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 이어서 ‘용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개인의 삶이라는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한 차원 진화하여 인류 역사에 있었던 사건에서 용서와 관련한 논의를 하기 위해 저자는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사례를 간략히 소개한다. 핵심은 용서의 주체인 피해 당사자들이 용서의 시기나 방법도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떠올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일이 다 나열하긴 힘들지만 각각의 이슈들에 있어서 피해 당사자들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의사가 용서를 하는 것이든 하지 않는 것이든 간에 선택은 그들의 몫에 맡겨야지 당사자도 아닌 제 3의 인물이 와서 용서를 해라 말아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내는 목소리에 대해서 제 3자들이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전반적으로 바람직한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또한 여기 별도로 인용하진 않았지만 용서와 관련된 정호승 시인의 시《이슬이 맺히는 사람》이라는 시를 통해 내게 상처준 사람에 대해 분노하는 대신 연민하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지만 이것의 핵심은 결국 내가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듯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었다.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독자인 내 개인적으로는 큰 그림에서 봤을 때 웬만큼 용서가 되는 것이라면 가급적 용서하는게 내 신상에도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물론 세상엔 정말 용서하기 힘든 일들도 종종 발생하기에 모든 일에 대해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에게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면 기꺼이 용서하는 것이 궁극에는 나도 어떤 다른 상황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용서‘라는 키워드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데, 저자는 이러한 ‘부끄러움‘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부끄러움은 자기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볼 수 있는 반면교사의 역할도 있기에 긍정적인 면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이라는 키워드와 관련하여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의《마음》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한 번 읽어봤던 작품이라 저자가 느끼는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나 감상이 궁금했다. 읽으면서 내가 읽고 느꼈던 것과는 또다른 관점이나 느낌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 이런걸 보면 같은 작품을 읽어도 읽는 사람에 따라 감상의 깊이나 느낌이 천차만별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나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이 났지만 그 속에서 발견하는 어떤 메시지에 있어서 전문가인 저자의 예리함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인간관계 혹은 세상에 대해 너무 단순하고 한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여러가지 요인들을 고려하는 것이 삶에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선택‘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이 이어진다. 저자는 먼저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길을 독자들에게 간단하게나마 소개하면서 여타의 이유로 인해 임시로 시작했던 강사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음을 고백한다. 저자의 이력에 관해 자세히는 몰랐던 독자인 나로서는 조금 의외였다. 왜냐하면 저자가 현재 공무원 국어 영역에서 아주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알려져 있기에 젊은 시절부터 강사의 꿈을 키우고 지금까지 걸어왔을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이 책의 저자뿐만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든 간에 인생의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선택을 하고 나면 그 선택이 또다른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하는 것들을 보게 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어떤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지 않은 혹은 못한 것을 자꾸 돌아보면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며 엄청난 내적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도 이런 갈등의 순간이 잠시 있었지만 선택의 이유가 내 자신의 의지든 아니든 간에 결국 자신이 선택한 길에 들어온 이상 그 선택의 앞에 놓여 있는 길에 집중해서 잘 걸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고 저자 본인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듯 하다.

독자인 나도 이 부분(‘선택‘)을 읽으면서 과거에 했던 선택을 잠시나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배경이 다들 다르기에 성급하게 일반화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마 누구나 살면서 아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매순간 파도가 들이닥칠 때마다 그 파도에 잘 올라타면 내가 의도했던대로 인생이 풀려가는 것이고, 파도에 휩쓸린다면 중심을 못잡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이동해서 다시 거기서 새로운 파도가 올 때를 기다리며 또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인생을 파도에 비유한 게 내가 어디 다른데서 들어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p.263에 밑줄친 문장을 보면 ‘깨달음‘과 ‘결단력‘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깨달음이 일종의 지혜라면 결단력은 일종의 실행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혜와 실행력이 합쳐지면 능치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이 ‘선택‘에 대한 내용에서 저자는 이광수의《무정》이라는 작품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학창시절에 이런작품이 있다는 것만 들어봤을 뿐 제대로 읽어보지는 못했던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나마《무정》의 내용과 메시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내용이야 해당 작품을 찾아 읽어보면 될 일이고, 메시지 부분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아주 의미있다고 느껴졌다. 비록 나온지는 좀 오래된 작품일지 몰라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인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p.264에 밑줄 친 《무정》의 마지막 문장은 어둡고 힘든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빛처럼 보였다. 뭔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면서 희망이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어떤 굳건한 의지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선택‘이라는 것과 관련해서 생각을 정리정돈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유익하지 않았나 싶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용서는 큰 화두입니다. 일례로 매년 홀로코스트 추모일에는 이스라엘과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희생자를 기리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면서 용서의 마감일을 정해놓지 않은 것이죠. - P232

용서의 주체들은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 일과 관련된 기록을 책으로 펴내면서 끊임없이 역사를 되짚습니다. 용서의 주체들이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죠. - P232

용서의 주체는 결국 피해 당사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용서의 시기나 방법도 그들이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사회는 언제까지고 기다리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233

우리가 용서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서로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야 하는데, 심지어는 내가 아주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상처의 깊이는 깊어지고 빈도는 잦아지죠. - P234

해가 지고 나면 가슴에 분을 품지 말라 - P234

분이 맺히는 것이 아니라 ‘이슬이 맺힌다‘ - P236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하게 되었다는 뜻 - P236

