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야 환자의 앞날이 불확실할수록 좋지. 서로 충돌하는 미래의 모습들이 마음을 온통 채운 채 희망이나 두려움을 번갈아가며 불러일으킬 테니까. 원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기에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 하는 일에 신경을 쓰기 바라지만, 우리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 - P42
물론 네 환자도 인내하며 원수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주워 들었을 게다. 원수가 의미하는 바는 뭐니뭐니해도 실제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ㅡ현재의 걱정과 불안ㅡ을 인내로써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건 바로 이 부분에서 그렇게 해 달라는 기도이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것도 바로 이것을 매일 감당하기 위한 기도지. - P43
네 임무는 환자가 현재의 두려움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생각을 절대 못 하게 하는 한편, 오로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미래의 일들에만 줄창 매달려 있도록 조처하는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일들이야말로 제 십자가라고 믿게 만들거라. 그렇게 서로 어긋나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은 환자의 뇌리에서 싹 지워 버리고, 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에만 미리 마음을 굳게 다지며 인내심을 발휘하려고 애쓰게 하거라. - P43
열 가지도 넘게 가정해 놓은 서로 다른 운명들을 진짜로 동시에 받아들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다가, 그런 일을 하려고 덤비는 인간들에게는 원수도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현재 실제로 겪고 있는 고난이라면야 아무리 두렵다해도 받아들이기가 더 쉬울 뿐 아니라 대개는 원수도 직접 개입해서 도와 주지만 말이지. - P43
환자의 관심을 원수라는 존재 자체에서 환자 자신의 심리상태로 옮겨 놓으면 기도의 효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 P43
환자는 자기가 두려워하는 대상보다는 두려움 그 자체에 집중하여 그것을 ‘현재 겪고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심리상태‘로 여길 때, 더 쉽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 그 두려움을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로 여긴다면, 그것이 일개 심리상태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려야 모를 수 없다 이 말씀이야. - P44
‘환자의 심리가 우리 목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시에는 아무런 자각 없이 대상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부추기되, 원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시에는 자신의 심리상태 그자체에만 관심을 쏟게 한다.‘ - P44
네가 아무리 애를 써도 환자의 영혼에는 어느 정도의 악의와 함께 어느 정도의 선의가 있게 마련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악의를 품게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하는 것이지. 그러면 악의는 완전히 실제적인 게 되고, 선의는 주로 상상의 차원에 머무르게 되거든. - P45
네 환자를 몇 개의 동심원으로 생각해 보거라. 한가운데 의지가 있고, 다음에 지성이 있고, 제일 바깥쪽에 공상이 있다. 모든 원에서 원수의 흔적을 일거에 쓸어 버릴 수야 없는 일이지. 하지만 미덕이란 미덕은 모조리 밖으로 밀어내 공상의 원 안에 처넣고, 바람직한 자질들은 몽땅 안으로 끌어와 의지의 원 안에 모으는 작업은 해야 한다. - P46
인간의 미덕들이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히려면 반드시 의지의 원에 도달해서 습관으로 자리잡아야 하지(물론 내가 말하는 의지란 환자가 오해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결심을 해 놓고 이를 악물고 콧김을 뿜어 가며 안달복달 애쓰는 게 아니라, 원수가 ‘마음‘ 이라고 부르는 진짜 중심을 가리킨다). - P46
미덕들이 공상 속에서 아름답게 채색되고 지식인들의 인정을 받으며 어느 정도의 사랑과 존경까지 끌어모은다 한들, 그걸로 우리 아버지 집을 벗어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미덕들을 가지고 지옥에 오는 인간이야말로 훨씬 더 재미있는 구경감이지. - P46
