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9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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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옥타비오 파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중남미 문학의 3대 작가로 알려진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장편소설.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쓴 환상소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소설은 아득한 먼 옛날부터 인류가 염원해 온, 영원히 죽지 않는 삶과 죽음도 뛰어넘는 사랑의 끝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소설로 부활한 아우라

 

아우라:예술 작품에서, 흉내 없는 고고한 분위기.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예술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발터 벤야민은 자신의 저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복제품이 아닌 원본이 뿜어내는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하고 고고한 기운을

아우라라 말한다.

 

모사품이나 복제품이 따라갈 수 없는,

오리지널의 신비한 기운인

아우라는 그 자체로 원본을 후광처럼 감싸며

흉내낼 수 없는 원본만의 신화를 만든다.

 

그러나 책에서도 말했다시피

현대에 들어서면서 기술복제가 가능해짐에 따라서

고전적인 의미의 아우라는 사라진다.

사진과 영화같은 현대의 예술작품들은

원본과 복제품의 구분 자체가 힘들고,

원본의 아우라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순수예술이라고 부르는

분야에세도 그 영향은 이어진다.

마랄린 먼로를 대량복제한 작품을 전시한

앤디 워홀을 주축으로

이제 원본과 모조품,복제품의 구분은 사라졌다.

자본주의 사회와 기술발달이라는 사회 현상을

그대로 반영한 예술의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아우라를 찾아 볼 수 없다.

 

언제나 사람들을 설레게 한 아우라는

사장되고,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중남미 3대 작가 중 하나인 푸엔테스는

그 아우라를 자신의 소설에서 부활시켰다.

 

그것도 어둡고, 음습하며,

무언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인간들의 욕망이 스며있는

저택에서.

 

아우라에게 반하다!!

(*이 작품은 2인칭 소설이다.

독자는 '나'가 아닌 화자가 '너'라고 지칭하는

인물의 행동과 내면을 들여다본다.)

 

너의 이름은 펠리페 몬테로다.

너는 젊은 역사학자로, 지금은 일이 없어 쉬고 있다.

빈둥거리던 어느날 너는 광고를 하나 발견한다.

젊은 역사학자를 찾는다는 그 광고는

후한 보수만큼이나 너에게 딱 맞는 것이었다.

'바로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한 광고다.'

 

너는 과거의 기억이 스며있는 구시가지를 건너서

쇠락한 저택으로 찾아간다.

어둡고,음습하고,불길하며,이 세상의 집같지 않은 그 저택에서

너는 백살이 넘은 늙은 미망인 콘수엘로를 만난다.

그녀는 너에게 자기 남편인 죽은 요렌테 장군의 원고를

정리해달라고 부탁한다.

너는 많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이 어둡고 불길한 저택에서

기거해야 한다는 조건을 보고

거절을 선택하려 한다.

 

그때, 아우라가 들어온다.

콘수엘로의 조카로 그녀를 돌보는

젊은 아우라를 보는 순간

너는 사랑에 빠진다.

 

아우라가 품고 있는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함과

웬지 모를 불길함,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에

빠져서 너는 그녀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너는 이 집에 남는 걸 선택한다.

남아서 그녀와 사랑하는 걸 선택한다.

 

그렇게, 너는 아우라에게 반해서

그녀에게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

 

너는 아는가? 바로 그 순간이 너의 운명을

결정지었다는 사실을?

 

너는 이제 불길한 운명과 사랑의 불꽃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마라.

그건 너가 선택한 사랑의 길이자

인간 욕망의 어리석음이 저지른 신비하고, 어두운 길이니.

 

인간 욕망이 빚은 신비하고,불길한 사랑의 그림자

 

소설 곳곳에 스며있는 어두움과 불길함은

책 표지의 소개대로 이 소설을 고딕소설(공포소설)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최소한 내게 있어 이 소설은

고딕소설이 아니었다.

 

내게 있어 이 소설은 인간 욕망의 어리석음에 대한

내밀한 고백이자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인간들이 부르는

어두운 마법의 주문이자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자 하는 이들이

발버둥치며 부르는 애가였다.

 

내게 있어 <아우라>는 신비한 사랑의 소설이었다.

낭만만 가득한, 사랑의 아름다움만 표현한 소설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인간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이

어둡고, 신비하게 표현된 흑마술 같은 사랑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과 분위기를 품은 채

인간욕망의 어두운 현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 현실 깊숙이 아우라가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함을 풍기는 그녀가 있다.