왜 분노하는 대신 연민하게 되었을까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슴에는 이슬이 맺히는 용서와 연민이 필요한 것이겠죠. - P237

다만 용서의 주체는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 이에게 용서를 강요하면 분노만 깊어질 뿐입니다.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살아갈 연민도 생겨날 것입니다. - P237

용서하고 싶은 일은 용서하고, 아직 담아두고 싶은 일은 그대로 담아둔 채 오늘도 별다르지 않은 우리네 하루를 살아갑니다. - P237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부정적 의미만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반면교사 삼으면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고, 시대정신을 확립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건강하게 승화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 P240

자신의 부끄러움이 어떤 모양인지에 따라 삶의 모습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 P240

숙부에게 배신당하고 괴로워하던 선생님은 친구의 죽음을 통해 자신도 숙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숙부를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욕망을 앞세워 스스로를 기만하고 친구를 배신했으니까요. - P242

세상에는 그 어떤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 P244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만큼 영혼이 올곧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 P244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 그것에 관해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다면 그 감정은 자신에 대한 혐오로 전이되어 고독감이 깊어지면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속 선생님처럼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 P245

끝내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면 우리 삶에는 빈 공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 P245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할 대상이 없는 것처럼 사람을 약하고 고독한 존재로 만드는 상황도 없는 것 같아요. - P249

오늘날 사회에서 고립과 단절은 너무나 흔하죠.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이 가능한 세상이라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단절과 고립에 따른 부작용으로 점점 더 파편화되어 가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 P249

문학의 면면들은 현실의 삶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문학 속 등장인물처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지는 않지만, 그들의 면면은 우리 삶 속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잖아요. - P250

선생님의 삶 속 허무는 어쩌면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그 속에서 나의 역할을 규정한 탓에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관계는 결코 단순하게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겪는 감정도 때마다 모두 다릅니다. - P251

자연이라는 존재를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를 보고 그저 ‘바다네‘라고만 생각한다면 그 순간의 특별함은 사라집니다. - P251

얼마 전 유행했던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라는 말처럼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만 살고 싶어서 ‘세상은 다 그런 거지. 그게 그거야‘라고 단정 짓는다면 누구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을까요?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만 생각하면 한순간도 충만할 수 없습니다. - P251

허무주의에서 비롯된 고독감이 극단적인 고립감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나치게 도덕적인 관념 속으로 몰아넣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 P251

우리는 모두 백석의 시「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구절처럼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을 소처럼 계속 되새김질하며 사는‘, 저마다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 물론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도요. - P251

후회는 무용지물입니다. 이제는 그저 내가 선택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합니다. 나의 선택을 믿고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힘, 그런 배짱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쫓겨 정해진 방향으로 걸어간다고 해도 그다음의 길을 만들어가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죠. - P256

선택의 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마음가짐 - P256

아쉬움은 또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선택한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새로운 가능성과 만날 수 있기 때문 - P256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 P256

그리운 것은 잊고 외면하는 게 아니라, 그리운 대로 두고 나의 선택을 받아들여 보세요. 그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나의 선택에 몰입할 힘을 갖게 됩니다. - P257

도망갈 생각에만 빠져 있으니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더군요. - P257

또 다른 선택을 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겠다는 위기감 - P257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기 - P258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일단 포기하자!‘ - P258

결국 상황에 관한 객관적 인식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죠. - P258

내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지만 이 길이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놀라운 몰입감이 생기면서 점점 두드러진 성과를 내게 되었습니다. - P258

때때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포기할 줄 아는 것, 그리고 다른 길이 없다면 지금의 선택에 몰입하는 것이 또다른 삶을 펼칠 계기가 된다는 것 - P258

무언가를 선택한 후에는 결과를 걱정하며 망설이기보다는 뛰어들어서 몰입과 집중을 해야 성과가 납니다. 달리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죠. 계속 흘끔흘끔 뒤돌아보며 자기 위치를 확인하거나 시계를 쳐다본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몰입을 방해해서 좋지 않은 결과만 낳을 뿐이죠. - P258

인생을 살아가며 모든 걸 다 가지고, 모든 걸 다 뜻대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오만입니다. - P259

선택의 결과도 예측하거나 장담할 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일단 선택한 후에는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는 몰입 그리고 한눈팔지 않는 집중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몰입과 집중이 시간의 힘과 만나 쌓여야만 비로소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 P259

선택의 갈림길을 이야기할 때 항상 떠오르는 소설 중 하나가 바로 이광수의 『무정』입니다. 이 소설은 최초의 근대장편 소설이자 신문학사상이 반영된 기념비적인 계몽소설이죠. 문학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소설 - P259

이 소설에는 조선사회의 전형화된 모습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면적인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 P259

『무정』의 주인공들은 그 운명 앞에서 고뇌하고 흔들리는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P260

‘계몽주의 소설‘이라는 틀 안에만 가둬놓을 수 없는 이유는 네 명의 인물 모두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결정하는 법을 배워나가기 때문입니다. - P260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할 것이냐, 아니면 열정을 좇을 것이냐 - P262

‘진정한 사랑이 아니므로 낡은 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생활을 열라‘ - P263

