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때 편의점에서 가격표를 뽑아내려고 출력버튼을 연신 눌렀지만 가격표의 점선 때문에 프린터가 자꾸 걸려 골치가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에 제대로 출력되지 않아 저는 이 기계가 사람을 의도적으로 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 데 제가 별짓을 다해도 출력되지 않던 프린터가 사장님이 출력하시면 한 번의 걸림도 없이 곧바로 출력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은 리뉴얼하면서 프린터도 바뀌었고 가격표도 손쉽게 뽑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나서 그런 생각은 이제 안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는 데 바로 ‘쥐‘가 창고에 있는 과자봉지들을 뜯어놓는 다는 것입니다. 특히 새우깡, 오징어땅콩(이 과자는 과자안에 땅콩이 있는 데 과자는 빼고 땅콩만 쏙 골리 먹었더군요. 밀봉되어 있어 냄새도 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데 과자 속의 땅콩 이미지만 보고 골라먹는 게 골치 아픈 건 둘째치고 너무 신기했습니다.)을 좋아하여 그 과자들을 작살내 울며 겨자먹기로 버려야 했죠. 이렇게 서론이 길어진 이유는 첫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출간하신 이유리작가님의 작품들이 다소 평범하지는 않는 다는 것에 있습니다.
프린터와 쥐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버지의 유해를 뿌린 나무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고(빨간 열매), 깊은 고민을 한 나머지 남자친구 손에 별안간 먹음직스럽게 생긴 브로콜리가 생겨나 점점 자라나며(브로콜리 펀치), 5년 전에 사고로 죽은 전 애인이 이미 결혼한 부부가 자고 있는 방에 불현듯 나타나고(손톱 그림자), 돌멩이에게 스콧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돌과 대화를 하는 엄마에겐 골칫덩어리인 비만 아들(치즈 달과 비스코티)이 있는가하면 원래도 존재가 없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반투명해진 소녀(평평한 세계)도 있으며 심지어는 전 여자친구가 버리고 간 이구아나를 데리고 들어가 살다 헤어질 때 이구아나를 버리고 가버린 남자친구에게 분노하며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구아나를 만지고 쓰다듬더니 이구아나가 말을 하여 멕시코로 헤엄쳐 갈 이구아나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사람(이구아나와 나)까지 등장하면서 저를 애먹이던 브라더사의 프린터기와 취향이 확고하며 어느 정도의 지능이 있다고 판단되는 쥐새끼와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들더군요.
뭐, 일반인에 불과했던 중학생 남자애를 인기 아이돌 스타로 만들며 무엇을 원하든 그게 마약이라도 캐리어에 실어놓고 구해주려다 사고로 차가 강에 빠져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내가 사랑하는 그 아이를 위해 선택(둥둥)하거나 그저 생존을 위해 물 속에 신중하게 부리를 내려찍는 왜가리를 보려고 격주 일요일에 모이는 동호회에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망해버린 반찬 가게 사장(왜가리 클럽)처럼 특이한 일이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좋으니 이해를 할 수 있게 그 것들과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해봤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면 혹시라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 것들을 이해하고 나중에는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유리작가님, 환상적인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