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의 소제목은 ‘거울에 비치는 것, 거울에 비치지 않는 것‘ 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거울의 속성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자면, 현실 세계에서 거울은 사물이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동일하게 비춰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속성에 자신의 상상력을 한 스푼 더 얹어서 본문을 통해 현실에 있는 것과 현실에 없는 것을 동시에 나타내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등장인물 중에 양 사나이라는 다소 독특한 외형을 가진 캐릭터가 있는데, 이 양 사나이가 실제 현실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양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현실과 비현실이 오버랩되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일들이 어디까지가 진짜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비현실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명확한 답이 있다기보다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라고 던져준 숙제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 끄적여본 내용을 좀 더 일반화해서 얘기해보자면 거울 밖의 실제 내가 존재하는 세계와 거울 속에서 움직이는 세계는 물론 똑같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겠지만 또 항상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보는 세계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 사이에 차이라는 것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만약 내가 보는 거울이 완전히 투명하고 깨끗한 거울이라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겠지만, 혹시라도 그 거울의 일부분이 오염되어 있다든가 아니면 그 거울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뒤틀려있는 경우라면 설령 거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더라도 그것은 100% 정확한 현실이 아닌 왜곡된 현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독자인 내가 이래저래 끄적여본 내용들이 전체 본문의 맥락에서 엄청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듯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볼 수 있게 해줬다는 측면에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새 맥주를 가지러 부엌으로 갔다. 계단 앞을 지날 때 거울이 보였다. 또 한 사람의 나도 역시 맥주를 가지러 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치 <덕 수프Duck Soup>의 그루초 막스와 하포 막스처럼. - P218

<덕 수프Duck Soup> : 레오 매커리 감독의 1930년작 코미디 영화. 똑같은 나이트가운에 산타 모자를 쓰고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나온 막스 형제가 서로를 바라보며 거울을 보는 듯 연기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 P218

내 뒤로 거실이 비치고 있었다. 내 뒤의 거실과 거울 속의 거실은 같은 거실이었다. 소파도 카펫도 시계도 그림도 책장도 모든 것이 똑같았다. 그다지 멋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내기에는 나쁘지 않은 거실이다. 그런데 뭔가가 달랐다. 아니, 뭔가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P218

나는 냉장고에서 파란색 뢰벤브로이 캔을 꺼내 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거울 속의 거실을 바라보고, 그리고 진짜 거실을 바라보았다. 양 사나이는 소파에 앉아서 여전히 멍하니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거울 속 양 사나이의 모습을 확인해보았다. 그러나 양 사나이의 모습은 거울 속에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 휑뎅그렁한 거실에 응접세트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거울 속의 세계에서 나는 외톨이였다. 등골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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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인공지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딥러닝의 다양한 모델 패턴들 중에서 ‘합성곱 신경망‘이라는 것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이미지 인식에 적합한 알고리즘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모델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잘 생각해본다면 필연적으로 이미지 인식에 적합할 수밖에 없는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합성곱 신경망은 이미지 인식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불러온 알고리즘이다. 이 알고리즘은 합성곱층 Convolution layer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합성곱층을 공부하면서 패딩padding, 필터filter, 스트라이드stride, 풀링층Pooling layer도 함께 공부하자. - P178

합성곱 신경망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변수간의 지역적인 특성을 모델에 응축한다는 것이다. 이미지 데이터의 경우 각 픽셀 값들이 하나하나의 독립변수가 된다. 기존 심층 신경망의 경우 변수간의 관계가 독립적으로 학습이 된 것에 반해 합성곱 신경망은 변수간의 지역적 관계가 모델학습에 적용된다. 즉 심층 신경망이 바로 옆에 있는 픽셀 값들을 독립적으로 학습했다면 합성곱 신경망은 바로 옆에 있는 픽셀 값들은 모델에 함께 응축되어 학습되는 것이다. 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합성곱층이다. - P179

수학적으로도 어떻게 합성곱 신경망이 동작하는지 공부해보도록 하자.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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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본문의 스토리 맥락에서 큰 비중이 있다거나 특별히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무엇이 정말로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우리의 신체 중에 무엇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이 사례처럼 생계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라면 그 소중함의 무게가 좀 더 묵직하게 느껴질 듯하다.

