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딱히 어떤 작심을 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어찌어찌 살다보니 티셔츠가 하나둘 모이게 되었고 이렇게 모인 티셔츠로 책까지 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저자의 고백을 보고 독자들마다 느끼는 바가 각기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것들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이라는 게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우연들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살다 보니 이렇게 모인 티셔츠 얘기로 책까지 내고 대단하다. 흔히 ‘계속하는 게 힘‘이라고 하더니 정말로 그렇군. 뭔가 나 자신이 계속성에만 의지하여 사는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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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블렌드 다크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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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레드와인 향과 호두의 고소함과 다크 초콜릿의 진함이 한데 어우러진 드립백 커피입니다. 뜨겁게 드셔도 좋고 얼음 넣어서 차갑게 드셔도 좋고 각자 취향에 따라 즐기시면 될 듯합니다. 추석에 기름진 음식 먹고 난 뒤 입가심으로 드립백 블렌드 다크 한 잔 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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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한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라는 사람은 불쉿 직업(bullshit job) 이라는 것에 대해 언급했었다. 여기서 bullshit 이라는 것은 영어로 헛소리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의미에 기반하여 그레이버가 내린 불쉿 직업의 정의는 보수와 처우가 괜찮고 노동강도가 높지 않음에도 의미가 없는 일을 말한다.

오늘 처음 밑줄친 부분에서는 이러한 불쉿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독자인 나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 가진 속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다.

저자는 앞선 본문에서 나는 ‘내 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있을 때 위에서 언급했던 어떤 ‘의미‘라는 것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었다는 말을 했었는데, 저자의 말처럼 AI시대에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게 의탁하기보다는 우리 인간 스스로가 자신이 하는 일에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할 수 있어야 삶의 만족도나 행복감이 조금이라도 더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좀 더 압축적으로 달리 표현하자면 ‘수동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레이버는 불쉿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비참함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모호함과 강요된 시늉" 때문에, "스스로가 원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감내할 만한 가치가 없는 고통"을 받기 때문에, "자신이 해를 끼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비참하다. - P224

도스토옙스키의 시베리아 유형 체험을 바탕으로 한 중편소설《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화자는 유형수에게 완전히 무의미한 일을 시키는 게 가장 참혹한 형벌이라고 말한다. - P224

흙더미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쌓게 하고 다시 원래 장소로 옮기게하는 것처럼 쓸모없는 일을 시키면 인간은 그 무의미함과 모욕과 수치를 견디지 못한다. 그는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으며, 잘해야겠다는 의지도 잃는다. - P225

나는 AI 시대가 공허의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한다. 평범한 인간들이 가치를 잃어버리고, 가치로부터 소외되는. - P225

현대인은 종교로부터 멀어지면서 인간 외부에 객관적 가치가 있다는 믿음에서 멀어졌다. 현대 주류 경제학이 노동가치설을 폐기하면서 우리는 어떤 일에 내재적 가치가 있다는 믿음에서도 멀어졌다. 이제 무신론자와 자유시장주의자가 함께 합의할 수 있는 가치는 시장 가격인데, 그것은 도덕적 규범이나 사회적 가치와는 상관없는 개념이다. 이제 우리는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일을 하면서도 적당한 급여를 받을 때, 그 일에 왜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 - P225

우리가 새로운 가치의 원천을 찾아내지 못하면 인공지능에 기반한 사회는 거대한 ‘죽음의 집‘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급여와는 상관없다. - P225

‘인간의 바둑‘은 바둑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그저 좋아서 바둑을 두는 아마추어의 활동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다. 아마추어 수준에서 바둑을 즐기는 데 인공지능이 별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는 전망은 비교적 쉽게 납득할 수 있다. - P229

"누구나 어떤 일에서 당대 최고가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항상 최첨단에서 무언가를 할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기계가 더 잘한다고 해서 왜 인간이 하면 안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_남치형 교수 - P231

"어떤 일을 남한테 권할 때는 권하는 이유를 말해줘야 하죠. 그런 때 그 일을 하면 돈을 번다든가, 건강이 좋아진다든가. 그런데 그런 말들은 진짜 이유가 못 된다고 생각해요. 그 일을 하면 어떤 유용성이 있다는 식의 설명이 아니라 ‘그 일을 하면 정말 재미있어, 내 시간을 거기에 낭비할 만해‘ 이런 말들이야말로 그 일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라고 생각해요." _남치형 교수 - P231

도구적 가치와 근원적 가치 - P231

재미있다는 것은 당사자의 주관적 효용이고, 그 효용에 대해 타인이 깎아내리기 어렵다 ...(중략)... 그러나 그 주관적 효용이 외부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 P232

