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전쟁 - 투자인가? 투기인가? 암호화폐의 거짓과 진실
에리카 스탠포드 지음, 임영신 옮김 / 북아지트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암호화폐 전쟁-에리카 스탠포드


 

11리뷰 쓰기 3일째. 시계를 본다. 벌써 1050. 다시 허겁지겁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본다. 이번에도 이틀 전에 읽은 책 리뷰를 쓰기로 한다. 어제처럼 쓰다 보면 써지리라 여기면서.

 

2017, 2018년은 암호화폐 버블의 시기였다. 사람들은 암호화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여긴 채 무수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 당시 모두가 암호화폐로 일환천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암호화폐에 투자하기만 한다면 부자가 되는 게 가능하다 여겼다. 그건 일종의 광기였다. 눈이 벌건 상태로 암호화폐에 돈을 집단적으로 넣기만 하면 된다는 광기. <암호화페 전쟁>은 그 당시 일어났던 말도 안 되는 암호화폐 사기극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책은 그 당시의 광기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며, 돈 벌려는 욕망에 미친 사람들이 미친 사기극을 벌이는 미친 사기꾼들에게 넘어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생생한 암호화폐 사기극을 보면, 사람들이 무언가에 씌었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무언가에 씌이지 않고서야 저런 거에 넘어간다고? 저게 가능하다고? 물론 가능했다. 사람들이 진짜로 씌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물신이라 부른 것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돈귀신, 일확천금 귀신, 한탕 귀신에 씌인 인간들은 돈을 벌 것이라며 여기며 부나방처럼 사기라는 불꽃에 뛰어든다. 책은 초반부에 ICO부터 시작한다. ICO는 기업이 신규 암호화폐를 발행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방식으로, 백서를 공개하고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당연하게도 그 당시에는 암호화폐 시장은 미지의 영역이었고, 그에 따라 관련법도 전무했다. 따라서 말도 안 되는 온갖 ICO들이 남무한다. 어떤 이는 암호화폐로 섹스를 중개해주겠다 하고, 어떤 이는 연애를 이루게 해주겠다 했다. 어떤 이는 암호화폐로 사람들을 구원에 도달하게 해줄 수 있다. 이 외에도 무수한 말도 안되는 주장들이 넘쳐났다. 가장 황당했던 건, 이 돈으로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도 안 줄 것이며 자기 소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도 돈을 모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위의 사건들은 황당하긴 하지만 액수로 따지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등장한 건 액수 단위가 달라진다. 암호화폐 여왕으로 불리며 희대의 사기극으로 유명한 원코인을 만든 주역 루자 이그나토바는 5조를 들고 사라졌다. 아직도 잡히지 않은 채로. 비트코인을 넘어설 것이라 주장하며, 구글을 믿지 말라고 외치던 그녀는 고전적인 피라미드 방식을 이용한 폰지 사기로 돈에 눈 먼 이들의 돈을 들고 세상 어디간로 떠나갔다. 돈을 빼앗긴 이들의 절망과 한탄을 먹은 상태로.

 

원코인부터 시작한 사기극들은 말도 안 되는 이자를 약속한 비트커넥트 코인, 중국에서 시작되어 170억 달러 먹튀로 유명해진 플러스토큰, 거래소 운영자가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살아 있을 걸로 의심되어 부활 사기처럼 보이는 캐나다의 쿼드리가 거래소 사건, 부실한 운영으로 연속 해킹당해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마운트콕스 거래소 사건, 채굴기가 사라지는 마법을 부린 클라우드 채굴소 비트클럽네트워크 사건, 유명인을 이용한 시장조작으로 사람들을 울린 펌프앤드덤프 사기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책의 저자는 암호화폐의 유용성을 갑자기(??)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사람들의 욕망이 없었다면 위의 사기극들은 불가능했으리라. 돈을 벌겠다는, 일확천금을 마련하겠다는, 남들 다 같이 돈 버는데 나도 뒤질 수 없다는 욕망이, 욕심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했다.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무시한 채 돈을 사기꾼들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들은 돈이 사라지자 절망 속으로 추락해간다. 집단적으로 귀신에 씌인 듯한, 집단 광기의 무서움을 실감하면서 생각해본다. 현명한 투자 이전에 그 당시 암호화페 열풍은 투자도 무엇도 아닌 광기 그 자체였다고. 아무런 법도, 역사도 없는 그 당시 암호화폐 시장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수준이 아닌, 크레이지 리스크 크레이지 리턴이었다고. 그런 크레이지한 상황에서 돈을 버는 건 크레이지한 사람 아니면 힘들었을 거라고. 그리고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가 말하는 물신 그 자체라고. 어디 다른 글에서 적은 것을 다시 쓰며 이 글을 마친다. 물신은 죽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물신은 불사조처럼 살아나고 또 살아나며 사람들을 홀리고 미치게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경 강의 1 : 주남·소남 고전완독 시리즈 1
우응순 강의, 김영죽 정리 / 북튜브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시경 강의1-우응순

 


멍하니 앉아 있다 시계룰 들여다본다. 1110. 순간 깜짝 놀란다. 아 어제부터 하루에 하나씩 책 리뷰를 쓰기로 했지. 허겁지겁 컴퓨터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떤 책 리뷰를 써야 하나. 맞다. 이틀 전에 읽은 책이 있지. 그 책 리뷰를 쓰면 되겠다. 조급함에 일단 키보드의 글자부터 누르기 시작한다. , 쓰다보면 글이 나오겠지 생각하며.