결국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때 필요한 것은 깨달음과 결단력인 것이죠. 결단할 용기가 없다면 어떤 깨달음도 쓸모가 없습니다. 또한 깨달음이 없어도 결단과 열정의 힘만으로는 끝까지 나아갈 수 없죠. 아무리 내면의 의지가 강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 이정표가 되어줄 지식과 지혜, 조력자가 없다면 그 결단은 무모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 P263

영채가 새로운 시대에서 갈등하며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고 체념한다면 갈등할 이유가 없겠지만『무정』의 인물들은 여기저기 부딪히고 고민하고 좌절도 겪으면서 결국 스스로의 인생을 선택하고 성장합니다. - P263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 P264

현실이 자꾸 내게 상처를 주고 있다면 우리도 내 안의 작은 불빛들을 조금씩 키워나가 보는 건 어떨까요? - P2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늘은 ‘편견‘이라는 것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살면서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어느정도의 편견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편견에 대한 관점을 알아봄과 동시에 독자인 나는 편견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가지는게 바람직할지 정리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
.
읽다가 p.212에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기인하는 ‘무사유‘ 라는 것이 나온다. 쉽게 말해 ‘아무 생각이 없다‘는 뜻인데, 이러한 것의 위험성을 잘 나타내는 문학 작품으로 저자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뭐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이것도 일종의 편견 혹은 고정관념이려나? 아무튼...), 나치 시대에 유대인을 학살하는 집행자의 역할을 맡았던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에 대한 얘기다. 그를 잡아서 심문해보니 자기는 단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뭘 잘못한 건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얘기는 위에 언급한 ‘무사유‘의 폐혜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편견에 사로잡혀 그것이 초래할 것들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마음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편견에 관한 글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자신이 가진 편견에 대해 ‘왜?‘ 라는 의문을 품는 습관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를 통해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올바르지 않은 편견 혹은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그냥 예전부터 굳어져 있는 생각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의심없이 믿어왔던 편견들이 새롭게 바뀔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좀 더 보태자면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자신이 가진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며 자신의 생각을 날마다 업데이트하는 것도 편견이나 무사유를 깨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
.
.
앞서 ‘편견‘에 대한 내용에 뒤이어 나오는 내용은 ‘용서‘에 대한 것이다. 살다보면 용서가 되는 일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들도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책에선 이청준의 소설《벌레 이야기》를 언급하며 ‘용서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한다. 읽다보니 이 소설이 이창동 감독의 영화《밀양》의 원작이라는 얘기도 나와서 별도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책에 간략하게 나온 핵심 내용들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이나 원작 소설 혹은 영화《밀양》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여기서 간단히 핵심적인 이슈만 언급하자면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을 때 어떤 종교적인 가르침에 따라 용서할 것을 강요받는 경우가 《벌레 이야기》,《밀양》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용서의 주체인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종교적 신념으로 용서를 강요받아 용서할 대상을 용서하는 것을 저자는 ‘거짓 용서‘ 혹은 ‘값싼 용서‘라는 말로 정의한다. 마치 이러한 껍데기같은 용서는 마음속 깊은 내면에서는 용서되지 않은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기에 자신의 내면에 내적 갈등을 유발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반해 ‘진정한 용서‘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이는 p.231에 밑줄 친 부분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또한 상대방의 죄를 용서하라는 어떤 종교적 신념같은 것에 너무 얽매여서 진정으로 용서되지 않는 것까지 용서해보려고 애쓰지 않기를 저자는 독자들에게 주문하는데 종교적 가르침이나 신념같은 것에 얽매여있던 사람들에게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위로가 되는 말이었지도 모르겠다.

물론 진정한 용서가 된다고 한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사람들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 다른데 어떤 종교든 관계없이 마음으로 용서가 안되는 일에 대해 억지로 용서를 강요하는 것은 또다른 형태의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류의 비극적 역사는 대부분 인간의 오만과 편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P210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때문에 상대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P210

영국의 철학자 에드워드 버크는 "우리는 오래된 편견을 던져 버리는 대신 그것을 상당히 소중히 여긴다. 더욱 수치스러운 것은 그것이 편견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긴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만큼 벗어나기 힘든 것이 편견입니다. - P210

편견은 왜 이렇게 버리기가 힘든 걸까요? 편견은 상황이나 대상을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 P210

편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공공연한 편견,
암묵적 편견, 자동적 편견입니다. 첫 번째 ‘공공연한 편견‘
은 대외적으로 특정 집단이나 대상에 대해서 편견 어린 말이나 행동 그리고 태도를 서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 P211

두 번째 ‘암묵적 편견‘은 겉으로는 편견을 갖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다른 동기로 위장이 가능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편견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흑인이 감독인 영화를 비평하는 경우에 영화 자체를 비평한다는 명목하에 더 신랄하게 비판하는 경우입니다. - P211

세 번째 ‘자동적 편견‘은 뇌에서 자동적으로 편견을 갖게 되는 경우입니다. 흑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흑인이 무표정한 표정만 짓고 있어도 무섭다고 느낀다거나, 흑인의 외투 속에 총이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입니다. - P212

우리는 왜 이런 고정관념에 숱하게 사로잡히는 걸까요? 여기에도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효율성 때문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면 파악하기가 훨씬 쉽죠. 사람의 다면적 모습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지만, 편견을 갖고 바라보면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 P212

두 번째 이유는 사회 문제나 부조리와 관련한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경우에는 소수의 집단을 골라서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 P212

