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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벽에 붙어 잤다 ㅣ 민음의 시 238
최지인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요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제 또래들이 번듯한 직장에 다니거나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자신만의 성과물을 내는 것이 잘 상상가지 않았는 데 점점 제 또래들이 정직원으로 회사에 다니거나 결혼을 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을 아주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났기도 해서 그것은 아주 당연한 거겠지만 말입니다.
민음의 시 238번째 주자인 최지인시인도 그렇습니다.
첫 시집인 「나는 벽에 붙어 잤다」라고 하는 데 처음에 훑어볼 때에는 「나는 벽에 붙어 잤다」라는 제목이 (이후)라는 시에서 ‘너와 나는 하루씩 번갈아 가며 벽 쪽에 누워서 잤다‘라는 구절에서 온 것인 줄 알았으나 해설을 읽고 다시 보니 (비정규)라는 시에서 왔더군요.
이 시에서는 아버지는 가양동 현장에서 일하셨다/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세상에는 벽이 많았고/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 ••••••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아버지 살이 닿았다/나는 벽에 붙어 잤다라는 구절을 눈으로 보며 어렸을 적 세상에 집을 옮기는 사람들이 많아 쉴 틈이 없이 이삿집 현장일을 하시던 아버지와 둘이 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더군요. 아버지가 늦게까지 집에 돌아 오지 않아 오실 때까지 오셔서 잠이 들때까지 잠을 자지 않아 매번 지각하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하셔서 그런지 (기이한 버릇을 가진 잠과 앙상한 C씨) 같은 시들이 인상깊었고
(리얼리스트), (인간의 시), (이력서) 같이 청년들의 불안한 현실을 보여주는 시들도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이번에 손으로 쓴 시도 불안한 현실과 희망적이 않는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데 바로 (한 치 앞)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에서는 아내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잖아 나/그만둘까 해‘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젊은 남편이 등장하는 데요.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면/아낄 수 있는 교통비로
집에 쌓인 책들은 박스에 담고/어떤 책은 넣었다 빼기도 하며//가늠해 본다라며
재계약을 앞두고/별의 별 생각을 하는 남편이
네가 좋아하는/카레 해 뒀어라고 하는 구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며 입술으로 중얼거리며 현실 속에서도 아등바등거리며 살아가는 청년들, 그들 중 하나인 제 모습을 그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