 

<시경>은 사서삼경에 속하는 책이다. 성리학의 국가였던 조선에서 주자가 정립한 사서삼경은 너무나도 중요한 책이었다. 하지만 성리학이 아닌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핵심으로 내세운 한국에서, 더군다나 SNS와 디지털 경제가 급속히 퍼진 2022년의 한국에서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을 강의한 <시경 강의>라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가 뭐라고 해도 거기에는 보편성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오래전에 쓰인 책이고, 오래전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에는 서로 이어지는 보편성이 있다는 것. 그들도 사랑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하고 괴로워하고 일하고 노래하고 기뻐한 사람이었다는 점.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들처럼 사랑하고 슬퍼하고 일하고 노래하고 기뻐하고 있다. 고대인과 2022년의 현대인이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경>에 나오는 고대 노래를 읽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봤을 때 우리보다 확실히 열악한 상황에서 살았을 그들의 삶에게서, 우리가 배울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먼저 삶을 살다간 선인들에게서, 삶의 선배로서 무언가 배운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삶에서 무언가 배우기 위해서 <시경>을 읽는다는 것에 있어서 우리가 넘어야할 것이 있다. 바로 독해력. 누가 뭐라고 해도 사서삼경은 고전이고, 과거의 가치와 삶을 반영하여 과거의 언어로 기록된 책이다. 말을 줄여쓰고, 책도 거의 읽지 않고, 유튜브 같은 이미지 매체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2000년 전의 삶과 가치관을 전하는 사서삼경은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고대인들과 현대인들이 인간이라는 보편성을 공유한다고 해도, 과거의 방식대로 기록된 과거의 텍스트를 읽는 건 지난한 일이다. 그나마 <시경>은 사서삼경 중에서 노래를 다룬다는 점에서 가장 딱딱하지 않고, 공감의 가능성이 가장 큰 텍스트라는 점에서, 내 개인적으로 사서삼경 중에서 가장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쉽다는 말은 사서삼경 중에서 쉽다는 말이지, 책의 난이도를 따지면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결국 <시경>을 읽는다는 건, 그 어려움을 넘어서서 고대에 가닿는 것이다.

 

다행인 건, 우응순의 <시경 강의>라는 책이 나와있다는 점이다. <시경 강의>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시경> 해석서 중에서 가장 친절하고 꼼꼼한 책이다. 저자인 우응순의 강의를 실제로 꼼꼼하게 기록하여 풀어낸 <시경 강의>, <시경>에 나오는 고대 노래의 한자한자를 친절하고 세밀하면서도 꼼꼼하게 풀어내며, 고대 노래를 터럭 한 올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노래의 맥락과 배경설명도 충실히 하고 있다. 해석에 있어서도 주자의 교화주의적인 해석을 알려주고, 그러면서도 그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현실에 맞는 해석도 알려준다. 주자를 넘어서면서도 존중하는 올바른 거리두기의 느낌으로. 동시에 저자인 우응순은 우리 스스로 한자를 해석할 수 있다면서 열린 해석의 가능성도 알려준다. 여러모로 <시경> 초심자에게 유용하게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시경> 초심자로서, 저자의 실제로 들려오는 듯한 강의 목소리를 책에서 읽어내며 <시경> 구절구절들을 넘나들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맘먹고 <시경>이라는 텍스트를 저자의 도움을 받아 정복하고 싶다. 기회는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기에, <시경 강의>의 도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무타납비 시 선집 소명출판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288
김능우 옮김 / 소명출판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알무타납비 시선집-알무타납비

 

책을 읽으면서 생겨난 취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대중적이지 않은 시대나 사건들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알무타납비 시선집>은 저 취향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 취향은 저로 하여금 <알무타납비 시선집>을 붙잡아 읽게 했습니다. 이게 중세 이슬람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의 시라면서 속삭이며.

 

이슬람 시인들의 시를 읽지 않은 건 아닙니다.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나 잘랄루딘 루미의 시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시들은 저에게 이슬람 특유의 시라기 보다는, 어떤 특성을 가지면서도 보편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철학적이거나 사색적이거나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느낌으로. 이슬람 시인이라는 특색을 지우더라도 이들의 시는 누구에게나 읽힐 수 있는 보편적인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알무타납비의 시는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 중세 이슬람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 중에 최상의 자리에 위치한 알무타납비의 시는, 중세 이슬람 황금기의 현실로 시를 읽는 독자를 데려갑니다. 알무타납비의 시에서는 그 당시 이슬람의 자신감과 당당함, 용감함과 자기긍정의 힘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제국주의와 분쟁, 내전 등으로 얼룩진 중동의 근대 이후 역사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렬한 자신감이 가득한 시들 속에서, 저는 시대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낍니다. 동로마 제국을 가뿐하게 물리치고, 다시 쳐들어와도 너희들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표출하는 이슬람의 군주를 묘사하는 시들 속에서.

