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따르면 심리학과 뇌 과학 분야에서 연구된 이론 가운데 하나로 ‘구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것이 나온다. 이것은 무언가를 인지하는 과정, 즉 학습이 몸 전체에서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오늘 처음 밑줄친 내용에서는 이러한 구체화된 인지 이론에 근거하여 신체의 다양한 부분을 사용할 때 해당 부분의 뇌 영역이 함께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떤 신경, 동작과 연결되는지 표현한 뇌 지도를 보면 손과 입, 눈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서로 겹쳐 있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며 손으로 쓰면서 공부하면 효과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화할 때 상대방을 보지 않고 손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말만 하면 어색하다. 손과, 입, 눈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겹쳐 있어서 그렇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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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다. 목차에 나온 소제목들을 보니 작가의 일상 혹은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또한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힘을 빼고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없이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에서는 소설 쓰기에 대한 저자의 철학(?) 같은 것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에세이 형식의 글을 통해 저자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작품을 쓰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쓰는 것은 대체로 검소하고 과묵한 작업이다. - P12

"조용하고 단정하게 작업을 하는 사람은 그다지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_조이스 캐럴 오츠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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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크루테이프라는 악마가 웜우드(‘쑥‘이라는 뜻으로 고난, 고뇌를 상징한다고 함)라는 이름을 가진 조카뻘되는 신참 악마에게 남긴 편지 형식의 글이다. 이 악마의 무리들은 편지에서 세상 사람들을 ‘환자‘라고 지칭하고 그리스도를 ‘원수‘라고 지칭한다. 그러면서 자신(악마)들의 입맛에 맞게 세상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이런저런 갖가지 전략들을 편지를 통해 주고받고 있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 역시 이러한 상황적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상황에 대한 이해없이 그냥 문장을 읽어보면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기에 설명을 덧붙여 보았다.

한편 저자는 이러한 악마의 다양한 전략들을 편지 형식을 통해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악에 맞서 싸우자‘ 등과 같은 어떤 직접적인 구호보다는, 마치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악마의 전략을 잘 파악하여 그들의 유혹이 찾아올 때 거기에 넘어가지 말자고 독자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야 환자의 앞날이 불확실할수록 좋지. 서로 충돌하는 미래의 모습들이 마음을 온통 채운 채 희망이나 두려움을 번갈아가며 불러일으킬 테니까. 원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기에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 하는 일에 신경을 쓰기 바라지만, 우리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 - P42

물론 네 환자도 인내하며 원수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주워 들었을 게다. 원수가 의미하는 바는 뭐니뭐니해도 실제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ㅡ현재의 걱정과 불안ㅡ을 인내로써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건 바로 이 부분에서 그렇게 해 달라는 기도이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것도 바로 이것을 매일 감당하기 위한 기도지. - P43

네 임무는 환자가 현재의 두려움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생각을 절대 못 하게 하는 한편, 오로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미래의 일들에만 줄창 매달려 있도록 조처하는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일들이야말로 제 십자가라고 믿게 만들거라. 그렇게 서로 어긋나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은 환자의 뇌리에서 싹 지워 버리고, 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에만 미리 마음을 굳게 다지며 인내심을 발휘하려고 애쓰게 하거라. - P43

열 가지도 넘게 가정해 놓은 서로 다른 운명들을 진짜로 동시에 받아들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다가, 그런 일을 하려고 덤비는 인간들에게는 원수도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현재 실제로 겪고 있는 고난이라면야 아무리 두렵다해도 받아들이기가 더 쉬울 뿐 아니라 대개는 원수도 직접 개입해서 도와 주지만 말이지. - P43

환자의 관심을 원수라는 존재 자체에서 환자 자신의 심리상태로 옮겨 놓으면 기도의 효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 P43