마지막 이유는 나의 정체성을 좀 더 뚜렷하게 정립하기 위함입니다. 이 과정에서 타인과 나를 보다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믿곤 하죠. - P212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기인하는 ‘무사유‘ - P212

무사유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책이 바로《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고요.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쓴 이 책은 사고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 P213

"저는 지시한 대로 했을 뿐입니다." - P214

아이히만은 다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 P214

현대사회에도 아이히만처럼 사고하지 않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매일매일을 살아가다 보면 깊이 생각할 틈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 P214

무엇이든 묵인하고 방관하는 것, 고민하지 않는 삶은 큰 문제입니다. 폭력이 자행되는 현실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 불법이 공공연히 저질러지는 현실을 보고도 방관하는 것, 부조리한 판결과 집행에도 분노하지 않는 것말입니다. - P214

지금 내 삶이 불안하고 고달프다고 해서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생각을 멈춰서는 안 된다 - P215

불안함 속에서 흔들리며 사는 게 인생이고 어떻게든 치열하게 노력하고 몰입하면서 이 불안감의 진동을 떨치며 살아가는 게 또 인생입니다. - P215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는 ‘불안‘과 일맥상통합니다. - P215

우리는 과거 노예들에게는 없던 자유를 얻었지만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도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순간 모든 비판적 성찰은 사라지고 맙니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다는 것은 한나 아렌트가 경계한 무사유의 인간이 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 P216

우리는 자유의 범주를 긍정이 아닌 부정의 영역까지 넓혀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자유와 함께 동반되는 불안을 받아들이면 자유가 버거워 절대적인 권력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죠. - P216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 P217

나치즘 안에서 그렇게 잔인한 행동을 했던 수많은 사람이 개인적으로도 부도덕한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들은 어쩌면 충실한 신앙인이었고 굉장히 모범적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 P218

단지 비뚤어진 자기합리화를 통해 부도덕한 권위에 충성했을 뿐 - P218

자기합리화가 강화될수록 점점 더 강한 편견을 낳게 되고, 그것이 일상화되면 상상도 할 수없는 참극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 P218

편견에 잠식되어 더 이상 사유하지 않은 채 자기합리화만 일삼는 것을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 꼬집은 것 - P218

세상에 절대적인 신념과 올바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편견의 시작 - P219

시대마다 올바름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회적 이슈가 생겼을 때는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늦더라도 천천히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P219

개개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고 저마다의 삶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 P219

사회 문제를 바라볼 때도 그것을 어느 집단의 문제로 규정지어 버리면 답이 없습니다. 특히나 우리 사회에 혐오가 일상화되면서 극혐, 남혐, 여혐, 틀딱충, 맘충 등 나쁜 말들이 일상어처럼 쓰이는데 이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편견이 무조건 혐오가 되는 건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혐오표현을 쓰다 보면 점점 더 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죠. 말에는 그만큼의 힘이 있습니다. - P220

편견과 혐오에서 한 발 물러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가요? 저는 질문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일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질문은 편견과 고정관념의 근간을 뒤흔들 생각의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 P220

‘변하지 않는 것이 정말 미덕일까?‘ - P221

사람은 누구나 상황과 동기에 따라 변하고, 그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늙어가는 것처럼 당연한 일일 수도 있고요. - P221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 P221

내가 가진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을 깨부수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 - P222

‘용서란 무엇인가‘를 논할 때 절대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청준의 소설「벌레 이야기」입니다. - P225

용서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용서의 주체와 용서받는 자의 자세 그리고 용서를 하는 태도일 겁니다. - P225

흔히 죄는 용서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고, 고통은 용서하는 순간 줄어든다고 하죠. 그래서 용서는 죄지은 자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 P226

그런데 어느 누가 용서의 주체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 있을까요. 용서는 어디까지나 상처받은 자의 영역입니다.
누구도 그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되죠. 그것이 이웃이라도, 친구라도, 심지어는 가족이라도 말입니다. 그가 평생 용서하지 않는다고 한들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고통을 겪었을 당사자가 용서의 주체로서 스스로 용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 방식 또한 주변에서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 P227

하지만 어느 누가 고통받는 이에게 ‘이제는 용서할 때가 되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용서의 주체는 언제나 자기 언어로 얘기할 수 있어야 하며 용서하고 싶을 때 자신의 방식대로 그것을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 P228

누군가에게 나의 방식을 강요하는 무지막지한 존재는 아닌지 - P228

누구라도 그들처럼 선한 의도를 앞세워 나의 방식을 강요하기는 쉬우니 항상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P228

용서하는 주체도 타인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하듯이, 용서를 구하는 자도 타인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용서를 구해야만 진정성 있는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229

용서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방편적 용서, 역할 기대적 용서, 진정한 용서입니다. ‘방편적 용서‘는 나를 위한 용서를 의미합니다. 내 마음이 불편하거나 상대와의 관계 악화를 염려해서 하는 용서죠. 이런 용서는 진정으로 상대의 잘못을 이해했다기보다는 겉으로만 용서하고 속으로는 여전히 경멸과 분노의 마음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 P231

‘역할 기대적 용서‘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못 이겨서 하는 용서입니다.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용서가 아니기 때문에 복수와 분노의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내적 갈등을 유발합니다. - P231

