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구원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복음을 믿겠다는 자신의 의지(이를 저자는 본문에서 ‘믿음1‘로 지칭) 와 더불어 복음이라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음으로 그냥 받아들여지는 것(이를 저자는 본문에서 ‘믿음2‘로 지칭) 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자 본인도 믿음2가 좀처럼 생겨나지 않아 내적으로 힘든 시간이 있었고 비로소 성경 말씀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음을 본문을 통해 고백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믿음2가 생기는데 7년이 걸렸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말씀이 진짜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여부일 뿐이다. 그것(믿음2)에 이르는 기간이 길거나 짧은 것은 단지 부수적인 것일 뿐이라고 독자인 나는 이해했다. 다만 오늘 처음 밑줄친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기간이 길었다면 구원에 대한 깨달음이 마음으로 온전히 느껴졌을 때(즉 ‘믿음2‘에 이르렀을 때) 그 감동이 좀 더 크게 느껴지는 듯하다. 이것은 아마도 적잖은 시간동안 치열한 고민과 다양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믿음2‘를 힘겹게 깨닫게 되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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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지는 내용에서 독자인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있다주의‘와 ‘없다주의‘라는 말이었다. 전자인 ‘있다주의‘는 구원과 행위가 상관이 있다는 것이고, 후자인 ‘없다주의‘는 구원과 행위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경에 나온 다양한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이 두 가지 주의에 대해 언급하는데, 본문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이에 대해 저자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구원을 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에도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기에, 구원이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라는 걸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구원을 받았을 때의 감사함도 더욱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 P213

하나님은 회색을 싫어하신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교회에 가면 자신이 정확히 흑인지 백인지,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정확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이 있는 교회의 특징이다. - P214

물론 구원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회개의 기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구원은 복음이 마음에서 완전히 사실로 믿어지는 것이기에, 회개와 동시에 바로 올 수도 있지만 나처럼 믿어지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 P214

구원은 행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요, 행위를 잘못한다고 취소되는 것도 아니다. - P216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_마태복음 23장 13, 15절 - P217

생명이 있는 교회들은 모두 성숙한 교회, 훌륭한 교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생명이 있는 교회라 해도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으면 그 생명을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218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_디도서 2장 7~8절 - P218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게 함이라.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_베드로전서 2장 12~14절 - P219

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초대 안디옥교회를 이끌어가던 바울과 그의 제자들도 철저히 법을 준수했기에 복음을 더 힘차게 전파할 수 있었다. 바울은 한 번도 법을 회피해 도망가지 않았고, 매번 당당히 법정에 서서 법을 어긴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들음으로써 계속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사도행전 18, 19, 23, 24, 25, 26장) 만일 어떤 교회가 법을 어기거나 법을 회피하고 있다면 훌륭한 교회의 모습과는 많이 멀어졌다는 이야기이다. - P219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대가를 받지 않는 이유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천막 제조업자라는 직업으로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했으며, 헌금에서는 자신이 쓸 것을 받아가지 않았다고 기록되어있다. 받아가도 되지만, 그게 누군가의 마음에 문제를 일으킬까봐 안 받아갔다고 쓰여 있다. 우리는 바울의 이런 뜻을 좇으려고 한다. - P220

바울이 속해 있던 안디옥교회를 보면 가르치는 사람이 여러 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바나바 혼자 가르치다가, 후에는 바울과 둘이, 나중에는 여러 명이 함께 가르쳤다고 되어 있다(사도행전 11,13장). - P220

아무리 대단한 성도도 특정 인간 이상으로 여김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성경 66권 중에 13권을 기록한 사도 바울도 자신이 버려질 수 있다고 했는데 감히 어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있겠는가? - P221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_고린도전서 9장 27절 - P221

‘없다주의‘(구원과 행위가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가 죄를 막 지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죄를 지어도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지만, 대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는 ‘징계‘라는 것이 있기에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 P2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_히브리서 12장 5~6절 - P225

성경에서 죄인의 개념은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죄인의 ‘혈통‘을 타고난 사람이다. 다시 말하자면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혈통을 타고나서 할 수 없이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다. - P226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_시편 51장 5절 - P226

우리 조상 아담의 죄가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었듯이, 예수님의 의로운 행위가 우리 모두를 의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것이다. 잘못한 게 없이 죄인이 되었듯이, 잘한 게 없이 의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을 ‘공짜 선물‘이라고 한다. - P226

