들은 외치지만 어떤가, (입안에서 바스락거리며 터지는 외계의 맛은 다신 먹고 싶지 않다)먹는 것은 늘 정해져 있다고르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무엇보다 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인데(물론 다 알 필요도 없지만) 유구한 맛이라면 나 역시 한 번쯤 알고 싶어진다. 박힌 글씨와 없는 여백을 모두 읽어내야 하는 글에서는 더욱 그렇다기울이는 시간과 노력이 다른 활동에 비해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르고 싶다하품이 따라오는 것 같지만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아온 이들의 시간의 단위가 한 세기로 접힌다.

 

무려 톨스토이와 니체가 극찬한(!) 이 작가의 단편집은 순서에 상관없이 손 가는 대로 어디를 펼쳐도 만족이다. 63개의 단편을 수록했고, 803페이지의 두께를 기록했으며 책의 제목은 작가의 이름이 되어 '기 드 모파상'이다그 유명한 <목걸이>로 한 때 여느 유년 깊은 한숨을 불러일으켰던 이충격적인 결말에 모파상의 소설을 약간 '공포'스럽다고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위트와 풍자가 전부라는 듯사랑연애가족 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에서도 어느 한 문장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이런 성실성에 탄복하면 그것 말고는 쓸 것이 없었다는 듯 태연한 마침표로 답하는데읽다보면 이 사람 얼굴이 궁금해진다대부분 다섯 장을 넘지 않는 간결한 분량에도 백 수십년 전 프랑스를 속속 그려내는데 망설임이 없다내용이 길다고 무엇을 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으로 안다.


<비곗덩어리>는 단편집의 표제작인 동시에, 모파상을 확실히 자리매김한 작품이라고 한다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넘는 통찰을 갖고 있다배경은 전쟁이 차분해진 시기주민들은 프랑스를 점령한 프로이센 군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무렵으로그 중에는 좀 더 담대하게 프랑스군이 점령한 지방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 마차에 탄 10명의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인물 소개부터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여섯은 계층이 다르나 연금을 받는 부유층두 명은 수녀한 명의 남자는 공화주의자마지막 여자는 매춘부로 인물 소개에서 이름이 언급되지 않으며 비곗덩어리로 소개된다. 9명이 이름과 한 명의 별명은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남녀 사이에서는 파벌(?)을 형성한 대화가 시작된다.


우선 수녀들은 상관없다는 듯 자신의 세계에 함몰하며 세 부인들은 계층이 다름에도 매춘부 덕분에 친구가 되고세 남자 역시 공화당원을 보고 돈으로 인해 형제와 같은 공감대를 느낀다이들은 상황보다 '공간'으로 기울여 설명되는 곳에서 행동이 달라지는 데 이것을 유념해 읽을 필요가 있다. 1) 외부가 아직 전쟁중이라는 전체적인 상황에서 2) 마차라는 격리된 공간이곳에서 계급이 높고 낮음과 인물의 고귀함과 비천함부의 유무는 간단하며 심각한 '배고픔'의 문제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져 버린다그리고 우습게도 비곗덩어리가 갖고 있는 먹을 것으로 구원 받는데이 자존심 상하는 고마움은 잠시, 3) 독일인 장교가 점령한 마을의 호텔에 마차가 서면서(공간의 이동이야기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사건은 좀더 복합적으로 던져지며 인물들의 양상 또한 두드러지게 달라진다.

 

마차에서 내리는 순서는 인물 소개만큼 기억할 만 하다. 적국의 마중에 가장 먼저 순종적으로 두 수녀가 내리고 백작-공장주-상인부부 순으로 별 저항 없이 이어진다문 앞에 가장 가까웠으나 가장 마지막에 비곗덩어리와 공화주의자가 화를 참으며 내린다그 날 밤독일군 장교가 비곗덩어리에게 할 말이 있다며 말을 전해 오는데이때 처음으로 비곗덩어리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엘리자베트 루세 ''으로진중하게 전해져 온 말은 '자는 것'의 문제여서 비곗덩어리는 화를 내며 거절한다독일인 장교는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말을 매지 못하게 하고그 때문에 마차는 마을을 떠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눈 먼 자들의 도시>와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제한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모습은 다만 소설 속 상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인류의 샘플이 되기 때문이다. <눈 먼 자들의 도시>가 갖는 괴로운 배경은 인간의 다양한 유형들을 기꺼이 드러나게 했다이 세계에서는 살아야 하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운그야말로 본능을 갑칠한 인간들이 나타나는 것이다소설은 평소에 알지 못했던 다양한 유형의 인간이 만나고 부딪히면서도 과연 희망이라는 것을 도출해 낼 수 있느냐아니 그전에 희망이 있느냐 는 확신 없는 물음을 던졌다메시지는 다르겠으나 문제에 다가서는 방식은 비슷한 것으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꼽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70억을 넘는 인구를 100명으로 축소해 지표를 설명한다. 이 책이 회자 되었던 이유는 백 명이라는 상상할 수 있는 숫자를 불러와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들을 비로소 상상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마차의 '열 명역시 생각해 볼 만 한 인물의 조합이다마차에 올랐던 열 명과 마차에 타지 못한 일반인들의 모습은 당시의 프랑스를 떠올리게 한다일반인(농부)은 마차가 내린 호텔에서 두드러지게 나온다땅에 매이고가족에 매이고프로이센 군인들에 매였을 그들은 어디를 떠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이 적군과 동화되어 그들의 시중을 든다그들에게는 누구의 통치가 아니라 생활의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그러나