마지막으로 ‘진정한 용서‘는 말 그대로 동등한 위치에서 자발적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사랑의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처받은 일을 잊어버리는 것과 다르고, 참거나 묵인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법적인 처벌을 면해주는 것과도 다르죠. 이렇게 용서의 종류를 정리해 보면 거짓 용서와 진정한 용서가 구분됩니다. - P231

거짓 용서는 ‘값싼 용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을 쉽게 용서하는 사회는 계속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 P231

무엇보다 용서는 화해와 다릅니다. 화해는 쌍방이 동의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용서를 구할 일에 화해를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 P232

때로는 용서할 필요가 없는 일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자가 아니기에 모든 것을 다 용서할 필요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잖아요. 만약 나에게 거듭 상처를 주면서 값싼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의 관계를 과감히 정리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습니다. - P232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모두를 용서하는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늘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p.182에 밑줄 친 ‘사랑은 타인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곰곰이 곱씹어 생각해볼만한 문장인듯 보였다.

또한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사랑은 마치 불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사랑과 관련하여 처음에는 감정의 극한을 경험하다가도 서로의 진실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뜨거웠던 감정이 점점 사그라들고 공허해진다는 얘기를 전한다. 뭔가 문학작품 속의 기승전결과 유사한 흐름이라고 느껴졌고, 실제 현실에서도 그런 경우들이 많은듯 하다. 안 그런 경우가 간혹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는 않는거 같다.

그리고 저자는 인간이 불완전한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랑도 일정부분 균열이 있어 불안할 수 밖에 없음을 말하면서 이러한 것들을 견디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배울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도 덧붙인다. 이는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에게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인내의 과정이 어쩔 수 없이 수반될 수 밖에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것을 견뎌내는 인내가 없이는 수박 겉핥기 정도의 얕은 사랑 밖에 할 수 없고, 소위 말하는 ‘찐‘사랑은 좀 더 차원이 높은 수준에 있는 것임을 머리만이 아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랑관련 얘기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오해와 이해‘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p.200에서 오해와 이해가 한 끗 차이라는 말과 함께 p.203에서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마음사전》 속 한 구절을 인용하여 이해와 오해에 대해 명징하고 통찰력 있는 정의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오늘 읽은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인상적이었던 부분이었다. p.206에 밑줄친 ‘어쩌면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해와 이해 두 가지 모두 필요한지도 모르겠다‘는 문장은 얼핏보면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앞의 문맥을 잘 짚어가며 읽다보면 너무나도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간단히 핵심만 말하자면 이해라는 게 일종의 오해일 수도 있다는 것인데, p.203에 밑줄 친 문장들을 참조해서 읽어보시면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학계에서는 여섯 가지 정도로 구분하는데 그중 세 가지를 일반적인 사랑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첫눈에 반하거나 연인의 신체적 매력에 끌리면서 사랑이 시작되는 에로스, 양보와 이해를 기반으로 희생을 통해 이루어가는 무조건적 사랑인 아가페,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그의 본래적 성품에 관심을 갖는 필리아입니다. - P178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유형은 필리아로 알려져 있죠. 필리아는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P178

독일의 현대철학자 헤르만 슈미츠는 필리아를 ‘혼인으로 가정을 이룬 남녀의 친밀한 관계‘로도 정의했습니다. - P178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한 단계 성숙시킨다면 그것은 상대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를 통해 나의 초라함, 속 좁음, 치졸함, 이기적 욕망 같은 것들을 인식하면서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담담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 P180

사랑은 타인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상대방을 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하기도 합니다. - P182

"사랑이란 타인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나의 사랑의 시작이다." - P182

사랑의 본질이 ‘충만함‘일 거라는 짐작 - P182

사람은 누구나 결핍과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내 존재를 인정해 주는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충만함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연애를 할 때 오가는 달콤한 말들은 모두 서로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언어들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나에게 쏟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사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통해서 우리는 더 큰 충만함을 느끼곤 하는 것이죠. - P182

상대방에게 나의 욕망을 투영해서 그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할 때 갈등은 시작됩니다. - P183

상대가 연인이나 가족처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일 때 오히려 우리는 ‘내 기준‘을 강요합니다. 가까운 사이에서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만큼은 나의 존재감이 더 크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만큼 나를 내세우고 강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 P183

밖에서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억누르며 지내지만, 집에 돌아오면 고삐가 풀린 듯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나의 존재감을 어필하려고 합니다. - P185

사랑을 오래 유지하려면 이런 아이러니를 이해하고 늘 조심해야 합니다. - P185

운명적인 사랑도 결국은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을 향한 강렬한 끌림을 느끼고 거기에 운명이라는 서사를 부여해서 낭만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에게 익숙해지고 결국은 서로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에 다가가는 순간 모든 환상이 깨진다는 것이에요. - P185

알랭 드 보통의 소설《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도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진 후 강렬한 감정을 공유하는 절정의 시기를 지나, 어느새 시들해져 더 이상 서로를 운명이라고 느끼지 않는 권태와 이별에 이르는 단계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다만 이 연애소설의 특별한 점은 연애라는 사건 속에 남녀의 심리를 철학적 사유와 함께 엮어내 ‘사랑에 관한 고찰‘을 담아냈다는 점입니다. - P186

사람은 어떤 것에든 익숙해질 수 있다. 한동안 나는 클로이가 나를 사랑한다는 기적을 심드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녀는 내 삶의 일상적인,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특징이 되어버렸다. - P187

