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1.
다니엘 페냑 <소설처럼>
마르그라트 뒤라스 <연인>
파트리크 모디아노 <서커스가 지나간다>
파트리크 모디아노 <잃어버린 거리>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파스칼 키냐르 <떠도는 그림자>
구효서 <깡똥따개가 없는 마을>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쉼브르스카 <여인의 초상>
이선 호크 <웬즈데이>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낚시>
레몽 쟝 <오페라 택시>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배수아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무라카미 하루키 <렉싱턴의 유령>
....
 
위 책들의 공통점은?
바로 모두 <백수생활백서>에 나온 책들이라는 점이다.
위의 리스트는 이 책에서 소개된 것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외의 책들과 책의 구절들, 책에 관련된 사항,
책을 쓴 저자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면
이 책이 거의 책 이야기로 이루어진 소설임을 알게 된다.
 
도서관같은 소설. 소설 자체가 도서관인 소설. 
 
주인공은 스스로가 책 매니아이자 지독한 독서가로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실제 독자인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책에 대한 사랑과 예찬을 늘어놓는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2.
'심심해지면 책을 펴면 된다.
그 속에는 무궁무진한 다른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상상하는 시간만으로도 나는 지루하지 않다.
진짜 지루하고 심심한 건 심심해하는 인간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현재로서는 책이 나를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든다는 것 밖에는 알지 못 한다.'
 
'홀로 책을 읽으면서 지내도 누구보다 행복할 자신이 있다.'
 
 
오직 책 읽는 것만이 삶의 의미이자 목표인 28살의 백수 '나'.
책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그 이상의 수입이나 소비를 바라지 않는
책 중독자인 나는 삶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더 이상은 추락할 곳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올라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없고 세상이 바뀌어야 할 이유도 나에게는 없다.'
'나는 미래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기대도 갖지 않은 채로 비교적 잘 살아왔다.'
 
그녀의 독서는 무기력과 공생한 상황.
삶의 무기력이 독서를 뒷받침하고,
독서는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 무럭무럭 자란다.
반대로 독서에 대한 열정이 너무 강하기에
그녀의 무기력 또한 삶에서 강하게 뿌리를 박고 있다.
결국 현재 나의 삶이란 독서와 무기력이 동전의 양면처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책 거래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나면서
그녀의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거기에 그녀 주변의 인물들이 겪는 변화까지 겹치며
그녀의 변화없었던 삶은 요동치기 시작하는데...
 
3.
독서에 갇힌 삶으로 시작해서
책으로 인한 인연으로 변화를 겪으며
책을 넘어서서 사람에 대한 온기와
세상에 대한 긍정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일종의
책 매니아 백수의 성장기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성장기는
책에 대한 욕망이 사람에 대한 욕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욕망의 변천사로서
폐쇄에서 개방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가진다.
 
그 구조는 다시 동화적 구조와 유사성을 가지는 바
이 소설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책 매니아 백수 공주의 도서관 탈출기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소설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기에)
 
그녀는 책 속을 탈출해 세상으로 나아간 셈.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 책의 진짜 역설이 나온다.
독서의 폐쇄적 공간에서 밖으로 빠져나와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된
그녀의 삶 자체가
책 속의 이야기라는 사실.
 
최종적으로 작가가 그녀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폐쇄적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자'
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 메시지는 과거의 동화에서부터 데미안을 거쳐 현재의 소설까지
종종 제시되는 고전적인 것으로서
너무 익숙해진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박주영은
그런 고전적 메시지를
책 매니아의 독서 열정이라는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익숙한 메시지의 신선한 전달.
이것이 이 책의 진짜 신선한 점이다.
 
어쨌든 이제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감싼 폐쇄적 공간을 벗어나보자.
그것이 책이든 알껍질이든 두려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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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불이 꺼진다.
영사기는 돌아가고
화면속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나는 어느새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독서의 시작
 
 
일본 소설을 종종 읽다보면 만화같은 느낌이 확 든다.
소설보다는 오히려 애니메이션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느낌의 소설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대중 소설은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영화같은 느낌의 글들이 많다.
그 소설들은 아마도 영화화를 생각하고 쓰여졌으리라.
 
그에 비해 한국의 소설이나
유럽의 소설들은 영상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지는 않는다.
특히 프랑스 소설들은 톡톡튀는 지적인 유머나 독설,
자기만의 철학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강해서
영상적인 느낌보다는 관념적이고 지적인 면모가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데,
기욤뮈소의 글들은 다른 것 같다.
그의 글은 정말 영화 같다.
 
