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 유산 이야기 샘터 솔방울 인물 2
한상남 지음, 김동성 그림, 최완수 감수 / 샘터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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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가을에 <바람의 화원>이라는 책의 출간과 동명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조선 후기 화가였던 혜원 신윤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었다. 이때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는 신윤복의 진품 ‘미인도’가 전시되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 바로 그 미술관이 이 책의 주인공 간송 전형필 선생이 호를 따서 만든 ‘간송미술관’이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 손으로 넘어간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데 평생을 바친 분이다. 그는 일본 유학 후 귀국한 뒤 휘문고보 시절 스승이었던 춘곡 고희동(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을 통해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난다. 간송은 <근역서화징>이라는 우리나라 역대 서화의 역사를 총정리한 작품을 준비 중이던 오세창으로부터 우리 문화재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평생 해야 할 일을 정한다. 그 후 그는 집안의 많은 재산을 투자해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쓴다.

  국보 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294호인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 같은 국보급 유물들을 일본인들에게서 비싼 값에 사들이고, 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훈민정음(국보 70호)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신윤복의 화첩, 겸재 정선의 화첩 등 귀한 서화들을 수집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193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워 수장하고 6.25전쟁 중에도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 힘쓴다.

  그의 이런 노력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귀한 문화재들이 우리 앞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외국으로 반출된 우리 문화유산이 많고 여전히 제자리를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 하여 간송 선생의 우리 문화재 보호에 대한 사명감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문화재들이 그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해외를 떠돌았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먹고 살기에 바빠서 우리 문화를 돌볼 여력이 없었는데 그나마 이런 선각자가 있었기에 우리의 귀중한 역사 유물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간송미술관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으며 1년에 두 차례 기획 전시만 한다고 한다. 이는 이곳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설기관이라 일반 전시보다는 한국미술사 연구가 주목적인 연구소의 특성상 상설 전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도 아직 못 가봤다. 올 가을에는 꼭 가보고 싶다.

  어쨌든 이곳에는 훈민정음 등의 귀한 고서를 비롯해 고려청자, 조선백자, 불상, 그림, 부도, 석탑 등 많은 유물이 있으며 이 중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0점이 된다고 한다.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 하에서도 우리 문화를 지키려 했던 그 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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