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 이어서 ‘용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개인의 삶이라는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한 차원 진화하여 인류 역사에 있었던 사건에서 용서와 관련한 논의를 하기 위해 저자는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사례를 간략히 소개한다. 핵심은 용서의 주체인 피해 당사자들이 용서의 시기나 방법도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떠올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일이 다 나열하긴 힘들지만 각각의 이슈들에 있어서 피해 당사자들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의사가 용서를 하는 것이든 하지 않는 것이든 간에 선택은 그들의 몫에 맡겨야지 당사자도 아닌 제 3의 인물이 와서 용서를 해라 말아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내는 목소리에 대해서 제 3자들이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전반적으로 바람직한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또한 여기 별도로 인용하진 않았지만 용서와 관련된 정호승 시인의 시《이슬이 맺히는 사람》이라는 시를 통해 내게 상처준 사람에 대해 분노하는 대신 연민하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지만 이것의 핵심은 결국 내가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듯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었다.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독자인 내 개인적으로는 큰 그림에서 봤을 때 웬만큼 용서가 되는 것이라면 가급적 용서하는게 내 신상에도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물론 세상엔 정말 용서하기 힘든 일들도 종종 발생하기에 모든 일에 대해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에게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면 기꺼이 용서하는 것이 궁극에는 나도 어떤 다른 상황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용서‘라는 키워드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데, 저자는 이러한 ‘부끄러움‘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부끄러움은 자기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볼 수 있는 반면교사의 역할도 있기에 긍정적인 면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이라는 키워드와 관련하여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의《마음》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한 번 읽어봤던 작품이라 저자가 느끼는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나 감상이 궁금했다. 읽으면서 내가 읽고 느꼈던 것과는 또다른 관점이나 느낌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 이런걸 보면 같은 작품을 읽어도 읽는 사람에 따라 감상의 깊이나 느낌이 천차만별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나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이 났지만 그 속에서 발견하는 어떤 메시지에 있어서 전문가인 저자의 예리함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인간관계 혹은 세상에 대해 너무 단순하고 한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여러가지 요인들을 고려하는 것이 삶에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선택‘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이 이어진다. 저자는 먼저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길을 독자들에게 간단하게나마 소개하면서 여타의 이유로 인해 임시로 시작했던 강사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음을 고백한다. 저자의 이력에 관해 자세히는 몰랐던 독자인 나로서는 조금 의외였다. 왜냐하면 저자가 현재 공무원 국어 영역에서 아주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알려져 있기에 젊은 시절부터 강사의 꿈을 키우고 지금까지 걸어왔을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이 책의 저자뿐만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든 간에 인생의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선택을 하고 나면 그 선택이 또다른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하는 것들을 보게 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어떤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지 않은 혹은 못한 것을 자꾸 돌아보면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며 엄청난 내적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도 이런 갈등의 순간이 잠시 있었지만 선택의 이유가 내 자신의 의지든 아니든 간에 결국 자신이 선택한 길에 들어온 이상 그 선택의 앞에 놓여 있는 길에 집중해서 잘 걸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고 저자 본인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듯 하다.

독자인 나도 이 부분(‘선택‘)을 읽으면서 과거에 했던 선택을 잠시나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배경이 다들 다르기에 성급하게 일반화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마 누구나 살면서 아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매순간 파도가 들이닥칠 때마다 그 파도에 잘 올라타면 내가 의도했던대로 인생이 풀려가는 것이고, 파도에 휩쓸린다면 중심을 못잡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이동해서 다시 거기서 새로운 파도가 올 때를 기다리며 또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인생을 파도에 비유한 게 내가 어디 다른데서 들어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p.263에 밑줄친 문장을 보면 ‘깨달음‘과 ‘결단력‘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깨달음이 일종의 지혜라면 결단력은 일종의 실행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혜와 실행력이 합쳐지면 능치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이 ‘선택‘에 대한 내용에서 저자는 이광수의《무정》이라는 작품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학창시절에 이런작품이 있다는 것만 들어봤을 뿐 제대로 읽어보지는 못했던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나마《무정》의 내용과 메시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내용이야 해당 작품을 찾아 읽어보면 될 일이고, 메시지 부분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아주 의미있다고 느껴졌다. 비록 나온지는 좀 오래된 작품일지 몰라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인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p.264에 밑줄 친 《무정》의 마지막 문장은 어둡고 힘든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빛처럼 보였다. 뭔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면서 희망이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어떤 굳건한 의지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선택‘이라는 것과 관련해서 생각을 정리정돈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유익하지 않았나 싶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용서는 큰 화두입니다. 일례로 매년 홀로코스트 추모일에는 이스라엘과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희생자를 기리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면서 용서의 마감일을 정해놓지 않은 것이죠. - P232

용서의 주체들은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 일과 관련된 기록을 책으로 펴내면서 끊임없이 역사를 되짚습니다. 용서의 주체들이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죠. - P232

용서의 주체는 결국 피해 당사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용서의 시기나 방법도 그들이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사회는 언제까지고 기다리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233

우리가 용서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서로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야 하는데, 심지어는 내가 아주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상처의 깊이는 깊어지고 빈도는 잦아지죠. - P234

해가 지고 나면 가슴에 분을 품지 말라 - P234

분이 맺히는 것이 아니라 ‘이슬이 맺힌다‘ - P236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하게 되었다는 뜻 - P236

왜 분노하는 대신 연민하게 되었을까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슴에는 이슬이 맺히는 용서와 연민이 필요한 것이겠죠. - P237

다만 용서의 주체는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 이에게 용서를 강요하면 분노만 깊어질 뿐입니다.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살아갈 연민도 생겨날 것입니다. - P237