환자는 자기가 두려워하는 대상보다는 두려움 그 자체에 집중하여 그것을 ‘현재 겪고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심리상태‘로 여길 때, 더 쉽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 그 두려움을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로 여긴다면, 그것이 일개 심리상태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려야 모를 수 없다 이 말씀이야. - P44

‘환자의 심리가 우리 목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시에는 아무런 자각 없이 대상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부추기되, 원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시에는 자신의 심리상태 그자체에만 관심을 쏟게 한다.‘ - P44

네가 아무리 애를 써도 환자의 영혼에는 어느 정도의 악의와 함께 어느 정도의 선의가 있게 마련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악의를 품게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하는 것이지. 그러면 악의는 완전히 실제적인 게 되고, 선의는 주로 상상의 차원에 머무르게 되거든. - P45

네 환자를 몇 개의 동심원으로 생각해 보거라. 한가운데 의지가 있고, 다음에 지성이 있고, 제일 바깥쪽에 공상이 있다. 모든 원에서 원수의 흔적을 일거에 쓸어 버릴 수야 없는 일이지. 하지만 미덕이란 미덕은 모조리 밖으로 밀어내 공상의 원 안에 처넣고, 바람직한 자질들은 몽땅 안으로 끌어와 의지의 원 안에 모으는 작업은 해야 한다. - P46

인간의 미덕들이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히려면 반드시 의지의 원에 도달해서 습관으로 자리잡아야 하지(물론 내가 말하는 의지란 환자가 오해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결심을 해 놓고 이를 악물고 콧김을 뿜어 가며 안달복달 애쓰는 게 아니라, 원수가 ‘마음‘ 이라고 부르는 진짜 중심을 가리킨다). - P46

미덕들이 공상 속에서 아름답게 채색되고 지식인들의 인정을 받으며 어느 정도의 사랑과 존경까지 끌어모은다 한들, 그걸로 우리 아버지 집을 벗어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미덕들을 가지고 지옥에 오는 인간이야말로 훨씬 더 재미있는 구경감이지. - P46

사실 우린 지독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인간이 우리 존재를 믿지 않으면 직접 테러를 가함으로써 얻는 즐거운 소득을 포기해야 하고 마술사도 만들어낼 수 없다. 반대로 인간이 우리의 존재를 믿게 되면 유물론자나 회의론자를 만들어 낼 수 없지. - P47

나한테는 한 가지 위대한 소망이 있다. 언젠가 적당한 때가 되면 과학을 감상적으로 만들고 신화화함으로써, 원수를 믿으려는 인간의 마음이 미처 열리기 전에 사실상 우리에 대한 믿음(물론 우리 이름을 노골적으로 내세우지는 않겠지만)을 슬금슬금 밀어넣는 법을 터득할 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소망이지. ‘생명력‘ (Life Force)이라든가 성(性) 숭배 풍조, 정신분석의 몇몇 부분은 이 점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만하다. - P48

언젠가 우리가 ‘유물론자 마술사‘라는 완전무결한 작품을 만들어 낼 그 날이 오면, 즉 ‘영‘의 존재는 거부하되 자기가 막연히 ‘힘‘ (Forces)이라고 부르는 것을 직접 활용까지는 못 하더라도 사실상 숭배하는 사람을 탄생시키는 그날이 오면,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이 기나긴 전쟁의 끝을 보게 될 게다. - P48

네 환자를 무지의 어둠 속에 가두어 두는 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구나. 현대인들은 ‘악마‘를 대체로 희극적인 모습으로 상상한다는 사실이 힘이 될 게다. - P48

혹시라도 환자의 마음속에 네가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희미하게라도 떠오를 시에는, 그 즉시 몸에 딱 달라붙는 빨간 타이즈 입은 꼴 따위를 보여 주면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존재는 믿을 수 없으니 네 존재도 믿을 수 없지 않느냐고(이건 오래 전부터 인간을 혼란시킬 때 써먹었던 교과서적인 방법이지) 설득하거라. - P48