사실 우린 지독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인간이 우리 존재를 믿지 않으면 직접 테러를 가함으로써 얻는 즐거운 소득을 포기해야 하고 마술사도 만들어낼 수 없다. 반대로 인간이 우리의 존재를 믿게 되면 유물론자나 회의론자를 만들어 낼 수 없지. - P47
나한테는 한 가지 위대한 소망이 있다. 언젠가 적당한 때가 되면 과학을 감상적으로 만들고 신화화함으로써, 원수를 믿으려는 인간의 마음이 미처 열리기 전에 사실상 우리에 대한 믿음(물론 우리 이름을 노골적으로 내세우지는 않겠지만)을 슬금슬금 밀어넣는 법을 터득할 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소망이지. ‘생명력‘ (Life Force)이라든가 성(性) 숭배 풍조, 정신분석의 몇몇 부분은 이 점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만하다. - P48
언젠가 우리가 ‘유물론자 마술사‘라는 완전무결한 작품을 만들어 낼 그 날이 오면, 즉 ‘영‘의 존재는 거부하되 자기가 막연히 ‘힘‘ (Forces)이라고 부르는 것을 직접 활용까지는 못 하더라도 사실상 숭배하는 사람을 탄생시키는 그날이 오면,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이 기나긴 전쟁의 끝을 보게 될 게다. - P48
네 환자를 무지의 어둠 속에 가두어 두는 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구나. 현대인들은 ‘악마‘를 대체로 희극적인 모습으로 상상한다는 사실이 힘이 될 게다. - P48
혹시라도 환자의 마음속에 네가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희미하게라도 떠오를 시에는, 그 즉시 몸에 딱 달라붙는 빨간 타이즈 입은 꼴 따위를 보여 주면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존재는 믿을 수 없으니 네 존재도 믿을 수 없지 않느냐고(이건 오래 전부터 인간을 혼란시킬 때 써먹었던 교과서적인 방법이지) 설득하거라. - P48
원수에 대한 극단적 헌신만 빼 놓는다면, 극단적인 경향은 무조건 부추길 만하지. 물론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만 적어도 이 시대에는 그렇다. 별 열의 없이 안일한 시대에는 인간들을 잘 얼러서 더 깊이 잠들게 하는 게 우리 소임이야. 하지만 지금처럼 균형을 잃고 편 가르기 좋아하는 시대에는 불을 더 붙여야 한다. - P49
사람들이 싫어하고 무시하는 일로 뭉친 소집단은 내적으로는 서로 찬사를 주고 받는 온실 관계를 발전시키는 반면,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엄청난 교만과 증오를 키워 나가게 되지. 그들이 뻔뻔스럽게 이것을 즐기는 이유인즉슨, 자신들의 배후에 ‘대의‘가 버티고 있으며 이 대의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게야. 애초에 원수를 위해 모인 소집단들이라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 P49
우리로서는 교회가 작을수록 좋을 수밖에. 물론 원수를 알게 되는 인간이 적다는 점에서도 좋지만, 설사 원수를 알게 된 인간들이라 해도 비밀결사 내지는 파벌 특유의 불편한 긴장과 방어적인 독선에 쉽게 빠져 주니 얼마나 좋으냐. - P49
물론 교회는 원수의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어서, 교회 그 자체에 파당의 특성들을 전부 부여하는 데 성공한 예는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파당에 대해서라면, 멀리는 고린도 교회에 있던 바울파와 아볼로파부터 가까이는 영국 성공회의 고교회파와 저교회파에 이르기까지 흡족한 결과들을 많이 얻었지. - P49
(인간은 정말 정직해지지는 않는다) - P50
너의 주된 임무는 한 가지다. 애국심이든 평화주의든 자신이 믿는 종교의 일부로 생각하게 하거라. 그러다가 당파적 정신의 영향을 이용해, 그것이야말로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하라구. 그리고 나서 조금씩 조금씩 소리없이 비위를 맞춰 가며, 종교가 ‘대의명분‘의 일부로 전락하는 단계까지 몰아가야 한다. 그러면 기독교는 영국의 전쟁 수행이나 평화주의에 유리한 논증을 탁월하게 제공하느냐에 따라 겨우 그 가치를 인정받는 지경에 처하게 될 게야. - P51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세속적 명분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이런 조건에서는) 더 그렇지. - P51
인간은 양서류다. 반은 영이고 반은 동물이지(원수가 그렇게 역겨운 잡종을 창조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은 우리 아버지께서 원수를 지지하지 않기로 하신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까 인간은 영적 존재로서 영원한 세계에 속해 있는 한편, 동물로서 유한한 시간 안에 살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그 육체와 정욕과 상상력은 시시각각 변한다는 게야. 시간 안에 있다는 건 곧 변한다는 뜻이니까. - P53