영화같은 줄거리, 영화의 씬들을 묘사하는 것 같은 문체.
로맨스와 미스터리, 액션, 호러, 판타지의 절묘한 퓨전.
헐리우드식 이야기 구조에 유럽적 감성이 어울렸다고나 할까?
 
프랑스 영상세대의 기수라는 표지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팝콘같다.
영화를 보면서 씹어대는 팝콘처럼
별다른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의미이다.
 
신의 문제니 인간의 자유의지니 운명이니 하는
문제를 들먹이지만
이 작품의 주제는 읽다보면 간단하게 읽혀진다.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지니.'
 
그래,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신의 문제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따스하고 살가운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 메시지를 느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한 독서였다.
 
'불이 커졌다.
관객들이 하나둘씩 나가고 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나가고 있다.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나는 영화 속 환상의 세계에서
차갑고 냉정한 현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다시 현실의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기욤 뮈소와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관을 나서고 있었다.
거리의 불빛이 차갑게 느껴졌다.
순간 내 폰으로 문자가 날라왔다.
문자의 내용은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지니
 
-독서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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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김영하가 돌아왔다.
나의 기억속에서 김영하는 랄랄라 하우스의 주인이자 20대에 이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던 작가이자, 아랑은 왜? 라고 물었던 소설가이며 만화가 이우일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했던 만담가였다.


 
 
그는 확실히 일상적 표피의 세계를 건드려 그 안에 숨겨진 속살을 바탕으로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김연수에 비해 쉽게 읽히는 이야기를 구성해내고, 이야기의 묘미에 빠져들게 하는 작가이다.


그것은 읽기의 속력과 연관되고 동시에 이야기꾼으로서의 김영하의 자질과 이어진다.
특유의 우울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흡입력 있는 문체와 이야기는 그만의 매력으로 빛난다.
그래서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나는 그가 내게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2.
         오빠 생각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고, 소식도 없던 오빠가 돌아왔다.
근데 돌아온 오빠의 곁에는 비단구두도, 동생을 기쁘게 해 줄 멋진 선물 대신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미성년자 여자애가 서 있었다.
더구나 오빠는 돌아오자마자 예전에 자신을 때리던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거꾸로 마구 패기까지 한다.
그것을 말리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여동생.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는 진정한 콩가루 집안의 표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존의 통념과 거리가 먼 가족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가치관과 거리를 두는 그들의 해학적인 삶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품고 있던 가족관을 왜곡하고 비틈으로서 당대의 현실이 이상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이 소설집은 일단 거기에 방점을 찍고 소설들이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권선징악을 설파하는 동화들과 정당하고 바른 삶을 권고하는 교육의 이념이 말하는 이상과는 다른 살벌한 태도가 지배하는 현실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혼란과 이중적 태도를 김영하는 특유의 술술 읽히는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첫번째로 소설인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이다. 그는 냉소적인 소설가로 신부가 된 대학 동창생 바오로와 미경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신부로서의 이상과 여성의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괴로워하는 바오로. 꿈과 열정을 현실의 무게 때문에 가슴에 묻은 채 살다가 자연발화로 죽은 미경의 남편 정식. 그리고 그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친구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미경. 열정과 이상도 사라지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냉소적이지도 못해서 현실과 이상의 틈바구니에서 회색인으로 살아가는 나.
그들은 모두 그림자를 판 사람들이 아닐까?
 
<이사>. 주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던 이사라는 행위가 이삿짐 센터 직원들의 횡포로 악몽으로 변함을 보여줌으로서 언어와 관념으로서의 개념이 현실과 다름을 보여주는 이야기.
 
<너를 사랑하고도>. 사랑에 대한 저마다의 꿈을 품고 있지만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너를 사랑하고도' 모욕당하고 실패하는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젊은 날의 성적인 욕구 때문에 한 여자와 모두 성관계를 가진 세명의 대학 동창생.
시간이 흘러 갑자가 그들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 그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평온한 삶이 무너질까 두려워 '그녀를 죽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녀가 살해당했음을 알게 되고 서로를 의삼하게 되는데...
평온한 일상에 감추어진 이중성과 이상과 다른 우리 삶의 추악함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
 
<너의 의미>. 영화감독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모델, 연기자, 연기자 지망생과 성의 향연을 벌이던 한 영화감독이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작가에게 꼼짝없이 사로잡힌다는 이야기. 꿈을 꾸는 한 작가가 그 이상적 에너지로 현실적인 한 남자를 옭아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보물선>. 이순신 동상이 친일파의 음모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파괴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상주의자 형식과
적당히 운동권에 몸담고 있다가 졸업 후에 펀드매니저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재만. 그둘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이상의 이중주를 김영하 특유의 냉소적인 해학으로 풀어가는 소설.
 