원수에 대한 극단적 헌신만 빼 놓는다면, 극단적인 경향은 무조건 부추길 만하지. 물론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만 적어도 이 시대에는 그렇다. 별 열의 없이 안일한 시대에는 인간들을 잘 얼러서 더 깊이 잠들게 하는 게 우리 소임이야. 하지만 지금처럼 균형을 잃고 편 가르기 좋아하는 시대에는 불을 더 붙여야 한다. - P49

사람들이 싫어하고 무시하는 일로 뭉친 소집단은 내적으로는 서로 찬사를 주고 받는 온실 관계를 발전시키는 반면,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엄청난 교만과 증오를 키워 나가게 되지. 그들이 뻔뻔스럽게 이것을 즐기는 이유인즉슨, 자신들의 배후에 ‘대의‘가 버티고 있으며 이 대의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게야. 애초에 원수를 위해 모인 소집단들이라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 P49

우리로서는 교회가 작을수록 좋을 수밖에. 물론 원수를 알게 되는 인간이 적다는 점에서도 좋지만, 설사 원수를 알게 된 인간들이라 해도 비밀결사 내지는 파벌 특유의 불편한 긴장과 방어적인 독선에 쉽게 빠져 주니 얼마나 좋으냐. - P49

물론 교회는 원수의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어서, 교회 그 자체에 파당의 특성들을 전부 부여하는 데 성공한 예는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파당에 대해서라면, 멀리는 고린도 교회에 있던 바울파와 아볼로파부터 가까이는 영국 성공회의 고교회파와 저교회파에 이르기까지 흡족한 결과들을 많이 얻었지. - P49

(인간은 정말 정직해지지는 않는다) - P50

너의 주된 임무는 한 가지다. 애국심이든 평화주의든 자신이 믿는 종교의 일부로 생각하게 하거라. 그러다가 당파적 정신의 영향을 이용해, 그것이야말로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하라구. 그리고 나서 조금씩 조금씩 소리없이 비위를 맞춰 가며, 종교가 ‘대의명분‘의 일부로 전락하는 단계까지 몰아가야 한다. 그러면 기독교는 영국의 전쟁 수행이나 평화주의에 유리한 논증을 탁월하게 제공하느냐에 따라 겨우 그 가치를 인정받는 지경에 처하게 될 게야. - P51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세속적 명분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이런 조건에서는) 더 그렇지. - P51

인간은 양서류다. 반은 영이고 반은 동물이지(원수가 그렇게 역겨운 잡종을 창조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은 우리 아버지께서 원수를 지지하지 않기로 하신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까 인간은 영적 존재로서 영원한 세계에 속해 있는 한편, 동물로서 유한한 시간 안에 살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그 육체와 정욕과 상상력은 시시각각 변한다는 게야. 시간 안에 있다는 건 곧 변한다는 뜻이니까. - P53

인간이 불변성에 가장 가까이 가는 길은 바로 이 기복(起復)의 과정을 거치는 데 있다. 골짜기로 떨어졌다 꼭대기로 올라갔다 하며 끊임없이 후퇴했다 복귀했다 해야 한단 말이지. - P53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은 육체적으로 풍성하고 활기차며 쉽게 감동하는 시기와 무감각하고 결핍된 시기를 번갈아 겪어야 한다. - P53

이 현상(기복起復)을 최고로 잘 활용하려면, 먼저 원수가 이걸 어떻게 이용할까를 생각한 다음 그 반대를 택하면 된다. 원수가 인간 영혼 하나를 제 것으로 확보하기 위해 꼭대기보다 골짜기에 더 의존한다는 걸 알면 아마 좀 놀랄 게다. 원수가 특히 아끼는 인간들은 그 누구보다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다. - P53

우리한테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식량에 해당한다. 인간의 의지를 흡수해서 우리 자아의 영역을 확장하는 게 목적이니까. 그러나 원수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이와 전혀 다르지. 원수가 인간을 사랑한다느니 원수를 섬기는 게 외려 완벽한 자유라느니 하는 말들이 단순한 선전문구가 아니라(우리야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만) 소름끼치는 진실이라는 점은 우리도 직시해야한다. - P54

