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들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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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30일에 출간된 이승우작가님의 신작 소설집 「목소리들」을 읽었습니다.
(소화전의 벨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
정상적인 문장의 제목을 읽으면서 수많은 차가 지나다니는 차도에서 소화전의 물을 가져와 뿌리며 솔질을 하는 여인과 그 여인을 향해 경적을 울리고 지나가는 차들과 마침내 경찰이 출동하여 그 여인을 연행하려고 하자 어떤 남자가 나타나 연행하려는 경찰들을 만류하는 모습이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일상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가 空家)
코로나 펜데믹이 창궐하던 시기에 쓰여진 소설로 먼 나라까지 출장을 갔다 봉쇄되어 나오지 못하는 남편과 설상가상 갑자기 집에 공사를 하게 되어 남편과 그녀가 사는 집으로 처들어온 시부모와 노래방기기까지 챙겨온 시동생에게 시달리자 비오는 날 밖으로 무작정 쏘다니게 된 그녀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떠난 남자가 그 집이 재개발이 되어 이복동생과 함께 이사를 하여 공가가 되었고 어머니는 폐렴으로 인해 돌아가셨다고 말하며 지금 살고 있는 집 주소를 알려주겠다는 이복동생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며 빈 집이 되어버린 그 집을 찾아가다 빗속에서 쏘다니는 그녀를 만나는 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
(마음의 부력)
2021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단편에서 형 성준의 목소리를 동생인 성식의 목소리로 착각하지만 성식의 목소리를 형인 성준의 목소리로 착각하지 않으신 어머님이 성식의 아내에게 꿔간 돈을 받아내려고 전화하고 성식이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보러 오는 날인 줄 알면서 기도원에 가버리신 어머니의 건강에 염려를 하는 모습이 남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 전화를 받(지 않)았어야 했다)
회사의 헬스장에서 만나 형과 아우 사이로 발전했으나 아우인 고형배에게 모종의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의 주범이 되어버린 고형배의 입장을 변호해야하는 형 임한수 과장에게 걸려온 아우 형배의 이름이 떠있는 그 전화를......
(귀가)
첫 부분을 읽으며 (공가 空家)와 이어지는 것일까 했는 데 계속 읽어보니 아니었고 코로나 펜데믹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비어진 그 집(공가)에 행방불명이 되었던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이 ‘귀가‘ 하여 마치 새 집처럼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하는 모습에 재개발이 잠시 중단되었지만 곧 재개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러 있는 30년동안 천하부동산을 지키며 재개발조합장의 일을 대신하는 황 노인이 아연실색을 하다가도 조합장에게 전혀 다른 말을 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목소리들)
네 동생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에는 그 차, 낡은 싼타페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어머니와 동생인 준호가 그렇게 된 데에는 그 차, 낡은 싼타페와 싱가포르에 있어 동생을 만나지 못한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엄마 자신에게 벌하기 위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어머니를 원망하는 자녀의 목소리가 뒤섞여 혼란스러웠습니다.
(물 위의 잠)
런던에서 일을 하게 된 동생 서영식의 목소리를 형이자 그런 동생에게 ‘안 가면 안돼냐?‘라고 말리던 서영수의 목소리로 착각하지는 않으면서 한 곳에 집중을 못하고 여러 곳을 헤매는 형 서영수의 목소리를 동생인 서영식의 목소리로 착각하시는 요양원의 어머니를 만나면서 앞서 읽은 (마음의 부력)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 데 아무도 다니지 않는 풀 속을 헤집고 다니는 여인이 발견한 형의 마지막 모습이 동생인 서영수 뿐만 아니라 읽고 있는 저에게도 강하게 남았습니다.
(사이렌이 울릴 때 - 박제가 된 천재를 위하여)
작가님이 소설집 중에 유일하게 2018년 가을 이전에 쓰신 작품으로 그 시절 미츠코시 옥상에서 정오의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자 난간에 올라 연극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푸드덕거리는 낡은 코르덴 양복의 삐쩍 마른 그 남자, 사이렌 종료 후 바닥으로 꼬
고꾸라져버린 그 남자를 대신하여 다시 울린 사이렌에 맞쳐 옥상 난간에 올라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를 읊은 그 남자와 바닥에서 그를 만류하는 그 남자를 보며......
8편의 다양한 상황의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한동안 제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승우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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