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장례법
신종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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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두 권의 소설집에서부터 범상치 않았던 신종원작가님의 첫 장편소설 「습지 장례법」이 출간되어 읽어 보았는 데 역시나 쉽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소문학평론가(여성분이시라는 것을 이 책 뒷면에 실린 에세이를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박지일시인, 그리고 신종원작가님처럼 제가 태어났을 때 저의 조부모는 저의 아버지가 스물이 되기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셔서 조부모에 대한 추억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렇지만 11호 태풍 힌남노가 어제 아침 제가 사는 부산을 지나갈 쯤에 읽으면서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47년생이이며 배를 오랫동안 타시다가 이제 10년째 택시를 운행하시는 기사님과 어제 처음 보았지만 아파트 경비일을 2년동안 하셨던 52년생이신 어르신 두 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47년생 기사님은 81년에 막내아들을 낳으셨고 막내아들이 대구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데 다른 자식들은 결혼했으나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아서 걱정이십니다. 또 52년생 어르신은 저와 같은 나이의 큰 딸이 있는 데 역시 결혼을 하지 않아 저에게 취중으로 만날 의사를 물어보기도 하셨습니다.
이 소설의 대한 이야기가 아닌 조금 방향이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이 소설에서도 종원씨의 돌잔치에 종원씨를 자신에게 앉혀놓고 찍은 유일한 사진 한 장으로 남아있는 종원씨의 조부이신 신용길님이 대대로 늪지기를 하던 가문의 마지막 가주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앞서 밝혔지만 박지일 시인과 이소 문학평론가, 그리고 종원씨가 부려놓은 조부모의 관한 추억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보통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면 장례를 치르고 땅 속에 묻는 매장, 시신을 불태우는 화장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 데 이 소설 속의 집안 어른들이 죽으면 시신이 있는 관을 늪 속 깊숙한 곳에다 던지는 오래된 관습과 그 속에서 잘 버무린 온갖 소리와 신호들. 이를테면,
아래턱의 봉합선을 따라 질긴 섬유조직이 늘어나는 소리(14쪽), 노의 넓적한 부분이 물을 퍼 올리는 소리(27쪽), 나무 몸통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바람이 드나드는 소리(33쪽), Echo. November. Echo. Mike. Yankee. [••••••] Alpha. Hotel. Echo. Alpha. Delta. 또는 빨갱이들이 내려온다. 빨갱이들이 내려와(77쪽),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오-홍. 오-홍. 오-호야. 오-홍(16쪽).이나 오-옹. 오-옹. 오-오야. 오-옹(17쪽). 비밀스러운 암호같은 신호들.
절묘하게 족보에 새겨질 수 있었던 제 이름, 그리고 돌잡이로 제가 무엇을 잡았는 지는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끝끝내 공은 잡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합니다.) 본가 서랍장 깊숙한 곳에 표시가 없는 검정색 비디오테이프 속에 남아 있을 저의 어릴 적 모습과 그 사람의 목소리가 짧게나마 담겨있는 것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려고 합니다.
신종원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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