(......) 한 사람(아담)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free gift)‘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_로마서 5장 15, 18절 - P226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_야고보서 2장 24절 - P228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_야고보서 2장 21절 - P228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_히브리서 4장 1절 - P228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_히브리서 10장 26-27절 - P228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_갈라디아서 2장 16절 - P228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_로마서 4장 2절 - P228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_로마서 8장 33-34절 - P22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_로마서 8장 38-39절 - P228

성경은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할례자라고 부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 - P229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편지들인데, 대조해놓은 구절들 중 왼쪽에 있는 구절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썼거나, 유대인을 수신자로 쓴 편지 속에 들어 있고, 오른쪽에 있는 구절들은 바울이라는 저자가 이방인을 수신자로 쓴 편지들 속에 들어 있다. - P229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바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베드로)‘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앎으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_갈라디아서 2장 8~9절 - P230

이방인인 우리가 바울이 쓴 편지들 외의 편지들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구절들끼리 논리적으로 충돌이 생기는 것 같아 혼란스러울 경우, 성경이 ‘이방인의 스승‘이라고 명명한 바울의 편지들을 기준으로 삼으면 좋다는 것이다. - P230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_갈라디아서 5장 19~21절 - P230

갈라디아서 5장 19~21절 우리의 육체 속에 있는 죄성들을 설명하면서 이런 죄성을 가지고 죄를 저지르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린도전서 15장 50절부터 나오는 내용과 연결해서 봐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가려면 이런 죄성을 지닌 육체가 다른 종류의 육체로 바뀌어야 하고, 또 바뀔 것이라는 이야기이지, 죄를 지으면 하나님 나라에 못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 P231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_고린도전서 6장 9~11절 - P231

9절에 구원을 받지 못한 불의한 자들, ‘Unrighteous‘한 사람들의 얘기를 하면서, 그들이 짓는 각종 죄들에 대해 얘기를 한다. 그러다가 11절에 가서, ‘But‘ 너희는 구원을 받은 ‘justified‘된 사람들이니 그 사람들처럼 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Unrighteous‘한 사람으로 신분이 바뀐다는 얘기가 아니다. 결론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구원 못 받은 사람들처럼 살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죄를 지으면 신분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지였다가 왕실에 입양이 되어 왕족이 된 아이에게 "이제 왕족이니 거지들이 하는 행동을 하면 안 돼" 라고 말하는 것이지, "거지짓 하면 다시 거지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 P232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_에베소서 5장 3~8절 - P233

‘구원‘이라는 말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빌립보서 2장 12절, 고린도전서 15장 2절, 디모데전서 4장 16절은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많은데, 야구에서 ‘구원투수‘라는 말이 천국에 갈 수 있게 해주는 투수라는 뜻은 아니듯이, ‘구원‘ (Salvation, save)이라는 말이 언제나 천국에 가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영어 단어 save라는 말이 원래 그렇듯이, 어떤 안 좋은 일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경우에는 그냥 구원이란 말을 사용한다. 위의 성경 3구절 모두 앞뒤 문맥의 내용을 읽어보면 생활 속에서 짓는 죄들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구원을 말하고 있다. - P234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파했던 사람들 중에 세상이 좋아서 세상 속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디모데후서 4장), 그럼 이 사람들은 구원을 안 받았다는 말인가? 그럼 바울이 구원도 안 받은 사람들과 복음을 전하고 다녔단 말인가? - P234

결론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은 행위를 잘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요,
행위를 잘못해서 취소되는 것도 아니요,
행위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P235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_야고보서 2장 10절 - P240

전도는 내가 하는 말에 달려 있지 않고, 내 진심, 내가 속해 있는 교회 사람들의 진심, 그리고 듣는 사람의 진심을 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실패할 때마다 나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않으려고 한다. - P242

천국에 가게 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지옥에 가는걸 의미하기 때문에, 모든 크리스천의 삶은 사실 응급실 의사와도 같은 것이다. 매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살리느냐 못 살리느냐 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도에 성공해서 소중한 생명 하나를 천국에 가도록 만들었을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 P242

이건 내가 잘나거나 잘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보고 일을 맡기시지 않고, 교회를 보고 맡기시기 때문이다. 나는 앞에서 성경을 설명했지만, 장소를 준비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자료를 준비하고, 강의를 모니터해주고, 찬송을 불러주고, 기도해주는 형제들이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 P2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_사도행전 2장 44~47절 - P245

죽기 전까지 한 명이라도 더 천국에 보내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나같이 못되고 위선적인 인간이 예수님 덕분에 값없이 천국에 가게 된 것이 너무 민망하고 염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다. 그걸 바울은 ‘빚진 마음‘이라고 했고, 이 빚은 다른 사람들에게 갚는 것이라고 했다. - P245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_로마서 1장 14절 - P246

