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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시간 ㅣ 사계절 1318 문고 112
윤여경 외 지음 / 사계절 / 2017년 11월
평점 :
시간의 상대성을 중년의 나이에 이르니 절대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다른 이들도 공감할 것이다. 20대가 넘으면 시간의 속도를 자기 나이의 속도로 느낀다고 한다. 즉, 마흔 살은 시속 40km로, 칠십 노인은 시속 70km로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겠는가.
이 책의 표제작이 된 <세 개의 시간>이 바로 이런 시간의 상대성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구의 황폐화로 인해 우주를 떠돌던 사람들이 다시 지구에 돌아가서 살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이냐, 어른이냐에 따라 생체 시간을 달리 설정해 놓는데, 이것이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내용을 다뤘다. 매우 흥미로운 설정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아주 재미있게 봤으며, 영화 <인터스텔라>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도 떠올릴 수 있었다. 다만, 지시를 어기고 생체시간 리셋 프로그램을 만진 아이들의 가족만 생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세월호 사건도 생각났다. 어른들의 지시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행동한 아이들만 생을 이어갈 수 있다는 설정이, 행동의 자율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교훈이 되겠지만, 자칫하면 정해진 규칙을 어기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 될 수도 있다는 위험한 사고를 조장할 수도 있겠다는 비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제외한다면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윤여경은 이 <세 개의 작품>으로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했다. 이 상을 수여한 지가 올해가 3회째인데, 나는 한낙원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라서 이번에 조사해 봤다. 한낙원은 1924년 평안남도 용강 태생으로, 1950년대 말부터 과학소설 창작에 매진하여 첨단 과학 및 우주 개발을 다룬 『금성 탐험대』 『잃어버린 소년』 『화성에 사는 사람들』를 잡지에 연재하는 등 한국 과학소설의 개척자로 활동했다. 그는 또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쥘 베른의 『바다 밑 2만 리』, H.G. 웰스의 『우주 전쟁』 등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고, 2007년에 작고했다. 내가 보기에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SF 소설의 인기가 덜 한데, 일찍이 1950년대에 벌써 SF소설이 창작되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윤여경 작가의 <달의 정원>을 비롯해, 박효명, 허진희, 김유경, 허윤, 임우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 편씩 수록하고 있다. SF 소설인 만큼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나 우주여행이나 외계 행성 거주가 일상화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라트레티라는 행성에서 지구에 온 외계인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달의 정원>, 지하세계로 쫓겨 감으로써 햇살을 그리워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담은 <뚜껑 너머>, 게으른 유전자의 장점을 피력하는 <우리들의 유전자>란 작품도 들어 있으며, 부모님과 함께한 우주여행 중에 홀로 행성에서 남겨져 죽을 고비를 네 번이나 넘기는 아이의 이야기인 <진로 탐색>같은 흥미로운 작품이 들어 있다. <두 번째 열다섯 살, 그 선택>은 유전자 조합으로 만든 맞춤형 아이와 냉동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속 얘기는 선택의 문제를 다뤘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작품은 임우진 작가의 <엄마의 계절>이다.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로 미래의 언젠가는 SF영화에서처럼 인간 복제도 가능할 것이고, 이 책에서처럼 다양한 맞춤형 아기의 생산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작품에서 말한 ‘중성인’처럼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성별도 의미가 없어질 것이고, 부성이나 모성도 없어질 뿐 아니라 인간의 감성 자체도 제거될지 모른다. <엄마의 계절>은 그런 세상에서 질병으로 인한 호르몬의 교란 과정 중에 우연히 모성을 갖게 된 중성인과 그의 맞춤형 아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를 제기했고 그 둘이 그런 인간적 감정을 간직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감동적이어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청소년 소설 하면 늘 등장하는 고정된 주제와 배경이 있는데, 이 작품은 새로운 주제와 배경을 제시하고 있어서 모든 작품 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늘 정해진 틀에서 사는 우리 학생들의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는 이런 SF형식의 소설이 자주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