'그제야 재만은 자신의 동업자들에게 철저히 냉소적인 조지 소로스의 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게 되었다.'
'수천 명의 재산을 간단하게 꿀꺽하고도 아침이면 호텔 식당의 메로구이를 발라먹는 저 놀라운 식욕. 추악한 욕망'
 
3.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울고 웃고 파멸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어느새 나는 내가 책을 다 읽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순간. 나는 소설이 아닌 현실에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내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틈에 살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는 완벽하게 현실적이지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이상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그 어디쯤엔가 걸치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순적인 행동과 고민을 하며 힘겹게, 꿈을 꾸며 살아가는 셈이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이란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꾸역꾸역 버티며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꾸역꾸역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한걸음 한걸음 차분히 걷다보면 멋진 꿈의 대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그것은 이 리뷰에서 소개하지 않은 소설인 <마지막 손님>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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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Q: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었다. 그런데 법이 그들을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일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해 본적은 없다. 그러나 만약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나의 몸을 태울 꺼 같다. 그 분노는 나를 태우고 나를 괴물로 만드리라.
용서도 없는 영원한 복수의 아귀지옥을 맴도는 괴물... 살인자의 죽음을 꿈꾸는 괴물...
 
2.
 
스나크 사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작자 루이스 캐럴의 1876년작. 스나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그걸 잡은 사람은 사라져 버린다. 즉. 괴물을 잡은 사람은 자기도 죽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1.
게이코. 지방유지의 딸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녀는 '타인은 도움 안 되는 쓰레기일 뿐'이며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해야 된다는 신조를 가진 고쿠부 신스케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진다.
결국 그녀는 신스케의 결혼식날 자신이 취미 생활로 삼았던 산탄총을 들고 나타난다.
 
#2.
낚시 도구점 피셔맨 클럽 직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오리구치 구니오는 그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직원 사쿠라 슈지를 노가미라는 여성과 이어주려고 하고 있었다. 그둘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나서 오리구치는 할일을 하기 위해 단골 손님 중 하나였던 게이코의 아파트로 향한다.
 
#3.
신스케의 여동생 노리코는 오빠와 달리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인물.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저지른 일에 대해 게이코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식이 벌어진 그날도 그녀는 게이코가 어디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여러곳을 둘러보다가 총을 들고 있는 게이코를 보게 된다. 노리코는 게이코를 진심으로 설득하여 그녀를 돌려보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는 게이코가 아파트로 떠나 보내고 나서 그녀가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그녀의 아파트로 향한다.
 
#4.
오리구치를 누구보다도 좋아했던 슈지는 그날 오리구치의 행동들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그런데 우연이 겹쳐지며 슈지는 오리구치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슈지는 오리구치의 헤어진 아내와 딸이 미성년자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자신들의 정신감정을 주장하면서 재판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오리구치가 무슨일을 저지를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도 우연히 얻게 된 단서들을 쫓아서 게이코의 아파트로 향하게 되고.
 
#5.
법이 살인자들을 심판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눈치챈 오리구치. 그는 자신이 직접   괴물이 되어 그들을 심판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산탄총을 가지고 있는 게이코를 알게 된다. 의도적으로 그녀와 친해진 그는 그날 게이코의 아파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돌아온 그녀를 클로로포롬으로 마취시키고 총을 뺏어 살인자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6.
기절한 상태로 노리코에게 발견된 게이코. 그리고 마침 모습을 드러낸 슈지. 그들에게 게이코는 진실을 밝힌다.

자신이 결혼식장에 가져갔던 산탄총은 총구에 납땜이 되어있는 상태로 총을 발사하면 발사한 사람이 죽게 되어 있다는 사실.

게이코가 원한 것은 신스케의 죽음이 아니라 그녀가 결혼식장에서 자살함으로서 결혼식이 파탄나는 것이었다.

 

#7.

이 모든 사실을 알아챈 노리코와 슈지는 오리구치에게 진실을 말하고 그의 살인을 막기 위해 그를 쫓아서 떠난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 괴물이 되기로 결정한 오리구치. 그러나 그는 괴물이 되는 순간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오리구치를 추적하는 노리코와 슈지.

마지막으로 그들 모두를 추적하는 경찰.