사람들은 ‘버킷리스트‘라는 것을 만들곤 한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나열해놓은 리스트인데, 다음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는 사실을 참으로 믿게 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굳이 꼭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음 세상에 진정한 쾌락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버킷리스트를 만든다면 그것은 다음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 즉, 한 명이라도 더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나에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나는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 등 내가 전도해야 할 각 나라, 각 민족의 이름들만 쓸 것이다. - P246

내 인생은 이 책을 내기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이 책을 쓸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라면, 앞으로의 내 인생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들도록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 P247

세상에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내가 죽는 날까지 나의 약한 부분만을 골라 집요하게 유혹할 것이다. 내가 대중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이면 이 책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삶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 P247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겨진 나의 삶의 자취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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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믿음이라는 것을 크게 2가지로 구분해서 독자들에게 설명했다. 여기서 잠깐 다시 정리해보자면, 하나(믿음1)는 인간이 믿기로 결심하는, 인간의 의지가 들어간 능동적인 행위이고, 다른 하나(믿음2)는 어느 순간 믿어져버리는, 굳이 인간의 의지가 없어도 되는 수동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믿음의 2가지 개념에 근거한 성경 구절을 저자가 본문에 소개하는데, 본문의 내용에 따르면 저자는 앞서 소개한 믿음1과 믿음2가 둘다 있어야 믿음이라는 것이 비로소 완성되어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단 독자인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저자가 자신이 직접 성경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과 거기에 걸맞는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을 바로바로 연동시키면서 설명을 해주다보니 독자인 나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비교적 수월하게 느껴졌다.

(......)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_사도행전 16장 14절 - P191

믿음1은 원하는 때에 가질 수 있는 반면, 믿음2는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주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리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믿음의 완성자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말씀) 이라 말하는 것이다. - P191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finisher)인 예수를 바라보자(......)
_히브리서 12장 2절 - P191

자신의 의지나 결심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의지와 결심이 없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 P192

성경말씀을 통해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을 회개라고 하는데, 구원을 받으려면 이 회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 회개를 구원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회개를 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구원의 기도를 하다 보면, 언젠가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완전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완전한 믿음이 생기는 것이 구원인데, 회개를 하자마자 바로 구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매달리다 받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 P192

회개와 구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약속이다. 하나님의 죄사함의 약속이 마음에서 믿어지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완전히 사실로 믿어져야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 반대로 믿음1만 가진 사람은 마음속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유/평화/기쁨이 오지 않는다. - P192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_히브리서 2장 15절 - P193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_요한일서 4장 17~18절 - P193

말씀들을 보면 ‘예수님이 날 위해 돌아가셨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서 온전히 믿어지면 죽음 후에 있을 심판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이 특별하고 신기한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부른다. - P193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_에베소서 2장 8~9절 - P194

예수님께서는 이 믿음2를 설명하시기 위해 ‘거듭난다(born again)‘라는 표현을 쓰셨다. - P19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_요한복음 3장 5절 - P194

위의 구절에서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고(에베소서 5:26, 아모스 8:11) ‘성령‘은 이 세상에서 안 보이게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영이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왜 변화한다 (Change)는 말 대신 태어난다(Born)는 말을 사용하셨을까? 그것은 두 단어가 완전히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P194

‘태어남‘의 특징은,
본인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며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영원히 바뀌지 않으며 어느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며
부모의 씨가 필요하다. - P195

‘변화‘의 특징은,
본인의 의지로 할 수 있으며 변화 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으며 일정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 있으며 부모의 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P195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_고린도후서 11장 13~14절 - P198

무엇을 보고 진짜 교회, 생명이 있는 교회인지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거듭남, 즉 생명의 탄생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성경을 인간에게 준 이유이기에 진정한 교회라면 생명을 얻는 사람들, 즉 구원받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야 하는 것이다. - P199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위로와 교훈을 주기 위해 쓰인 책이라고 오해하고 있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쓰인 책이다. - P199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_마태복음 7장 21절 - P199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
_요한복음 6장 40절 - P19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
_요한복음 5장 39절 - P199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_요한복음 20장 31절 - P200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_고린도전서 4장 15절 - P200

성경을 가르치는 데서 끝나면 안 되고, 사람이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 P200

이 세상에서 교회라고 하면 장소를 의미하지만, 성경에서의 교회는 거듭난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이 거듭난 사람들이 모여서 다른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는 곳이 참교회이기에, 결국 복음이 정확한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참교회가 가짜교회에 비해 훨씬 적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P201

딴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_누가복음 13장 23~24절 - P20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_마태복음 7장 13~14절 - P201

당신의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까?