재미는 맥락에 좌우된다. ...(중략)... 어떤 일을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면 그 일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바뀌며, 그 일이 우리에게 주는 재미도 바뀔 것 같다. 재미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 P233

재미는 바둑이나 소설 쓰기, 혹은 다른 활동이 제공하는 여러 가치 중 하나로서 다른 가치들과 경합하기도 하고 결합하기도 한다. - P233

재미있지만 의미는 없는 일도 있고, 의미 있지만 재미없는일도 많다. 많은 일에서 재미와 의미가 섞여 있는데, 어떤 일은 재미있기 때문에 더 의미 있고 어떤 일은 의미가 있어서 더 재미있다. - P233

어떤 일의 의미가 훼손되면 재미도 변할 수 있다. - P233

한 분야에서 초보자 때는 재미있었던 일이 기량이 성장하면 시시하게 느껴지고, 반대로 초보자 때는 존재조차 몰랐던 재미를 숙련자가 되어서 느끼는 일도 흔하다. - P233

사람들이 어떤 일에 능숙해지면서 다른 차원의 재미를 느끼는 것은 일방향이다. 실력이 나아지면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는 것이지, 예전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 일부러 자기 실력을 퇴보시키는 사람은 없고 설사 그런 시도를 한들 예전의 재미를 느낄 수도 없다. 그런 재미에는 처음 발견하는 감각에 대한 즐거움과 성취감,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발전하리라는 기대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 P234

미래에 대한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현재에 큰 기쁨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그 희망에 영향을 미친다. - P234

인간에게는 우월 욕구가 있는데, 그 욕구는 대부분 같은 인간을 상대로만 발휘된다. - P235

인간은 다른 인간 앞에서 각성하고 흥분한다. - P236

우리의 굴욕감, 질투심, 승부욕 같은 감정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있어야 성립한다. 그 사람이 적이든 친구든 관객이든 간에 말이다. 그런 격렬한 감정은 2차적인 감정 반응도 이끌어 낸다. 타인의 격렬한 감정 앞에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흥분하게 된다. 그런 감정들이 어떤 게임이나 스포츠를 더 재미있게 한다. 어쩌면 예술도. 그러니 바둑도 소설도 인공지능은 일으킬 수 없는 그런 감정적 반응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아닐까? - P236

"승부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승부하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여준다고 할 때 보여줄 수 있는 바둑의 외연도 더 넓어진다" ...(중략)... "바둑판 위의 승부뿐 아니라 그 안팎에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의 구축은 절대필요조건" _바둑 칼럼니스트 손종수 시인 - P236

"프로기사들이 너무 인간적인 실수를 하고, 그걸 극복하고, 그렇게 역전이 거듭되는 과정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를 느끼는거죠." _홍민표 9단 - P237

두 번째로 접어야 하는 기대는 ‘기술 진보가 우리 삶을 안락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다. 바둑 AI 프로그램이 바둑의 수준을 높이고, 프로기사들의 실력을 상향평준화시키긴 했다. 그런데 그건 전체 프로기사의 삶의 질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다. AI 포석과 AI 공부법에 잘 적응한 기사들이 유리해졌지만, 그런 기술 우위는 곧 사라진다. 인간 기사들의 노동 강도는 다른 인간 기사들과의 경쟁에 달려 있다. 바둑이 만드는 가치의 근원이 그 경쟁이라고 여긴다면, 어떤 신기술이 인간 기사들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낫게 만들 거라는 희망은 품지 말아야 한다. - P240

어떤 일의 가치가 우월성을 놓고 겨루는 인간 사이의 경쟁에서 나온다면, 어떤 기술이 등장해도 경쟁의 강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손에 든 무기가 돌도끼든 최신 저격소총이든 간에 상대와 내가 같은 무기를 들고 있다면, 이기기 위해선 자신을 극한의 스트레스 상태에 밀어 넣어야 한다. 상대방이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신기술을 사용하는 쪽이 잠시 느긋해질 수 있겠지만, 유용한 신기술은 곧 전파되어 흔한 기술이 된다. 그런 분야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기술 개발이라는 이름의 항시적인 군비 경쟁을 벌여야 한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의 처지처럼,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해 기술을 개발하고 거기에 적응하려 애쓰지만 그들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는 변함이 없다. 이 상황에서 기술이 어떤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는가? - P240

내게는 그것(자기계발)이 수입이 없는 노동처럼 느껴진다. - P242

인공지능이 우리를 귀찮은 잡무에서 해방시켜 주고 덕분에 우리가 여가시간을 고상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없다. 지난 95년 동안 등장한 수많은 신기술은 우리 사회에 그런 식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 방향을 의도하고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 P242

