듕귁과 오렌지 : 고운기의 유유자적 역사 산책
고운기 지음 / 샘터사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표지에 적혀 있는 ‘고운기의 유유자적 역사 산책’이라는 부제가 아니었더라면 책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듕귁(중국)과 오렌지가 과연 무슨 상관일까? 궁금해 하면서 읽었다.  중국 고사성어에 귤화위지(橘化爲枳)라 해서, 귤이 회하를 건너 북쪽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 귤을 오렌지라고 하나? 내심 추측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책 제목을 왜 듕귁과 오뤤지라고 했는지는 서문에 나와 있었다.

  듕귁이라는 말은 <훈민정음>의 서문 첫 구절에 나오는 한자어인 중국에 대한 우리말 표기법이라고 한다. 중국을 듕귁으로 표기했던 것은 중국 발음과 유사하게 하려 함이었고 그래서 훈민정음에 중국어에서나 사용되는 사성을 표시하는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한다. 즉 세종대왕이 처음 한글 자모를 만들게 된 의도는 한자어를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하기 위해 그 발음기호를 정밀히 표기할 체계가 필요해서였다고 한다. 그것이 나중에는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달고 정식 표기 체계로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우리는 오렌지를 영어식으로 발음하기 위해 오뤤지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어도 발음이 변해서 ‘중국’을 듕귁이 아니라 ‘중꾸어’라고 읽는다고 한다.

  첫 의도야 어쨌든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은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편리하고 과학적인 문자라고 칭송을 받고 있다. 현재의 한글의 위상을 보고 세종대왕이 다시 살아오신다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한다. 역사적인 사건들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모두 뒷사람에게는 공부가 될 뿐이라고 적어 놓았다. 그 말대로 그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해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역사책에서 발견한 글들을 인용해 현재의 세태나 사건들을 꼬집거나 비교하거나 교훈거리들을 적어 놓았다. 그래서 다른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역사적인 일화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깊이 있는 역사 읽기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역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해 놓은 책들은 많이 보았고, 그리고 요즘에는 주제별 역사책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역사와 현재를 접속한 책은 많이 접해보질 못해서 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역사 전문가가 아니면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들이기에 낯선 얘기들이 많았지만, 그래서 더욱 더 흥미로웠고 마치 이곳 저곳의 역사를 편집해 한 편의 이야기를 짜깁기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연대기순의 역사 읽기가 미끈한 줄을 훑어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엉킨 실타래 사이를 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즐거운 역사 읽기가 되었다. 특히, 함석헌 선생의 역사관을 설명해 놓은 ‘살아라, 뜻을 드러내라!’편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었으며‘눈물을 닦으며 쓰고, 찢어 버리고도 다시 모아야 하는 역사’라는 말에서는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비롯해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이 역사야말로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해주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마지막 편인 ‘가슴에 묻을 어떤 것’은 비교적 최근의 역사에 관한 것들이라 더욱 공감할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와서 시간 속에 묻혀진 역사들을 밝게 비출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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