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 윤대녕 소설집
윤대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보미작가님의「우연의 신」이후로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너무 오래된 것은 아닐까했는 데 12일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더군요.)
이번에 읽은 소설은 윤대녕작가님의 여덟번째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입니다.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하여 총 8편의 단편이 실렸는 데 이 8편의 단편 모두 지금 생각해도 너무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그 일‘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 쓰셨으며(일곱번째 소설집인 「도자기 박물관」이 2013년 9월에 출간되었으니 그렇겠네요.) 그 일로 인해 작가님 또한 잠시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머물면서 (서울-북미 간)과 (나이아가라)를 쓰셨고 2016년에 출간했던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또한 미완성으로 남을 뻔했었다고 하셨습니다.
(참고로 리뷰를 따로 남기지는 않았지만 앞서 읽었던 황정은작가님의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속에서도 ‘그 일‘이 어김없이 등장하고는 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 저도 윤대녕작가님의 작품을 「도자기 박물관」, 「피에로들의 집」그리고 아주 예전에 읽다 말았던 「사슴벌레 여자」밖에 읽지 않았는 데 작가님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될 예정이라는 신문기사나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해서 기다리고 있었는 데 이렇게 출간이 되었네요.
(서울-북미간), (나이아가라)는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주고 받던 정신과의사K가 삶에 환멸과 공포를 느껴 캐나다에 사는 여자를 보기 위해 캐나다로 떠나고(서울-북미간), 죽어가는 삼촌이 잠시 만났던 그녀와 함께 여행했던 곳을 따라가보며(나이아가라)
(경옥의 노래)의 경옥또한 한국이 싫어서 미국 시애틀로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으로 갔으나 막상 체류기간이 끝나자 한국이 그리워서 다시 돌아오며 상욱과 만나 자신이 살았던 곳이나 추억이 깃들던 곳을 정차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총)과 (백제인)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묘자리를 보러 갔다가 과거 아버지로 인해 수치스러움과 모멸감을 느껴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총을 아버지에 겨누는 아들(총)과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한 아내가 남편의 얼굴을 보고는 가정의 균열이 생기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던 ‘그 것‘을 남편에게 돌려주는 모습 또한 인상깊었습니다.
불법견인차들이 부당한 요금을 요구하는 기사를 보며 남의 불행으로 말미암아 생계를 유지하는 레커기사와 (밤의 흔적)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의 흔적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에 뛰어든 장호, 한 때는 유명한 영화배우였으나 스캔들과 흥행실패를 겪고 은퇴하여 이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세나 받아먹으며 기생충처럼 살아가는 노인의 말동무가 된 아내와 별거를 시작하는 백수처지인 남자(생의 바깥에서), 집을 계약한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내놓은 성희와 그런 성희의 계약을 담당했고 성희와 동갑내기인 중개인 희숙(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또한 인상깊었습니다.
등단하고 소설집으로만 벌써 8번째이신 윤대녕작가님이 이번 소설집을 내시기 얼마 전에 어머니를 떠나보내셨으며 앞으로 어떻게든 10번째 소설집을 내시겠다는 것을 보고 그저 건강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먼저 앞섭니다.
작가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알라딘에 검색해보니 장편소설은 「미란」과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피에로들의 집」을 제외하고 모두 품절상태던데 곧 다시 판매재개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연의 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0
손보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도 벌써 10번째로군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시리즈만큼은 작년 4월 편혜영작가님의 「죽은 자로 하여금」을 시작으로 매월 25일에 한 권씩 나오면서 저는 매월 또 한 권씩 구매하여 읽고 리뷰를 남기곤 했는 데 이번에는 첫 장편소설「디어 랄프 로렌」과 두번째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의 손보미작가님의 작품 「우연의 신」입니다.