1.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가신 죄에는 내가 지은 죄‘뿐 아니라 앞으로 ‘지을 죄‘도 포함되어 있다.

2. 위 사실을 믿기로 결심하는 것과 마음에서 완전히 믿어지는 것은 다르며, 마음에서 완전히 믿어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3. 세례는 마음에서 완전히 믿어진 후에 받는 것이다.

4. 구원은 착한 행실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요, 나쁜 행실로취소되는 것도 아니다. - P202

구원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속엔 분명히 공통점이 있다. 믿음이 없다가, 혹은 믿음1만 가지고 있다가, 어느 순간 말씀을 통해서 믿음2, 즉 온전한 믿음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공통된 구원‘ (common salvation)이라고 표현했고, 그 공통점을 ‘어느 순간 주신 믿음‘이라고 말한다. - P20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common salvation)‘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once delivered)‘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_유다서 1장 3절 - P203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_로마서 5장 8절 - P203

나(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큰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the justice of God)"라는 그 한마디가 그 길을 막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의"라는 말을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요, 따라서 불의한 사람들을 공정하게 처벌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 P205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던 어느 날, 나(마틴 루터 Martin Luther)는 "하나님의 의(the justice of God)"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라는 말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은혜와 순수한 자비를 발휘하신 나머지 오직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수동적 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전적으로 거듭나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었다. 성경 전체가 새로운 의미를 지녔으며 전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를 증오로 가득 채웠지만 이제는 그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게 되었으며 더 큰 사랑을 불러일으켰다. 바울의 이 구절이 나에게는 천국으로 통하는 문이 된 것이다. - P205

자기 힘과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던 어느 날, 더 이상 수고할 힘조차 없을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로마서 8:15~16 말씀을 통해 은혜의 빛을 그(조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에게 비추시기 시작했다. 그는 그 거듭남의 체험을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거운 짐을 치워주사 나로 하여금 살아 있는 믿음으로 그분의 존귀하신 아들을 붙잡을 수 있게 하셨다. 오! 죄의 무게가 사라지고 수심에 잠긴 내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내 영혼은 얼마나 큰 기쁨으로 가득하였던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이었다. 그날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날이었다. 분명히 내 기쁨은 마치 홍수처럼 강둑을 넘쳐 범람하였다." - P208

다들 어느 순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성경말씀을 통해서, 혹은 거듭난 사람들의 간증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죄가 완전히 용서되었다는 것이 믿어지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참교회인 것이다. - P208

참교회는 하나님이 만드시고 하나님이 이끌어가시기에 인간의 제도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규정되는 것이다. 물론, 그 역사는 사람들이 거듭나는 일이다. - P208

내가 어떤 교회를 진단하는 기준은 종파나 자격증이 아니라 복음이다. 그런데 이 복음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나타나는 의식이 침례이기에, 침례를 언제 어떻게 주는지도 참교회를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기준 중의 하나이다. - P209

교회나 성당에서 주는 세례는 원래 온몸이 물에 잠기었다가 일어나는 침례이어야 한다. 로마서 6장 등을 보면 침례는 죄인이었던 자신이 죽고, 의인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구원의 증표이기에 자신의 죄가 모두 용서받았다는 사실이 마음으로 온전히 믿어진 사람에게만 주어야 한다. - P210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_로마서 6장 3,6~7절 - P210

많은 교회나 성당은 일정 기간 공부를 시킨 후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을 하면 세례를 준다. 믿음1만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구원을 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걸로 착각한 채 살게 된다. 진정한 평화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을 때, 즉 죽은 후에 천국에 가게 되었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오는 것이기에, 믿음1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며 "평화다" , "평화다" 해봤자 그 마음에는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는다. - P210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Peace)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_예레미야 6장 14절 - P211

성경에는 세례를 주기 전에 해야 하는 질문의 예시가 나온다. 침례를 받겠다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제자 빌립은 이렇게 말한다.