우리는 그 신비함에 끌려 그녀에게 다가간다.

다가가서는 그녀의 가면을 벗기려 한다.

 

그리고 그녀의 가면을 벗기는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아우라가 숨기고 있는 것이 우리 욕망의 어두운 모습임을.

추악하고,어리석은 우리 마음의 어두운 괴물이 그녀였음을.

 

이 고통과 슬픔 앞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의 사랑과 욕망이란 이토록 어리석고 어리석음을.

 

그 신비하고 불길한 사랑의 그림자 앞에서

콘수엘로의 젊음을 향한 끝없는 열망과

몬테로의 불명의 사랑을 향한 열정은

가능성없는 하나의 부질없는 몸부림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끝없이 아우라를 향해 달려가고,

그 가면을 벗기려 한다.

그 행위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지라도

우리는 계속 그짓을 반복할 것이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욕망과 사랑의

흑마술에 걸려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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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펭귄클래식 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톨스토이의 가장 돋보이는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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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알렉산더 페히만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책소개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상정해 사라진 책들의 서지학과 밝혀지지 않은 미시사를 써내려간 책. 풍부한 문학사 자료와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사라진 책들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바벨의 도서관 안에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 있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세상 모든 책들이 머무는 그 도서관은
지금까지 모든 언어로 써온 모든 책들과
앞으로 모든 언어로 써질 모든 책들을 가지고 있다.
우주를 형상화한 이 바벨의 도서관에는
세상 모든 책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곳에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 있으리라.

알려졌지만 전해지지 않는 작품들,
알려지지도 않고 알아낼 수도 없는 작품들,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거나
작가의 머리에 아이디어로만 존재하는 작품들,
어딘가에 있지만 우리가 찾을 수 없는 작품들,
그 사라진 책들을 모아놓은 곳을 알렉산더 페히만은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라 명했고,
당연하게도 그곳은 우주의 일부이기에
바벨의 도서관 어딘가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실날같은 존재의 개연성만 있어도
그 책은 얼마든지 실재한다고 볼 수 있다.'

자, 이제 눈을 돌려 바벨의 도서관 어딘가에 위치한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속으로 들어가보자.

 

*알렉산더 페히만은 책에서 바벨의 도서관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우주를 형상화한 바벨의 도서관을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 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이 글에서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
바벨의 도서관 안에 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사라진 책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생각해보자.
힘을 쏟아 열심히 쓴 책들이
자기 발로 달려서 사라질리는 없다.
그 책들이 어느날 갑자기 저절로 먼지가 되어
사라질리도 없다.
우리는 사라졌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것은 자신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사라짐은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 사라짐이 만든 이야기들이 모여서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을 이루니만큼
이 도서관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작가와 출판업자,작가 주변인들의 부주의로 사라진 책들,
전쟁과 정치권력의 횡포,종교의 검열 때문에 사라진 책들,
오해를 불식시키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책들과 원고들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작가 스스로의 강박관념 때문에 사라진 책들,
작가의 질병,사망,자살 등으로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작품들,
쓴다는 말만 해 놓고 쓰지 못한 작품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 가상의 책들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고대와 중세의 책들,
작가의 허풍과 거짓말 속에서만 써진 책들,
눈앞에 존재하지만 풀 수 없는 암호로 기록된 문서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작가 자신을 위해서 쓴 책들.

또 사라진 책들의 이야기는 그 책을 쓴
작가들(허먼 멜빌,메리 셸리,바이런,정화...)의 기구한 인생사와
맞물리며 이야기의 깊이와 재미를 더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깨닫게 될 것이다.
이야기가 사라진 책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에 생기를 가득하게 했음을.

'도서관에 보관된 자료들은 살아 숨 쉬고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

 

책들은 사라진것이지 죽은 것이 아니다!!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의 책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흔적은 남아있다.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의 현존재는 사라졌지만
역사에,자료에,인간들에게 남긴 흔적들이 있기에
그들은 죽지 않고 남아 있다.

사라진 책들을 살리려는 알렉산더 페히만의 불가능한 시도
또한 그들이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그는 사라진 책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김으로서
사라진 책들을 복원하려 했다.
근데 그것이 진짜 그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그의 의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가 사라진 책들을 선택한 것들이 아니고,
사라진 책들이 그를 선택한 것이다.
사라진 책들이 그를 불러서 자신들을 책속에 남김으로서
독자들 마음 속에 살아남게 한 것이다.
그는 사라진 책들에 선택당해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을
남긴 것이다.

