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공부 - 김수행 교수가 들려주는 자본 이야기
김수행 지음 / 돌베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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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8.자본론 공부-김수행(2)

저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시대는 확실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사상도 철학도 문화도 이론도. 저는 확실성보다 불확실성이, 안전성보다는 불안정성이, 확신보다는 회의하는 태도가 일반적인 세상에서 살며 그것을 삶의 태도로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을 떠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런 세상의 흐름과 상황을 '액체근대'라는 이름으로 명명했습니다. 바우만은 무언가 확실하고 고정적인 고체 근대 세계에서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며 회의적인 흐름을 따르는 유동적인 액체 근대 세계로 세계가 변화해왔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합니다. 제 삶이 그러하니까요.

한 마디로 말해 저는 액체근대를 살아가는 액체근대인입니다. 저 같은 인간에게는, 회의가 일반적이기에 확신은 드뭅니다.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설명된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는 저와 반대입니다. 그는 안정적이고 견고하고 확실성이 있었던 고채 근대 세계를 살았던 고체근대인입이다. 그의 인식 속에서 근대 세계는 정확하게 자본가와 노동자로 양분됩니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독점한 채로, 노동자를 임금을 주어 고용합니다. 자본가는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상태로 임금을 조절하고, 역시 최대한의 이득을 얻기 위해 노동자를 이용합니다. 동시대의 정치경제학자들은 정치경제학을 이용하여 자본가들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자본가는 자신들의 사상과 생각을 그 시대의 주류적 사상이자 생각으로 만듭니다. 노동자는 그에 따라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저항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따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것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가들이 가진 힘을 노동자들이 빼앗아 자신들의 힘으로 삼아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면 된다고 자신의 이상이 이루어. 너무도 확신을 가지고서요. 당연히 고체근대인에 가까운 마르스크주의자로 살아온 김수행이 쓴 <자본론 공부>도 그런 확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액체근대인인 제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그런 확신은 익숙한 일이 아닙니다. 1990년의 소련 몰락과 프랜시스의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출간, 2000년 초반의 닷컴 버블, 2008년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유럽에서의 극우파의 득세와 미국의 새로운 우파의 등장,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 같은 일들을 바라본 제게는 확신이라는 게 일반적인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 시대의 확신이란, 현실을 왜곡하다 못해 맹신이라는 도그마를 가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액체근대의 세계에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으니까요. 제게 혁명은 전혀 익숙한 말이 아닙니다. 마르크스의 이상을 따라 혁명을 외치던 마르크스주의는 거의 멸종한 상태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자본론 공부>가 신기했습니다. 당연하게 혁명을 외치고, 혁명을 하면 이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니까요. 물론 그 외에도 이 책의 장점은 많습니다. 앞의 세 책과 달리 이 책은 <자본론1,2,3> 권 내용을 알려주며 자본론 전체의 밑그림을 큰 틀에서 보여줍니다. 산업자본뿐만 상업자본, 금융자본, 토지자본의 행태까지 알려주면서. 실업에 대한 설명과 이윤율,기계화, 하나의 현상이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불러오는 모순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면서. 아마도 지금까지 제가 읽은 책 중 가장 <자본론>의 내용을 폭넓고 다양하게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공식이나 수식이 너무 많이 나와서 오리지널 문과인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읽기 어려운 면이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단 <자본론>을 가장 폭넓게 알려주면서, 액체근대인인 저는 가지지 않은 확신으로 가득한 <자본론 공부>는 이상하면서도 신묘한 책입니다. 책의 내용이 액체가 아니라 고체에 가까우니까요. 액체근대인인 제게 고체근대인의 사상을 알려주는 '고체의 낭만'을 꿈꾸게 하니까요. 믿지는 않지만 저는 그 딱딱하고 견고한 고체의 낭만이 그립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삶과는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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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8.자본론 공부-김수행(2)

총페이지:284p

읽은 기간:2021.4.24~2021.4.25

읽은 책에 대하여:

'자본론' 관련 책만 네 권째 읽었다. 내가 생각해도 집요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한 우물만 파고 있다. 한 우물만 파면, 무언가 '앎'에 대한 신호가 와야 하건만, 아직 내 사유는 '앎'의 신호를 잡지 못하고, 무지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만 치고 있는 실정이다. 익숙해지는 느낌도 있지만, 그와 더불어 책에서 낯선 기분이 드는 건 책의 저자가 모두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다름'은 좋은 것이다. 다름은 해석의 폭을 넓히고, 해석을 읽어나가는 이들에게 지식의 폭을 넓혀준다. 다름은 좁히고 좁혀서 앎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해석하게 만들어서 앎의 가능성을 넓혀준다. 다름을 통해서 우리는 알게 된다. 해석의 권리가 해석을 읽는 이들에게 주어지기에, 우리 또한 다름을 실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해석의 다름에 낯설음을 가지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인 김수행의 다름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전에 읽은 세 권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책을 쓴 저자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점에 있다. 앞의 세 권을 쓴 저자들 중에서 이시카와 야스히로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은(<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를 공저한 이시카와 야스히로도 마르크스주의자이긴 하지만, 책에서 마르크스 사상을 정리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정확하게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를 수는 없고, 마르크스주의자인 이시카와 야스히로도, 다른 세명처럼 마르크스의 사상과 <자본론>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더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나머지 세 명의 경우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를 수 없기에, 마르크스의 사상과 <자본론>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서술해나간다. 그 거리감에서 느껴지는 관찰과 객관화의 느낌이 나머지 세 권의 책이 가진 매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본론 공부>는 다르다. 김수행이 쓴 <자본론 공부>는 마르크스의 사상과 저자의 거리감이 거의 없다. 김수행은 한국에서 최초로 자본론 1,2,3권 전부를 한국어로 번역한 인물답게, 마르크스의 사상을 정리하고, 자본론 1,2,3권 내용을 전부 이야기해주면서, 동시에 마르크스가 품었던 '이상'이 이 땅에서 실현되야 함을 역설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읽은 자본론 관련서와 이 책이 다른 지점이다. 다른 책도 마르크스의 사상과 '자본론'의 내용을 알려준다. 하지만 다른 책은 거기서 그친다. 그 책들은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소개할 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김수행은 더 나아간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지금 현재의 상황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의 이상이 이 세상에 실현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것이 가능하고, 가능하면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면서.

앞의 책에서 보지 못한 강력한 현실 비판과 이상에 대한 확신을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회의의 시대를 살며, 회의와 불확실성이 일반화된 내게 <자본론 공부>를 쓴 김수행의 태도는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라서 매력적이면서 이상하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저 정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 그 부러움 끝에서 깨닫는다. 마르스크는 사상가이자 철학자로서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피력하면서 동시에 정치운동가로서 정치적 운동을 그 사상과 철학에 담아내는 인물이다. 무릇 마르크스주의자란 마르크스를 따라서 마르크스의 사상과 철학을 해석하면서 동시에 그의 정치적 운동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이상을 현실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그 정치적 이상을 주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고, 실현되면 세상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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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본을 읽자 북클럽 자본 시리즈 1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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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7.다시 자본을 읽자-고병권(2)

아무리 들여다봐도 <다시 자본을 읽자>가 <다시 책을 읽자>로 보입니다. 뭐 제 눈이 이상해진 건 아니고요(^^;;), 제 상황에서 보자면 <다시 자본을 읽자>는 충분히 <다시 책을 읽자>로 보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책의 'ㅊ'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책의 세계로 들어서게 됐거든요. 제가 밀어붙여서 선정한 책인데, 제목도 '다시 무언가를 읽자'고 하니 제 상황과 제목이 너무 잘 맞아 떨어지네요. 물론 이 책은 다시 자본을 읽자고 주장하지만, 자본도 책이고, 저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책을 읽자'고 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자본을 읽자>에서 '자본'을 '책'으로 바꿔서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저는 '자본론'과 관련된 책만 읽고 있기에, '자본'이라는 책은 현상황에서는 책의 대명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온통 자본론 관련 책만 읽고 있어서, 지금의 저한테 책의 세계는 '자본론의 세계'와 다름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좋은지는 잘 모르겠는데, 마음 속에서 집중적으로 읽자는 욕망이 계속 들끓어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달 만에 돌아온 제 마음이 그렇게 시키니까요.

