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수사국 이곳저곳에 비치된 종결 사건 기록들 가운데에는 '특수'라는 이름으로 분류된 파일들이 있다. 이런 파일에는 이를테면 단서가 특이하다거나, 범인이 인상적이거나, 상황 자체가 놀랍거나 하는 식으로 특별히 흥미를 끄는 사건들이 담겨 있다.(5)


협박은 자신만의 기이한 언어를 갖고 있지만, 다른 언어에 비해 확실히 유리한 측면이 있다. 협박은 만국 공통의 언어이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11)


철길이 그를 놀리듯 윙크를 보냈다. ... 철길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완벽한 모습으로, 섬뜩하리만치 평평한 계곡을 따라 쭉 뻗어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은닉과 속임수들을 고민해봐도, 백지 위에 자로 그린 평행선처럼 아무런 점접 없이 뻗어나갈 뿐이었다.(205)


이 남자는 백만장자다. 수천 명이 넘는 바보들의 영혼과 건강과 미래를 파괴하여 막대한 재산을 얻은 백만장자. 그 바보들 중 대부분은 어린아이와 청소년이다.(26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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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1-1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러리 퀸 소설을 찾아 읽던 기억을 되살려 주어 참 반가운 글입니다.

짜라투스트라 2016-11-12 11:08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엘러리 퀸 소설을 좋아합니다^^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4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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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이 세 단어에 스며들어 있는 무서움을 실감하게 만드는 소설.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았는 공권력이 불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때의 문제와 그것을 숨기려고 벌이는 적나라한 행태를 문학적인 방법으로 파헤친 책. 안토니오 타부키 답다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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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는 달리 보일 수도 있는데, 거미줄, 그러니까 은밀하게 연결되고 비현실적으로 결합되고 이해할 수 없는 우연의 일치들로 이루어진 체계를 만들어내는 거요. 당신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적어도 이 우연의 일치를 공부하는 법을 배워야겠지요.(129~130)


"...왠지 모르지만, 고문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는 인상을 받아요. 왠지 알겠소? 고문은 개인의 책임이오.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들 하지만 용납할 수는 없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상관의 명령이라는 초라한 변명 뒤에 몸을 숨기고 합법적으로 발뺌하며 자신을 지키지요. 이해하겠소? 근본규범 뒤에 숨는 거요."

...

"...완벽한 해부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일을 근본규범의 이름으로 행한 거요. 일반적인 근본규범보다 더 큰 근본규범, 완벽한 규범의 이름으로 말이오. 내 말 이해하겠소?

"무슨 뜻입니까?" 피르미누가 물었다.

"하느님이오." 변호사가 대답했다. "부지런하고 너무나 치밀했던 그 고문기술자들은 하느님을 대신해서 일한 거요. 하느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았다는 거지요. 개념은 사실 똑같소. 나는 책임이 없다. 나는 보잘것없는 하사관일 뿐이다. 난 대위에거서 명령을 받았다. 난 장군 혹은 국가에게 명령을 받았다. 아니면 하느님에게. 하느님은 제일 거역할 수 없는 대상이죠."

...

"... 우리는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파괴 충동을 누를 수 없기 때문에 고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74~176)


-경위님에게 애국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더 정확히 정의해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 문화를 전복시키는 위험한 자들과 싸우고 있다는 점을 자각했다는 의미입니다.

-문화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우리 문화가 포르투갈 문화니, 포르투갈 문화를 가리키지요.

-그럼 전복시키는 자란 말은?

-아밀카르 카브랄 같은 자들의 명령에 따라 우리에게 총을 쏘는 흑인을 말합니다. 태곳적, 앙골라에 문화도 기독교도 없던 시절부터 우리 소유였던 땅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자각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것들을 전해주었지요.(187)


한 개인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개인에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요. ... 인간적인 견지에서 모든 것은 그에게로 이어지고, 각 개인은 인류의 뿌리를 이룹니다.(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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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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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기시 유스케

지금까지 걸어온 구불구불한 길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나는 지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견디기 힘든 적막감과 의지할 곳 없는 외로움이 심장을 움켜쥐었다.(7)


수미상관. <말벌>의 시작과 끝은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꿈에서 시작한 이 작품은 마치 꿈같은 느낌의 결말로 마무리된다. '시작'이라는 입구로 들어와서 '끝'이라는 다른 출구로 나갈 것을 기대했으나, 막상 '끝'이라는 출구에 도달하고 보니 이것이 '시작'이라는 입구와 같은 문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처럼. 입구에서 시작된 직선이 출구라는 다른 문을 통해 빠져나갈 것 같았으나 원형을 그리며 다시 입구로 돌아오는 것처럼.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이 작품이 연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말벌들과 한 남자가 사투를 벌이는 연극.


당황하지 마라.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신속히 이 자리를 떠나면 된다. 벌집 옆이 아니면 함부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71)


주인공인 추리소설 작가 '나'는 자신의 소유인 산장에서 정신을 차린다. 주변에는 가득 눈이 쌓여 있었고, 빠져나가거나 다른 곳으로 연락할 수단이 없는데다 아내는 사라졌고 신발과 옷이 사라진 상태로. 고립된 '클로즈드 서클'속에서 벌 독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산장에 풀어놓은 말벌들과 목숨을 건 생존게임을 벌인다. 자신이 쓴 추리 소설을 떠올리며 간신히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나가던 '나'는, 사건 관계자들이 모여들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의 진실과 마주치게 된다.

인생이란 싸움의 연속이다. 싸움을 포기한 자는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102~103)


<말벌>의 대부분은 말벌떼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나'의 독백과 과거 회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마치 모노드라마 같은 구성때문인지 작품은 연극같기도 하고, 꿈같기도 하고, 환상같기도 하다. 혼자서 떠들어대고 혼자서 소설 내용의 빈칸을 채워나가는 이 작품은 따라서 필연적으로 상당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들면서 동시에 일말의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하는. 긴장과 의심을 함께 안고 책을 읽어나가다가 마지막에 도달하면 우리는 기시 유스케식 소설적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거기서 내가 본 것은 앙상하게 외소한 한 인간의 정신이었다. 삶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일그러진 정신을 가지게 된 한 인간의 정신을.

남을 떨어뜨리기 위해 깎아지른 절벽으로 유인하는 자는 자기 자신 역시 떨어질 운명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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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말 -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한나 아렌트 지음, 윤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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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과거보다 더욱 더 정치적인 인간이 되어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과거보다 더욱 더 비판적 사유가 필요한 게 아닐까. 어쩌면 이럴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상가는 한나 아렌트가 아닐까. 그녀의 인터뷰집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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