 

누구에게나 찬란한 시절이 있습니다. 한 국가나 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이슬람이 황금기가 있었다는 걸 들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체감하지 못했을 뿐. <알무타납비 시선집>을 읽으며 말로 듣는 거랑 다수의 시를 통해 그 강렬한 자신감을 체험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자신감은 군주를 훌륭하게 묘사하는 시에서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알무타납비는 자신의 기대를 배반한 군주들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시들도 남깁니다. 여기에서도 저는 알무타납비의 기개를 느끼는 걸 넘어서서, 동시대 이슬람에 가득했을 수도 있을 자신감을 느낍니다. 저의 지독한 오독이겠지만, 알무타납비의 오만함은 그 시대 이슬람의 강렬한 자신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요?(^^;;) 오독이 여기까지 진행되니 이쯤에서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되었든 중세 이슬람의 넘치는 자신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들을 읽으며 그 자신감에 감염된 저 자신을 꿈꾸어봅니다. 아직 오지 않을 저만의 황금기를 꿈꾸며. 그러면서 저는 다른 책으로 넘어가보려 합니다. <알무타납비 시선집>처럼 예상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만나기를 원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하루에 한 번 글 올리는 거 도전 예정...

이번에는 1일 1리뷰로 갈 생각입니다...

과연 어떻게 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Vanessa 2022-12-03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팅입니다. ~^^

짜라투스트라 2022-12-04 13: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근데 최근에는 이걸 포기해서 다시 게으름으로 돌아갔습니다. ^^;;
 
제2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수상작품집 (특별보급판)
이신주 외 지음 / 아작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3. 2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수상작품집-이신주 외

 


1.

부끄럽다. 이 글을 쓴다고 해도 10월에 쓴 서평이 고작 세 편이라니. 받아들이는 입력에 비해서 나오는 출력은 비할 바가 못된다는 것이. 읽은 책을 꾸준히 서평으로 써내는 네이버 블로그 이웃이나 알라딘 서재 이웃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게으름은 고칠 수 없는 수준인가라는 한탄을 할 수밖에 없다. 한탄을 하면서도 글을 쓸 수밖에 없으니 써본다.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2.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로 한국 장르문학의 풍향이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처음에 내가 한국소설을 읽을 때는 SF 같은 장르문학은 문학계의 변방으로서, 문단에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런 문학계의 현실을 여러차례 개탄해왔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평가에서나 나오는 양에 있어서나 한국 장르문학은 그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이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다. 쌓이고 쌓인 것들이 어느 순간 특이점을 불러 일으켜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장르문학을 꾸준히 좋아해 온 내 입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좋다. 부담없이 다양한 작품들을 읽을 수 있으니. 더 이상 박한 평가를 의식할 필요도 없고.

*다시 또 강조해보면, 내 개인적으로는 그 변화를 확연히 느낀 건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였다.

 

3.

<2회 문윤성 SF문학상 중단편 작품집>도 한국 장르문학의 변화된 흐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수상작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좋은 SF 이전에 좋은 소설로 보이는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과거를 둘러보면, 한국 SF 작품들 중에서 기발한 설정이 있거나 플롯의 흥미는 있었지만 소설로서의 만듦새나 짜임새는 약한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의 수상작들은 대체로 좋은 SF 이전에 좋은 소설로서 느껴졌다. 아마도 심사위원들이 좋은 SF 이전에 좋은 소설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상작인 <내 뒤편의 북소리>도 그렇지만 우수상 수상작인 <궤적 잇기>, 가상작인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것에 대하여>,<사어들의 세계>,<신의 소스코드>도 마찬가지다. 특히 <궤적 잇기>,<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것에 대하여>,<사어들의 세계>는 인간의 중요한 감정인 사랑, 우정, 고독을 SF의 형식으로 변주한 소설처럼 보였다. SF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감정이 핵심인 소설들. 그건 SF가 소설의 계보에 속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내 뒤편의 북소리><신의 소스코드>는 내가 좋아하는 SF 특유의 기발한 설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대 서사의 흐름까지 가지고 있었서 좋았다. 특히 <신의 소스코드>는 같이 차원을 넘나드는 작품의 흐름을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기발한 형식에 담아내서 너무나 좋았다.

 

4.

위에 쓴 글을 보면 마치 내가 무슨 심사위원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나는 심사위원이 아니고, 일개 SF를 좋아하는 팬일 뿐이다. 팬심으로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을 했을 뿐이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한국 SF의 좋은 흐름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적었을 뿐이다. 적고 보니 내가 여전히 심사위원인 줄 착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역시 나는 조금 더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다. 앞으로 조금 더 정신을 차린 채 책 읽고 글을 써보겠다. 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