"If you believe with all your heart, you may (......) "
_사도행전 8장 37절

분명히 ‘all your heart‘로 믿어진 건지 물어보는 것이다. 마음속 한구석에 있던 의심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온전히 믿어진 믿음, 즉 ‘믿음2‘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확인도 없이 세례를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세례를 주는 사람 역시 그런 믿음을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 P211

구원을 받지 않았는데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구원을 해달라고 부르짖는 사람을 구원해주신다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 P211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_시편 145장 19절 - P212

성경에는 ‘마음의 눈‘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구원해주실 때 열리는 eye of understanding 즉,
깨달음의 눈인 것이다. - P2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_에베소서 1장 17~19절 - P212

구원을 못 받은 사람은 이 눈(마음의 눈)이 닫혀 있기에 성경에선 장님이라고 표현한다. - P2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blind)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_요한복음 9장 41절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받은 줄 알고 있으면 구원받을 길이 없어진다는 말씀이다. - P212

따라서 복음이 마음에서 완전히 믿어졌다고 하면 교회에 나온지 며칠 만에라도 세례를 줘야 하고, 아직 안 믿어진다고 하면 5년, 10년이 지나도 세례를 주면 안 된다. - P213

당신의 교회에는 몇 년째 교회를 열심히 나오면서도 죄사함에 대한 확신이 없어 세례를 못 받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한 명도 없다면 참교회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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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 저자는 박민규 저자가 쓴 단편 소설 《근처》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이 주인공은 암 선고를 받은 뒤 평생 원하는 삶의 ‘근처‘만 맴돌았다며 그간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바로 위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누구든 선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못마땅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선 용기가 정말로 필요한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지금이다. 지금하지 않으면 언제가 될 지 기약할 수 없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깨닫고 후회한다면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서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원하는 삶의 근처를 맴도는 일을 당장 멈추는 것. 그리고 내 근처의 사람들을 더 자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고. 그것들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오로지 용기뿐이라고. - P42

빨리 시도했다면 두 달이란 시간을 아꼈을 것이다.
고민만 하는 것보다 빨리 실패하는 게 훨씬 낫다. - P43

목표를 높게 잡으면 성취의 크기도 커진다. ‘노력의 기본값‘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높은 목표를 가진 사람의 ‘최소 노력‘이 낮은 목표를 가진 사람의 ‘최대 노력‘일 수 있다. - P44

한번 형성된 노력의 기준은 다른 일을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적게 노력하던 사람은 계속 적게, 많이 노력하던 사람은 계속 많이 노력한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하는 이유다. - P44

결국 성취의 크기는 애초에 얼마나 높은 목표를 설정했느냐에 달려 있다. - P44

‘빨리‘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마음이 급한 탓에 남을 따라 하거나,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거나, 편법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면 잠깐 잘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금방 들통난다. - P45

빨리 성공하려면 오히려 느려야 한다. 본질에 집중하고 남과 다르기 위해 오래 고민해야 한다. 천천히 ‘정도‘를 걸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게 가장 빨리 성공하는 길이다. 그렇게 이룬 성공은 오래간다. 차근차근 쌓아온 만큼 기반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 P45

된다고 생각하면 되고,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 P47

생각은 행동에 영향을 주고, 행동은 결과를 결정한다. 결국 생각이 삶을 이끈다. 생각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 P47

최고의 시간 관리법은 ‘할 일을 아주 작게 쪼개는 것‘이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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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앞부분에 나온 프롤로그와 목차를 살짝 읽어봤는데 저자가 그동안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느끼고 깨달아온 것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일단 가볍게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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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오늘 읽었던 내용 중에 행복에 관한 간단한 산식 하나가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직관적으로 납득이 되는 산식처럼 느껴졌다. 행복은 가진 것을 원하는 것으로 나눈 값이라는 건데, 이 산식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다보니 아주 직관적인 결론들을 다양하게 뽑아낼 수 있었다.

저자가 본문에 쓴 내용은 아니지만 예를들어, 원하는 것이 없다는 의미로 숫자 0 을 위의 산식에 대입하면 가진 것이 0 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행복은 무한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가진 것은 적지만 원하는 것이 점점 커진다면 행복 값은 이에 반비례하여 점점 작아진다. 그래서 욕심(원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객관적으로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불행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본문에서 직접적인 명칭을 덧붙이진 않았으나, 독자인 나는 이것을 일종의 ‘행복 방정식‘ 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여기서 가진 것은 분자이고 원하는 것은 분모다. 분자는 클수록 행복이 커지지만, 분모는 클수록 행복이 작아진다. 만약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이 ‘행복 방정식‘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행복감을 올릴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면 좋을 듯하다.