인간이 불변성에 가장 가까이 가는 길은 바로 이 기복(起復)의 과정을 거치는 데 있다. 골짜기로 떨어졌다 꼭대기로 올라갔다 하며 끊임없이 후퇴했다 복귀했다 해야 한단 말이지. - P53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은 육체적으로 풍성하고 활기차며 쉽게 감동하는 시기와 무감각하고 결핍된 시기를 번갈아 겪어야 한다. - P53
이 현상(기복起復)을 최고로 잘 활용하려면, 먼저 원수가 이걸 어떻게 이용할까를 생각한 다음 그 반대를 택하면 된다. 원수가 인간 영혼 하나를 제 것으로 확보하기 위해 꼭대기보다 골짜기에 더 의존한다는 걸 알면 아마 좀 놀랄 게다. 원수가 특히 아끼는 인간들은 그 누구보다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다. - P53
우리한테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식량에 해당한다. 인간의 의지를 흡수해서 우리 자아의 영역을 확장하는 게 목적이니까. 그러나 원수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이와 전혀 다르지. 원수가 인간을 사랑한다느니 원수를 섬기는 게 외려 완벽한 자유라느니 하는 말들이 단순한 선전문구가 아니라(우리야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만) 소름끼치는 진실이라는 점은 우리도 직시해야한다. - P54
우리가 원하는 건 키워서 잡아먹을 가축이지만, 그 작자가 원하는 건 처음엔 종으로 불렀다가 결국 아들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빨아들이고 싶어하지만 그는 내뿜고 싶어하지. 우리는 비어 있어 채워져야하지만 그는 충만해서 넘쳐 흐른다. 우리의 전쟁 목적은 저 아래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다른 존재들을 모조리 삼켜 버리는 세상이지만, 원수가 바라는 건 원수 자신과 결합했으면서도 여전히 구별되는 존재들로 가득 찬 세상이야. - P54
원수는 피조물들이 제 힘으로 서게 내버려 둔다. 흥미는 다 사라지고 의무만 남았을 때에도 의지의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있게 하겠다는 속셈이지. 인간은 꼭대기에 있을 때보다 이렇게 골짜기에 처박혀 있을 때 오히려 그 작자가 원하는 종류의 피조물로 자라가는 게야. 그러니 이렇게 메마른 상태에서 올리는 기도야말로 원수를 가장 기쁘게 할 수밖에. - P55
제 바람대로 인간 스스로 걷도록 가르치려면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야지 별 수 있겠느냐. 그러다가 넘어져도 계속 걷겠다는 의지만 보이면 그 작자는 좋아라 한다구. - P56
인간이 원수의 뜻을 따르고 싶은 갈망을 잃었더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원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 같고 왜 그가 자기를 버렸는지 계속 의문이 생기는데도 여전히 순종한다면, 그 때보다 더 우리의 대의가 위협받을 때는 없다. - P56
내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인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운데 골짜기를 지나가는 시기에는 감각적 유혹, 특히나 성적 유혹이 매번 잘 먹혀든다. 육체적인 활력이 넘치는 꼭대기 시기일수록 잠재적 욕구도 더 커질 텐데, 이게 웬 소리냐구? 꼭대기에 있을 때는 저항력도 최고로 높은 상태라는 걸 잊으면 안 되지. 불행히도 정욕을 일으키기에 좋은 건강과 활력은 일이나 놀이, 생각, 무해한 오락에도 쉽게 이용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세계가 삭막하고 냉랭하고 공허할 때 외려 이런 공격이 성공할 가능성이 큰 게야. - P58
골짜기에 있을 때의 성욕은 꼭대기에 있을 때의 성욕과 질적으로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골짜기에 있을 때의 성욕은 인간들이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하는 들척지근한 현상으로 기울 가능성은 훨씬 적으면서 성도착(性倒錯)에 빠질 가능성은 훨씬 크고, 종종 성적 욕구를 맥풀리게 만들어 버리는 사랑의 부산물 ㅡ 관대하고 상상력이 넘치며 심지어 영적이기까지 한 ㅡ 에 오염될 가능성은 훨씬 적지. - P58
성욕도 육체의 다른 욕구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착실한 술주정뱅이를 만들려면, 행복하고 느긋한 기분으로 친구들과 즐기고 있을 때 술을 권하기보다는, 침체되고 지쳐 있을 때 일종의 진통제로 마시도록 밀어붙여야 하는것과 같은 이치야.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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