우리가 원하는 건 키워서 잡아먹을 가축이지만, 그 작자가 원하는 건 처음엔 종으로 불렀다가 결국 아들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빨아들이고 싶어하지만 그는 내뿜고 싶어하지. 우리는 비어 있어 채워져야하지만 그는 충만해서 넘쳐 흐른다. 우리의 전쟁 목적은 저 아래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다른 존재들을 모조리 삼켜 버리는 세상이지만, 원수가 바라는 건 원수 자신과 결합했으면서도 여전히 구별되는 존재들로 가득 찬 세상이야. - P54

원수는 피조물들이 제 힘으로 서게 내버려 둔다. 흥미는 다 사라지고 의무만 남았을 때에도 의지의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있게 하겠다는 속셈이지. 인간은 꼭대기에 있을 때보다 이렇게 골짜기에 처박혀 있을 때 오히려 그 작자가 원하는 종류의 피조물로 자라가는 게야. 그러니 이렇게 메마른 상태에서 올리는 기도야말로 원수를 가장 기쁘게 할 수밖에. - P55

제 바람대로 인간 스스로 걷도록 가르치려면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야지 별 수 있겠느냐. 그러다가 넘어져도 계속 걷겠다는 의지만 보이면 그 작자는 좋아라 한다구. - P56

인간이 원수의 뜻을 따르고 싶은 갈망을 잃었더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원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 같고 왜 그가 자기를 버렸는지 계속 의문이 생기는데도 여전히 순종한다면, 그 때보다 더 우리의 대의가 위협받을 때는 없다. - P56

내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인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운데 골짜기를 지나가는 시기에는 감각적 유혹, 특히나 성적 유혹이 매번 잘 먹혀든다. 육체적인 활력이 넘치는 꼭대기 시기일수록 잠재적 욕구도 더 커질 텐데, 이게 웬 소리냐구? 꼭대기에 있을 때는 저항력도 최고로 높은 상태라는 걸 잊으면 안 되지. 불행히도 정욕을 일으키기에 좋은 건강과 활력은 일이나 놀이, 생각, 무해한 오락에도 쉽게 이용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세계가 삭막하고 냉랭하고 공허할 때 외려 이런 공격이 성공할 가능성이 큰 게야. - P58

골짜기에 있을 때의 성욕은 꼭대기에 있을 때의 성욕과 질적으로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골짜기에 있을 때의 성욕은 인간들이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하는 들척지근한 현상으로 기울 가능성은 훨씬 적으면서 성도착(性倒錯)에 빠질 가능성은 훨씬 크고, 종종 성적 욕구를 맥풀리게 만들어 버리는 사랑의 부산물 ㅡ 관대하고 상상력이 넘치며 심지어 영적이기까지 한 ㅡ 에 오염될 가능성은 훨씬 적지. - P58

성욕도 육체의 다른 욕구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착실한 술주정뱅이를 만들려면, 행복하고 느긋한 기분으로 친구들과 즐기고 있을 때 술을 권하기보다는, 침체되고 지쳐 있을 때 일종의 진통제로 마시도록 밀어붙여야 하는것과 같은 이치야.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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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작하는 이 소설에서는 마리라는 이름의 한 여자와 이름을 알 수 없는 키가 큰 한 남자가 ‘데니스‘라는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다. 참고로 마리는 남자가 아는 여자인 ‘아사이 에리‘라는 여자의 친동생이다. 남자는 마리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풀어놓는다. 그러던 와중에 마리의 언니인 에리와 마리가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온 말이 바로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이다.