 

비곗덩어리의 마지막은 몇 페이지를 남겨 놓지 않는다상황에 따라 바뀌는 인물의 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마지막을 덮으면 웃음기가 싹 가신다모파상은 어떤 인물이 대표하는 성향 하나를 찬미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참여와 윤리를 외치는 공화주의자는 상황을 비웃거나 아는 체 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라마르세예즈'를 불러 부유층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뿐이다신앙으로 투철한 수녀는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으로 자신을 모면하고 방패삼는다자신의 이익에 맞춰 사람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며 언제어디서나 눈을 쉽게 감는다자신들의 배고픔을 구원했던 비곗덩어리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부유층그들의 아메바적인 뇌새김과 뻔뻔함에는 손발을 모아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그러나 쓰고 가감 없는 비판 속에 나는 과연 어떤 인물일 것인가하는 물음이 따라와야 한다. 대답은 마찻발이 굵게 눈을 가로질러 패이는 소리에 잦아든다.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를 뭐라고 부를 것인가세어지지 않는 것은 소리가 없다는 말일지 모른다내지 않는 것인가없는 것인가 다시 묻는다.


'비곗덩어리'는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기고 62개의 다른 이야기에 바통을 넘긴다비곗덩어리라고 하면 역시 김수영의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다시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야경꾼에게...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라고 이전의 말을 다시 옮겨 적는다이런 물음이 여기 있어 알린다서둘러 나가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미 단편만큼 긴 얘기라니. 그러니 모파상, 다음은 당신이 읽을 차례다. <비곗덩어리로> 옹졸한 분노를 이야기하며 끝을 내달렸지만 단편들 중 사랑을 이야기한 작품도 많고 짧아서 읽기도 좋다. 그 중에 '봄'을 추천한다. "선생, 사랑을 조심하세요. 사랑이 당신을 찌르고 있습니다. 나는 러시아 사람들이 코가 얼어붙은 행인에게 경고하듯 선생에게 이것을 알릴 의무가 있어요" 가을이 다 왔으니 새겨들을만하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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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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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은 단순히 '보이지 않는'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투명인간>은 죽었으나 죽지 않은 '유령'을 포함하고 내가 나를 벗어나는 '유체이탈'적인 상황도 설명한다. '존재감'의 진하기로 투명인간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그리고 무엇보다 <투명인간>, '세어지지 않는 사람'을 과장한 말이라고도 생각한다소설의 이해를 위해 '투명인간'이라는 명쾌한 비유를 가져왔지만 구체적인 의문은 '세어짐'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얼마나 세어지는 사람인가하는 것은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나는 얼마나 보이는 사람인가'는 묻는 것부터 통하지 않을 염려가 크기 때문이다.

 

천만의 시민들 중에 나는 기꺼이 한 사람으로 세어지는가이 물음은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알려져야 구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다대답이 더디고 어둡다그들은 '나를 모른다'라는 명확한 사실에 더해 '나도 그들을 모른다'라는 사실이 길을 막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내가 '나를 제외한 천만의 시민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밝은가'라는 물음이며 물어보나 마나 '못하다'라는 뜻을 안고 있는 무거운 조소다그러니까 더 들어가서역사를 청소하시는 바랜 파란색의 제목의 아주머니와 허리가 굽어 리어카를 끄시는 폐지 가득한 그분의 삶을 ''는 모를 뿐더러더 정확하게 말하면 알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완성된다한편에선 이런 목소리다모르면 다행이지알고서 지나친다말뜻을 알았다면 광화문광장은 발 디딜 틈 없어야 한다특별법 좌초를 무겁게 받는다.