안타깝게도 사랑은 언제나 절정을 지나 권태로 향해 나아갑니다. - P187

저는 사랑이나 연애도 ‘그 시대에서 느끼는 감정의 합의‘라고 생각합니다. - P187

사랑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모습 그 자체니까요.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도 있지만 불완전하고 어딘가 일그러진 사랑도 있는 것입니다. - P188

영화 「클로저」에는 사랑의 단계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서로에게 ‘낯선 존재‘일 때는 관계가 잘 유지되다가 점점 ‘더 가까이(closer)‘ 다가가 진실에 가까워지면 관계는 흔들리고 깨어지죠.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사랑과 연애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영화이기도 합니다. - P192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관계는 진실에 다가가면 갈수록 공허해집니다. 그래도 너무 슬퍼하지는 말길 바랍니다. 그 진실에 다가서기 전까지 연인들은 가장 복합적이면서도 순도 높은 감정의 상태에 빠지게 되니까요. 한없이 차오르는 충만함, 순간의 몰입감, 진정성, 고통과 환희...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극한을 경험합니다. - P193

하지만 강렬한 몰입감을 경험하고 싶어서 사랑을 좇는 사람들은 언제나 실망하거나 상처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 P193

사랑만으로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서로를 충족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 P193

모든 사랑의 얼굴에는 균열이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 P194

우리는 어쩌면 그 불안과 불길함을 견디는 과정에서 진정한 사랑을 배워나가는 게 아닐까요. - P194

우리는 결국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요. - P194

"자신이 얼마나 자주 타인을 오해하는가를 자각하고 있다면, 누구도 남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 P195

오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제가 꼭 함께 소개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프레드 울만의 소설《동급생》입니다. 이 소설에서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렸던 두 소년 한스와 콘라딘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도 다름 아닌 오해 때문입니다. - P197

진실이 항상 아름답지는 않잖아요. - P198

너는 내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어. 나에게 생각하는 법과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의심을 통해 우리 주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법도 가르쳐 주었어. - P199

오해만 하는 사람들은 나만의 세계에 갇혀 다른 사람의 세계관을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그저 틀렸다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콘라딘은 이 지점에서 정말 성숙한 사람이죠. 한스가 자신에게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줬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 P199

우리는 오해하는 대신 의심하는 법을 배울 줄 알아야 합니다. 늘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나의 세계도 의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 P199

오해와 이해가 한 끗 차이라는 걸 - P200

일상생활 속의 수많은 인간관계는 오해를 주고받다가 결국은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P200

누군가를 섣불리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일단 그 사람의 근본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겠죠. - P201

어떤 사람을 오해할 일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어.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을 갖고 있다면 오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 P201

상처가 크면 그만큼 오해도 커지기 마련 - P201

오해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자존감부터 높여야 합니다. - P201

자존감과 자존심은 엄연히 다릅니다. 자존심은 타인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지만,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의미합니다. - P201

타이밍과 소통도 중요합니다. 한스와 콘라딘이 서로를 오해하던 시기에 만약 계속 함께할 수 있었다면 오해의 골이 그렇게까지 깊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관계를 지키려면 단절을 경계해야 합니다. - P202

소통하지 않은채 서로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영영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도 끊임없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 P202

서로를 오해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오해하거나 상대로부터 오해를 받습니다. 그럴 때는 조금 쿨하게 대처해도 좋을 것 같아요. 나의 진심과 배려가 상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았을 때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당신의 문제이고, 당신은 나를 비난할 권리가 없어.‘ - P202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 P203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P203

이 글을 찬찬히 곱씹어 보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오히려 상대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골라 봤다는 의미가 됩니다. 단편적인 부분만 알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죠. - P203

우리는 언제나 오해보다는 이해를 받고 싶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은 곧 내가 상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좋은 부분만 그들이 보고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 P203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그들이 목격했을 때 그것을 오해라고 단정 짓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해와 이해 두 가지 모두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 P206

멀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일도 가치 있습니다. 혹시나 내가 저 사람에게 뭔가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 고민해 보고 그래도 답을 찾지 못했을 때는 용기를 내서 직접 물어보세요. 잃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니까요. - P206

상대를 이해하는 일은 당신에게도 나쁠 게 전혀 없습니다. 평생 콘라딘을 오해하며 살았던 한스의 삶이 행복했을 리 없는 것처럼요. - P207

누군가를 오해한다는 건 어쩌면 오해받는 일보다 더 힘겨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당신을 오해하고 있을 누군가를 가엾게 여기고, 한편으로 당신이 오해하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서도 언젠가 한 치의 미심쩍음도 남기지 않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208

믿음을 통해서든, 자존감을 통해서든, 타이밍과 소통을 통해서든 모쪼록 그 방향이 부디 마음 편해지는 쪽이길 소망합니다. - P2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푸바오가 조금씩 자라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지켜볼 수 있었다. 푸바오가 사람은 아니지만, 어린 아이같은 기분이 드는 건 비단 나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사진 속에 나온 푸바오의 모습들을 보다보면 눈동자가 아주 초롱초롱하고 똘망똘망해서 푸바오의 친부모인 아이바오와 러바오외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처럼 장난기도 많고 표정도 해맑으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책을 보다보면 푸바오 할부지로 유명하신 강철원 사육사님이 푸바오를 안고 있는 사진이 나오는데 진짜 인형처럼 귀엽다는 느낌이 ‘아 이런거구나‘ 싶을만큼 아름다운 장면도 볼 수 있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동심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제발 엄마랑 할부지 말 좀 들어라. 이 장난꾸러기야! - P35

