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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작가님의 첫 소설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를 읽었습니다.
2023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등단작인 (녹)은 시간 강사인 노 선생의 아이인 태오를 돌보는 일을 자처하던 ‘녹‘이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아이인 바잇을 떠나보내게 되어 노 선생의 학교 정문에서 ‘노교수를 고발, 자신은 아이를 잃었고, 그것이 노교수의 책임‘이라는 문구를 쓴 8절 스케치북을 들며 고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매 달 몇 만원씩 모자르게 입금하며 다음 달에 한꺼번에 다 주겠다며 연락을 끊는 노 선생의 전남편을 보며 너무 괘씸하게 여겨지는 것은 저 역시도 정당하게 받아야 되는 돈을 제 날짜에 온전히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했습니다.
표제작인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의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외국인 근로자였던 카샤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일이 발생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공장을 가동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주호에게 자신이 직접 장을 보며 손수 고른 소중한 식재료로 요리를 해주게 되는 모습을 보며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테지만‘ 마냥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함께 멸망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신도가 열 명도 채 되지 않은 교회에 온 가족들이 예배를 보는 (돌아가는 마음)을 읽으며 얼마전에 읽었던 정기현작가님의 첫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속 가족들이 떠올랐는 데 집을 박차고 나간 언니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와 결혼식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에 눈길이 가지만서도 매번 실수를 저지르는 황 대리의 모습에서 Eileen Corse의 그림이 인상적인 겉표지와 그 것을 늘여놓아 조금 신경이 쓰이는 내지 디자인, 그리고 뒤죽박죽인 ‘수록 작품 발표 지면‘ 같은 것을 보며 작가님이 속상하실 것 같지만 곧 수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모집한 밴드에서 왕따를 당하며 잘린 보컬에 소질이 그다지 없는 석주와 매번 돈이 없으며 여행사에서 상담 업무를 도맡아하는 (이름을 짓기 직전)의 비정규직 선미가 버텨내고 있는 현실과 비록 자신은 요양보호사 시험에 떨어졌지만 기꺼이 꽃다발을 들고 일흔을 넘긴 나이에 합격한 선자 씨를 축하하러 가는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의 훈훈한 모습을 보며 저도 운전면허시험에 다시 도전해볼까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원래도 이상했지만 어렵게 가진 솔이를 과 엠티에서 잃게 되자 무속신앙과 종교에 맹신하게 되어 더욱더 이상해진 (권능)의 초희 이모와 그저 방관하는 엄마, 쓰레기 집에서 살아남으며 만두가게를 차린 (우리는 숲)의 미영과 가영자매, 인류가 사라진 곳에서 홀로 살아나마 인류가 사라진 풍경을 보고 기록하는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 - 3인칭의 세계)의 하나, 그리고 이소 문학평론가님의 작품해설(어차피의 세계에서)을 읽으며 마치 자신이 태어나고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만 할 줄 아는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 - 3인칭의 세계)의 하나를 낳으신 부모처럼 생경한 마음이 들었지만 언젠가 뒤쪽에서 헤엄치는 공현진작가님과 하나의 길에서 마주칠 ‘우리‘의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공현진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