 

"오천 명이 죽었다는 일은 한 번의 죽음이 오천 번 일어났다는 것으로 말해져야 한다*" 라는 말에 깊이 아프다면 나 역시 한 명으로 세어질 수 있는지 깊이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명 죽음 이라는 기사는 현실감이 없다한 줄의 기사는 너무나 빠르게 사라진다이 사건은 한 번 일어남으로 인해 그 안에 수많은 죽음도 한 번으로 뭉뚱그려지는 기이한 현상이 사건과 별개로 또 일어난다역사도 깊어서 언제부터인가세어지지 않는 사람들을 세는 행위가 갖은 핍박을 받았던 것은여기서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저 위에서 까맣게 보이지 않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산 이와 죽은 이가 섞여 진도 앞바다와 밀양과 청와대 앞에 두껍다.

 

<투명인간>은 세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진화인 '투명인간'이 과연 언제부터 생겨났나라는 의문에 대한 추적이다성석제는 자신이 복원할 수 있는 끝까지 밀어 올라가 원인 같은 것을 찾으려 샅샅이 살핀다그 결과 만수의 삶이었고자신의 나이와 같은 만수의 탄생이었다자전적인 요소가 없으되 자신의 삶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만수의 조부모 이야기부터 석수의 아들 태석의 이야기까지 아우르는 그네들의 반백년 이상의 삶은 현재 우리가 시시로 만나고 기꺼이 되고 말았던 투명인간의 탄생기다그러나 흔하게 있었을 사람들이 성실하고 안타까운 삶을 살다가 어느 날 투명인간이 되버렸다는 허무한(?) 결론에 이른다. <투명인간>을 읽기 전까지 만수의 속삶을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 공들여 적었으니 나는 더 이상 만수를 모른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나는 만수의 세간을 알고 있고 만수의 어릴 적을 알고 있으며 만수의 놀이를 알고 있다만수가 자신의 동생들을 어떻게 위했는지 알고 있으며만수의 동생들은 각각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있다. <투명인간>을 읽는 이는 만수의 삶을 다 꿰어버렸으니만수는 소외되고자 노력해도 그럴 수 없다만수의 삶은 오십대의 만수만큼 많은 삶의 대표하고 있으니한국 현대 삶 일부를 이해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투명인간>이 이루고자 하는 이해는 무엇일까,

 

우와우리 같은 서울에 사니까 오늘 천만분의 일의 천만분의 일을 만나는 거네요확률로 따지면 백조분의 일이에요. p.359.

 

라는 감탄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추임새인가그러나 이것은 백조분의 일의 확률을 '기적'으로 치환할 수 있는 생각의 트임이다성석제는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라고 썼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함께 느끼고 있다고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다이것은 소설이 갖는 목표 같은 것은 있지도 않고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그보다 작은 '느낌'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대답이다나와 다름없이 그저 살아오는데 온전히 생을 다 바치는 사람들이 있음을 느낄 뿐이해보다 작은 느낌의 문제에는 긍정도 부정이 개입하지 않고 그저 다른 존재를 감지하는 데에 있다.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 느낌의 문제에서 얼마나 멀었었나 하는 반성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나와 다른 이들이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반증그리고 이것은 다른 이에게 뿐만 아니라 가족 내에서부터 얼마나 가혹한 일이었는지 되 집는다가족이란 얼마나 외부에 잘 보이기 위한 울타리로 치장되기 쉽던가가까이서 보면 살대가 다 썩어 있는 지경을. <투명인간>은 곰팡내 난 부분까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그래서 가장 아픈 곳 중에 하나는 만수 아내의 독백이었다.


앞으로도 누군가 내 삶 앞에 쳐놓은 거미줄 같은 덫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앞으로도 남편이 가져다주는 알량한 수입을 쪼개 살림을 해야 하고 감당할 수 없는 아이를 감당해야 하고 내 한 몸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면서 시누이를 돌봐야 할 것이었다내 아이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앞으로도 삶에 지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지친 사람이면서 지쳤다 하소연도 못하고 그들이 배설하는 비정상적인 감정을 모두 받아내야 할 것이었다그게 제일 힘들었다나는 김만수라는 사람을 사랑하고 남편으로 맞아들였다는 죄로 이상한 방식의 희생을 강요받고 그것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앞으로도 영원히. p.338-339.

 

아멘이라고 나도 모르게 말을 잇는다오십대 남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그와 비슷한 유년을 거친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삶에 가장 지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지친 사람이면서 지쳤다 하소연도 못하는” 이 이자 이상한 방식의 희생을 강요받고 그것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 어머니요새 가정의 거의 모든 어머니의 모습 아닐지투명인간은 가장 '작은 사회가족에서부터 시작하는 '투명인간화'를 그리고이윽고 사회에서도 발견되는 사태를 그린다그러나 꼭 투명인간이 사회의 크기별로 발전하거나 양상 되는 것 같지는 않다소설 뒤편에 다소 엉성하게 들어가 있는 <투명인간>문답 내용은 소설이 더 커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독자에게 맡기고 물러서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끝났고그 이후는 알아서 생각하라는 주문이랄까.