‘인간의 바둑‘은 인간 기사들이 만들어 내는 서사에 바둑계가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인공지능은 서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서사는 인물의 감정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주인공은 역경을 겪으며, 그 역경을 겪는 동안 두려움, 불안, 좌절감 같은 감정들을 느낀다. 우리는 그런 감정에 빨려 들어가서, 주인공을 우리와 동일시하며 그를 응원한다. - P243

"주인공이 내면의 힘을 짜내어 행동으로 옮길 때에만 적수를 KO시킬 수 있는 충격을 줄 수 있다." _서사 이론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작가 제임스 스콧 벨 - P244

거의 결말에 이르러 독자들이 "주인공이 싸울까 아니면 도망칠까? 적수가 주인공이 대적하기엔 너무 강한 것이 아닐까?"라고 묻게 만들어야 한다 _제임스 스콧 벨 - P244

낸시 크레스는 소설에서 "어떤 인물이 진짜 감정에 따라 행동하거나, 진짜 감정을 숨기거나, 또 진짜 감정때문에 상처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은 ‘좌절감‘이다‘ - P244

스포츠는 아주 훌륭한 서사의 재료이며, 사실 이것이 오늘날 프로스포츠 산업의 핵심이다. 오늘날 많은 스포츠 팬은 그 스포츠 활동 자체를 직접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선수들이 그 스포츠를 통해 만들어 내는 서사를 즐기는 사람이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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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6-09-24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 추석 잘 보내시고 남은 이 달 즐독하시길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6-09-24 14:39   좋아요 1 | URL
예 고맙습니다. 서곡님도 즐거운 추석 연휴 되시길 바랍니다!

appletreeje 2026-09-24 15: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6-09-24 15:28   좋아요 3 | URL
예 appletreeje 님도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총 6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단 가장 먼저 나온 ‘TV피플‘은 글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저자가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히 파악하기 힘든 다소 난해한 작품이었다.

그나마 밑줄친 문장들과 독자인 나의 상상력을 좀 덧붙여서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전반적으로 작품 속 화자가 현실과 꿈 속을 넘나들며 경험했던 일들을 바탕으로 TV피플이라고 나오는 3명의 사람과 관점을 바꿔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처음에는 화자가 TV 밖에서 TV피플들을 바라보는 시청자처럼 느껴졌지만 어느순간부터는 TV피플들이 현실이라는 TV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화자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는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일까?‘(p.51)라는 문장을 통해 독자인 내가 단지 추론해본 것일뿐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나름대로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추론해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또한 일반적으로 TV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연예인이든 아나운서든 아니면 다른 누가 되었든 간에 말을 하지 않으면 존재감이 희박해지기 마련인데, 이러한 속성을 잘 표현한 것이 p.50에 내가 밑줄친 문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TV에 나오는 사람들 뿐만아니라 그냥 평범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회사든 학교든 어디든 간에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 역시 존재감이 희박해지는 건 얼추 비슷하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아예 없진 않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소설 속 화자의 경우도 회사에서 말을 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영향력 또는 회사에서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적절한 타이밍에 주변 동료들에게 나름대로 영양가 있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화자가 일하는 장소가 비록 방송국은 아니지만 TV에 나오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위치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적인 행동으로 말하기를 선택한다는 점에서는 일정부분 공통된 모습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외에도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소설 속에서 TV피플들이 TV를 놓기 위해 화자의 집에 있는 테이블 위에 있던 각종 잡지들을 치우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것은 마치 종이로 된 매체를 영상 매체가 대체해 나가고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도 책 읽는 사람보다는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을 생각하다보니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소설 속 에피소드 중 하나로 소설 중반부에 화자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장면이 있다. 회사 동료들은 화자를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하는데, 독자인 나는 이 부분에서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각각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관적인 해석이긴 하지만 바로 앞문단에서 언급했던 책(텍스트)과 영상 콘텐츠를 각각 계단과 엘리베이터에 연동시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계단은 뭔가 아날로그적이라면 엘리베이터는 디지털적인 것이라고나 할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디지털 시대의 최신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와중에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리타분한 별종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물론 각자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속칭 비주류인 사람들을 사회의 변화에 나름대로 잘 적응한 속칭 주류인 사람들이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비슷한 시선들을 계단과 엘리베이터 에피소드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소설 중간중간에 시간이 가는 것을 상징하는 듯한 별다른 뜻은 없어보이는 의성어인 ‘타룹푸ㆍ쿠ㆍ샤우스ㆍ타룹푸ㆍ쿠ㆍ샤우스‘ (p.22) 같은 말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TV를 보든 TV밖의 실제 인생에서 무엇을 하든 관계없이 시간이라는 건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듯하다.



