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 저자는 자신의 지인과 있었던 한 일화를 소개한다. 연어라는 뜻을 가진 salmon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는데 지인이 제대로 된 발음(쌔먼)이 아닌 자신이 기존에 익숙해져있는 잘못된 발음(샐몬)을 계속 고수하려 하자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지인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이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배움이라는 것에 대해 저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는 자기 자신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부끄럼없이 인정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오픈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살다보면 어떤 순간에는 자신이 고집을 부려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기 마련인데, 위 사례같은 경우에는 후자의 스탠스를 취하는 게 바람직해보인다. (저자의 지인이 영어 사전에 나오는 발음기호만 제대로 봤더라도 저자가 해준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움은 새롭게 변하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 P129

나 역시 그들처럼 나의 편안함을 지키고 싶어서 거부하는 게 있다.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의 행동이 눈에 띄는 건, 결국 나에게 있는 문제인 것이다. - P129

영어에서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영어 공부 전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 P136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런 거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눈이 생기는 것. - P136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정확하게는 ‘말‘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상황을 머리에 그려보자. - P138

영어를 쓴다는 것에서 내가 바라는 그림은 뭐더라? 더 길고 있어 보이는 영어를 쓰는 게 아니라, 영어로 내 뜻을 정확하게 편안하게 전달하는 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편안하게! - P139

내가 어긋나거나 어색한 표현을 ‘당당하게‘ ‘편안하게‘ 쓰고 나면,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 듣게 되는 원어민의 표현이 놀랍게도 머릿속에 남는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정확하게 기억된다. 사실 이게 정확하게 남는지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쓰게 된다. - P140

내가 원하는 걸 나의 언어로 말하는 게 먼저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나의 언어‘다.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나의 언어. - P140

언어가 표현하는 대상과 언어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모국어 하나만 사용하며 사는 동안에는 의식할 필요가 없는 차이다. 전화를 바꾸는 행위와 ‘바꾸다‘라는 언어를 따로 떼어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영어와 비교해 보면 그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 P140

한국말을 떠올리지 말고, 내가 전하고 싶은 상황을 머리에 그려서 떠올린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듯이 말한다. 왜냐하면, 한국말을 버렸다고, 바로 내게 영어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건 당연하다. 영어는 아직 나의 언어가 아니다. 적어도 이 단계에서는 나 혼자만의 언어를 창조하는 자유를 누린다. 어색한 발음은 나에게 덤인 무기다. 내가 이상한 말을 써도, 원어민은 나의 언어를 엄격하게 판단하지 않을 테니까. - P142

나는 나의 언어의 창조자라고 느낀다. 이 새로운 언어 세계는 물론 외롭다. 나 혼자밖에 없으니까. 따라서 틀린 영어, 콩글리시라는 조롱이나 비난 또는 창피함이 스며들어 올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차단하고, 시민이 나 하나밖에 없지만, 여전히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자유롭게 말한다. 성인 외국어 학습자는 이 단계를 거쳐야 영어의 세계로 갈 수 있다. - P143

이것은 영어라서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의무교육 과정에서 배웠고, 그리고 일상적으로 영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 때문에 우리는 꽤나 많은 영어 재료들을 가지고 있다. 당장 영어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나만의 언어를 창조할 수 있을 만큼은 말이다. - P143

이때 또 중요한 건 문장을 끊어 쓰는 것이다. 앞에서 한국어와 영어의 명사나 동사 같은 품사가 일대일로 일치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문장의 생각 단위야말로 두 언어가 정말로 다르다. 영어로 읽은 텍스트를 한국어로 쓰기 위해 번역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 필수적으로 문장을 끊는다. 이때에도 앞서 말한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 영어라는 언어가 상황을 나누고 제한한 것들에서 벗어나 그림을 그린다. 그것을 한국어의 생각 단위로 잘라내거나 재조합한다. - P143

이 모든 것은 지극히 귀찮은 과정이다. 동시에 나에게 이상한 자유를 준다. - P143

영어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한국말을 버리고, 나 혼자만의 언어 세계를 만들면서, 이상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처음에는 이것이 자유라고 느끼지 못했다. 영어든 한국말이든 불편하다고 느꼈다. 언어가 이토록 불완전하고 제한적이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부터가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 P144

영어로 말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내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나는 나만의 언어의 창조자니까. 그러면서 나는 나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됐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게 뭐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하게 뭐야? 처음에는 별거 아닌 질문 같지만, 이것을 꾸준히 해보길 추천한다. 변변한 답이 없어도 괜찮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그 질문을 끊임없이 떠올리는 것만으로 독특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이 질문을 지속하기 위해 영어를 계속 접하는 것은 꽤나 좋은 수단이다. - P145

미국에서는 구체적으로 하지 말라고 금지하지 않는 일은 해도 된다 - P150

고마움과 미안함도 말로 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전하는 게 더 풍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 P151

감정을 조절하는 게 어려울 것 같지만 어떤 내용이든 내 생각을 말해도 된다는 안심을 하기만 하면 목소리를 낮추는 건 쉬워진다. 한국말로 할 때,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많아서 감정이 폭발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 P154