이제 그들의 숨막히는 하룻밤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3.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작품. 인물의 심리묘사와 상황설정, 사건의 과정을 묘사하는데 주력하던 그녀가 이 작품에서는 긴박감 넘치는 상황 전개로 읽는 내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박진감 넘치는 문체를 순식간에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일종의 답답함이다.

법의 허점, 그 허점을 파고드는 영악한 살인자, 거기에 무기력한 법조계와 그걸로 인해 더욱 상처받는 피해자,

그리고 악을 처단하기 위한 악이 인정받을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는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다른 해답은 없단 말인가?

아마도 여기에 대한 정답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건 끝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일 뿐.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스나크 사냥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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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최소한의 도덕이라고도 불린다.

1.

법은 완벽한가? 우리는 언제나 이런 질문과 마주치면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 고민은 항상 법의 한계와 효용성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법을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맞고, 우리가 법규법을 신뢰해야 하는 것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것도,더군다나 그것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완벽한 것이 없듯이 법도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법치국가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고 우리의 삶 곳곳을 조여온다면 그 법의 그물은 고정성과 경직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숭숭 자신의 구멍을 드러낼 것이다.
  

법의 구멍. 상상하기 싫은 현실이긴 하지만 그 법의 구멍을 악용하고, 이용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때 법은 방황하기 시작하고, 법을 믿고 따르던 평범한 피해자들은 갈팡질팡 하다가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2.

한 아버지가 있었다. 아내를 잃고, 딸을 자기 인생의 낙으로 애지중지 키워온 정많은 아버지. 그런데 어느날 그 딸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두명의 사내가 있었다. 그들은 빈둥빈둥 거리며 놀고 부모 돈이나 뜯어내며 여자를 폭행하고 강간하는 것을 낙으로 사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여자를 강간하고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자신들을 고발하지 못하게 했다.

 

언제나처럼 그날도 그들은 여자를 강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수로 너무 많은 마취주사를 놓는 바람에 그녀는 죽게되고,

두려움에 떨던 그들은 그녀의 시체를 강물에 버린다. 그렇게 한 여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 사내가 있었다. 두 명의 친구에게 항상 맞고 그들의 시달림을 받던 사내. 그는 두 친구가 나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공포심 때문에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그는 뉴스를 보게 된다. 시체로 발견된 한 여성. 두려움에 떨던 그는 죽은 여자의 아버지에게 몰래 문자를 보내어 자신들의 친구들이 범인임을 밝힌다. 자신의 정체는 밝히지 않은 채, 그는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친구들을 제거해 주기를 바랬다.

 
문자를 받은 아버지는 범인들의 아파트로 향한다.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범인들의 강간장면을 찍어놓은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된다. 저도 몰래 자기 딸의 이름이 적힌 비디오를 보는 그.

 
비디오를 보면서 그는 분노가 자신의 온몸을 가득채움을 느낀다.
뇌에서 발생한 분노는 그의 온몸을 불타오르게 하면서 그를  악마로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마침 아파트에 들어온 범인 중 한명을 무참하게 죽인다.

그리고 남아 있는 범인 한 명을 찾아서 떠난다.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인 범인을 죽이기 위해서...

 
3.

법은 문자다. 그것은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 없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다. 거기에는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 가해자의 범죄가 사람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가는지 적혀 있지 않다. 그리고 가해자가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도 당연하게 적여 있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법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법은 인간의 나약함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살인범이 된 아버지. 이미 살인을 저지른 미성년자. 그 사이에서 법은 살인을 저지른 미성년자를 보호한다. 경찰들은 살인범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범이 된 아버지를 잡으려 하고, 살인범이 죽을 것 같은 최악의 경우에는 그 살인범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발사하는 것도 용인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소년법에 의거해 그 살인범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교도소에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로 악을 차단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소설 속에서 칼날은 방황하고 있었다. 일선의 형사들조차 회의를 제기하고 아버지를 동정하는 상황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것은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가장한 채 일시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는데 급급했다.

법의 그물에 드러난 구멍 속에서 정의는 부유하고 칼날은 방황했으며, 범죄자는 구멍 속에서 살길을 찾아 낸다. 어이없게도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은 법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어버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다.'

 

법은 어디로 가야할까? 법이 방황하지 않게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가? 만약 조금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범죄가 일어난 상황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서로 노력하는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이 방황하지 않게 될 것인가? 알 수 없다. 정말 알 수 없다...

 

4.

이 소설을 읽으며 난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근데 그 분노의 대상이
범죄자나 사회가 아니라 작가였다. 작가가 지나치게 냉정했다는 게 내 불만의 이유였다. 그가 너무 냉정하게 결말을 내려 버렸기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조금 더 낭만적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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