재미없는 일을 해서 성공하면 평생 그 일을 해야 한다.
더 잘되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고문이 따로 없다. - P13

삶의 질은 ‘판단력‘에 달려 있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떤 배우자를 만날 것인가, 언제 시작하고 언제 그만둘 것인가. 중요한 결정을 앞뒀을 때 좋은 판단을 해야 삶의 질이 올라간다. - P14

좋은 판단이란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을 만한 판단이다. ‘그러길 참 잘했다‘라고 느낄 만한 판단이다. - P14

판단력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 자신을 잘 안다. 스스로 판단해 본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판단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스스로 판단해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을 몰라서 남 이야기만 듣고 판단한다. 결과가 나와서 매듭을 지어야 할 때도 남 의견을 따른다. - P14

스스로 판단하는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그것이 판단력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 P16

‘높이‘보다 ‘깊이‘가 중요하다. - P16

쉬운 길은 결코 없다. - P16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깊어진다는 것은 이미 방향이 정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확고한 방향으로 차분히 나아가며 점점 깊어진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영역을 구축한다. 결국 높이를 추구하는 사람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 ‘높이‘보다 ‘깊이‘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 P16

우리는 흔히 대화를 통해 ‘남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화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다‘라는 점에 있다. - P17

말에는 마음을 정확히 묘사하는 힘이 있다. - P17

대화 상대의 의견에 관한 ‘감정‘도 자기 생각을 더 분명히 알게 만든다. - P17

대화는 단순히 남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다. - P17

20대엔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는 게 좋다. 그래야 자신에게 꼭 맞는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18

직접 해보니 ‘느낌‘이 생겼다. 좋다 싫다, 쉽다, 어렵다, 재미있다. 지루하다. 그 느낌을 토대로 이 일을 계속할지 말지 판단했다. 재미없으면 당장 그만두고 더 재미있어 보이는 걸 좋았다. 결국 ‘가장‘ 재미있는 일을 찾았다. 재미있게 하다 보니 돈을 벌었고 그러다 보니 그게 내 직업이 되었다. - P19

무엇을 하든 항상 최선을 다했다 - P19

전력을 다하고 돌아서니 나중에 미련이 남지 않았다. - P19

한번 할 때 최선을 다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길이다. - P19

항상 질문했다. ...(중략)... 어떤 일에 도전하든 시작 전에 그 길을 먼저 간 선배들에게 물었다. 거기까지 어떻게 갔는지, 도착하고 나서 어땠는지, 후회되는 건 없는지. 덕분에 많은 시간과 돈, 에너지를 아꼈다. 용기 내어 묻지 않았다면 그 자원들을 꽤 낭비했을 것이다. - P20

수준 높은 질문을 해야 한다. 사전 조사를 충분히 했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 있을 때 물어야 한다. - P20

그가 보인 성의에 최소한의 보답을 해야 한다 - P21

남의 조언은 유용하다. 하지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 특히 남의 조언만 듣고 자기 길을 결정하는 건 위험하다. 그 사람과 당신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걸 경험해도 완전히 다르게 느낄 수있다. 조언을 귀담아듣되 ‘직접‘ 해봐야 한다. 자기 느낌을 토대로 결정해야 한다. - P22

우리는 늘 ‘어떻게‘에 집착한다. 어떻게 하면 합격할까, 어떻게 하면 승진할까,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
하지만 중요한 건 ‘왜‘다. 왜 합격해야 하는지, 왜 승진해야 하는지, 왜 돈을 더 벌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묻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목표를 이룬 뒤에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니었어‘라는 후회를 마주할 수 있다. - P23

마침내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이 들 때 다시 시작했다. ‘왜‘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니 다시 의욕이 솟고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 P23

무엇을 ‘오래‘, ‘반복‘해 왔는지 떠올려 본다. 하고 싶은 일은 그 안에 있다. - P25

무언가를 ‘오래‘, ‘반복‘한다는 건 그 일을 할 때 스트레스가 없다는 뜻이다. 즐겁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하고 싶다는 뜻이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은 자신이 ‘오래‘, ‘반복‘해 온 것들 중에 있다. - P25

"하기 싫으면 ‘핑계‘를 찾고, 하고 싶으면 ‘방법‘을 찾는다" - P26

어떤 일을 할 때 ‘핑계‘를 찾고 어떤 일을 할 때 ‘방법‘을 찾는지 돌아보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 P26

내 눈에 멋있어 보이는 사람을 떠올려 본다. 그 안에 나의 욕망이 담겨 있다. - P27

세상 공부만큼 사람 공부도 필요하다. 어딘가에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롤 모델이 있을 것이다. 그가 하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일지도 모른다. - P27

자신을 알고 싶다면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된다. 그 순간들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 P28

당신은 언제 행복했는가. 그 순간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경험‘, ‘타인의 인정‘, ‘평화로운 일상‘ 혹은 ‘사랑‘일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자주 떠올려서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결정을 내릴 수 있다. - P28