대개의 기타리스트는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손가락을 다치게 되면 존재 이유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 P25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나에 대한 단순한 기억에 지나지 않아." - P26

"산은 그것을 보는 각도, 계절, 시각 또는 보는 사람의 기분 하나에도 그 모습을 싹 바꾸어버리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산의 일부분, 아주 하찮은 일부분만 파악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P30

나는 성교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그것은 뭔가 한정된 형태의 가능성을 연상케 한다. - P33

"자네는 사념思念만이 존재하고 표현이 뿌리째 뽑힌 상태를 상상할 수 있는가?"라고 양 박사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지옥이지. 사념만이 소용돌이치는 지옥이야. 한 줄기의 빛도 없고 한 움큼의 물도 없는 땅속의 지옥이지. 그리고 그것이 지난 42년간의 내 생활이었네." - P60

"양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대체 어떤 느낌이죠?"
"특별한 건 없네. 그저 양이 있다고 느끼는 것뿐이지. 아침에 일어나서 느끼는 거야. 양이 내 속에 있다고 말이야. 아주 자연스런 느낌이지." - P62

"양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중국 북부, 몽고 지역에서는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라네. 그 사람들 사이에서는 양이 체내에 들어온다는 것은 신의 은총이라고 여겨지고 있지. 예를 들어서 원元나라 시대에 출판된 어떤 책에는 칭기즈칸의 체내에는 ‘별을 짊어진 백양‘이 들어가있었다고 쓰여 있지." - P63

"사람의 체내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은 죽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있다네. 그리고 양을 체내에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죽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나 양이 달아나버리면, 그 불사성不死性도 상실되는 거지. 모든 것은 양에 달린 거네. 양은 마음에 들면 몇십 년이라도 같은 데에 있고, 마땅찮으면 홱 나가버리지. 양이 달아나버린 사람들은 보통 ‘양이 빠져나간 사람‘이라고 불리는데, 즉 나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거네." - P63

"나는 양이 내 몸속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줄곧 양에 관한 민속학이라든가 전승을 연구하기 시작했네.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오래된 책을 뒤져보기도 했지. 그러던 중 사람들 사이에 내 속에 양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것이 내 상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네. 내 상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지. 그리고 나는 ‘정신착란‘이라는 딱지가 붙여져 본국으로 소환되었어. 이른바 식민지병이라는 거지." - P63

"근대 일본의 본질을 이루는 어리석음은, 우리가 아시아의 다른 민족과의 교류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거네. 양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지. 일본에서의 면양 사육이 실패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양모 식육의 자급자족이라는 관점에서만 파악되었기 때문이고, 생활에서의 사상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었던 거네. 시간을 따로 떼어 결론만을 효율적으로 훔쳐내려고 한 거야. 모든 일이 그래. 다시 말해서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은 거지. 전쟁에 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 P64

"양의 목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모르지"라고 양 박사는 내뱉듯이 말했다. "그걸 알 수 없다네. 양은 내게는 아무것도 일러주지 않았거든. 하지만 놈에게는 뭔가 거대한 목적이 있었지. 그것만은 나도 알 수 있었어. 인간과 인간의 세계를 변화시킬 만한 거대한 계획 말이야." - P64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이미 양의 자취는 없었어. 그제야 비로소 나는 ‘양이 빠져나간 사람‘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네. 한마디로 지옥이야. 양은 사념만을 남겨두고 간거야. 그러나 양 없이는 그 사념을 방출할 수 없어. 그것이 ‘양이 빠져나간 사람‘이라는 거지." - P65

나는 양 박사를 떠난 뒤의 양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양이 옥중의 우익 청년의 체내에 들어갔다는 것. 그는 출옥하여 곧 우익의 거물이 되었고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 정보망과 재산을 쌓아 올렸다는 것. 전쟁 후 A급 전범이 되었으나, 중국 대륙에서의 정보망과 교환한다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는 것. 대륙에서 가지고 돌아온 재산을 밑천으로 전후의 정치·경제·정보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장악했다는 것 등등. - P66

"‘양이 빠져나간 사람‘에게 있어서 어설픈 의식 따위는 차라리 없는 게 편하다네." - P66

"그 인물의 경우도 나와 마찬가지야. 이용가치가 없어진 거지.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고, 양은 한계에 이른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어. 아마 그는 양이 진짜로 원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겠지. 그의 역할은 거대한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고, 그 역할이 끝나자 버림받은 거지. 마치 양이 나를 수송 수단으로 이용했듯이 말일세." - P67

"나는 그 양에는 더 이상 말려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내가 그 좋은 예지. 그 양에 말려들어 행복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왜냐하면 양의 존재 앞에서는 일개 인간의 가치관 따위는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네. 그러나 어쨌든 자네에게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 - P71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거야." - P73

"나도 가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도대체 무얼 찾으면 되는 것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르는 겁니다. 저의 아버지는 줄곧 무엇인가를 찾으시던 어른이랍니다. 지금도 찾고 계시죠. 저도 어려서부터 계속 아버지의 꿈에 나타났던 흰 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지요. 그래서인지 인생이란 그런 것이구나, 라고 믿어버리게 된겁니다.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것이 진짜 인생이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 P74

"양 박사의 역할은 끝났어. 그 뒤의 양의 행적은 우리가 찾아야만 한다고." - P75

아이누 : 일본의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 열도 등지에 분포하는 소수민족. - P80

