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어린이 유림 5 - 이이- 벼슬살이의 진창을 두려워하지 않은 실천적 지성
최인호 지음, 최석훈 엮음, 김건표 그림 / 파랑새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이율곡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낳은 양대 성리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한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돌아가신 후 세상에 대한 허망함을 이기지 못해 금강산에 들어가 스님이 되려고 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에 방황했고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불교에 귀의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속세로 내려왔으나 여전히 방황하고 있을 뿐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율곡은 이황을 찾아갔다.

  그때 율곡의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고 이황은 도산서당에 은둔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오십팔 세였다. 율곡은 퇴계의 서당에 2박3일 동안 머무르면서 잠시 불가의 의탁했던 수치와 괴로움을 극복하고 유학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황은 이이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해주며 중국의 대유학자 주자도 한때 선에 심취해 있었고 자신 또한 고승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이이에게 이제 마음을 다잡고 유학자로서의 바른 길을 갈 것을 조언했다. 이황은 후에도 율곡에게 격려의 서신을 보냈다.

  특히 이황은 율곡을 떠나보내며 건넨 편지 속에 ‘거경궁리(居敬窮理)’라는 화두를 주었다.  거경궁리는 주자가 학문의 방법으로 주장했던 정신통일의 수단이다. 거경은 경에 머무른다는 뜻이고 궁리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거경은 유학자적인 몸가짐을, 궁리는 유학자가 깨달아야 하는 사물의 이치를 강조한다. 이는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발전된 말이다. 격물치지란 ‘사물이나 현상 속에 들어 있는 이치를 탐구해 지식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주자는 격물에 이르기 위해서는 거경해야 하며 치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궁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이는 평생 퇴계가 준 이 화두를 새기며 공부에 임했다. 이이가 위대한 성리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좋은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이이의 학문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그가 방황할 때 스승이 있어 바른 길을 갈 수 있었고, 학문에서 얻은 도를 관리가 되어 백성을 위해 실천해 보려 했음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이이는 실천적 지성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책의 서문에 나와 있듯이,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는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 있게 하는 방법을 배웠다”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이 말은 율곡의 인생에서 입증된다. 멘토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