소설이 과거를 그리는 것이 그저 이야기를 풀기 위한 장치거나 풍경을 선명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박물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그것을 재현하는데 힘을 쏟았던 까닭은 지금 이 책을 보는 이들에게 과거를 선물하기 위해서먼 날을 품에 안고 '스마트'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금은 어디 없을 아궁이북데기나 검불솔가지처럼 매운 연기가 많이 나는 것. "내가 부엌에서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밥을 짓다보면 방 안에서는 갈라진 구들 사이로 연기가 솟아올라 동생들이 울고 굴뚝에서 나온 연기에 무슨 밥 냄새라도 숨어 있는지 소와 돼지가 밥 달라고 울었다." p.70. 이 날들이 배어있는 이름 모를 모든 만수를 위하여사라진 그날을 복원하는 소설의 ''을 다시금 확인한다. 종합해 <투명인간>은 무엇보다 지고 있는 오십대의 존재감을 알렸으며이들을 나 어린 세대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으나 과묵했던 세대여책을 읽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없음을 지켜볼 수 있었다당신은 투명인간으로 사라지지 말아라투명해 질 것은 아궁이 군불에 맵고학교를 졸업하면서 읽었던 답사의 울먹임과 아침과 장성한 여동생이 시집가는 어느 정오그리고 어느 날 무심코 지나온 늙음을 헤아릴 수 없는 어머니손, 위로 떨어지는 눈물뿐이다


<투명인간> 읽기의 마지막은 이 소설에 기대고 위안할 수 있었던 이야기의 힘을 나의 읽기와 쓰기로 돌려놓는 것이다투명해 지는 것을 붙잡아 그 자리에 놓기 위해서그곳에 내가 '있기위해서그리고 나는 '나의 있음'이 내가 있는 거의 모든 곳에서 투명하지 않을 일을 기다린다내가 확실해지는 만큼 다른 이와 확실하게 부딪힐 수 있을 테니까.

맨 앞을 다시 생각하건데 신문에 나지 않는 산적한 일들삶을 자신의 뒤에 놓고 외치는 가장 중요한 호명이 가슴 아프게 잦아드는 것은, 그토록 명백한 구호와 절규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을 외치는 이가 투명해서가 아니라 이들을 지켜보는 그 밖의 사람들이 투명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 모르고서 멀리서 아플 뿐이었던 나는 더이상 투명해 지는 것을 거부한다. 그곳에 내 일부를 보태고 싶다목소리와 무릎과 눈빛그리고 이렇게 무용한 글쓰기 같은 것을.






*문학동네 팟캐스트 채널1. 10회 에서.

옮긴 내용이 확실하지 않습니다들어보시기를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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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유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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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를 잃어버린 장소-非공간의 발견_유희경, 『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사.



<오늘 아침 단어>는 '오늘 아침'에 이후에 놓일 관습적인 말을 총합한다. 이를테면 식사나, 기분이나 날씨 등으로 자연스러울 '오늘 아침 ○'을 '단어'라는 말로 축약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것으로 오늘-아침은 스스로 갖는 지루한 리듬을 벗어나 '오늘 아침'에서 달아난다


아침은아침이 오지 않을 때까지 일어나서 손쉽게 일상이라고 불리지만. '일상'에 순식간에 잡아 먹히기 때문에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다아침은 조용하고 유순한가. 아니, 아침은 당신이 당신을 벗어나기 시작하는 기록적인 시간 아닌가가장 가까운 어느 곳에라도 가려 할 때당신은 반드시 당신을 벗어나 그곳에 도착하기 때문이다집 앞의 슈퍼만 가려해도 그렇다주섬주섬 어질러진 옷을 입으면 당신은 '그 옷을 입은사람이 된다그래서 옷을 갖춘다는 '의례'는 그 뜻만이 전부가 아니다.


당신의 목이 '티셔츠'를 통과하는 것은 그래서 '의례(儀禮)'라고 해야 한다그것을 통해 당신은 이상한 공간과 마주하기 때문이다시인 역시 웃옷을 갈아입으며 이런 시를 썼을 것이다.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벽 한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 나는/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부분. 그곳은 아직 당신의 바깥이 아니고 당신의 안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상한 공간이다그곳에서 바깥은 불투명하고 그렇다고 나를 알기에는 표면에만 머물 뿐이어서 무엇에도 정확히 속하지 않는다누구에게나 이런 공간이 있으나 어떤 고민도 없이 지나쳤기 때문에 비공간으로 존재해왔다. 이곳은 무엇보다 이름이 없어서 불리지 않았고 겨우 발견했으나 '시간'으로 치우쳐 기록될 뿐이었다.

