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자신의 신념을 거슬러 비행기를 타고 짧은 휴가를떠났던 소피아를 떠올려보자. 그녀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만 있다면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일을 기꺼이 포기할 것이다. 다른 탑승객들도 전 지구적 온난화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는 일을 개개인의 책임에 맡겨두는 한 재앙은피할 수 없다. 모두가 ‘나만 휴가를 포기하면 뭐하냐, 다른 사람들은 다 갈 텐데‘라는 생각에, 공동의 장기적 유익을 추구할 마음이 사라진다. 각 개인의 자유로부터 모두가 원치 않는 상황이 빚어지는 꼴이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의 이익은 최대한의 개인적 자유를 통해 가장 잘 실현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존내시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스스로 속이고 있다고 하겠다. 자유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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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의 수수께끼는 사람들이 모든 삶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기대를 고수한다는 점이다"라고 런던의 신경과학자 탈리 샤롯은 썼다. 탈리 샤롯은 현실에 상관없이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대뇌가 어떻게 선택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지를보여주었다. 예측 오류를 처리하는 뇌 중추의 활성화를 살펴본결과, 이 중추들은 좋은 기대를 확인시켜주는 소식보다 나쁜 소식을 들을 때 더 약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치 뇌가달갑지 않은 소식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과도한 낙관주의 또한 예측부호화 이론을 따른다. 우리는 긍정적인 기대를 필요로 한다. 그래야 행동할 의욕이 생기니까 말이다. 지난 장에서 말했듯이, 이성은 자신의 기대를현실에 반해서라도 방어하려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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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유를 댈 수 있다. 늘 그렇듯 돈이 부족하다. 대체 사회가 왜 더 나아지지 못할까를 물으면 대부분 무능한 정치인이나 부패한 엘리트들, 자본주의의 결함 등을 탓한다. 그런데 이는 100퍼센트 진심은 아니다. 물론 그런 말들은 모두 사실이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요인들이 전부가 아니며, 가장 큰 장애물도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다. 분명히 뭔가 더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그렇다. 우리에겐 변화에 대한 피로감도 있고, 손해 보기 싫은 마음도 있으며, 지금 가진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이는 문제가 외부 환경이 아니라 변화해야 하는 당사자들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중요하다. 변화는 사회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인지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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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ن이처럼 자기검열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에서는 옷차림이 단정하고 몸가짐이 깨끗한 사람인지 아닌지, 혹은 어딘가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매우 중요해진다. 기준을충족하면 거리낌 없이 거리를 다닐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잔뜩주눅 든 채로 투명 인간이 될 수 없는 장소를 피하고 싶어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도쿄에서는 수상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강자 혹은 주류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약자 혹은 비주류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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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에게 자식이 많다"는 말은 지금의 질서나 자본주의와 사회계약의 논리를 충분히 내면화하지 않은, 이른바 ‘비현대인‘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도쿄와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대부분은 현대의 질서와 논리를 철저히 내면화한 까닭에, 거리에초라한 행색의 아이들이 넘쳐나는 일은 결코 없다. 또한 설령 "가난한 사람에게 자식이 많다"는 말이 실현될지라도, 소란스러운 아이들이 어른들의 세계에 침범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우리사회와 제도가 그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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