여기서 이 문장은 단순히 소설 속 자매에게만 국한된다기보다는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형제자매들이라면 얼마든지 한 번쯤 가져봤을 법한 의문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다들 각자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걸까? 그러니까 너희 경우를 들어 말하자면, 한 부모한테 태어나서 한 집에서 자랐고 똑같이 여자애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 인격을 갖게 되는 거지? 어디에 그런 갈림길 같은 게 있는 걸까?" - P20

"신이 세 형제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어. 여기서 좀더 가면 바닷가에 커다랗고 둥근 바위 세 개가 있을 것이다. 각자 바위를 굴려 원하는 곳으로 가라. 바위를 굴려서 간 곳이 너희가 이제부터 각자 살 장소다. 높은 곳으로 가면 갈수록 세계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 어디까지 갈지는 너희 마음이다." - P22

"뭔가를 정말로 알고 싶다면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 P23

"사람은 모두 각각 다르다는 것. 형제라도 말이지." - P23

"자기의 그런 (지적)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거야. 그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아무리 커도 말이지." - P24

"사람마다 싸우는 전쟁터가 다 다른 거야." - P29

"직감이 나한테 귀띔하더라고. 이 애는 휴대전화 같은 거 안 좋아한다고." - P30

"뭐, 세상엔 다양한 돈벌이가 있는 거야." - P44

"힘은 있지만 때리는 게 아마추어야." - P50

"가령 알파빌에선 눈물을 흘리며 우는 사람은 체포돼서 공개 처형을 당해요."
"왜?"
"알파빌에서 사람은 깊은 감정이란 걸 가지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곳엔 애정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아요. 모순도, 아이러니도 없어요. 모든 게 수식數式을 사용해 집중적으로 처리돼요."
가오루는 미간을 좁힌다. "아이러니?"
"사람이 자신을, 또는 자신에게 속하는 걸 객관시해서, 또는 반대방향에서 바라보면서 우스꽝스러운 점을 발견해내는 것." - P73

"아무리 튼튼해도 모든 일엔 한계가 있다고." - P74

"이렇게 밤늦은 시간이잖아. 어차피 아침까지 전철이 없다고. 서둘러 봤자 의미가 없지." - P78

"한밤중엔 한밤중의 시간의 흐름이 있단 말이지." 바텐더는 말한다. 소리내서 종이성냥을 그어 담뱃불을 붙인다. "그걸 거역해봤자 소용없어." - P78

"평범한 녀석이 제일 무서운 거야." 가오루가 턱을 문지르며 말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 P86

"세상엔 새벽까지 회사에 남아서 일하는 사람이 의외로 제법 있다고요. 특히 컴퓨터 소프트웨어 관계는 그런 거 많아요. 다른 사람들이 일 끝내고 퇴근한 다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꾸물꾸물 시스템을 만지는 거죠. 남들이 일할 때 시스템을 전부 정지시키고 작업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2시, 3시까지 야근하고 택시로 퇴근해요. 그런 사람은 회사에서 택시비를 주거든요." - P88

"그러니까 너희도 밖에서 너무 나쁜 짓은 안 하는 게 좋아. 요즘 세상엔 어디에 카메라가 있을지 모르니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디지털카메라가 알고." - P89

"여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요새 기계는 이것저것 편리한 기능이 많거든." - P91

"작정한 일은 철저하게 하는 놈들이야. 이런 일엔 워낙 집요하니 말이지. 뭣도 아닌 일반인한테 바보 취급 당해놓고 가만있으면, 부리는 여자들 기강이 안 잡히고 같은 패거리 녀석들한테 체면도 살지 않아. 체면을 구기면 못 해먹는 세계라고." - P93

