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와 고요
기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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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굉장히 짧게 읽었는 데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을 줄은 몰랐어요. 어린이집교사였던 미주가 경력을 인정받기 위해 어린이집을 찾아가 경력증명서를 손아귀에 넣는 모습을 기준영작가님의 단편에서 읽은 것이 불현듯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기준영작가님의 세번째 소설집인 「사치와 고요」에서 첫번째로 실린 (마켓)의 한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 데 시연이 아이를 유산하고 그 것을 시어머니에게 따로 말하지 않은 내용이 나와서 의아했었고 그 다음에 실린 (여기 없는 모든 것)에서도 엄마에게 인주가 이석을 애인이라 소개하는 장면이 나와서 잘못 생각했나 싶었는 데 바로 다음 작품이자 표제작인 (사치와 고요) 에 나오더군요.
미주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부딪친 남자가 휘두른 칼에 맞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어서 좀 충격적이었어요. 미주의 지나간 인연이었던 상운이 소개해준 보모일을 하기 위해 어린이집원장을 찾아가 경력증명서를 받아오는 그 별거 아닌 듯한 부분이 강렬하게 기억이 남아 있을 줄은 저도 예상못했습니다.
(비둘기와 백합과 태양에게)는 록밴드 히아신스의 공연장에서 USB를 잃어버린 은하가 해산된 히아신스의 멤버 태오와 우연찮게 엮이게 되는 이야기였는 데 태오가 은하와 어머니, 한진이 모인 집에 초대를 받으나 영상통화로 대신하여 곡을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어요.
(축복)에서 아버지의 새로운 연인인 양 여사를 만나고 아래층에 있는 양 여사의 동생 준모씨의 집에 방문하게 된 동수와 동수의 아들 보경이, 길우에게 행운의 돌을 받은 고푸름이 쓰러진 길우가 어서 빨리 일어나서 돌을 꼭 쥐고 있는 자신에게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들소), 태은에게 시련의 뜻을 가르쳐주는 동희가 등장하는 (망아지 제이슨), 사람이름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게의 이름이자 그 가게를 잠시동안 주인대신 맡게 되는 가영이 나오는 (유미). 이렇게 총 9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사치와 고요」는 ‘상실‘을 기반으로 하여 읽는 내내 내가 잃어버렸거나 나도 모르게 놓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완전한 하루)의 각자 인연과의 상실을 경험한 주현과 민규 이 두 사람의 새로운 인연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저도 모르게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기준영작가님의 작품들은 읽으면서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을 자주 받고는 하지만 앞으로도 발표되고 출간될 작품들을 읽어가고 싶어요.
기준영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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