 

오래 전 세일러문은 정의의 이름으로 ''를 용서하지 않기 위해 변신했었다옷과 머리카락과 마술봉화려한 영상과 음악으로 변신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어떤 악당도 세일러문이 옷을 갈아입을 때 공격하지 않는다마찬가지로 악당의 변신 역시 세일러문은 두고 볼 뿐이었다돌아와 생각하건데 '의례'에 대한 '윤리'였기 때문이리라문 파워 액션만화속의 일만이 아니다당신이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바깥은 당신을 기다려준다당신은 아직 나오려는 채비중일 것이고그 채비는 곧 끝날 것이며 당신은 티셔츠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할 것이다누구나 티셔츠에 머리를 드미는 순간을 지난다시인은 이 의례의 순간에서 '이름이 없어 없었던 장소'를 발견하고 가능한 오래 머물고 싶다시인은 그곳에서 "가슴 바깥으로 걸린 간판을 읽으며 못이 녹슨 머리를 박는 소리"를 듣는다.


시인은 이제 둘 '사이'에서도 비공간을 발견한다. "둘이서 마주 않아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말없이 서로의 눈썹을 향하여 손가락을이마를흐트러져 뚜렷해지지 않는 그림자를나란히 놓아둔 채 흐르는//우리는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 「내일, 내일」, 부분. 여기서 문제는 두 사람이 잘못 배달된 도시락을 마주해서가 아니라스스로를 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생각하는 것에 있다제 스스로(도시락의 내용)는 문제가 없으되우리가 함께 있는(도착한장소가 잘못된 것이라는 고백이다누가 우리를 이곳에 데려왔는가대답이 된다면 슬프겠지만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라는 마지막 행을 답지로 밀어 넣는다안온한 공간이 불시착한 난감으로 바뀌는 순간. '없었던 공간'이 우리를 쳐들어온 사건이다시인은 이곳을 벗어나거나 뒤집으려고 하지 않는다. "생전의 감정 이런 일은 헐거운 장갑 같아서라며 다만 이곳에서 가능한 이야기를 읽어낼 뿐이다.

 

다시 '물건'에 집중해 조금 더 분명하게 비공간의 부조를 떠내고자 한다. “우산에 대해서라면 오래오래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검은빛이고 나는 펼쳐진 시간을 사랑한다// 예를 들어 점점 어두워져가는 거리어깨를 감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가로등 켜지고그림자 사라지고나는 머뭇거릴 때.” 「우산의 과정」, 부분. 시인은 우산이라는 물질이 마침내 우산으로써 활약하는 과정을 쓴다그리곤 마지막에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행위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우산이라는 검은 빛으로 펼쳐진 시간에는 빗속에 생긴 '새로운 공간'도 있다비가 아니라면 사라질 공간에서 어깨를 가까이 하며 걸었던 날을 깊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우리는 우산 아래의 움직임을 '시간'으로 말하지 '장소'라고 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 단어>의 공간은 이름이 없기 때문에 불리지 않으며 장소임엔 분명하지만 장소로써 역할하지 못하고 어떤 ''로 표기되고 마는 이상한 곳이다. ‘이 없되 시간만 있는 장소를 가 본적 있는가아무래도 갈 수 없는 곳이다우리가 기억이나 혹은 추억이라고 부르는 곳에 도착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시간이 없는 장소는 다른 방법으로 반복된다이 반복 속에서 시가 속수무책인 까닭은 하나 이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그것들 앞에서 웃거나 강해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시 「맑은 날」에서는 지금과 다른 뜻밖의 장소를 만난다술을 진탕 먹은 는 짬뽕이란 단어는 어떻게 발음해도 슬퍼지지 않는다며 몰아치는 행간을 지난다그리고는 문득 내게 없는아내가 식탁에 앉아 펑펑 쏟는 눈물앞에 도착하고 그 앞에서 재떨이를 끌어당겨 담배를 물고아내를 지켜보는 단답형 남편이된 것 같다고 말한다무엇보다 솔직하게 그런 게 어떤 기분인지 알 길 없는 것도 당연하다고 고백하면서, ‘내게 없는 아내’ 앞에 있고자 하는 마음을 쓴다내게 없는 아내는 아마도 미래에서 만날 아내 같다그 아내를 생각하는 사이’ 자신이 앉은 식탁은 비현실적인 장소가 된다그곳에서 도저히 착해지지 않는 마음을 뒤져보아도도무지 길들여지지 않는 글자만 가득할 뿐이라는 자신을, 미리 틀키고 싶은 협소를 쓴다뜻 없는 독백을 당신은 듣고 있는가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공간에서 '나'는 당신을 상상하고 있다.



