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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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출간된 김병운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를 읽었을 때만 해도 그저 출간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일 뿐이고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의 한 편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이번에「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첫 소설집을 내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첫 소설집이 나오셨구나 했었고 심지어 (한 밤에 두고 온 것), 표제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윤광호),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 (알 것 같은 밤과 대부분의 끝)을 읽었을 때에도 그저 100% 허구겠거니 하며 김병운작가님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마지막에 실린 (어떤 소설은 이렇게 끝나기도 한다)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죠.
처음부터 알게되었던 시작은 비슷했고 느낌도 농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비슷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끗 차이로 전혀 달라져버린 두 작가님에 비해 저는 읽어보지는 않았고 들어보기만 한 소설가라는 직업을 떠나서 소설이 아닌 글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어떤 거짓말은 예외 없이 나를 훼손한다는 걸 모르지 않기에, 솔직하지 못할 바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걸 알기에 애초에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고 결국 독자들이 읽고 싶은 대로 읽게끔 공백을 만드셨던 에세이「아무튼, 방콕」을 먼저 내셨고 첫 장편소설은 앞서 나왔던 시리즈의 소설들 속에서 접하였던 부분이 있었고 그 시리즈의 한 권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 밤에 두고 온 것들)에서 영화감독인 윤수희 감독의 신작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배역이 주인공의 각성과 성장을 위한 도구(11쪽)로 이용되고 훗날 비당사자로서의 한계를 무마하기 위한 알리바이용 인터뷰를 그 배역을 맡은 나에게 진행하며 연민하고 동정하는 감독의 시혜적인 시선과 선민의식이 거북했지만 당사자성이 결코 발언의 자격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20쪽) 나의 생각에 저도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것 같아요.
제목의 이름은 얼핏 들었던 (윤광호)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스스럼 없었던 윤광호씨가 우리의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이고 쓰게 되는 것에 문제가 되는 건 내보일 수 있는 용기가 아니라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을, (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에서 불온해 보이는 이미지들을 모조리 지우려 하고 자기 검열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존재를 의식하고 존재에게 허락받기 위해 밀어내거나 끊어 내려하는 모습과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속 한 두시간 정도의 잠시라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복무자들 앞에서 간도 빼고 쓸개도 빼고 정체성도 뺀 채로 견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산정하며 견뎌내려는 것에 익숙해져서 (어떤 소설은 이렇게 끝나기도 한다)속 어서 자신에 대해 다 말하고 싶지만 다음 단계를 기약하며 언젠가 그렇게 쓴 글이 모이고 또 모여서 나를 다시금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리라는 것(297~8쪽)을 아는 작가님이시기에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의 인주씨처럼 저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에 대해서, 여기 이 곳에 저만 있었던 게 아니고 당신도 있었기에, 그렇기에 제 얘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얘기라고.
계속 쓰면 좋겠습니다. 계속 우리에 대해 쓰면 좋겠습니다.
김병운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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