영어는 외국어이기에 내가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조차 낯설게 볼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되어준다. - P168

영어로 하면 감정이나 강요, 위아래 관계에 대한 전제 없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게 더 쉽게 느껴진다. - P171

언어가 의사를 전달하는 기능만 남아서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모르고, 상대가 원하는 것만을 아는 상태가 됐다. 이런 불편이 역설적으로 이상한 편안함이 됐다. - P172

나 스스로도 그리고 미국인들도 나를 외국인으로 낯설게 대하기를 바라면 친구가 되거나 마음을 나누기 어렵다 - P173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설명하는 건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곤한 일이라는 것도 미국에서 영어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 P173

나는 어떤 고정된 사람이기를 멈추게 된 것이다. - P175

영어를 쓰면서 생긴 나 자신과의 거리, 나 자신에 대한 낯설음을 통해 나는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175

비교는 오히려 자기 탐구의 출발이 된다. - P176

비교가 나쁜 건, 비교 때문이 아니라 비교와 가치판단을 혼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 P180

어떤 언어나 문화가 더 우월한 건 아니다. 물론 영어가 경제적, 국제적으로 더 많은 유용성을 가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어의 유용성이 더 높게 평가되는 현실과는 별개로 나의 개인적인 내면을 탐구할 때에는 균형 있게 두 언어를 평가해도 된다. - P181

‘나‘가 고정되지 않으면 인생의 은밀하고 큰 재미 하나가 늘어나는 셈이다. - P182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들 한다. 수천 년 전 오디세우스가 떠났던 고난으로 가득한 여정의 종착지는 고향이었다. 어차피 돌아올 걸 애당초 왜 떠나나? 돌아온 고향은 떠나기 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길러낸 고향이 아닌 낯선 곳에서 나는 다른 내가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달라진 ‘나‘에게 고향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향이 완전히 낯선 곳은 아니다. 내가 달라졌다고 해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아닌 것처럼. 나의 일부인 고향 그리고 과거의 나는 사라지지 않고, 달라진 ‘나‘와 통합된다. - P183

영어는 나에게 편안한 자신의 집을 떠났다가 무수한 모험을 한 후 집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의 여행과 같은 경험이 되곤 한다. - P183

영어에 숙달할 필요도 없다. 영어가 서툴렀던 시절, 영어를 써먹기 시작하자마자 이미 나는 새로운 세상과 마주했다. - P184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 P187

권력의 최종적인 특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하지만 소유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게 된다는. 누구에게도 속한 것이 아닌 이유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옷, 정확하게 말하면 존재하지도 않는데 다 같이 존재하는 걸로 합의한 것뿐이라 소유할 수 있는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합의가 중요하다. 왕도 깰 수 없는 모두의 합의. 그래서 존재하지도 않고, 따라서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 P189

영어 역시 권력이지만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나의 영어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권력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나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하는 원어민을 만날 때가 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너는 나의 영어를 칭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에 나는 "나는 원래 말을 잘해. 영어가 아니라. 그 차이를 아니?"라고 말한다. 대부분은 무슨 소린지 모르고 넘어가지만 간혹 예민한 사람은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기도 한다. - P190

권력의 속성은 그것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다수의 믿음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소유하지 못하고 우리를 끊임없이 구속한다. 영어를 잘해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혹은 영어를 못해서 손해를 본다고 믿는 것 자체가 권력의 영역이다. - P190

통역기가 완벽해지면 영어라는 권력도 사라질까? 통역기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통제하지는 않을까? 어쩐지 그럴 것 같다. 외국어를 배우는 시간에 배우는 다른 가치 있는 게 도대체 뭘까? 그것 역시 또 다른 권력이 될 게 뻔하다. - P191

나는 여전히 영어를 배우고 열심히 쓴다. 대신 영어를 통해 내가 어떤 권력을 획득하리라는, 즉 내가 기회를 얻고 돈을 버는 데에 어떤 쓸모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버리려고 노력할 뿐이다. 당연히 기대는 있고, 어떤 식으로든 실용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어마어마하거나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바로 그 차이를 아는 것만으로도 영어가 우리에게 가하는 구속과 압박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 P191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행동함으로써만 가능하다. - P192

영어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중요한 게 많다. 인정하기 싫지만, 호감형 외모나 사교적인 성격, 돈이나 인맥 같은 것들 역시 영어처럼 부족하면 불이익이나 불편이 따라오는 게 사실이지만, 나 스스로 적당히 무시할 수 있으면 ‘생각만큼‘ 사는 데에 지장이 없기도 한 것과 같다. - P193

어떤 이유에서건 속이 편하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좋은 단계, 뻔한 단계는 그저 하는 것이다. 영어가 좋거나 중요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은 영어를 ‘하는 것뿐‘이다. 어떻게 좋아하지 않아도, 의미나 목표 없이도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나‘를 발견하고 실험하는 끊임없는 과정으로 만들 때에 가능하다. - P194

최고의 목표 달성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풍부한 가능성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 P196

‘그냥 한다‘는 단순한 본질에서 시작해서 영어를 계속한다. 나의 재능이나 영어를 쓰는 환경은 내가 행동하면서 나다움을 발견하는 맥락이 된다. - P197