용서하고 싶은 일은 용서하고, 아직 담아두고 싶은 일은 그대로 담아둔 채 오늘도 별다르지 않은 우리네 하루를 살아갑니다. - P237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부정적 의미만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반면교사 삼으면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고, 시대정신을 확립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건강하게 승화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 P240

자신의 부끄러움이 어떤 모양인지에 따라 삶의 모습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 P240

숙부에게 배신당하고 괴로워하던 선생님은 친구의 죽음을 통해 자신도 숙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숙부를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욕망을 앞세워 스스로를 기만하고 친구를 배신했으니까요. - P242

세상에는 그 어떤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 P244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만큼 영혼이 올곧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 P244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 그것에 관해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다면 그 감정은 자신에 대한 혐오로 전이되어 고독감이 깊어지면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속 선생님처럼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 P245

끝내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면 우리 삶에는 빈 공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 P245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할 대상이 없는 것처럼 사람을 약하고 고독한 존재로 만드는 상황도 없는 것 같아요. - P249

오늘날 사회에서 고립과 단절은 너무나 흔하죠.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이 가능한 세상이라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단절과 고립에 따른 부작용으로 점점 더 파편화되어 가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 P249

문학의 면면들은 현실의 삶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문학 속 등장인물처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지는 않지만, 그들의 면면은 우리 삶 속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잖아요. - P250

선생님의 삶 속 허무는 어쩌면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그 속에서 나의 역할을 규정한 탓에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관계는 결코 단순하게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겪는 감정도 때마다 모두 다릅니다. - P251

자연이라는 존재를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를 보고 그저 ‘바다네‘라고만 생각한다면 그 순간의 특별함은 사라집니다. - P251

얼마 전 유행했던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라는 말처럼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만 살고 싶어서 ‘세상은 다 그런 거지. 그게 그거야‘라고 단정 짓는다면 누구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을까요?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만 생각하면 한순간도 충만할 수 없습니다. - P251

허무주의에서 비롯된 고독감이 극단적인 고립감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나치게 도덕적인 관념 속으로 몰아넣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 P251

우리는 모두 백석의 시「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구절처럼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을 소처럼 계속 되새김질하며 사는‘, 저마다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 물론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도요. - P251

후회는 무용지물입니다. 이제는 그저 내가 선택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합니다. 나의 선택을 믿고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힘, 그런 배짱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쫓겨 정해진 방향으로 걸어간다고 해도 그다음의 길을 만들어가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죠. - P256

선택의 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마음가짐 - P256

아쉬움은 또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선택한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새로운 가능성과 만날 수 있기 때문 - P256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 P256

그리운 것은 잊고 외면하는 게 아니라, 그리운 대로 두고 나의 선택을 받아들여 보세요. 그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나의 선택에 몰입할 힘을 갖게 됩니다. - P257

도망갈 생각에만 빠져 있으니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더군요. - P257

또 다른 선택을 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겠다는 위기감 - P257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기 - P258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일단 포기하자!‘ - P258

결국 상황에 관한 객관적 인식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죠. - P258

내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지만 이 길이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놀라운 몰입감이 생기면서 점점 두드러진 성과를 내게 되었습니다. - P258

때때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포기할 줄 아는 것, 그리고 다른 길이 없다면 지금의 선택에 몰입하는 것이 또다른 삶을 펼칠 계기가 된다는 것 - P258

무언가를 선택한 후에는 결과를 걱정하며 망설이기보다는 뛰어들어서 몰입과 집중을 해야 성과가 납니다. 달리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죠. 계속 흘끔흘끔 뒤돌아보며 자기 위치를 확인하거나 시계를 쳐다본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몰입을 방해해서 좋지 않은 결과만 낳을 뿐이죠. - P258

인생을 살아가며 모든 걸 다 가지고, 모든 걸 다 뜻대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오만입니다. - P259

선택의 결과도 예측하거나 장담할 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일단 선택한 후에는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는 몰입 그리고 한눈팔지 않는 집중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몰입과 집중이 시간의 힘과 만나 쌓여야만 비로소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 P259

선택의 갈림길을 이야기할 때 항상 떠오르는 소설 중 하나가 바로 이광수의 『무정』입니다. 이 소설은 최초의 근대장편 소설이자 신문학사상이 반영된 기념비적인 계몽소설이죠. 문학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소설 - P259

이 소설에는 조선사회의 전형화된 모습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면적인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 P259

『무정』의 주인공들은 그 운명 앞에서 고뇌하고 흔들리는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P260

‘계몽주의 소설‘이라는 틀 안에만 가둬놓을 수 없는 이유는 네 명의 인물 모두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결정하는 법을 배워나가기 때문입니다. - P260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할 것이냐, 아니면 열정을 좇을 것이냐 - P262

‘진정한 사랑이 아니므로 낡은 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생활을 열라‘ - P263

결국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때 필요한 것은 깨달음과 결단력인 것이죠. 결단할 용기가 없다면 어떤 깨달음도 쓸모가 없습니다. 또한 깨달음이 없어도 결단과 열정의 힘만으로는 끝까지 나아갈 수 없죠. 아무리 내면의 의지가 강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 이정표가 되어줄 지식과 지혜, 조력자가 없다면 그 결단은 무모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 P263

영채가 새로운 시대에서 갈등하며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고 체념한다면 갈등할 이유가 없겠지만『무정』의 인물들은 여기저기 부딪히고 고민하고 좌절도 겪으면서 결국 스스로의 인생을 선택하고 성장합니다. - P263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 P264

현실이 자꾸 내게 상처를 주고 있다면 우리도 내 안의 작은 불빛들을 조금씩 키워나가 보는 건 어떨까요?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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