"목숨은 하나밖에 없어. 귀는 두 개 있어." - P95

우리는 이쪽 방에 놓여 있는 빈 침대와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침대를 번갈아본다. 세부를 하나하나 비교해본다. 아무리 봐도 동일한 침대다. 침대 커버도 똑같다. 그런데 한 침대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 있고, 또 하나는 이쪽 방에 있다. 그리고 텔레비전 속에 있는 침대에서 아사이 에리가 자고 있다. 우리는 아마 저쪽이 진짜 침대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진짜 침대는 잠시 눈을 뗀 사이에 (우리가 이쪽 방을 떠난 뒤로 두 시간 이상 경과했다) 에리와 더불어 저쪽으로 운반된 것이다. 이쪽에는 다른 침대가 대신 남아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곳에 존재할 허무의 공간을 메우기 위한 표시로서. - P108

천장에 늘어선 눈부신 형광등 불빛도 잠의 해구 저 밑바닥까지 비쳐들지 못한다. - P108

우리가 보는 것은 언뜻 보면 정지 화면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실시간으로 송신되는 살아 있는 영상이다. 이쪽 방에서나 저쪽 방에서나 시간은 똑같이 균일하게 경과하고 있다. 양자는 동일한 시간성 속에 있다. 얼굴 없는 남자의 어깨가 이따금 완만히 오르내리는 것으로 그것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우리는 똑같은 속도로 시간의 하류를 향해 실려 가고 있다. - P109

"프로 뮤지션이 될 거야?"
그는 고개를 내젓는다. "난 그런 재능은 없어. 음악을 하는 건 재미있지만, 그걸로 먹고살 순 없어. 어떤 걸 잘하는 것하고 어떤 걸 정말로 크리에이트하는 것 사이엔 크나큰 차이가 있단 말이지. 난 트롬본을 꽤 잘 분다고 생각해. 칭찬해주는 사람도 있고, 칭찬받으면 물론 기뻐. 하지만 그뿐이거든. 그래서 밴드는 이달 말까지만 하고 음악에서 손을 뗄까 해." - P113

"어떤 걸 정말로 크리에이트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야?"
"그러게…………… 음악을 마음속 깊이 전달하는 걸로써 자기 몸도 물리적으로 어느 정도 슥 이동하고, 그와 동시에 듣는 사람의 몸도 물리적으로 슥 이동하는, 그런 공유적인 상태를 낳는 거야. 아마도." - P113

"법원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랑 비슷해. 그날 있는 심리랑 개시 시각이 프로그램 편성표처럼 입구 게시판에 붙어 있고, 그중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걸 골라 거기 가서 방청하는 거야.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 단 카메라와 녹음기는 못 갖고 들어가. 음식물도 안 되고, 떠드는 것도 금지돼. 자리도 좁고, 졸면 법정 경위한테 주의를 받기도 해. 하지만 어쨌거나 무료로 입장하는 거니까 불평할 순 없어." - P115

"그런데 법원에 몇 번 드나들면서 재판을 방청하다 보니까, 재판을 받는 사건하고 그 일에 얽힌 사람들한테 이상하게 관심이 생기더라고. 아니, 그보다 점점 남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 기분이 참 묘하더라. 그렇잖아? 거기서 재판을 받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랑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나랑 다른 세계에 살면서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나랑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 사는 세계하고 내가 사는 세계 사이엔 튼튼하고 높다란 벽이 있어.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 그렇잖아? 내가 흉악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없는걸. 난 평화주의자고, 성격은 온후하고, 어렸을 때부터 누구한테 주먹을 휘둘러본 적도 없어. 그렇기 때문에 순전한 구경꾼의 입장에서 재판을 볼 수 있었어.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 P116

"하지만 법원에 드나들면서 관계자의 증언을 듣고, 검사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듣고, 본인의 진술을 듣다 보니까 어쩐지 자신이 없어졌어.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거야. 두 세계를 가르는 벽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있어도 종이로 만든 얄팍한 벽일지도 모른다. 몸을 가볍게 기댄 순간 쑥 빠져서 저쪽으로 쓰러질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 자신 안에 저쪽이 벌써 몰래 숨어들어와 있는데 모르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말로 설명하려니까 쉽지 않지만."
...(중략)...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나니까 온갖 게 그전하고 다르게 보이더라. 재판이란 제도 자체가 내 눈에 하나의 특수한, 기이한 생물로 보이게 됐어." - P117

