믜리도 괴리도 업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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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 읽었던 「첫사랑」이 폭력으로 얼룩져있다면 신작인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속이고 그 속임에 당하는 인물들이 태반이었습니다.
(블랙박스)에서는 이름이 같은 소설가와 블랙박스를 판매하던 남자가 형, 동생하며 친해지는 데 소설가의 이름으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다 재미를 느껴 장편소설을 쓰려고 하지만 소설가는 반대를 하고
(먼지의 시간)은 아예 대놓고 사기꾼의 냄새를 풍깁니다. 병원에서 치료불가능한 병을 M의 고안하낸 자연요법으로 다 낫는다는 소식을 듣고 신호도 잡히지 않는 산 깊은 곳까지 가서 M을 만나는 데 그야말로 허풍과 과장투성이어서 같이 갔던 I와 Q는 M의 이러한 행태에 비난하지만 정작 M을 신뢰하지 않던 `나`가 M을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더군요.
(매달리다)에서는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 고문을 당하며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자신의 삶 또한 처참하게 망가진 남자가 그토록 보고 싶던 아들을 만났으나 자신과 인연을 끊는다는 각서를 썼고 (골짜기의 백합)은 계주가 곗돈을 들고 사라지고 외딴 섬에 팔려가는 등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가 등장합니다.
(사냥꾼의 지도)는 별볼일없던 자신의 첫 희곡이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에 원작과 조금씩 달라진 연극으로 참여하게 되어 아비뇽에 가게 된 작가가 자전거로 프랑스 아비뇽 여기저기를 다니게 되는 데 프랑스어를 할 줄 몰라 Google의 지도만 믿고 다니다 큰 낭패를 겪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나는 너다)는 지금 서로를 믿지 못하고 속고 속이는 세상에 그 것도 헬조선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한국에 살아가는 특정인물로 설정되었으나 결코 특정인물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담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단편을 읽을 때, 소리내어 읽어봤는데 전 아무래도 아나운서가 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표제작인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앞전에 읽었던 「첫사랑」보다 더 진한 남자들의 사랑을 담고 있는 데 처음 벌거벗은 채 술에 취해 나뒹굴었던 대학생시절부터였겠지만 그 땐 술이 깨고 창피한 마음에 그냥 도망치다시피 했으나 나이가 들어 만나게 된 친구의 낯설고 충격적인 고백에 놀라하면서도 점점 미묘해지는 뭐, 그런 이야기인데요.
해설을 읽어봤을 때 딱히 떠올리는 것이 없었고 제 주관적인 느낌으로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을 봤을 때 서로를 속고 또 속이고 믿었으나 혹은 잘 몰랐으나 알게된 사실에 대해 당혹스럽거나 곤경에 빠지고 억울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인물들의 모습이 마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지 않은 (몰두)의 무언가에 `미쳐있는`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무엇에 `몰두`한 것이 있는 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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