사실 저는 6명의 작가님과 표지그림을 그리신 1분의 아티스트가 협업을 하여 한 시리즈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용준작가님의 「유령」부터는 허은경아티스트님의 작품이 표지의 모델이 되었는 데 1월 25일에 출간된 이 작품의 표지그림이 앞서 나왔던 김금희작가님의 「나의 사랑, 매기」, 김성중작가님의 「이슬라」의 표지그림과 사뭇 다른 느낌이어서 혹시 중간에 변경되었나 싶기도 했었는 데 아니었군요.
아니면 「나의 사랑, 매기」의 100자평 중 표지가 구리다라는 평이 있었는 데 그 때문에 이 표지가 나왔을 까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디어 랄프 로렌」을 인상깊게 읽었던 이유가 손보미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했지만 랄프 로렌이라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쓰셨기 때문에 더 인상깊었는 데 「우연의 신」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양주브랜드인 ‘조니 워커‘가 이야기 중심 속에 있더군요.
제가 일하는 편의점에서도 조니 워커를 볼 수가 있는 데 레드와 블랙 라벨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우연의 신」에서 나온 조니 워커는 화이트 라벨로 당시에 야심차게 만들었으나 형편없는 혹평을 받으며 금세 단종이 되었고 남아 있는 화이트 라벨을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수하여 없애버리는 데에 혈안이 된 워커가에서 공식적으로 딱 하나 남아있는 화이트라벨을 손에 얻기 위해 가장 유능하고 시간 낭비하지 않는 전문가에게 의뢰를 하게 되는 데 이 전문가로 말하자면 유능한건 말 할것도 없고 세련된 정장과 커프스단추를 달은 셔츠를 입고 있으며 시간낭비하는 것을 볼 수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사람이었고 사실 의뢰를 받기 전에 자신에게 주는 휴가를 아주 유용하게 쓰려고 했지만 이 의뢰로 인해 순식간에 자신의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되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화이트라벨을 가진 사람이 실은 3주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누군가에게 그 병을 유품으로 주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유품을 받을 누군가를 만나서 그 병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노력하여 마침내 병을 받은 프랑스어를 잘하는 ‘리‘를 만나게 되었으나 차마 회이트라벨병을 달라고 할 수 없게 되었는 데 리와 함께 대관람차를 타는 부분에서 앞서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에 실린 (대관람차)가 내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지만 서울에 있을 그 대관람차가 소설집에 실린 (대관람차)속의 대관람차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연의 신」의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제게도 어떤 상황과 사물로 인해 나름 견고했던 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뀐다면 패닉에 빠질지 아니면 이것도 나의 운명이니 수긍하고 살아갈지 또 아니면 어떤 입장이 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주
김소윤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김소윤작가님의 첫 소설집 「밤의 나라」를 읽었을 때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하셨다는 기사를 소식을 듣고 곧 나올 수상작을 기다려진다고 리뷰말미에 표현한 게 생각이 났는 데 작년 말에 「난주」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 데 올해가 되어서야 읽어봅니다.
‘정난주마리아‘ 사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때 성당을 잠시 다닌 적이 있었지만 아주 잠시여서 세례명을 받거나 그러지는 않았는 데 저의 할아버지께서 천주교신자이셨고 천주교신자들의 묘지에 안장되어 추석 전에 성묘하러 친척들과 같이 가곤 했었습니다.
또 2월 14일이 발렌타인데이라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외에 성 발렌타인 대축일이라는 것이 부각되지는 않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천주교박해로 인해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셨는 데 그들을 기리는 날도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았지요.
저는 솔직히 ‘정난주마리아‘라는 실존인물을 「난주」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양반집의 자제였으나 천주교를 배척하는 당시 상황으로 인해 노비가 되어 머나먼 제주로까지 팔려나간 난주, 뱃속에 아이가 있었지만 아이에게까지 노비가 되기 때문에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며 어쩔 수 없이 버릴 수 밖에 없던 난주, 노비의 신분이었음에도 아들 때문이라도 살아가며 어렵고 병든 농민들에게 한줄기 힘이 되어주던 난주, 그럼에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던 난주.