 그때 그게 전부 나였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건 남편과 아내뿐이었다 마음에 피가 돌기 시

작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면목동」, 부분.

 

마지막 시의 마지막 연, 아내는 술을 마시고 울고남편을 이유를 모르고 부축하는 상황이 전술되었고 그때 그게 전부 나였다라는 진술이 이어진다. “마음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라는 간명함아마도 가 의 탄생을 기억하는 일일 것같다이 이야기 푸는 일을 다음 구절로 대신하면 어떨까.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각각의 '현실속에는 근원과 리듬이 서로 다른 움직임들이 뒤섞여 있습니다즉 오늘이라는 시간은 어제 시작된 것이기도 하고그저께 시작된 것이기도 하며까마득한 옛날에 시작된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까마득한 옛날. '나'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마지막 시는 마침내 시의 제일 앞 <오늘 아침 단어>를 상기한다나의 한 겹 한 겹이 시간과 장소를 함께 포개며 지나왔고 그 사이 탈락 돼버린 시간과 장소가 등 뒤에 헝클어져 있다. 장소를 잃어버린 장소, 비공간의 발견. 시간으로만 기억되는 그곳을 시인은 찾아 보통의 곳에선 소리 낼 수 없던 마음을 낸다세상에 시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가 있다면 이름이 없는 이런 '곳'들이 아닐까당신의 마음이 머물기를 고집 피우는 곳은 어떤 장소를 잃어버렸나. 그저 그때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그곳은 어디에 있는가. 그곳으로 걸음이 기울었지만 한 번 가까워본 적 없다. 는 고백을 나도 함께 쏟는다. 작은 카페. 엎질러진 커피향이 소란스런 테이블을 바라본다. 한 때 당신의 얼굴이 가만가만 비쳤었던 빈 잔과 내가 함께 말이 없는 오후다.  



*페르낭 브로델김홍식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해제中,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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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8-0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라는 시는 봄밤 님이 소개했기에 읽은 기억이 나네요. 봄밤 님 알라딘 하기 전에 네이버 블로그 할 때 소개하지 않았나요 ? ( 다른 사람이 소개한 글 읽었나 ?! ㅎㅎㅎ ) 됐고 !! 봄밤의 시 읽기는 그냥 그렇고 그런 평론가가 시집 뒤에 쓴 영혼없는 평론보다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짜증나서 저는 언제부터인가 시집 뒤에 평론을 안 읽는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앞으로 읽어봐야겠습니다.

봄밤 2014-08-09 23:3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그랬던것 같아요. ㅎㅎ티셔츠 좋아해서 블로그에 올렸던 것 같습니다. 기억하시다니! 소개라고 해도 그냥 시를 올린 것뿐 아니었나 곰곰합니다.

무심히 지나는 그런 공간을 이렇게 생각하다니. 깜짝 놀랐어요. 전반적으로 촌스러운 시도 많지만 촌스러움이 좋습니다. (다음 시집이 기대됩니다)

그리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저 제가 이해하는 시 읽기를 하는 것뿐이라 평론(!)과는 당연히 비할바도 못되고 층위도 다릅니다. 저는 곰발님과 다르게(!) 평론을 잘 읽지 못합니다. 어려운 말이 많아서요! 그저 시를 많이 읽고 이런 이해도 있구나 하고 읽습니다.
 
엄마의 도쿄
김민정 글.사진 / 효형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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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한 템포, 무난한 질감, 무난한, 평화 가운데 바둑을 두는 풍경이 있다.


'나'는 바둑돌 같은 작은 사물을 하나씩 호명하며 엄마 없는 자리에 놓는다. 엄마와 딸이 함께 한 도쿄살이. 엄마가 '있다'가 '없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담담하다. '담담하다'는 슬프다의 작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유머가 잔잔하다는 쪽으로 담담의 추를 옮기자. 이곳의 유머는 몸 어디에도 '웃음'의 징후를 주지 않아서 중요하다. 사실은 실소도 못할 것들이다. 이것은 웃음의 힘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웃음의 내재율에 대한 문제일 것 같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재미'라는 말에 플랫 두개를 내려 '재미있다'고 소리 낸다.


