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어린이 유림 1 - 조광조- 뜨거운 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젊은 사자
최인호 지음, 최석훈 엮음, 이영림 그림 / 파랑새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에 나온 최인호 작가의 베스트셀러였던 ‘유림’을 어린이들도 볼 수 있게 만든 책이다.  그 책을 못 봤기에 아이들과 함께 볼 겸 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그러잖아도 근래 내가 듣고 있는 역사 수업 시간에 조선시대의 통치 이념이 된 유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과연 유학이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500년 역사의 조선 사회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우선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인 정암 조광조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조광조는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 때에 생긴 폐단을 없애려다 반대파들의 모함ㅇ르 받아 전남 화순으로 귀향을 왔다가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다.

  조광조는 공자의 정명주의(正名主義)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했던 개혁주의자다. 정명주의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백성은 백성다워야 하며,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자기 직분이나 명분에 맞는 원칙과 질서대로 올바른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왕도정치를 말한다. 조광조는 이런 공자의 왕도정치를 현실 정치에 접목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정치 이상은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중종의 한계와, 그와는 다른 정치 스타일을 가진 반정공신들의 모함에 의해 실현되지 못하고 그의 죽음을 재촉한다. 무척 안타깝다.

  조광조를 생각하면 대쪽이 떠오른다. 물론 대쪽은 불로 잘 구부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구부러지는 성질이 아니라 칼만 대면 쪼개지는 대쪽이 떠오른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선비의 느낌이다. 원래는 그처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존중을 받고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람들은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 아집이 강한 사람이라 비난한다. 또 타협만을 잘 하는 사람은 줏대가 없는 사람이라 비난한다. 참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시대에 따라 어떤 가치가 환영을 받을지는 달라질 것이다. 그가 만약 다른 왕의 치세 기간에 관리가 되었더라면 그의 최후는 달라졌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역사에서 그처럼 원칙을 고수하다가 목숨을 잃은 선비가 있다는 것도 자부심을 가져야 할 일인 것 같다. 요즘은 너무나 쉽게 타협하고 아주 쉽게 원칙이 바뀐다. 합리성과 편의라는 미명하에 이런 것들이 아름답게 포장되기도 하는데, 가끔은 사회가 경직돼 보일지라도 원칙을 지키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조광조는 지조가 강한 선비의 표상이라 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