때로는 욕망을 무작정 따르기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 P30

"제품이 소비자에게 닿는 과정을 하나의 선으로 표현하면 맨 왼쪽이 제조업, 맨 오른쪽이 유튜버야. 요즘은 유튜버가 광고를 통해 소비자를 직접 설득하잖아. 그러니 네가 제품을 만들어도 결국 유튜버에게 돈을 주고 홍보해야 해. 그럴 바엔 차라리 네가 유튜버가 돼서 여러 제품의 광고를 받는 게 낫지. 사업은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한 거야. 꼭 네가 제품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 - P30

내가 필요한 돈보다 조금 더 벌고 있다고 느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재미를 좇았기 때문이다. 재미있어서 열심히 한 것들이 내 핵심 역량이 됐고 그게 돈으로 이어졌다. - P31

항상 내 고유의 재미를 좇았다. 길이 없어 보여 막막할 때도 있었지만 덕분에 남들과 조금 다른 능력을 갖게 됐고, 그 덕에 부족하지 않은 수입을 올린다. 어떤 분야에서든 ‘나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 P31

나만의 재미를 좇다 보면 남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다른 삶‘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콘텐츠다. 사람들은 남들과 비슷하게 살고 싶어하면서도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 P32

스토리는 자산이다. 영향력이 되고 돈이 된다. 자신만의 재미를 좇아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 내려가도 괜찮은 이유다. - P32

‘실력‘ 차이가 아니라 ‘취향‘ 차이였다. - P34

재미가 아닌 ‘이력‘, ‘돈‘, ‘효율성‘을 좇았을 때마다 어김없이 후회했다. 이후에는 줄곧 재미만 좇는다. - P34

재미를 좋으니 모든 일에 능동적으로 임하게 된다. 억지로 할 때보다 성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월요일을 기다릴 정도다. - P34

재미를 좇아서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재미가 답이다. - P34

가난은 어쩌면 핑계일 수 있다. - P36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걸로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다. ‘크리에이터‘라는 직업 덕분이다. - P37

뭘 하든 그것을 매력적인 콘텐츠로 승화시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 관심이 커지면 인기와 영향력을 얻기도 한다. - P37

진로를 정할 때 반드시 기존 직업 중에서 고를 필요는 없다. 자신의 구체적인 흥미를 직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도 테스트해 봐야한다. 쉽지 않지만, 해낸다면 꽤 즐거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 P37

"네가 하고 싶은 공부 열심히 해. 돈은 다음 문제야. 넓게 봐야지." - P39

행복 = 가진 것 ÷ 원하는 것 - P40

그제야 깨달았다. 과정의 즐거움이 고통으로 바뀌는 순간, 그 고통을 견디며 나아가려면 목표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 P40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무엇이 하고 싶은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 P40

어느 언론사에서 40대에 성공한 사람들의 과거를 조사했더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20~30대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는 것이다. 당장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안 맞으면 또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식으로. 그러다 가장 맞는 일을 발견하고 10년쯤 몰두한 후에 성공했다고 한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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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 후반부에서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인 선악과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인간의 조상이라고 알려진 아담이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원죄를 짓게 되어 그 이후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이 죄인이 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성경에 따르면 죄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데, 아담의 원죄로 인해 날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어떤 행동을 하든 관계없이 천국에 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죄를 용서받아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저자가 자신이 직접 성경공부를 하면서 구원에 대해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깨달은 것을 본문에 논리정연하게 정리해놓았는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게 어떤 건지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
_로마서 6장 23절 - P174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_로마서 3장 10절 - P174

사람이 행동을 올바르게 해서 천국에 갈 확률은 없다. - P174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_로마서 3장 20절 - P174

의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죄를 모두 용서받는 것이다. - P174

예수님은 2천 년 전 이 땅에 오실 때 나란 사람이 언제 태어날지, 그리고 평생 어떤 죄들을 지을지 다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전부 미리 책에 기록해 놓으셨다고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기 제자 가룟 유다가 자기를 배신할 것을 미리 아셨고(요한복음 6:70), 베드로가 자기를 부인할 것도 미리 알고 계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6:34). - P175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_시편 139장 16절 - P175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 미래를 알고 계시는 것이지, 정해놓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순전히 우리의 자유의지, 우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은 그 결과를 미리 아시는 것뿐이다.
만일 우리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우리의 인생의 모든 일도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이나 지옥에 보내실 명분이 없다. - P175

