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44년의 비원 - 새로 읽는 고종시대사
장영숙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조선 왕 27명 중에 40년이 넘는 재위기간을 기록한 왕은 영조, 숙종, 고종, 선조 순으로 4명이다. 우리가 망국의 비운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고종의 재위기간이 44년이나 되었다니 놀라웠다. 얼마나 고종에 대해 아는바가 없으나 그가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왕좌에 있었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지겠는가. 격동과 혼란의 그 긴 세월 동안 왕좌를 지키고 있으면서 그는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이 책 뒤에 실린 ‘파란의 시대에 비상을 꿈꾼 절대권력 고종’이라는 표현이 고종에 대한 다시 보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여서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종에 대해서는 망국의 원인이 된 무능한 군주 또는 신하들에게 휘둘린 왕이라는 선입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비상을 꿈꾼’ 또는 ‘절대권력’이라는 수식어가 생경하게 들렸다. 

  일반적으로 조선 시대를 다루고 있는 역사책들이 왕을 중심으로 서술되는데 반해 정조 사후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왕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어지고 시대적 변화만을 떠올리게 된다. 고종 시대의 역사 또한 그렇다. 이미 세도정치에 의해 왕권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정식 왕위 계승자도 아니면서 왕이 된 탓도 있지만, 우리에게 고종은 나라를 외세에 빼앗기게 만든 왕이라는 질책이 강했던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그의 무능만 탓할 것이 아니라 그의 아픔도 헤아렸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해 왔다.

  그렇기에 그의 진면목을 새롭게 조명하겠다는 이 이야기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 책은 고종의 전 통치기간을 다루면서 그의 사상적 변화와 그에 따른 정책론과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하면서 고종의 내면과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이런 것들을 통해 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을 주장한다.

  보통 고종하면 시대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나라를 외세의 각축장이 되게 하고 결국에는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긴 무능한 국왕, 또는 명석한 명성왕후의 그늘에 가려진 왕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이 책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결코 당시의 상황을 두려워하고 그것에 굴복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못한 무능한 왕만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를 개혁해 국권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구본신참’이라는 의미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구본신참은 옛것과 새것을 절충하고 참작하라는 의미다. 오늘날에도 새겨야 할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이런 노력들은 물거품이 된다. 이미 거세진 시대의 흐름을 되돌려 놓기에는 그 힘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노력을 했든 간에 그는 망국의 군주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기억하고 다시 봐야 하는 이유가 이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이 잘 적혀있다. ‘고종은 민족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다. 실효성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무언의 항거를 비롯한 고종의 주권수호 노력은 당대에 일어난 의병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인산일을 계기로 요원의 불처럼 타오른 독립만세사건이 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고종은 한 줌 재로 돌아가고 왕조는 멸망했지만 우리의 강개한 민족정신만은 꿋꿋하게 살려가는 동력으로 되살아났던 것이다.’ 이게 바로 망국의 책임을 고종에게만 돌려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제라도 고종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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