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렸다는 사실처럼 그 사회에 저항한 예술가들에게 행하는 잔인한 복수가 없는 것처럼 나에게는 인식된 것이다. 저항하는 예술가에게 복수하는 길은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능력을 기구화시켜버리는 길이다. 나는 그때투철하게 미셸 푸코가 프랑스의 부르주아지들처럼 영리한 계층은 없다고 말한 발언의 배후를 읽어낼 수가 있었다. 자코메티를 정말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조각이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에를 가지 않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현대미술관을 나오면서 나는 속으로 그렇게 자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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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아내는 장미희 씨가 관자놀이에 총을 들이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불이 켜졌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회부터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어때 좋아?"라고 나는 물었고,
"장미희 얼굴하고 목소리밖에 볼 게 없네요"라고 아내가대답했다. 그 목소리가 진짜 장미희 씨의 목소리였을까?
하기야 백 퍼센트 동시 현장 녹음이라고 떠들썩하게 선전하는 걸 나도 신문에서 본 듯했다. 그러나 백호빈이 살고 있던 싸구려 아파트에 제인이 우편물을 찾으러 갔을때 어째서 층계가 삐걱거리는 소리 한번 안 울렸을까? 그영화의 음향 또한 색조와 마찬가지로 맑고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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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판단 정지 상태에서, 대부분 술 취한 듯한 상태에서 목청 좋은 자들의 소리만을 크게 반주하는 자들에게서 느끼는 것은 그래서 두려움이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가장 높은 정신의 움직임을 다룬다는 문학에서까지 ‘목청 높은 자들과 그 소리만을 듣는 자들이 계속 많아져간다는 사실은 두렵기 짝이 없는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목청을 높인 자의내부에는 무언가 거짓이 숨어 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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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 깊이 숨어 편안하게 세상을 살게끔 충동질하는 내 자신의 분신인 것이다. 책읽기는 즐거운 일이어야한다. 그러나 어쩌랴. 대부분의 경우 책읽기는 즐거운고통이다. 나는 그 고통을 최근에 윤흥길의 『황혼의 집을읽으면서 다시 느꼈다. 그가 고통스럽게 읽은 세상을 나는 그의 책을 통해 즐겁게 접근해갔는데 그 책을 덮고 나니까 다시 그가 느낀 고통만이 내 속에 남아 있었다.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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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편의 『윌리엄 포크너』(문지, 1986)에서 읽은 포크너의 기억할 만한 말: "가장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사람이 하루에 여덟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하루에 여덟 시간씩 계속 밥을 먹을 수도 없으며, 또 여덟 시간씩술을 마실 수도 없으며, 섹스를 할 수도 없지요. 여덟 시간씩 할 수있는 일이란 일밖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토록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이지요"(255).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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