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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밖은 안녕
이주혜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평점 :
도로에 사슴이 앉아있는 모습((안개의 기분) 속 마음만 먹으면 대화 상대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는 신기한 사슴 ‘키리‘일 것 같은)이 인상적인 이주혜작가님의 두 번째 소설집 [괄호 밖은 안녕]을 읽었습니다.
(안개의 기분)
인상적인 표지에선 한낮이었지만 홋카이도의 밤에 차를 타고 가다 마주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마음만 먹으면 대화 상대방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슴 ‘키리‘를 만나 함께 차를 타고 키리가 아는 맛집에서 하이볼을 긴 빨대로 키리가 마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름 손님입니까)
함께 자매처럼 지내다 불현듯 자신과 엄마의 곁을 떠나버린 영란 언니의 딸이 결혼을 하게 되어 엄마대신 일본으로 가게 된 인물이 떠올리게 되는 영란언니와의 기억들 속에서 피어오른 균열에 목도하느라 정작 이야기의 반전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묘지 딸린 절과 산 사람들이 묵는 호텔에서 진행되는 장례식과 결혼식에서 허둥대는 인물처럼 저 역시도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괄호 밖은 안녕)
홋카이도를 가게 된 인물이 하코다테 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맨발차림의 의문의 여인을 만나 동행하게 되고 그 속에서 이제는 자신에게서 멀어져버린 지 오래인 석우와 여준을 떠올리게 되는 낯선 상황에서 말도 통하지 않지만 그 여인의 표정과 눈빛과 몸짓들로 어떤 말을 하는 지 알 수 있게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이소중입니다)
육지 끝으로 가버린 철학자를 만나러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번역가와 다소 거칠지만 유일하게 아이를 낳아 기른 경험이 있는 소설가와 남이 되었지만 전남편의 시아버지를 살뜰하게 보살피는 시인이 우연히 둥지에서 떨어져버린 어린 새를 발견하여 저마다의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초록 비가 내리는 집)
평생 교장 남편인 박천일에게 교육받으며 순종하던 양순덕이 시한부 판정을 받아 그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100여개의 화분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그런 양순덕을 떠나보내며 박천일에게 남긴 유언과 100여개의 화분을 결국 박천일이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교수가 되기 위해 분주하게 살았으나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린 손우정에게 집과 함께 넘겨버렸고 그런 손우정이 죽어가던 화분들 속에서 양순덕의 애정이 담긴 일기를 보게되며 점차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게 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폭우가 내린 후 조금씩 자라난 화분에 심겨진 식물들과 손우정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할리와 로사)
서로의 본명은 모르지만 나이가 같고 각각 미용실과 네일아트숍을 운영하며 손님들에게 멋진 모습을 꾸며주는 할리와 로사가 서로 친해져 함께 식사하고 할리의 고향인 전주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맘껏 슬픈 사람)
엄마가 바라던 대로 아들을 낳았지만 정작 자신보다 엄마가 더 애지중지하며 키워왔던 아들 윤이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가기 전 일본의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곳에서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마침내 맘껏 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순영, 일월 육일 어때)
대학교 시절에 나이는 언니였지만 같은 학년인 1004(생일 또한 10월 4일이라 천사)같던 순영(서로의 이름에서 빌려 가명으로 동아리 모임에서 활동하게 되는)과 멀어지게 된 소설가인 차수은이 이주혜작가님(당연히 작가님이 만들어내신 인물이므로 작가님의 모습이 어느정도 투영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과 겹쳐져보였고 그런 작가님에게 저도 혹시 누나라고 불러도 될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을 읽으며 작년에 출간되었던 [여름철 대삼각형]과 실패했다(두 번째 장편소설이 처참히 실패하자 공황이 오고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는 부분또한 허구일 것으로 여겨지지만)고 문득 여겨질지도 모르나 인상깊게 남았던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과 알알이 새빨갛고 새콤할 것이 분명한 [자두]를 읽었던 저만이 번역할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순간들을 기억 속에 그리고 제 감각들 속에 오랫동안 붙잡아두고 싶습니다.
이주혜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