푸바오가 197g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두 손위에 넉넉히 올라가던 작디작은 아기 판다가 어느덧 70kg이라니요? 이제는 할부지도 엄마도 푸바오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푸바오의 장난기와 귀여움은 할부지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지요. - P41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 이 할부지를 찾으렴.
꼭 안아 줄게! - P4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ys로스쿨러 2024-05-02 0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판다의 발톱이라는 책 읽고부터는 얘가 무서워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5-02 06:48   좋아요 1 | URL
무슨 말씀이신가 해서 말씀해주신 책을 검색해봤더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의도 같은 것들을 분석한 책인듯 합니다. 얼핏 보기에 순수해보이는 것도 약간의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덕분에 새로운 관점을 하나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번 포스팅에 이어 결과보다는 과정 그 자체에 충실하라는 저자의 조언이 이어진다. 지난 포스팅에서 욕망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욕망의 정점에 선 순간의 허망함과 몰락에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가져야할 바람직한 태도는 바로 과정 자체에 충실하는 것임을 저자는 강조했었다. 그에 대한 얘기들이 이어진다.

뒤이어 소개되는 글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적은 것이다. 처음엔 이 작품에 나왔던 유명한 문구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저자는 이 소설 속 노인의 삶의 태도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드러낸다. 어떤 일을 하든간에 소설 속 노인이 그랬듯 결과를 떠나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태도 그 자체만으로도 앞으로의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임을 저자는 역설한다.

이어서 저자는 죽음과 애도에 관한 문학작품으로 알베르 카뮈의《이방인》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작품의 핵심 내용에 대해 간단히 얘기한 뒤 참된 애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논한다. 중요한 것은 충분히 마음 깊이 애도함과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인생길에 꼭 필요한 가치들을 마음 속에 되새기는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참된 애도에 대해 이 정도 수준까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반성하는 마음과 더불어 이제부터라도 애도할 일이 생길 경우 저자가 이 책에서 얘기했던 것들을 몸소 실천할 수 있도록 내면의 깊이를 키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가치있는 중요한 것을 배운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에는 휴식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사람들마다 휴식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일 수 있겠으나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머리를 비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라 말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과연 나는 내 몸과 마음에 대해 저자가 말한 의미의 진정한 휴식을 줬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휴식을 한다면서 몸과 마음을 혹여나 더 피곤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휴식은 진짜 말그대로 휴식 그 자체여야지 그이상도 그이하도 되어서는 안된다.

무언가 완벽한 대상이 있고, 그곳에 다다르면 모든 게 완성되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 P131

힘겹게 다다른 곳 자체를 목적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관계와 배움에 가치를 둔다면, 우리에게도 정점의 허망함을 이겨내고 또 다른 불빛을 찾아나설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 P131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 P131

어쩌면 노인에게는 대어를 잡는 것보다 매일 바다로 나가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P132

노인은 결코 몰락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물고기를 잡고야 말겠다는 욕망은 분명했지만 그것만이 삶의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오늘은 허망함을 느낄지언정 내일 또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것. 노인의 삶이 바로 인간의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 P133

인간은 누구나 망망대해에 홀로 선 고독한 존재입니다. 처음부터 그럴듯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 두고 달려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평범한 삶을 살면서 하나씩 목표를 만들어가니까요. - P133

꿈꾸기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실패하더라도 치열하게 욕망했던 삶의 태도는 우리 마음에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그 태도와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시간이 쌓여서 또 다른 꿈을 꾸게 해주는 거죠. 망망대해에 우뚝 선 노인처럼요. - P136

내게 주어진 생을 가장 나답게 살아낸다면, 그 과정을 즐기고 그때 얻은 교훈을 몸에 새긴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는 결코 패배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P136

시험에서 떨어진 학생들도 그 시간을 그저 낭비한 것이 아닙니다. 수험생들 중에는 여러 이유로 공부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고난에 직면하든 한때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봤던 삶의 태도는 그것을 헤쳐나가고 버틸힘이 되어줍니다. 지식은 휘발될 수 있지만 삶의 태도와 지혜는몸과 마음에 각인되기 때문이지요. - P136

우리 생에서 쓸모없는 시간은 없습니다. 쓸모없는 욕망이 없듯이요. - P136

꿈을 이룬 사람들에게는 예외 없이 허무가 찾아올 것입니다. 뭐든 멀리서 바라볼 때는 아름답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잖아요. - P136

선과 악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함이 섞여 있는 게 인생입니다. - P137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는 것을 꿈꾸는 이들이 많지만 막상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오히려 허망함을 느낄 때가 많아요.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 그 흔들리는 빛이 절대적으로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성취해 내고 이루었을 때의 기쁨은 아주 잠시, 아니 찰나에 불과합니다. - P137

그보다 오래 기억에 남아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높은 점수를 받기위해 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목표한 성과를 이루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시간의 기억이 아닐까요. - P137