그런데 집중적으로 읽는데 뭐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무언가 뚜렷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잡힐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잘 보이지가 않네요. 잘 보이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자본론 관련 책들을 읽어나갑니다. 내 안에 쌓이면 그 축적의 힘으로 무언가 보일 것을 기대하면서. <다시 자본을 읽자>를 읽으며 그래도 보이는 것은 하나 있네요. 바로 '정치경제학'과 <자본론>의 관계.

마르크스 살아 생전에 정치경제학자들은 말합니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요. 임금을 예로 들어볼께요. 정치경제학자들은 지금 당신이 받는 임금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정당한 임금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주어진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 외에요. 그러나 마르크스는 다르게 말합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당신이 지금 받은 임금은 시장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해 정한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정한 임금을, 정치경제학자들은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인 것처럼 정당화한다고 말합니다. 특정한 의도의 행위, 혹은 자본주의 하에서 벌어질 수 있는 특정한 상황을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처럼 포장하고 정당화는 게 정치경제학자들의 행위라는 것이죠.

우리가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마르크스는 정당하거나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 선 '정당함'과 '일반적'이라는 개념의 커튼을 걷어내어 그는 우리에게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힘있고 강한 자들의 시각이 아니라 약하고 힘없는 자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줍니다. 그는 사회의 초상, 시대의 상황,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시스템의 형상들을 알려줍니다.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형상을, 시스템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이 오래된 책을 '오래된 미래'처럼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포기하지 않고 12권으로 예정될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읽어나갈 예정입니다. 다시 책을 읽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본이라는 책을 읽는 방식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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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7.다시 자본을 읽자-고병권(2)

총페이지:180p

읽은 기간:2021.4.23~2021.4.24

읽은책에 대하여:

