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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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기억은 무릎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의 무릎에 뺨을 대고누우면 어머니가 걸고 있는 목걸이의 구슬들이 부딪치는 소리가들렸다. 어머니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을 때 나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게 뭔가 읽어주었다. 학습장애가 제법 두드러지기 시작했지만 어머니는 글자를 가르치려는 시도 없이 그저 이야기만 읽어주었다. 드러눕기에는 차가운 마룻바닥의 냉기와 무르면서도 단단한 어머니의 무릎, 책을 읽는 느린 말투, 어머니가 움직일 때 들려오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비교적 선명히 떠오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올려다본 어머니는 무척 예뻤다. 나는 일찍부터사람들도 어머니를 그렇게 여긴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는 젊고,
날마다 옷을 갈아입고, 이 도시의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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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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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 누나가 미소 짓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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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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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는 마이크를 잡고 마이크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한 다음,
연단 뒤에 서서 자신이 낭송할 시를 꺼낸다. 나는 후원자들의 표정으로 그들이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내게 허락하는 동안 그녀를곁에 안고, 그곳에 린과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둘은 다만 멀리서 지켜본다. 호세의 입술을, 갑작스레 치몰리는그의 이맛살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는 한 소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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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감을 잡은 나나는 거기에 계속 있었다. 개수대 앞에서,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부엌 문 저편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벤틀리박사가 취한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자신의 실패한 결혼생활과 레즈비언 부인에 대해 우는소리를 하는 동안, 대화 내용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다만 벤틀리 박사가 가끔씩 하는 냉소적인 발언과 이어지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장담이 들릴 뿐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흐느끼는 소리를, 벤틀리 박사의 흐느낌을 들었다. 그다음에는 어머니가 그를 문가로 안내하는 소리를 들었다. "미안합니다." 벤틀리 박사는 연신 이렇게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내가 뜰로 나가기로 결심한 건 그때였다.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고 잔디밭 너머로는 거의 아무것도보이지 않았다. 우리 개 위니는 서늘하고 어두운 그늘에 누워,
어머니가 던져준 뼈다귀들 가운데 하나를 씹으며, 살짝 몸을 떨고 있었다. 아버지가 떠난 이후로는 아무도 위니에게 큰 관심을쏟지 않았다. 녀석은 한창때의 아버지를 상기시키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녀석은 어디를 가든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개, 거실에 있는 아버지 의자 옆에 앉아 있던 개, 매일 일터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맞이하던 개였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위니 녀석 역시 변해버린 것 같기도 했다. 녀석은 더이상 아버지와 있을 때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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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린과 조지아를 알고 지내기 전부터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둘이 주말에 잡초를 뽑거나 봄에 꽃을 심거나 조지아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난 오후 시간에 세차를 하거나하면서, 마당을 걸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간혹 금요일 저녁이면 나는 린이 앞쪽 포치에 낯선 사람 어떤 때는 남자였고 어떤 때는 여자였다과 나와 앉아, 맥주를 마시며 웃는모습을 보곤 했다. 그녀는 내가 밖에 나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기나 했는지, 그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내게 한없는 위안이 되었음을 알기나 했는지, 나는 가끔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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