어느덧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TV피플은 화자에게 화자의 부인이 안 돌아올거라고 말한다. 처음엔 갑자기 생뚱맞게 이게 무슨 전개지 싶었는데,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었다.

위에서 살짝 언급했던 키워드 중에 ‘잡지‘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원래 화자의 부인이 주로 읽어보던 것이었다. 그런데 앞서 독자인 내가 이 잡지라는 것을 영상 콘텐츠같은 최신식의 콘텐츠라기보다는 조금은 구시대적인 콘텐츠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실제로 화자의 부인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보다는 구시대적인 콘텐츠들이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들거나 궁극에는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을 듯하다. 결론적으로 ‘부인은 안 돌아온다‘고 말한 TV피플의 말은 ‘이제 아날로그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의 시대가 왔다‘ 정도로 치환해서 해석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좀 더 나아가서 요즘 4차 산업 혁명의 키워드인 ‘AI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넣어서 적용해보자면 ‘인공지능 이전의 시대는 이제 완전히 끝나서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말로도 표현해볼 수 있을 듯하다.



이후 TV피플이 자신이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독자인 나는 처음엔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솔직히 전혀 감이 오지 않았었는데, 작가가 소설 속에 등장시킨 것들을 하나하나 해석해나가면서 이 ‘비행기‘라는 것이 요즘 가장 각광받고 있는 ‘AI, 인공지능‘을 상징하는 단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앞서 윗문단에서 언급한 ‘부인은 안 돌아온다‘는 것이 상징하는 바가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봤을 때, 소설 속에서 ‘비행기‘라는 최신 기술이 도입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서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내 나름의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소설 속에서 TV피플은 비행기를 개발하는데 끊임없는 노력을 쏟아붇고 있었고 이제 색칠만 하면 근사한 비행기가 완성된다는 말을 통해 비행기의 완성이 머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요즘 가장 핫한 기술인 ‘AI,인공지능‘ 개발과도 일맥상통하는 흐름이기에 독자인 나의 이러한 해석이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TV피플‘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 ‘나는 일어서서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일어선 순간 말은 지워져 사라지고 말았다.‘(p.51) 에서는 말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 음성이 유선상의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상대방의 전화기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최대한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기술이 좀 더 진화해서 기계가 사람의 생각을 미리 읽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상황을 표현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모든 것은 독자인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기에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뒤섞이는 밀물과 썰물처럼, 예감이 기억을 끌어당기고 기억이 예감을 끌어당긴다. - P10

잠깐만, 나는 발언하고 싶다. 무언가 말해야 한다. 내게는 해야 할 말이 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작아지고, 메말라버리고, 이윽고 돌이 되고 만다.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 P50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일까? - P51

눈앞의 타인에게 그렇게 철두철미 존재를 무시당하면 스스로도 자신이 그곳에 있는지 어떤지 차츰 확신할 수 없어진다. - P22

시계는 계속 시간을 새긴다. 타룸푸 · 쿠· 샤우스 • 타룹푸 · 쿠·샤우스, 하고. - P22

시계가 묵직한 소리로 침묵을 분할하고 있었다. 타룹푸 · 쿠ㆍ 샤우스 • 타룹푸 · 쿠· 샤우스, 나는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귀에 넣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소리는 속수무책으로 무겁고 거대했다. 싫어도 귀에 들어왔다. - P25

나는 리모컨을 테이블에 놓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긴 소설을 계속 읽으려고 생각했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나면 늘 책을 읽는다. 삼십 분쯤 읽다 말 때도 있고, 두 시간 읽을 때도 있다. 어쨌거나 매일 읽는다. 하지만 그날은 한 페이지의 절반도 읽지 못했다. 아무리 책에 의식을 집중하려 해도 신경이 바로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자꾸 텔레비전으로 눈이 가고 만다. 텔레비전 화면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었다. - P27

눈을 감으면 TV피플의 모습이 떠올랐다. 텔레비전을 운반했던 TV피플, 시계를 치웠던 TV피플, 잡지를 테이블 위로 옮겼던 TV 피플,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았던 TV피플, 화상을 점검했던 TV피플, 문을 열고 말없이 나갔던 TV피플. 그들은 줄곧 내 머릿속에 있었다. 그들이 내 머릿속을 걸어다녔다. - P28