페히만이 남긴 불씨는 이제 독자들의 마음으로 넘어왔다.
아마도 그 독자들 중에서 미래에 사라진 책들의 선택을 받아
또다른 책을 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책을 쓰지는 않더라도 사라진 책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사라진 책들의 이야기를 재미삼아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책들은 사라졌지만 자신들의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력은 바벨의 도서관에
불이 꺼지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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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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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리뷰

 

드라마 선덕여왕의 악역 미실



 

mbc월화드라마 선덕여왕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미실.

 

극중에서 고현정이 연기하는 미실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하고 비정한 여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것은 미실이 악으로서

선덕여왕과 대립하는 구조로서

드라마가 흘러갈 것을 예시한다.

 

나는 여기서 소설 미실이

느껴졌다.

 

'분명 이 드라마는 소설 미실을 참조해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 미실은 어떤 내용이고.

미실은 어떤 인물인가?

 

야사 속의 인물이 되살아나다.

 

미실은 정사의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야사 속에 기록된 인물로

<화랑세기>에 등장한다.

 

거기에서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성적능력으로

신라사회를 쥐고 뒤흔드는 배후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미실이 등장하는 부분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군다나 <화랑세기>라는 책 자체가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기에

미실이라는 인물이 실존하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바로 여기에 작가가 개입한다.

김별아는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야사 속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여인을

소설로 되살려낸 것이다.

 

거침없는 사랑하는 그녀, 미실

 

미실이 살았던 신라시대는

지금의 윤리나 가치관으로는 잴 수 없는

시절이다.

 

유교적 윤리나 서구적 사고가 있지 않았던 그 시절,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가 남성간의 동성애를 권하고,

인도에서 성관계를 신성시하던 것처럼

그 시절 신라에서는

왕족간의 근친혼과 혼외정사,동성애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특히 왕족과 왕에게 봉사하던 신하중에는

색공지신이라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색공으로,

다시 말해 자신의 몸과 성적인 능력으로

왕과 왕족을 받드는 존재들이었다.

 

미실은 색공지신 중에서

대원신통의 혈맥으로 태어나

왕과 왕족에게 평생 몸을 바치고,

쾌락을 선사하는 임무를 띈 존재였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숙명.

미실은 거기에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신라 최고의 완소남 사다함과의

슬픈 사랑은 그녀의 그런 운명을 가속화시킨다.

 

사랑하지 않은 남자와의 성관계과 결혼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그녀는 수동적인 성관계가 아닌

스스로 성관계의 주체가 되는 인물로서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녀는 남성의 힘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남성들을 조종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켜 나가는 인물이 된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사랑하고, 관계를 맺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

정치적인 권력까지 얻는 미실.

 

그녀가 나쁜가? 그녀가 음탕한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사랑한 것일 뿐이다.

 

그녀는 성을 사랑했고,

자신을 거쳐간 무수한 남자들을 사랑했으며,

권력을 사랑했고, 정치적인 힘을 사랑했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사랑하는 것 자체를 사랑했다.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사랑하고 또 사랑한 행동의 결과일 뿐이다.

 

지금은 나올 수 없는 그녀, 미실

 

우리는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보다 훨씬 좋은 삶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 우리의 삶은 그들보다 경직되어 있다.

현대라는 그물이,

유교윤리와 서구적 가치판단이 만들어낸 그물이

우리의 사고를 움켜쥐고 있고,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실은 현대라는 그물을 벗어난 존재였다.

그녀는 그물을 벗어나 자유롭게 노닌다.

 

자기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다간

그녀의 삶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과 다른 삶을 살다간 이의 표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현대라는 시간속에

미실이 살아있다면

그녀를 만나보고 싶어졌다.

 

남성위주의 역사학이 지워버린,

남성 역사학자들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으로

덧칠된 미실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의 미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다.

정녕 그대는 자신을 거쳐간 그 모든 사람을

사랑했나요?

 

그러면 그녀는 뭐라고 대답할까?

 

'넌 누구와도 같지 않아. 미실!

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야.'

'소녀는 뭇 별들처럼

수 많은 사랑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단 한번도 그 사랑을 후회해본 적

없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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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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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엄마를 잃어버리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 째다.

