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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1.
다니엘 페냑 <소설처럼>
마르그라트 뒤라스 <연인>
파트리크 모디아노 <서커스가 지나간다>
파트리크 모디아노 <잃어버린 거리>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파스칼 키냐르 <떠도는 그림자>
구효서 <깡똥따개가 없는 마을>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쉼브르스카 <여인의 초상>
이선 호크 <웬즈데이>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낚시>
레몽 쟝 <오페라 택시>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배수아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무라카미 하루키 <렉싱턴의 유령>
....
위 책들의 공통점은?
바로 모두 <백수생활백서>에 나온 책들이라는 점이다.
위의 리스트는 이 책에서 소개된 것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외의 책들과 책의 구절들, 책에 관련된 사항,
책을 쓴 저자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면
이 책이 거의 책 이야기로 이루어진 소설임을 알게 된다.
도서관같은 소설. 소설 자체가 도서관인 소설.
주인공은 스스로가 책 매니아이자 지독한 독서가로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실제 독자인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책에 대한 사랑과 예찬을 늘어놓는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2.
'심심해지면 책을 펴면 된다.
그 속에는 무궁무진한 다른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상상하는 시간만으로도 나는 지루하지 않다.
진짜 지루하고 심심한 건 심심해하는 인간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현재로서는 책이 나를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든다는 것 밖에는 알지 못 한다.'
'홀로 책을 읽으면서 지내도 누구보다 행복할 자신이 있다.'
오직 책 읽는 것만이 삶의 의미이자 목표인 28살의 백수 '나'.
책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그 이상의 수입이나 소비를 바라지 않는
책 중독자인 나는 삶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더 이상은 추락할 곳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올라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없고 세상이 바뀌어야 할 이유도 나에게는 없다.'
'나는 미래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기대도 갖지 않은 채로 비교적 잘 살아왔다.'
그녀의 독서는 무기력과 공생한 상황.
삶의 무기력이 독서를 뒷받침하고,
독서는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 무럭무럭 자란다.
반대로 독서에 대한 열정이 너무 강하기에
그녀의 무기력 또한 삶에서 강하게 뿌리를 박고 있다.
결국 현재 나의 삶이란 독서와 무기력이 동전의 양면처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책 거래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나면서
그녀의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거기에 그녀 주변의 인물들이 겪는 변화까지 겹치며
그녀의 변화없었던 삶은 요동치기 시작하는데...
3.
독서에 갇힌 삶으로 시작해서
책으로 인한 인연으로 변화를 겪으며
책을 넘어서서 사람에 대한 온기와
세상에 대한 긍정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일종의
책 매니아 백수의 성장기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성장기는
책에 대한 욕망이 사람에 대한 욕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욕망의 변천사로서
폐쇄에서 개방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가진다.
그 구조는 다시 동화적 구조와 유사성을 가지는 바
이 소설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책 매니아 백수 공주의 도서관 탈출기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소설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기에)
그녀는 책 속을 탈출해 세상으로 나아간 셈.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 책의 진짜 역설이 나온다.
독서의 폐쇄적 공간에서 밖으로 빠져나와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된
그녀의 삶 자체가
책 속의 이야기라는 사실.
최종적으로 작가가 그녀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폐쇄적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자'
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 메시지는 과거의 동화에서부터 데미안을 거쳐 현재의 소설까지
종종 제시되는 고전적인 것으로서
너무 익숙해진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박주영은
그런 고전적 메시지를
책 매니아의 독서 열정이라는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익숙한 메시지의 신선한 전달.
이것이 이 책의 진짜 신선한 점이다.
어쨌든 이제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감싼 폐쇄적 공간을 벗어나보자.
그것이 책이든 알껍질이든 두려워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