<다시 자본을 읽자>을 온라인 독서 모임의 첫 책으로 선정한 순간,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쉬었던 나의 독서생활은 이 책을 기반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다른 자본론 관련 책을 읽게 됐고, '자본론' 관련 책을 읽었으니 자본론 원본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시 자본을 읽자>는 나로 하여금 다시 책을 읽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다시 자본을 읽자>는 <자본론> 1권을 12회에 걸쳐서 강연을 하고, 그 강연을 12권에 걸쳐서 강연록으로 풀어내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첫 책이다. <자본론> 1권에 대한 12회의 강연을, 12권의 책으로 풀어낸 시리즈답게, 1권은 <자본론>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준다. <자본론>이 어떤 책이고, 무슨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책을 기반으로 마르크스는 무엇을 말하는지 같은. 내가 인상적으로 보았던 것은 <자본론>의 부제로 쓰여진 '정치경제학 비판'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마르크스 동시대의 정치경제학(다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정치경제학은 지금의 경제학이라고 볼 수 있다)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론이라고 주장하지만, 마르크스는 그것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특수한 상황이자 자본주의적인 구조가 불러온 것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더불어 언제 어디서나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이론을 말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됐는가를 살펴야 한다면서, 이 시대의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구조와 이 시대만의 독특한 시각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이 시대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면서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자본가들을 위한 경제학은 널려 있으니, 나 혼자서라도 노동자를 위한 경제학과 경제적 사고를 하겠다는 마르크스. 자신만의 이상과 사상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사상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읽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이왕 책을 다시 읽기로 했으니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따라가볼련다. 다짐을 하고 책을 들여다본다. <다시 자본을 읽자>가 <다시 책을 읽자>로 보인다. 이건 나만의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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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을 읽다 - 마르크스와 자본을 공부하는 이유 유유 고전강의 2
양자오 지음, 김태성 옮김 / 유유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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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6.자본론을 읽다-양자오(2)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 팻말이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저 팻말의 말을 들을까요? 누군가는 저 팻발의 말을 어길텐데... '미성년자는 담배와 술을 금합니다'라는 말을 봐도 비슷한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말을 해도 어기는 사람은 분명 있을텐데.^^;; 물론 다수의 사람은 금지의 말을 하면 지킬 겁니다. 언제나 지키지 않는 건 소수에 불과하죠. 하지만 소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금지가 있기 때문에, 금지 하는 행동을 했을 때 느끼는 묘한 해방감은 커질 겁니다. 이렇듯 금지에는, 금지의 말에는, 이 금지를 넘어서서 행동한다면 금지하지 않을 때보다 더 묘한 기분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숨어 있습니다. 금지의 말에 숨겨진, 금지하는 행동을 촉구하는 듯한 묘한 단어의 이질감. 누군가에게는 금지의 말은 '금지하는 것을 해라'라는 말로도 들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자본론을 읽다>의 서문에 나오는 양자오의 행동이 위에 제가 적은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책의 서문을 보면, 과거 한국과 비슷했던, 아니 어쩌면 더 심했을 수도 있었던 반공국가의 분위기가 있었던, 과거의 대만에서 저자는 대학 도서관에 가서 금단의 열매와 같았던 <자본론>과 우연히 마주칩니다. '읽지마', '읽으면 안 돼', '읽으면 넌 위험해'라는 금지의 단어가 보이지 않는 글씨로 적혀 있던 책을 마주하고, 양자오는 그 단어들을 '반드시 읽자'라는 단어로 바꾸고 읽습니다. 그 때 그가 느낀 감정은 어떠했을까요? 그건 마치 금단의 열매를 먹고 느꼈던 누군가의 쾌락과 비슷할 겁니다. 금지했기에, 하지 못하게 했기에, 했을 때 무언가를 위반한 듯한 아찔한 쾌감이 찾아오는 겁니다. 더군다나 그게 보통의 책도 아니고, 우리의 시야를 트이게 해주는 마르크스의 책이었기에 양자오가 느낀 감정은 더 짜릿할 겁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말한 뒤에 저자는 마르크스의 사상의 특징과 핵심을 짚어주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정당화하며, 지금 일어나는 경제적인 일들을 정당화시키는 주류 경제학과 달리 마르크스의 경제학,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마르크스는, 눈앞의 경제적 현실이 수요 공급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경제학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마련한 자본주의적 구조에 따른 결과라고 알려줍니다. 그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특수한 것이라고 하면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기에, 마르크스에게 그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건 논의하고 분석하면서 비판하는 대상이 됩니다. 논의와 분석과 비판의 끝에서 마르크스는 그건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의 결과이자 자본주의적 역사의 현상이 됩니다.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의 결과이자 자본주의적 역사의 현상으로서 그것은 계급투쟁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게 됩니다. 가진 자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가지지 않은 자들의 지배당함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산물로서.

여기에 노동가치설, 잉여가치, 소외, 상품, 화폐, 물신 같은 개념들을 설명하고 거기에 마르크스의 통찰력과 19세기 사회에 대한 관찰한 결과들을 덧붙여서 마르크스의 사상과 <자본론>을 설명합니다. 더 나아가서 양자오는 마르크스 사상의 비어 있는 부분들을 채워주는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상과 이론을 더해서 마르크스라는 한 개인의 사상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끊임없이 만들어져가는 마르크스주의라는 거대한 사상의 밑그림을 보여줍니다. 자본주의 사상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소외되지 않는 주체적인 개인의 삶에 대한 이상을 반영한 사회상에 대한 염원,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배려하는 삶,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지는 사회에 대한 추구 같은.

읽다보면 양자오의 의도대로, 마르크스의 사상과 <자본론>에 대한 밑그림은 충분히 그려집니다. 거기서 더 나아갈려면 다른 책들을 더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도 저는 양자오의 마르크스와의 첫 만남에서 얻은 기쁨이 부럽습니다. 금지된 것을 맛 볼 때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마르크스를 금지한 시대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마르크스에 대한 금지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에게 마르크스는 금지된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금지된 열매가 아니었기에, 금지를 넘어설 때 느끼는 강한 쾌감은 없었습니다. 자유를 통해서는 금지를 넘어서는 강렬한 느낌을 느낄 수 없으니까요. 다만 시야를 넓혀주고, 제가 서 있는 지반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이상에 대한 공감도 어느정도 있었지만, 양자오가 경험한 강렬한 느낌은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자오가 부럽습니다. 금지된 책들을 읽을 때의 강렬한 경험을 저는 느낄 수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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