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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이야기
조예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원래는 조금 더 있다가 읽으려고 했으나 갑작스럽게 집어 온 조예은작가님의 세번째 소설집 「치즈 이야기」를 읽고 느낀 것은 정말 ‘조예은 월드‘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었고 (안락의 섬) 속 ‘뉴데스 아일랜드‘와 같이 기이하지만서도 그 속에 있으면 왠지모를 흥미진진함과 그로인한 마음이 차분해지다 못해 마음 속에서 일렁이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로 실린 표제작 (치즈 이야기)에서부터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방치하다시피 한 엄마를 외면하지 않고 보살피는 효심가득한 희지가 치즈처럼 변해버린 엄마의 몸을 파먹는 설정이 기괴하지만 흥미로웠고
(보증금 돌려받기)의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집주인에게 협박과 회유하고 집을 보러온 사람들에게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단점은 숨기며 최선을 다하는 성아가 뜻하지 않은 호재(집주인에게는 악재인)를 맞이하여 가까스로 벗어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 앞에 찾아온 시련이 남일 같지 않았고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의 동생 선희를 위해 자신을 갈아넣으며 희생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선희를 조종하는 점차 선화와 생김새가 달라지는 언니 수미와 그런 언니 수미를 위해 수미가 선택한대로 군말없이 선택하여 대학교도 연인도 심지어 지금 방송에 나가는 「러브 펜션」도 선택하지만 일차적으로 자신이 소거하여 언니에게 선택지를 제시하는 동생 선희의 마음이 비록 제가 형제가 없지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판석 공장에서 놀다가 손가락이 절단당하는 사고로 손가락은 금세 다시 붙었으나 스친 사물들의 기억이 무자비하게 찾아와 스스로 팔을 절단하고 입원한 폐쇄병동에서 만난 인연들을 계기로 버려지거나 사라질 사물들을 모으며 영원히 존재할 (소라는 영원히)의 소라와 의료사고로 자신들의 딸 해연을 잃어버린 백연과 해인에게 찾아온 해연의 기억을 이식시킨 (두번째 해연)의 해연이 해인을 떠나보내고 초호화 크루즈선을 타고 떠나는 우주 여행에 당첨되어 백연과 함께 탄 은하 크루즈선이 파괴되어 불시착한 적황성이란 곳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백연과 함께 곳곳을 탐사하며 구조를 기다리고 기억을 잃어가는 백연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머릿속에 입력, 기억하는 모습과 (안락의 섬) 뉴데스 아일랜드에 조만간 무지개다리를 건널 정도로 쇠약해진 오랜시간 함께 한 반려견 ‘플루‘와 함께 참여한 수수의 주변에서 안락의 섬 뉴데스 아일랜드 곳곳을 누비며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잊어버리지 않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기억하고 싶을 때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싶다고 말하는 (두번째 해연)의 백연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도 잊어버리는 라미를 보며 단편 속에 펼쳐져 있는 방대한 풍경들에 넋이 나가고 그 속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7편의 단편이 실린 「치즈 이야기」에서 가장 뭉클하고 기억에 남은 단편은 달리는 것이 좋아 육상 선수가 되었고 가장 빨리 달려 신기록을 세우며 계속 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발목을 접질러(정확히는 내동맥류 판정을 받아) 육상을 포기할 수 밖에 없던 우승하가 삼촌이 운영하는 남주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나게 된 영화「천사는 없어」의 마지막으로 범인에게 참혹하게 희생된 기주영이 스크린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 데 그것도 범인에게 뒷통수가 깨진 모습 그대로 나왔고 그런 모습이 놀랍고 신기하지만 뭔가 사연이 있어보여서 같이 극장에서 일하는 리라 언니와 함께 찾아보는 와중에 기주영을 연기한 배우 정하준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 한 소식을 접하고 정하준이 주연오디션을 본「지옥보다 낯선」의 감독 박희진의 영화사 사무실과 정하준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일종의 로드 무비인 (반쪽 머리의 천사)라는 단편이었고 내 삶이라는 작품의 주연인 내가 낯선 삶의 조연으로 스스로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빛내주기 위해 존재하는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저마다의 세계가 전부 한 편의 영화라고 쳐. 분명 주인공이 있겠지. 하지만 본인이 주인공이라는 건 어차피 영화 바깥의 사람들 말고는 몰라. 네가 스스로 조연인 줄 몰랐던 것처럼 주인공도 자기가 주인공인지 모른다고. 그리고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무지막지한 일에 휘말리잖아. (......) 그럴 바엔 그냥 대사 한두 마디 던지고 퇴장하는 조연, 엑스트라가 좋아(140쪽)‘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고 누군가에겐 제가 그저 조연이거나 대사도 없는 엑스트라이지만 장르가 불명확하고 무지막지한 일에 휘말리지 않거나 휘말려도 활약하지 못하고 보는 관객들에겐 노잼일 것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저라는 영화 속에선 제가 주연이기에 오늘도 저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위해 제가 기억을 잃어가더라도 읽고 기억해줄 북플을 포함한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치즈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하는 AI가 보편화되면 책을 만드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들이지 않게 되고 294쪽의 ‘뉴데스 아이랜드‘ 같은 것(교보문고 매장에 가보니 2025년 8월 8일 2쇄본이 나왔는 데 여기에도 수정이 되지 않았네요.)또한 일차적으로 바로 수정이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사람(=편집자)의 손길이 좋고 작가님의 의도가 담겨있는 표현들을 AI가 알아채기 힘들기에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이 듭니다.
조예은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