한밤중에 상어 놈들이 다시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놈들과 싸우는 거지.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그가 말했다. - P137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누구나 고독한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 P137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아나가면 무너지지 않고 계속 욕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내일도 무너지지 않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향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 P138

가난은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성공이라는 신화를 쓰기 위한 극복과 극기의 과정이겠지만, 그 가운데에 있는사람에게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아득함과 절망감만 안겨줄 뿐입니다. 변화와 발전의 서사가 아니라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절망감과 무기력의 서사, 정지와 멈춤의 서사입니다. - P142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삶의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 때로는 삶이나 죽음을 달관하는 사람,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사람 등 제각기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죠. - P144

알베르 카뮈의《이방인》은 죽음과 애도를 주제로 삼온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것이 빌미가 되어 죽음에까지 이른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 P144

사회가 원하는 슬픔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단죄할 수 있을까요? - P145

좋은 이별과 좋은 애도란 무엇일까요. 이별로 인한 슬픔이 닥쳤을 때 가장 좋은 애도의 방식은 영원히 슬픔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그와의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는게 아닐까요. - P146

충분히 기억하고 애도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또 다른 만남과 생을 이어나갈 힘이 생깁니다. - P146

특히 비극적인 사건이나 역사적 상흔을 남긴 일일수록 그 모든 과정과 감정을 더욱더 또렷하게 기억해서 그때의 비극과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각자의 삶에 녹여내면 좋겠습니다. - P147

가장 중요한 것은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가슴 아프다‘는 이유로 슬픔을 억누르거나 외면하지만, 끊임없이 슬픔을 상기하고 기록할 때 애도는 힘을 발휘합니다. - P147

저는 비극이 갖는 공동체적 효용 역시 분명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다 함께 슬픔을 기억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왔던 가치, 그리고 앞으로 지켜야 할 가치를 되짚으면서 더 나은 사회와 미래를 열어나갈 힘을 키울 수 있으니까요. - P147

왜 우리는 슬픔이나 이별을 오래도록 기억하려 들지 않을까요? 아마도 부재하는 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느껴지기 때문일겁니다. - P147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P148

상처는 늘 흉터를 남깁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 삶이 계속되는 한 잊지 말아야 할 상흔도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상기하며 살 필요도 있지요. 그것은 삶의 새로운 가치가 되기도 합니다. - P149

어떤 고통을 겪든 결국엔 살아남아 생을 이어가야 한다 - P149

우리는 누구나 ‘그러나저러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걸 깨닫게 되면 허무에서 헤어나 다시 살아나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공허감이 일상을 지배하고 삶의 목적이 사라져 의미가 상실되었을 때도, 모든 걸 내려놓을게 아니라 그것 역시 삶이라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죠. - P152

살다 보면 인생의 시계가 멈춘 것 같은 시기도 있습니다. 모든 인생이 매 순간 충만할 수는 없고 늘 활기찰 수도 없잖아요. 언젠가는 이 시간 또한 지나가고, 견뎌낸 시간만큼 다음 삶을 살기 위한 걸음을 뗄 용기와 힘을 줄 거라고 믿어야겠죠. - P152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 P153

품격 있는 죽음을 위해 일생에 걸쳐 자존감을 높여나가는 것이 어쩌면 삶의 이유일 수도 있겠다 - P154

영혼이 허기질 때 읽으면 좋을 만한 소설을 하나 소개하고 싶습니다.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소설인《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입니다. - P157

나만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는 건 한편으로 나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죠. - P158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 이런 것들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 - P159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 P159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는 녹초가 될 정도로 지치는 게 좋아." - P161

운동뿐만 아니라 예술 활동처럼 몰입이 가능한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보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 P164

사람들이 힘들게 무언가를 해냈을 때 성취감뿐만 아니라 편안한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이 몰입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 P164

제 경험을 돌이켜 봐도 진정한 휴식은 편안히 누워 뒹굴거릴 때가 아니라 무언가에 진심으로 몰입해서 시간도 공간도 잊어버렸을 때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물론 몰입하는 대상이 특별한 목적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이어야만 가능한 일이죠. - P164

지긋지긋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진심 어린 몰입이라는 휴식은 우리를 안전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 P164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작은 나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는 존재 자체에서 휴식을 느끼듯이, 우리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해주는 존재에게서 따스한 휴식을 경험합니다. - P165

저를 있는 그대로 오롯이 인정해 주고 공감해 주는 친구들은 존재 자체로 저의 휴식처가 되어줍니다. - P165

긴 시간을 낼 수 없을 때는 익숙한 혼자만의 공간에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보내보라 - P168

나의 존재감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물질적인 공간이라도 마련해 보면 어떨까요? 그 공간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초라해도 상관없어요. 정말 작은 공간이라도 상관없고요. 오로지 나만의 취향으로 꾸며진 공간에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다면
‘나만의 독립된 공간‘은 그 자체로 휴식처가 되어줄 것입니다. - P169

편안하고 조용한 나만의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머리를 비우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휴식 아닐까요? - P170

진짜 휴식하려면 본능적인 부분부터 행복감을 느껴야 해요. 쉬고 싶다면 ‘배는 채우고 머리는 비우세요‘. 아, 물론 조금은 원초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 P170

모두가 이런 무위(無)의 시간과 적막의 순간을 좋아하죠. 우두커니 앉아서 복잡한 머릿속을 완전히 비우고 멍해지는 시간을요. - P1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