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판의 논조로 일관되었던 전의 글을 다시 바라보며, 문득 다른 생각이 든다. 책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균형을 잡아야겠다는. 나의 불치병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편협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불편하다. 하나의 대상을 오직 하나의 관점으로만, 한쪽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한다는 의미이다. 나의 불치병에 따라(??) 나는 <민주주의의 시간>에 대한 이전의 글과 다른 시각의 글도 써보기로 한다. <민주주의의 시간>이 주장하는 정당정치의 장점에 관해서.
현대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직면하고 있다. 기술의 혁신과 발전, 전지구적인 자본의 흐름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문화적인 교류의 증대와 빠른 사회의 변화는 이전과 달리 현대인들에게 '안정'이라는 말을 쉽게 쓸 수 없게 만들고 자신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생존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유지해나가기 위해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사회상 속에서 정치라는 영역에 우리가 모든 것을 투자할 수는 없다. 정치적 의사결정에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쏟을 수 없고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를 대신해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나름의 정치적 행위를 해온 집단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통해서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면 된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집단이 어디일까?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정당'이 그 집단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당은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대강이라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정당이 아니었으면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내가 쓴 글을 바라본다. 무언가 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 머리 속 생각을 가다듬고 다시 글을 써본다.
비록 현대 기술의 발달로 평범한 이들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고 그에 따라 현대인들은 과거보다 정치적 의사결정을 더욱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중요한 이유는 정당이 현실 정치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집단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무조건 정당을 불신하고 정당정치를 넘어선 정치를 하자는 건 가장 큰 힘을 가진 중요한 현실의 정치 집단을 무시하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행동이자 이론일 수도 있다. 직접 민주주의,시민정치, 운동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 또렷이 존재하는 정당을 무시하는 정치적 행동이 현실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우리의 정치적 행동에서 정당을 배제하지는 말자.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이 제대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정치적 행동이다. 이것을 나쁘게 보지 말자. 현실에 존재하는 정담의 힘도, 정당정치가 정치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내가 쓴 글을 바라본다. 이 정도만 적으면 되는 걸까. <민주주의의 시간>의 저자 박상훈 씨는 더 강하게 정당을 강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박상훈 씨가 아니기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분명한 건 나도 정당의 강한 현실적 영향력을 알고 있고, 정당을 통한 정치행위가 충분히 합리적이고 올바른 정치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다만 오로지 정당정치만으로 정치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고, 정당정치만으로 정치적 행위가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었다.
불치병에 따른 글쓰기는 이 정도에서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정당정치의 전문가도 아니고, 정치영역의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러니저러니 해봐야 더 추해질 것 같아서. 객관적인 균형 잡기라는 나의 불치병 치유는 이쯤에서 마쳐야 할 것 같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