무수한 바둑돌 가운데 꽈배기를 집었다. 나카노의 생제르맹에서 꽈배기를 먹으며 엄마가 찹쌀을 추측했던 기억. 과연 차진 식감이었고 엄마가 '찹쌀을 썼을거야' 라고 했기 때문에 옆에서 그녀도 그런가 한다. 장면이 바뀌어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 가게에 들리는데. 그녀는 묻지도 않은 말을 가게 주인에게 건네며 말을 붙인다. "저희 엄마가 여기 꽈배기 도넛 팬이에요" 그러냐, 고맙다, 너무 맛있다, 등의 대화에서 그녀는 찹쌀을 쓰느냐 묻는다. 이에 '친절한' 가게 주인은 "프랑스산 통밀"이라고 답하는데. 그녀는 "통밀의 종은 너무나 길고 우아해 차마 외우지 못했다"고 말을 잇는다. 당신의 무언가 징, 하고 떨린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웃음의 내재율이 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 잠이 늘었어 

빵은 여전히 맛있고 그래서 서운했다는 이야기.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을 땐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사랑과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그 '무엇'이 중요해진다. 특별할게 없었던 물건의 소소에 눈을 기울인다. 찹쌀 혹은 통밀. 이런 마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설명보다 뉘앙스라며 얼버무리지만 당신은 이 머뭇거림에서 마음을 '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 가능하면 밥은 거르지 않으려 해

조규찬의 <잠이 늘었어>는 그저 ‘잠이 늘었다’는 가사로 사분 오십초를 지난다. 없는 사랑과 사람에게 내가 점차 튼튼해지는 과정을 들려준다. “영화를 보고 싶어 졌어 /친구가 보고 싶어 졌어” 아무렇지 않은 말로 당신이 없는 빈자리를 정돈한다. 이 노래와 <엄마의 도쿄>는 닮았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사라진다. 새삼스러워서 크게 아픈가. 그녀는 엄마의 작은 것을 붙들어 <엄마의 도쿄>를 썼다. 소중한 기억을 개켜 빈자리를 지켜낸 에세이. 우리가 무엇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의 곁이 아니라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한 어떤 기억이 아닐까. 잠이 늘었다는 노래의 마지막은 "슬프지 않는 내 모습이 보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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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문학과지성 시인선 407
하재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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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는 마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면을 돕는 선. 점을 지나온 선. 이러한 선을 나는 가장자리라고 부르고 싶다.


가장자리는 모든 존재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가장자리'가 있다. 곤란한 당신은 이 순간 내게 공기나 우주를 말할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좀 땀이 나겠지. 어설픈 최선을 다하면 이렇다. 그들도 언젠가는 이름을 지탱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지 않을까. 자신으로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지점이. 그때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지나는 순간 더 이상 공기라고 부를 수 없고 우주라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의 '가장자리'라고 부르고 싶다. ''가 아직 ''로서 있을 수 있는 경계. 그것 덕분에 나는 ''를 벗어나는 순간 '' 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재연의 ''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그의 시는 '어떤 것'의 가장자리를 두드린다. 제목, 해변은 매일 부서지면서 바다를 증명하는데. 그는 이렇게 경계가 사그라들면서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들을 의심한다. 유동하는 가장자리임에도 어떻게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있는가. 시침은 휘어지지 않지만 시간에 휘어지는 그림자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들은 자신의 경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나의 목소리는, 나의 몽상은, 나의 시간은 나를 벗어나기도 하고 나보다 안쪽에서 존재하기도 한다. 이것을 헷갈리지 않고 충분히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것들에 대해 고개를 갸웃한다. 세계의 모든 해변에게 묻는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경계, 더 없이 불확실해진 것들에 대해 부자연스러운 물음을 시작한다.

 

최초의 의심은 ''에게서 시작한다. "꿈속에서 나는 아주/ 여러 번 살아왔다.// 내가 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픽션보다부분. 제목 <픽션보다>이후에 내어지지 않은 말은 무엇일까. 설명은 없지만 '꽃보다 나'처럼 '픽션보다 나'를 연상하는데. 첫 연은 순간에 대한 설명이다. "웃음을 떠올렸던 순간은 순식간에/ 일어난 듯 바뀌어서 사라진다." 말을 했는데, 사라지는 순간.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아서 소리가 소멸하는 순간. 내 입에서 나온 것을 다시 거둘 수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때는 내가 한 말과 함께 나도 조금은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상황은 소리가 '웃음'으로 있을 때 가장 빈번하다. 목소리는 종종 나의 경계가 된다. 사라지는 목소리로 나는 줄어들기도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시인의 물음은 다짐으로 이어진다. "나는 가능하다면, / 명료해지고 싶습니다. "12부분. 나를 향한 의심은 곧 다른 이들에게 적용된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어제와 오늘을 나누는 열두시다. 그때를 기점으로 날이 밝고 어두워지는 것 같다. 그러나 시인은 12시를 분화하고 싶다. "밤과 낮, 같은/ 단순한 어휘를 쓰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내가 거기 속하는지/ 궁금합니다."12부분. 그러니까, 12시는 누구의 경계이기에 통용되느냐고 묻는다. 다음 연은 보다 정확하다 "밤이 가서 낮이 오는 건 아니고,/ 세상의 열두 시들은 너무 많습니다." 짧은 시구는 유약한 듯 보이지만 단호하다. 세상의 열두시는 많지만 나의 흐름과는 맞지 않다. 이를테면 당신과 헤어진 후로 끊임없이 불이 들어오며 꺼지는 당신의 날들, 그러나 실제로는 한 날도 움직이지 않았던 당신의 열두 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럴 땐 "쓸모없이 아무 쓸모도 없이"외로워지고 그저 "별들이 지나간 투명한 궤도를 돌고 있다, 고 생각한다" 자꾸 이지러지는 나의 경계와, 나에게 맞지 않는 다른 것의 가장자리를 지나치며 부유하는 모습. 비단 시에서의 모습일까.