이시카리가와 : 홋카이도에 있는, 일본의 3대 강 중의 하나. - P80

사일로 : 곡식 · 마초 등을 저장하는 탑 모양의 건축물. - P93

현재가 현재이기를 포기해버린다면 역사는 역사가 아닌 게 되어버린다. - P95

역사는 조금씩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있었다. - P100

사람들은 모두 무관심과 권태라는 굵은 고삐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 P103

"걱정 마, 아무리 형편없는 마을에도 여관은 반드시 있는 법이거든." - P108

"16세기의 스페인에서는 양을 몰 때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온 나라에 있어서 임금님도 거기는 들어가지 못했다는군." - P120

"어쨌든 양은 겁만 먹지 않으면 온순한 동물이어서 개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니까." - P120

"댁은 자신의 인생을 따분하다고 생각하나?"
"모르겠어요."
"양도 비슷하겠지"라고 관리인은 말했다.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해봤자 알 턱도 없을 테니까. 마른풀을 먹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도 하고, 가벼운 싸움도 하고, 배 속의 새끼 생각도 하면서 겨울을 나는 거지." - P133

"양들도 싸움을 하나요?"라고 그녀가 물었다.
"잘 싸우지"라고 관리인은 말했다. "무리 지어서 행동하는 동물은 모두 그렇지만, 양의 사회에서도 양마다 확실한 서열이 정해져 있어. 한 울타리 속에 50마리의 양이 있으면 서열1위부터 50위까지 있지. 그리고 모든 양이 자신의 위치를 똑바로 인식하고 있어."
"대단하네요"라고 하는 그녀.
"그래서 관리하기가 쉬운 거야. 제일 높은 서열의 양을 끌고가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니까." - P135

"어떤 양이 다쳐서 힘을 못 쓰게 되거나 하면 서열이 불안정해지거든. 그러면 그 아래의 양이 위로 올라오려고 도전하지. 그렇게 되면 사흘가량은 우당탕거리며 소란을 피워대는거야." - P135

"그런데 제일 불쌍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씨받이 수컷이지. 양의 하렘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들어본 적 없다, 라고 우리는 말했다.
"양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교미의 관리야. 그러니까 암컷은 암컷끼리, 수컷은 수컷끼리 격리시킨 다음 암컷 우리 속에 수컷을 한 마리만 넣어주는 거야. 대개 제일 강한 서열 1위의 수컷이지. 다시 말해서 가장 좋은 씨를 받는 거야.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나면 씨받이 수컷은 원래의 수컷 우리로 되돌아 오는데, 그동안 우리에서는 새로운 서열이 정해지게 되지. 씨받이 수컷은 교미를 한 덕분에 체중이 절반이나 준 형편이니까 어떤 놈과 싸워도 승산은 제로야. 그런데도 다른 모든 양과 차례로 한 번씩은 싸워야 하니 참담한 거지." - P136

"양은 어떤 식으로 싸우나요?"
"머리로 박치기를 해. 양의 머리는 무쇠처럼 단단하고 속이텅 비어 있어." - P136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확실히 낡게 마련인가 보다. - P150

음악은 사상만큼 기억 속에서 퇴색하지 않는다. - P158

주위의 모든 사물을 흐르는 대로 맡겨두는 수밖에 없었다. - P163

어딘가에서 초점이 어긋나 진짜 나는 현실의 내가 아니게 되고 만 것이다. - P166

그녀가 없어 쓸쓸했지만, 쓸쓸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구원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쓸쓸함이라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작은 새들이 날아가버린 뒤의 고요한 모밀잣밤나무 같았다. - P168

여기서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지 않으면 시간에 대한 정상적인 감각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 P169

아무리 생각해본들 이치에 닿지 않는 상황에서 이치에 닿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72

두 지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기묘한 일이었다. 멀리 떨어진 대지 위에서 사람들이 지금도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무엇보다도 사회가 나를 배제한 채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가장 기묘했다. - P173

"가끔 말이지, 그, 양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부딪쳐서 그렇게 된다고. 뭐 나쁜 뜻이 있었던 건 아니야. 게다가 당신도 나를 책망하는 듯한 말을 해서." - P182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양 사나이는 동물과 똑같다. 이쪽이 가까이 가면 물러서고, 이쪽이 물러서면 다가온다. 계속 여기에 있을 거라면 서두를 필요는 없다.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캐내면 되는 것이다. - P184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면 특별히 알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나는 이미 필요한 만큼의 걱정거리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 P194

요컨대 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나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다. - P196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207

