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인칭의 자리
윤해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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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은 소설은 무엇이었을까를 아주 곰곰히 진중하게 생각해보았던 윤해서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인 「0인칭의 자리」를 마음 속으로 소리내어 읽어보았습니다.
2017년에 출간된 첫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를 읽을 때에도 범상치 않았지만 이 소설 또한 범상치 않았습니다.
첫 부분에 모델하우스 홍보 전단을 돌리는 중년 여성에 못이겨 모델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던 고깃집 불판 닦아내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젊은 여자(9~14쪽)를 보면서 이따금씩 퇴근하면서 근방의 독서실을 홍보하던 중년 여성이 건내는 홍보전단을 버리지 못하고 가방 안에 넣은 제 모습을 떠올랐습니다.
사실, 저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이입하거나 그 것에 사로잡히는 않았는 데
죽음을 작위적으로 표현 한 책의 리뷰를 거절하는 그(38~41)의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네일 숍으로 돌진하던 차에 마지막 손님이 되어버린 남자와 그 남자에게 마지막 꽃잎을 그려주던 그녀(44~45쪽), 같은 공장에서 20년 넘게 일하던 사람들이 백혈병진단을 비슷한 시기에 받고 설상가상으로 부당 해고를 당하고 사흘 만에 목을 맨 동료로 인해 45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던 그가 옥상에서 투신(52~53쪽)하고 모텔 침대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던 사람이 그가 오고 다음 날 나란히 약을 나누어 먹고 죽게 될 예정(60~61쪽)되는 무수한 죽음들로 인해 이 소설의 리뷰를 아니, 소설의 끝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하는 고민도 들었지만 ‘무엇을 찾으려 하지 말고, 무엇도 찾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세요. 무엇을 생각하려 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들 자리가 없게, 생각하는 나마저도 잊으세요.(50쪽)‘ 라며 스님이 말씀하신 대목을 생각하며 그저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수도 있지만 1인칭도 2인칭도 그렇다고 3인칭도 아닌 그야말로 아무에게도 속해있지 않은 「0인칭의 자리」를 읽고 그저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윤해서작가님, 좋은지 나쁜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저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 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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