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과 계향이 나의 부모가 되기 한참 전에, 두 청년은 주로 신촌과 종로에서 데이트를 했다. 기분이 나면 한탄강에도 가고 두타산에도 갔다. 그렇게 멀리 나들이를갈 계획을 짜는 날에 영빈은 계향에게 만날 시간도 목적지도 다 알려주지 않고 정오 이후 언제든 서울역으로 나오면 자기가 있을 거라는 여유만만한 지형만 주었다. 그러곤 꼭두새벽에 여행 짐을 싸서 서울역에 도착해 계향을 기다렸다. 책을 읽고 산보를 하면서, 푸르스름한 서울역에 아침 해가 들고, 그 해가 기울고, 역사를 주홍빛으로물들이는 모습을 다 보면서, 오후 느지막이 계향이 도착하면 영빈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좀 더 늦게 오지. 기다리는 게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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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계급 차별과 비장애중심주의를 활용하는 언사들,
때로 내게도 유혹적인 그런 표현들은 결국 사용자에게도깊은 상처를 준다. 심지어 성차별주의자나 동성애 혐오자에게 유효타를 입히기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 수준이나 지능, 질, 배움 등의 단어가동원될 때면 나는 곧바로 얼어붙는다. 내가 누군가를 ‘호모포비아‘라는 질 좋은 외국어로 비난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자원이 필요했다. 그 단어에는 공포를 뜻하는고전 그리스어 ‘Phobos‘가 포함되어 있고, 동성애 멸시의기저에는 남성성에 대한 불안 및 공포가 있다는 지식을접하기 위해 나는 도시로 이사했고 큰 돈을 지불했다. 그리고 가끔 나는 언어를 깨치는 데 돈이 필요하단 사실을잊어버린 것 같은 사람들에게 큰 적개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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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에 치일 때도 글쓰기에 치일 때도. 야인론으로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은 생각보다 적다. 수건에서 냄새가 나. 근데 야인은 그런 거 신경 안 써. 요즘 너무 못생긴 것 같아. 근데 야인은 그런 거 신경 안 써. 지금 쓰는 글 쓰레기 같아. 근데 야인은 그런 거 신경 안 쓰지. 야인의 기준을 적용하면 대부분의 일이 견딜 만해진다. 잘못 말려서 걸레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매일바르는 로션을 똑같이 찍어 바른 뒤에 쓰던 글을 마저 쓴다. 이런 아수라 백작적 독백을 옆에서 내내 지켜보던 애인이 조심스레 묻는다. 야인은 그러니까... 뭐지? 인간이아닌 거예요? 나는 대답 대신 부르던 노래를 이어 부른다. 나는 야인이 될 거야. 거친 비바람 몰아쳐도, 아무도나를 위로하아…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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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그의 쇼는 감동적이지 않았다. 고통스러웠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 보세요, 웃으시네요. 이것 보세요, 이제 웃지 못하시네요. 관객의 눈은 관객 그 자신을 보러 돌아오고 관객들은 이제부터는 반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위기에 놓인다. 우리가 해나와 맺었다고 생각한 관계에 대한 불안이 점차 고조된다. 쇼는 계속되고, 해나는 조금 전 관객들을 폭소케 한레즈비언 혐오자 이야기의 결말을 들려주며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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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들이 걱정 섞인 눈길을 주고받았다. 나와 다른대륙에서 나고 자란, 완연한 국외자의 얼굴을 가진 이들이말했다. 아냐, 우리가 봤어. 너는 온 힘을 다해 헤엄쳤고 물밖으로 빠져나왔어. 너는 아주 절박해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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