"예를 들자면, 그래, 문어 같은 거야. 바다 속 깊은 곳에 사는 거대한 문어.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긴 다리 여러 개를 꾸불꾸불 움직여서 어딘가를 향해 어두운 바다 속을 나아가 난 재판을 방청하면서 그런 생물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건 다양한 형태를 취해. 국가란 형태를 취할 때도 있고, 법률이란 형태를 취할 때도 있어. 더 복잡하고 성가신 형태를 취할 때도 있어. 잘라내도, 잘라내도 다리가 자꾸 생겨. 아무도 그놈을 죽이지 못해. 워낙 강한 데다, 워낙 깊은 곳에 사니까. 심장이 어디 있는지 그것도 몰라. 내가 그때 느낀 건 심한 공포였어. 그리고 아무리 멀리 도망친들 그놈한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 같은 감정하고. 그놈은 내가 나고 네가 너라는 걸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아. 그놈 앞에선 모든 사람이 이름을 잃고 얼굴을 잃어. 우리는 모두 한낱 기호가 되고 말아. 한낱 번호가 되고 마는 거야." - P118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 이런 걸 거야. 한 인간이, 그게 어떤 인간이든 간에, 거대한 문어 같은 동물한테 붙들려서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그건 어떤 이유를 갖다붙이든 참 가슴 먹먹한 광경인 거야." - P119

"아무튼 그날을 경계로 이렇게 생각하게 됐어. 법률을 한번 제대로 공부해보자. 거기에 뭔가, 내가 추구해야 할 게 있을지도 모른다. 법률을 공부하는 건 음악만큼 재미있지 않을지는 몰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게 인생이다. 그게 어른이 된다는 거다." - P120

"수은이 몸 안에 축적되면 마흔 살 넘어서 심장발작을 일으킬 위험이 높아지거든. 머리카락도 잘 빠지고."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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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은 ‘다무라 카프카‘라는 이름을 가진 15살의 소년이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그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기 힘든, 아마도 모질다(?)는 표현이 곧잘 어울리는 여러가지 경험들을 통해 험하디 험한 사회에 비교적 일찍 발을 들인 어린 소년이다.

오늘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선 주인공인 카프카와 함께 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은 불과 15세의 나이에 험한 세상으로 뛰쳐나온 카프카에게 이런저런 충고의 말들을 건낸다. 하지만 카프카는 그러한 말들에 딱히 동요되거나 하는 것 없이 이미 마음을 굳게 다잡은 것처럼 보인다. 카프카를 중심으로 향후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슬슬 궁금해진다.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할 거야" - P12

"넌 이미 마음을 정했어. 이제 남은 건 그걸 실행하는 일뿐이야, 무엇이 어떻게 되든 네 인생이니까, 기본적으로는 네 생각대로 할 수밖에 없지." - P13

"하지만 지금부터 넌 아주 터프해져야만 해." - P13

"경우에 따라서는 운명이란 끊임없이 진행 방향을 바꾸는 국지적인 모래 폭풍과 비슷해" - P15

왜냐하면 그 폭풍은 어딘가 먼 곳에서 찾아온, 너와 아무 관계 없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 폭풍은 그러니까 너 자신인 거야. 네 안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눈과 귀를 꽉 틀어막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가는 일뿐이야. 그곳에는 어쩌면 태양도 없고 달도 없고 방향도 없고 어떤 경우에는 제대로 된 시간조차 없어. - P16

"넌 지금부터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이 돼야해.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이 세상에서 살아 나가려면 다른 방법은 없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터프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너 스스로 이해해야만 해, 알겠어?" - P16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바로 모래 폭풍의 의미야. - P17

열다섯 번째 생일이 찾아왔올 때, 나는 집을 나와 멀고 낯선 도시로 가서, 자그마한 도서관의 구석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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