‘모든 인간의, 모든 죄‘를 하나님은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모든 죄를 자신의 분신인 예수님께 뒤집어씌워서 우리 대신 벌을 받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인간의 모든 죄‘를 성경은 ‘세상 죄‘, ‘땅의 죄‘라고 말한다. - P176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_요한복음 1장 29절 - P176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_스가랴 3장 9절 - P176

이 ‘세상 죄‘ 안에는 당연히 내 죄도 들어 있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내 모든 죄는 처리된 것이다. 내가 아직 짓지 않은 미래의 죄들까지도. 만일 그게 아니라면 성경은 ‘죄로부터 해방되었다‘,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 P17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_요한복음 8장 34절 - P17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_로마서 6장 17~18, 22절 - P177

근데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셨을까?
왜 인간의 몸으로 와 나 대신 벌을 받으셨을까? 그건 하나님이 우리 진짜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생물들을 만드실 때 유일하게 인간만 자신의 모습을 닮게 만드셨다. - P17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_창세기 1장 27절 - P178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를 한 명, 한 명 어머님의 배 속에서 만들고 계신다. 부모님은 우리를 낳고 길러주었지만 실제로 배 속에서 우리를 만들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 P178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
_시편 139장 13~14절 - P178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이유는 사람이 자식을 낳는 이유와 같다. 사랑을 부어주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랑을 받으려면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대신 내어준 부모님이라는 사실이다. - P178

대가를 지불하고 무언가를 되찾아오는 것을
‘구속‘이라고 하고, 그것을 누가 대신해주는 것을
‘대속‘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 죗값을 대신 치뤄주시고 대속해주셨다는 기쁜 소식을 ‘복음‘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복음은 부모가 자식의 모든 죄를 대신 벌받은 후에 남긴 약속이다. - P179

내가 네 허물을 뻑뻑한 구름같이,
네 죄를 안개같이 없이하였으니(지워버렸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_이사야 44장 22절 - P179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였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_히브리서 10장 17~18절 - P179

(......)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_이사야 38장 17절 - P17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_이사야 1장 18절 - P180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_고린도후서 5장 21절 - P180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_베드로전서 2장 24절 - P180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 _이사야 53장 5절 - P181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처리해놓고 기다리고 계시기에,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지옥에 가게 되는 이유도 이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 P181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_요한복음 16장 9절 - P181

복음이 마음에서 완전히 사실로 믿어졌다면 지옥에 갈 죄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지는 것이기에, 성경엔 구원받은 사람들이 ‘약속을 가진 자들‘로 표현되어 있다. - P18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_고린도후서 7장 1절 - P182

약속을 ‘받기 위해‘ 올바르게 사는 것이 일반 종교의 교리라면, 약속을 ‘받아놓고‘ 올바르게 살자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종교가 주는 구속과 성경이 주는 자유의 차이이다. - P18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_요한복음 5장 24절 - P182

우리는 ‘의롭게 됐다‘, ‘거듭났다‘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자유케 됐다‘, ‘성령을 받았다, ‘영생을 얻었다‘, ‘평화를 얻었다‘ 등의 표현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믿어지는 순간이 오기 전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 P183

죄사함, 즉 죄를 완전히 용서받음으로써 성취된다 - P183

자신의 과거 죄와 미래 죄 모두를 완전히 용서받았다는 것 - P183

마음속에 있던 의심이 사라지면서 복음이 완전히 믿어지는 믿음은 인간이 결심하고 노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런 완전한 믿음은 인간 안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어느 순간 말씀을 통해 넣어주실 때만 가능하다. - P186

성경을 자세히 보면 믿음은 ‘인간의 믿음‘과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믿음‘,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186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 (......)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_요한복음 8장 31, 46절 - P186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_마가복음 9장 24절 - P18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_로마서 1장 17절 - P187

만일 믿음이 두 가지 종류가 아니라면 위의 세 구절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 P187

믿음1(인간의 믿음)만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 - P188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믿음1),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 _요한복음 2장 23~24절 - P188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믿음2)
_요한복음 2장 22절 - P189

믿음1은 인간이 믿기로 결심하는 것, 믿으려 노력하는 것, 즉 인간 안에 있는 믿음이다. 믿음2는 어느 순간 믿어져버리는 것, 안 믿으려 해도 안 되는 것, 즉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믿음이다. 믿음1은 본인이 믿으려고 결심하는 능동적인 행위인 반면, 믿음2는 본인에게 일어나야 하는 수동적인 사건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2를 설명할 때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 P18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common salvation)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믿음2)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_유다서 1장 3절 - P190

‘믿음‘(믿음2)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_갈라디아서 3장 25절 - P19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_에베소서 1장 17~19절 - P190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_누가복음 24장 45절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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