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최소한의 도덕이라고도 불린다.

1.

법은 완벽한가? 우리는 언제나 이런 질문과 마주치면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 고민은 항상 법의 한계와 효용성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법을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맞고, 우리가 법규법을 신뢰해야 하는 것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것도,더군다나 그것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완벽한 것이 없듯이 법도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법치국가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고 우리의 삶 곳곳을 조여온다면 그 법의 그물은 고정성과 경직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숭숭 자신의 구멍을 드러낼 것이다.
  

법의 구멍. 상상하기 싫은 현실이긴 하지만 그 법의 구멍을 악용하고, 이용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때 법은 방황하기 시작하고, 법을 믿고 따르던 평범한 피해자들은 갈팡질팡 하다가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2.

한 아버지가 있었다. 아내를 잃고, 딸을 자기 인생의 낙으로 애지중지 키워온 정많은 아버지. 그런데 어느날 그 딸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두명의 사내가 있었다. 그들은 빈둥빈둥 거리며 놀고 부모 돈이나 뜯어내며 여자를 폭행하고 강간하는 것을 낙으로 사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여자를 강간하고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자신들을 고발하지 못하게 했다.

 

언제나처럼 그날도 그들은 여자를 강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수로 너무 많은 마취주사를 놓는 바람에 그녀는 죽게되고,

두려움에 떨던 그들은 그녀의 시체를 강물에 버린다. 그렇게 한 여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 사내가 있었다. 두 명의 친구에게 항상 맞고 그들의 시달림을 받던 사내. 그는 두 친구가 나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공포심 때문에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그는 뉴스를 보게 된다. 시체로 발견된 한 여성. 두려움에 떨던 그는 죽은 여자의 아버지에게 몰래 문자를 보내어 자신들의 친구들이 범인임을 밝힌다. 자신의 정체는 밝히지 않은 채, 그는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친구들을 제거해 주기를 바랬다.

 
문자를 받은 아버지는 범인들의 아파트로 향한다.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범인들의 강간장면을 찍어놓은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된다. 저도 몰래 자기 딸의 이름이 적힌 비디오를 보는 그.

 
비디오를 보면서 그는 분노가 자신의 온몸을 가득채움을 느낀다.
뇌에서 발생한 분노는 그의 온몸을 불타오르게 하면서 그를  악마로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마침 아파트에 들어온 범인 중 한명을 무참하게 죽인다.

그리고 남아 있는 범인 한 명을 찾아서 떠난다.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인 범인을 죽이기 위해서...

 
3.

법은 문자다. 그것은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 없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다. 거기에는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 가해자의 범죄가 사람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가는지 적혀 있지 않다. 그리고 가해자가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도 당연하게 적여 있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법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법은 인간의 나약함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살인범이 된 아버지. 이미 살인을 저지른 미성년자. 그 사이에서 법은 살인을 저지른 미성년자를 보호한다. 경찰들은 살인범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범이 된 아버지를 잡으려 하고, 살인범이 죽을 것 같은 최악의 경우에는 그 살인범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발사하는 것도 용인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소년법에 의거해 그 살인범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교도소에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로 악을 차단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소설 속에서 칼날은 방황하고 있었다. 일선의 형사들조차 회의를 제기하고 아버지를 동정하는 상황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것은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가장한 채 일시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는데 급급했다.

법의 그물에 드러난 구멍 속에서 정의는 부유하고 칼날은 방황했으며, 범죄자는 구멍 속에서 살길을 찾아 낸다. 어이없게도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은 법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어버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다.'

 

법은 어디로 가야할까? 법이 방황하지 않게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가? 만약 조금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범죄가 일어난 상황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서로 노력하는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이 방황하지 않게 될 것인가? 알 수 없다. 정말 알 수 없다...

 

4.

이 소설을 읽으며 난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근데 그 분노의 대상이
범죄자나 사회가 아니라 작가였다. 작가가 지나치게 냉정했다는 게 내 불만의 이유였다. 그가 너무 냉정하게 결말을 내려 버렸기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조금 더 낭만적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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