혼란이 가라앉자 이번에는 울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기괴하고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쥐는 뭔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검은 옷의 남자도 뭔가를 알고 있다. 나만 아무것도 모른 채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은 모두가 어긋나 있고, 내 모든 행동은 헛다리를 짚고 있다. 물론 내 인생은 항상 그런 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는 누구도 책망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이런 식으로 나를 이용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용하고, 짜내고, 때려눕힌 것은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정말 마지막 한 방울이었던 것이다. - P208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고 지금 당장에라도 산을 내려가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가장 간단한 일은 소리 내어 울어버리는 것이었지만 울 수도 없었다. 훨씬 뒤에 내가 정말로 울어야 할 뭔가가 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 P209

모든 것이 나와는 관계없이 전개되고 있다. 나의 존재와는 관계없이ㅡ누구의 존재와도 관계없이ㅡ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다. 눈은 내리고 다시 눈은 녹는다. - P212

"나에게도 화를 낼 권리는 있어"라고 나는 말했다. 나 자신을 향해 한 말이기도 했다. 나에게도 화를 낼 권리는 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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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쫓는 모험 -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신태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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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속에서 독자들에게 뭔가 생각할거리들을 지속적으로 던져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독자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소설 속에 나온 문장의 의미를 상상해보거나 곱씹어가며 읽어나가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권을 집중해서 끝까지 읽었다면 하권에서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 자연스레 궁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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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원 미상의 남자의 부탁을 받고 여자친구와 함께 특정한(?) 양을 찾으러 떠나기로 한다. 근데 이 여정이 최소 1달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보이자 기르던 고양이를 위에서 언급한 신원 미상의 남자에게 맡기기로 한다. 오늘 처음 밑줄친 부분에서는 ‘나‘가 고양이를 부르는 별도의 이름이 그동안 없었음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에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 뭔가 철학적으로 느껴졌다. 독자인 나의 철학적인 지식이 부족한 관계로 이 말이 어떤 철학자와 관련이 있는지까지는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만드는 문장임은 분명해보인다.

근데 글을 쓰다보니 문득 ‘데카르트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뭐 이런 말 있지 않나? 물론 아닐수도 있겠지만...
.
.
.
뒤이어서는 ‘나‘와 신원 미상의 남자 밑에서 일하는 어느 운전사와의 다소 추상적인(?) 대화가 오가는데, 어떤 사물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가는 듯한 모습이 나름대로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름이 뭐죠?"
"이름은 없어요."
"그럼 뭐라고 부르지요?"
"부르지 않아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에요." - P272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 아닙니까?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데 이름이 없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은데요?"
"정어리도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지만, 아무도 이름 같은 건 붙이지 않아요."
"하지만 정어리와 인간 사이에는 우선 마음의 교류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데다 제 이름이 불린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야 뭐, 붙이는 건 자유겠지만." - P272

"다시 말해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고 인간과 마음을 교류할 수 있으며, 게다가 청각을 가진 동물만 이름이 붙여질 자격이 있다는 말이 되겠군요." - P272

"그렇다면 목적성이라는 것은 이름에 있어서는 양의적인 요소겠네요?"
"그렇습니다. 목적성만이라면 번호면 되지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이 당한 것처럼 말이지요." - P276

"하지만 말이죠, 만약에 이름의 근본이 생명의 의식 교류 작업에 있다면 왜 역이나 공원, 야구장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요? 생명체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중략)...
"호환성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예를 들어서 신주쿠 역은 하나밖에 없고 시부야 역과 바꿀 수는 없잖아요. 호환성이 없다는 점과 공장에서 생산되는 대량 생산물이 아니라는 점. 이 두 가지면 어떻습니까?" - P276

"그렇다면 그것은 물체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역할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뜻이 되겠군요. 그건 목적성이 아닌가요?" - P277

"가령 내가 의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어딘가에 꽉 고정되었다고 하면, 내게도 훌륭한 이름이 붙을까요?" - P278

"비행기 덕분에 열 시간 이상이나 시간이 절약되는 셈 아냐? 그만큼의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시간은 아무 데도 안 가. 가산될 뿐이지. 우리는 그 열 시간을 도쿄에서든 삿포로에서든 마음대로 쓸 수가 있는 거야. 열 시간이면 영화를 네 편 보고 식사를 두 번 할 수 있지. 안 그래?"
"영화도 보고 싶지 않고, 식사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건 그쪽 사정이지. 시간 탓은 아니야." - P281

"있잖아, 시간은 팽창해?"라고 그녀는 내게 물었다.
"아니, 시간은 팽창하지 않아"라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말했는데도 전혀 내 목소리 같지 않았다. 나는 헛기침을 한 다음 가져온 커피를 마셨다. "시간은 팽창하지 않아."
"하지만 실제로 시간은 늘어나고 있잖아. 당신이 말했듯이 가산되고 있고."
"이동에 필요한 시간이 줄었다는 것뿐이야. 총 시간은 변하지 않아. 단지 영화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것뿐이란 말이야."
"영화를 보고 싶다면 말이지?"라고 그녀는 말했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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