 

조금 외롭고 조금 피곤한 생활. 빨간 날을 찾는 달력에는 해변이 가깝고도 무심하다. 바다가 바다이기를 멈추는 유순한 풍경. 그러나 실은 평생을 돌아 자신을 받아줄 곳을 찾은 바다의 쾌거다. 자신이 마음껏 이지러지면서 부서질 수 있는 곳을 찾았던 투쟁의 결과다. 그것으로 바다는 지켜질 수 있었다. 해변은 아파트 단지나 소나무 사이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시인은 다음과 같은 말들로 우리를 힘껏 밀어낸다. 비로소 어딘가에 닿을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전 생애를 낭비한다."4월 이야기부분. 나의 내밀한 웃음이 공중으로 사라지거나, 나의 말이 사그라들고 나의 시계와 상관없는 계절이 돌 때, 나를 혼동하거나 잊지 않도록, 나를 충분히 감지 할 수 있는 당신을 만나라는 전언이다. 전 생애를 낭비하면서, 당신을 찾아 넉넉한 경계를 지어야 한다. 우리의 인생에 뜻이 있다면 바로 이것뿐이다. 그러나 시인이여. 자신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을 이미 만났기 때문에 전 생애가 남겨져 버린 이에게는 어떤 시를 건네야 할까. 손가락 사이에 모래가 들어오고, 물이 모래를 되물어 나가는 풍경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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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31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첫 문장 참 좋네요. 봄밤 님은 곧 알라딘계의 고수가 되실 겁니다. 거칠지도 않고 마냥 순종적인 문체도 아니며, 조곤조곤 읊조리지만 힘은 있는......

봄밤 2014-07-31 15:44   좋아요 0 | URL
으아 그리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읽고 쓸게요. 곰발님,

다락방 2014-07-3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찾 일곱분 중 한 분의 적극적 추천을 받아 얼마전부터 여기 들르고 있었어요. 가만가만 읽고 나가다가 시집의 리뷰 앞에 그냥 지나칠 수 없게되어버렸네요. 이 시집의 리뷰는, 그 분이 제게 적극 추천한 까닭을 알게 하는, 그런 리뷰입니다. 아름다우면서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글이라니. 아- 제가 못하는 것들을 하고 계시네요. Orz

봄밤 2014-07-31 16:01   좋아요 0 | URL
끄아! 다락방님! 반갑습니다. 다락방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이리 읽어주시고, 고맙습니다.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배웁니다. 아, 저를 즐겨찾아 주시고 적극 추천까지 해주신 분께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남깁니다...;ㅁ;

syo 2017-11-0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을 보다가 보다가 도저히 아무것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알라딘에 숨어 있는 재야의 고수님들의 눈을 좀 빌려야겠다 싶어서 찾다가 봄밤님의 글을 읽고는 한참을 멍청해졌네요..... 저는 난 도저히 모르겠다는 평 같지도 않은 평을 남기면서 절반은 저를, 나머지 절반은 시인을 탓해보려 했는데요. 크게 반성하고 갑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엄청 깨닫고 가요.

봄밤 2017-11-08 23: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yo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는 역시 좋은 것이지요? 제 마음대로 읽고 덮어둘 수 있으니, 말이지요. 저의 한 때, 한계, 가장자리였던 글이 시간을 지나 syo님에게 닿았다니 저는 그것이 기쁩니다. 요새는 어떤 시를 읽으시나요.

syo 2017-11-08 23:14   좋아요 0 | URL
봄밤님 반갑습니다 ㅎㅎㅎ
syo는 지금 신철규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상태입니다. 아직 펼치지는 않았지만요. 어쩐지 잘 읽어낼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