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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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작가님의 세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에는 분쟁지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작가 권은과의 기억이 한 순간에 오지 않고 조금씩 상기되는 반장의 이야기이자 표제작 (빛의 호위), 태호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간 태호가 사는 미국에서 만난 유일하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고 친구가 된 안젤라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번역의 시작),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고모의 첫사랑을 만나게 하려는 (사물과의 작별), 역시 세상을 떠난 한나가 사랑하던 안수 리를 찾기 위해 발터와 희수가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형태로 이루어진 (동쪽 伯의 숲), 대학교수였으나 학과통폐합으로 교수직에서 물러나 지금은 저처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라오슈와 그녀의 강의를 들은 메이린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2016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산책자의 행복), 꿈을 이루기 위해 급하게 결혼까지 하고 떠난 미국에서 살해당한 언니의 흔적을 찾으러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머나먼 여정의 길에 오르는 동생의 이야기 (잘가, 언니), 시위하는 모습이 사진이 찍혀져 미국에 있는 화가로부터 전시회에 초대받은 여자의 이야기 (시간의 거절), 프랑스로 입양되었던 나나이자 한국에서 태어나 철도에서 기관사에게 발견되어 문주라는 이름을 얻은 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다는 서영의 제안에 수락하여 한국으로 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문주), 보육원에서 불우하게 자란 기억이 현재에도 수시로 찾아와 고통스러워 하는 남자의 이야기 (작은 사람들의 노래)까지 절망과 고독을 감싸주는 기억에 관한 9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데요. 기억은 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우리의 생활 속에 잠식해있다가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빛의 호위」를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데 우선, (사물과의 작별)의 한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녀는 서군과 같은 재일조선인으로, 서군 대신 결혼 비용을 벌어놓기 위해 간호사로 재직 중인 병원에서 퇴근한 뒤에도 ‘오오사까‘ 시내 응급실을 돌며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던, 보기 드물게 성실하고 속 깊은 사람이었다. (사물과의 작별, 84쪽)

여기서 제가 작은 따음표로 강조한 오오사까는 오사카입니다. 창비출판사는 다른 출핀사와 달리 외래어를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고 있는 데요.
이어서 표제작 (빛의 호위)의 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그 사진기자가 생애 최초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어떻게든 그 영상이 보고 싶어 한동안 여러 독립 영화관의 상영 스케줄을 수시로 확인했고 각종 영화 관련 `싸이트‘를 돌아다니며 DVD나 파일에 대해 문의를 하기도 했다.
(빛의 호위, 13쪽)

‘싸이트‘라는 단어 보이시나요? 이 것도 창비만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표기인 데 지난 번에 기준영작가님의 「이상한 정열」의 리뷰 끝 부분에도 언급을 했지만 외래어 지명에 비해 특히 S로 시작하는 단어들의 대한 표기가 너무 제각각이어서 그 기준이 애매하더군요. 몇가지의 단어들이 있지만 실루엣이라는 단어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문주)의 한 부분입니다.

19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큰 키, 매끄러운 곡선을 찾을 수 없는 몸의 ‘실루엣‘ (문주, 210쪽: 김선영 책임편집)

실루엣(Silhouette) : 창문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
불빛에 비친 물체의 그림자 (출처: 두산백과)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실루엣이 등장하는 창비에서 출간된 다른 국내소설들의 문장들을 보겠습니다.

비둘기색 지붕 아래 정갈하게 늘어선 창문들, 그리고 새어나오는 불빛을 통해 다른 이들의 ‘씰루엣‘을 볼 수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윤고은 소설집「알로하」- 프레디의 사생아, 11쪽 : 윤자영 책임편집)

남자는 힐을 신은 여자와 키가 비슷했고, 흰 점퍼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들의 ‘실루엣‘이 빗속에 지워졌다 나타났다 하며 꿈속의 빛처럼 흔들렸다.
(기준영 소설집 「이상한 정열」- 여행자들, 168쪽 : 박지영 책임편집)

안에 있는 누군가의 ‘씰루엣‘이 언뜻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커튼에 가렸거나 가려져 있지 않은 창문 너머의 불빛들. (백수린 소설집 「참담한 빛」- 스트로베리 필드, 9쪽 : 박지영 책임편집)

사실 씰루엣, 실루엣 중 하나만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기는 하지만 이렇게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국내소설 책에 실린 같은 단어가 각각 달라서 그 기준이 애매모호한데요. 이밖에도 센서, 선글라스, 사이즈등
S로 시작되는 외래어들의 표기법이 제각각이어서 조금은 불편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나라나 지명은 그렇다치더라도 이런 것은 바로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창비출판사에서 나올 국내소설들을 읽게 되면 제일 먼저 창비만의 외래어 표기법이 적용된 단어들을 찾아 보게 될 것 같아요.
(사실, 1일날에 다 읽었는 데 리뷰를 쓰고 예가 되는 소설들의 문장을 찾느라 조금 시간을 지체했지만 이때까지 제가 썼던 리뷰들 중에 제일 길고 또 제일 제 나름대로 이론적인 리뷰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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