나는 엘리베이터 타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언제나 걸어서 계단을 오르내린다. 사무실은 빌딩 9층에 있으니 편한 작업이 아니다. 특히 급한 용건이라도 있을 때는 땀에 푹 젖어버린다. 그래도 나로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느니 땀에 젖는 편이 훨씬 낫다. 그 일로 모두 농담을 한다. 내가 텔레비전도 비디오도 가지고 있지 않고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 않는 탓에 그들은 나를 별종 취급한다. 어쩌면 내가 어떤 의미에서 아직 미성숙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기묘한 사고방식이다. 그들이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 P30

말을 멈추면 나는 죽고 만다. 그래서 중단할 수없다. 뜻도 모르는 이야기를 영원히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주위 인간은 이미 모두 죽고 말았다. 죽어서 돌이 되었다. 딱딱한 석상이 되었다. - P42

그는 형광등 불빛 같은 하얀 빛을 배경으로 가만히 서서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현실에 숨어든 꿈의 꼬리 같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훌쩍 사라져버릴 듯 느껴졌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화면 속 TV 피플의 모습은 외려 차츰 커졌다. 화면에 그의 얼굴이 가득 찼다.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오는 느낌으로 TV피플의 얼굴이 차츰 클로즈업되었다. 이윽고 TV피플은 텔레비전 밖으로 나왔다. 마치 창문을 넘듯 손으로 테두리를 짚고 영차 하고 발을 내딛고 나왔다. 그가 나온 뒤 화면에는 하얗게 빛나는 배경만 남았다. - P43

"부인은 안 돌아와." 화면 밖 TV피플이 내게 말했다. - P46

이미 틀렸으니까 안 돌아와, - P47

"우린 비행기를 만들고 있어." TV피플이 말했다. 원근감없는 목소리였다. 얄팍해서 마치 종이에 적힌 소리 같았다. - P44

텔레비전 속 두 TV피플은 나와는 무관하게 부지런히 비행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한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 기계를 완성시킬 때까지 해야 할 작업은 무한히 있는 듯했다. 한 작업이 끝나면 지체 없이 바로 다음 작업이 시작됐다. 번듯한 공정표나 도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무얼 해야 하는지, 다음 작업이 무엇인지 숙지하고 있었다. 카메라는 그들의 그런 훌륭한 작업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따라갔다. 알기 쉽고 적확한 카메라워크였다. 설득력 있는 화면이었다. 아마도 다른(제4인지 제5의) TV피플이 카메라와 컨트롤 패널 작업을 담당하고 있을 테다. - P49

신기한 얘기지만, TV피플의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작업을 지그시 보는 사이 내 눈에도 그것이 조금씩 비행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적어도 비행기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그런 건 상관없지 않은가. 저렇게 멋지게 정밀 작업을 하고 있으니 비행기임이 분명하다. 설령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그들에게는 비행기다. 확실히 이 남자가 말한 대로다. 비행기가 아니면, 이게 뭔데? - P49

텔레비전 밖 TV피플은 아까부터 조금도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는 오른쪽 팔꿈치를 텔레비전에 올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보여지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  TV피플은 일을 계속했다. 시계 소리가 들렸다. 타룸푸 · 쿠·사우스ㆍ타룹푸·쿠·사우스. - P49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돌연 생각했다. 하긴 아내는 이제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는 이미 아주 멀리 가버린 것이다. 온갖 교통수단을 사용해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가버렸다. 분명 우리는 돌이킬 수 없게 틀려버렸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잃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만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내안에서 여러 생각이 풀어졌다가 다시 합쳐졌다. 그럴지도 몰라,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목소리는 내 몸속에서 매우 공허하게 울렸다. - P50

"내일 색을 칠하면 더 잘 알게 돼." TV피플이 말했다. "색만 입히면 번듯한 비행기가 돼." - P50

나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이 평소보다 조금 작아 보였다. 정말 조금.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빛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인지도 모른다. 원근감의 밸런스가 살짝 뒤틀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바닥은 확실히 작아진 것처럼 보인다. - P50

나는 전화기를 보았다. 전화선을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이어진 전화선. 그 무시무시한 회선 미로 어딘가의 단말기 앞에 아내가 있다. 한참 멀리, 내 손이 닿지 않을만큼 멀리. 나는 아내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오분, 나는 생각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일까? 나는 일어서서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일어선 순간 말은 지워져 사라지고 말았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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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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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비현실이 교묘하게 혼합된 이야기가 7편 수록되어 있고, 각각의 이야기마다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읽었던 동저자의《도쿄 기담집》처럼 기묘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야기 중간중간 의미심장한 문장들도 더러 나오고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은 편이기에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뭔가 새로운 느낌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아마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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