제게는 너무 먼 옛날의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정난주마리아‘님을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코카브」와 「밤의 나라」, 「난주」에 이어서 김소윤작가님이 쓰실 새로운 작품들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센터 - 2018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김의경 지음 / 광화문글방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16년 수림문학상을 수상하신 김혜나작가님의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를 시작으로 2017년 이진작가님의 「기타 부기 셔플」에 이어 2018년에는 김의경작가님의 「콜센터」가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김혜나작가님의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가 나올 때부터 꾸준하게 수림문학상 수상작품들을 읽어보고 있는 데, 「청춘파산」으로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출간 당시에도 흥미롭게 읽었는 데 「콜센터」보다 약 1달전에 출간된 첫 소설집 「쇼룸」또한 정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차서 김의경작가님의 「콜센터」에 많은 기대감을 가지면서 읽어 보았습니다.
물론 230여페이지의 길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읽는 내내 분노와 많은 감정들을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주변이 없고 조금씩 말을 더듬어서 콜센터나 상담하는 일을 할 자신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고객들을 잠시나마 상대하는 일을 하는 데 흔히말하는 ‘진상손님‘이 아예 없지는 않아서 헤드셋 너머로 들리는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와 툭하면 반말과 욕설을 일삼는 이들을 눈으로 접하는 데 실제로 그 ‘진상손님‘들을 바로 대면하는 느낌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온몸이 떨리더군요. 실제로도 한바탕 소동이 끝나면 저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콜센터」속의 인물들이 완벽하고 안락한 미래를 꿈꾸지만 불완전한 현재에 머물며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는 모습에 저도 이제 30대에 접어들면서 스무살에 시작했던 편의점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못했는 데 이렇게 또 30대를 맞이하면서까지 계속하고 있는 제 모습이 겹쳐져서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설에서라도 잠시나마 위로를 받으려고 닥치는 대로 읽어보게 되는 데 소설을 다 읽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또 다시 현실이 떠올라서 불안해하는 것이 싫어서 소설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프렌차이즈 피자주문을 도와드리며 조만간 그만둘 예정인 강주리, 주리를 좋아하는 박형조, 오랫동안 아나운서시험을 준비한 미모의 최시현,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예감하는 우용희, 언젠가는 자신만의 가게를 차릴 계획 중인 피자배달부 하동민. 좋은 친구들을 만난 것 같아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려고 합니다.
벌써 다음 수림문학상 수상작이 기다려집니다.
김의경작가님의 다음 작품또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9
김성중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1년 첫 소설집 「개그맨」을 읽었지만 2015년 두 번째 소설집인「국경시장」을 읽으면서 김성중작가님만의 매력을 비로소 느끼게 된(그렇다고 첫 소설집 「개그맨」이 별로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때에는 제가 너무 어렸기도 했고 독서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서라는 변명아닌 변명을 해봅니다.) 제가 김성중작가님의 차기작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했는 데 기다리던 첫 장편소설 대신 현대문학 핀시리즈 9번째인 「이슬라」가 먼저 출간되어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막연하게나마 아니면 깊게 ‘죽음‘에 관해 생각해봅니다. 저역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리고 어떤 생명체든 이 세상에 태어나 순서가 일정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여 세상에서 소멸해가는 것이 자연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만약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영원히 늙지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몰라 불안해하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어서 행복할까요? 아니면 「이슬라」속에 비쳐지는 사람들처럼 영원히 죽지 않게 되어 삶의 의욕도 잃어버린 채 순간의 쾌락을 즐기거나 무기력해지게 될지도 모르겠지요.
저는 15살인 채로 백년을 살아가는 소년이 부럽기도 하지만 많은 세월이 흘러 84살의 나이에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노인 또한 부럽습니다.
요즘 저는 각종 사건사고로 인해 혹은 예기치못한 질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소식을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면서 먼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죽음‘에 대해 조금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저에게도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면 죽음을 낳는 ‘이슬라‘가 제 곁에 나타나서 저의 험난했던 삶을 마주하며 저의 마지막을 지켜본다면 ‘이슬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싶습니다.
물론 저의 희망사항이지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