-책의 첫 문장

 

<엄마를 부탁해>를 펼치면 나오는 첫 문장이다.

책은 처음부터 충격적인 문장을 들이대며

독자의 몰입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도입부에서 이렇듯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

이 책은 읽는내내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하며

순식간에 독서를 끝내버리게 만든다.

 

몰입도랑 가독성이라는 측면에서

<엄마를 부탁해>가 가지고 있는 힘은

엄청나다.

 

하지만 이 책은 몰입도랑 가독성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가진 책이다.

 

나는 여기에서 그 무엇을 나름대로

얘기해보자 한다.

(뒤에 나오는 해설의 도움도 있었다.^^)

 

그러려면 먼저 엄마를 잃어버린 사실부터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엄마를 잃어버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엄마를 놓친 순간부터

가족들이 엄마를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 사실 그 이전부터

그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대체로 엄마를 잊고 지냈다.'

 

엄마는 이미 잊혀진 존재였다.

 

정치학자 전인권이 쓴 <남자의 탄생>.



저자인 전인권은 이 책에서 흥미로운 말을 한다.

그는 엄마가 항상 엄마인줄 알았다고 고백하며

엄마가 엄마가 아닌 000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가 되는 순간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그 말이 가진 의미는

한국의 가정에서 엄마는

인간 000가 아니라

엄마라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라는 의미다.

 

우리는 000가 아니라

항상 그냥 엄마라는 역할로 그녀를 부르며

그것으로 그녀의 정체성을 확정해 버린다.

 

그렇게 되는 순간

우리에게 중요한 건 000가 아니라

엄마다.

 

엄마, 밥 줘~

엄마, 나한테 신경써 줘~

엄마, 사랑해 줘~

엄마, 이거 사줘~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이 끝없는 엄마라는 말 속에는

엄청난 비극이 숨어있다.

우리는 항상 엄마에게 무언가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고 부탁하는 건

000가 아니라 엄마다.

우리는 엄마라는 개체적 존재보다는

엄마라는 역할을 사랑하는 것이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서

가정을 차리는 상황이 되면

엄마의 자리는 없다.

우리는 스스로가 가정의 구성원이자 부모로서

정신이 없고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의

존재를 잃어버리기 일쑤다.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가족들도

이미 엄마를 잊고 있었다.

 

엄마는 잊혀진 존재로서 살아가다

진짜 사라져버린 것이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엄마를 찾다. 그러나...

 

소설의 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

엄마를 찾아나선다.

 

엄마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엄마라는 존재를 살려낸다.

 

자신들에게 헌신적이었던 엄마.

태산같이 버티고 서서 집을 지켜낸 엄마.

아버지의 바람과 방랑을 참아낸 엄마.

그들을 믿고 뒤에서 지켜봤던 엄마.

 

그 모든 엄마의 존재감이 모여서

만들어낸 엄마의 추억.

그 앞에서 가족들은 엄청난

죄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수준을 넘어선

집을 다 태워버리고 사라진 집을 추억하는

수준의 몸짓이었다.

 

그들은 엄마를 찾아나서지만

그들이 찾는 엄마는 예전의 엄마도 아니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끝없이 사랑을 퍼 주다가

더 이상 사랑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엄마는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한없이 사랑했지만

돌려받은 것 없이

그렇게 우리들의 엄마는 사라져 간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

 

소설의 상황은 저렇듯 심각하다.

그러나 과연 소설의 가족만 그런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정은 저들과 크게 다른가?

 

아니,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상대적인 편차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마음 속에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표현되거나 실행되지 않는다는

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는 엄마를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엄마라는 역할뿐만 아니라

이름을 가진 존재로서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시작이다.

기억부터 시작해서 엄마에게 관심을 가지고

엄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엄마를 이해하도록 노력해보자.

 

그렇게 한다면

소설 속의 가족들이

무력하게 내뱉는 엄마를 부탁해 같은

말은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엄마를 잊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과 엄마간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나 스스로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위의 글들을

줄줄이 적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말을 해보자.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바로 당신들에게 부탁합니다.

그들을 지켜주세요.

그들을 사랑해주세요.

그들을 잊지 마세요.

 

당신 스스로의 엄마를

당신들이 지켜주세요.

 

그러니까 진짜로

엄마를 부탁합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제가 한말은 다 쓸데없는 말이기에 잊어 주세요.^^;;

 

*위의 글은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임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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