그만큼이 현재의 ‘나다움‘인 것이다. - P199

빵 굽기, 영어로 말하기, 쓰기, 읽기, 그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것은 같은 걸 반복하는 성실성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구분할 수 없어도, ‘나‘는 똑같은 행동을 계속하면서 매번 다른 실험을 하면, 그 실험을 통해 나와 환경, 나의 과거, 경험의 한계를 접하면서 ‘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나‘를 지킴으로써 나의 새로움을 발견해 간다는 역설이 가능한 것이다. - P199

미식축구가 내게 특별한 건 바로 영어가 사용되는 문화적인 맥락 때문임을 천천히 알게 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어라는 언어가 미국에서 사용되는 사고방식이라고 하겠다. - P202

이기고 있는데도 지루했던 건 이유가 없어서였다. 왜 싸우는지가 없었다. 이기겠다는 건 이유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러니까 즐긴다거나 그런 건 애당초 이유가 될 수 없다. - P204

진짜 치열함은 이기는 결과를 향한 치열함이 아니다. 지더라도 테스트를 해보는, 예를 들면 스스로 설정한 의미를 향해 선수나 전술을 집요하게 실험하는 치열함이다. - P204

승부 앞에 선 사람은 즐겨서는 안 된다. 즐긴다는 건 돌아볼 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과정을 즐겼다는 말에는 자기 실험, 즉 자기가 설정한 의미를 지켜내는 순간의 긴장과 치열함이 숨어 있다. 너무도 치열해서 그걸 그대로 표현할 수 없을 때 하는 말이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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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6-07-18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작 ‘쌔먼‘ 정도의 영어 발음을 잘못했다고 변화를 거부하는 지인으로
단정하고 안타까워하는 저자는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후진? 예시를 읽고나서도 청출어람,
‘개인적으로는 자기 자신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부끄럼없이 인정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는
즐라탄이즐라탄탄님의 사고와 결론은 훌륭!

한국에서 사용하는 영어의 외래어식 표기는
정말 또 다른 외국어처럼 난해하다고 생각합니다.

거의 40년 전, hegemony [həˈjemənē] 히줴‘머니 발음을
한국식으로 헤‘게모니, 아무리 외쳐도
그 누구도 못 알아들어서 좌절.

˝쌔먼˝ 은 ˝쌔먼˝ 이라 발음하는 게 맞다고
뭐 엄청 대단한 걸 혼자 아는 것처럼 굴면서
아직도 헤‘게모니 포함, 많은 단어들 발음 틀리게 하는 건
뭐라고 설명할지 궁금!


즐라탄이즐라탄탄 2026-07-18 14:07   좋아요 2 | URL
사례로 나온 이야기만 놓고 잠시 생각해보니 얼마든지 Jeremy님처럼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전후문맥을 일부 생략하고 사례를 간략히 적다보니 살짝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 사례에서 저자의 지인은 저자에게 영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말을 소위 ‘쌔먼‘ 사건(?)이 있기 전에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발음을 제대로 알려준 것인데 지인이 자신이 기존에 해오던 것을 바꾸기를 거부하자 저자 딴에는 지인이 기존에 했던 말과 실제 행동이 다르다는 생각에 살짝 기분이 언짢았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위 사례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이 영어를 공부하다보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 예를 들면 묵음이라든가 발음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경우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일일이 완벽하게 대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원어민 등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때그때 피드백 받는 식으로 교정해나가는 게 바람직해보입니다.

그리고 댓글에 남겨주신 헤게모니의 원래 정석적인 발음 같은 건 저도 미처 몰랐는데 Jeremy님 덕분에 하나 배웠습니다.

제가 이 책을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그래도 절반 이상 읽은 시점에서 저자의 성향에 대한 제 생각을 얘기해보자면 나름대로 자기 주관과 소신이 뚜렷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 주관과 소신이라는 게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저자는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능력, 소위 말하는 ‘메타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어떤 정석적인 방식을 무작정 따르기보다는 자기 스타일에 맞게 자유롭게 영어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자유롭다고 해서 위 사례처럼 명확한 발음이 있는 것에 대해 타협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학습하는 방식이 자유롭다는 걸로 생각해주시면 될 듯합니다.

글을 쓰다보니 마치 제가 저자의 대변인이라도 된 것처럼 되었는데 저자와 독자인 저는 이 책을 통해 잠시잠깐 만난 사이일뿐 아무런 관계도 없음을 밝힙니다. Jeremy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Jeremy 2026-07-18 14:18   좋아요 1 | URL
정말 Plato 의 Apology of Socrates 급의 대변과 친절한 설명에 감사드려요!
마지막 문단에서 저 빵 터졌음, ㅎㅎㅎ.

즐라탄이즐라탄탄 2026-07-18 14:30   좋아요 1 | URL
댓글의 마지막 문단은 원래 제 계획에는 전혀 없던 것이었는데 쓰다보니 제가 저자를 마치 디펜스하는 모양새처럼 비춰져서 오해의 소지를 없이 하고자 쓰게되었습니다.ㅎ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