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부분에선 아성다이소가 한국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름에서 일본색이 묻어난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에게 오해받고, 일본과의 이슈가 생길때마다 고스란히 피해를 보았던 사례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사례들을 읽으면서 저자이자 아성다이소 회장인 박정부 님의 억울했던 울분 같은 것이 살짝 느껴졌다.
본질은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대할때 느끼는 그런 감정은 직접 당해보지 않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듯 하다. 고객만족을 위해 발품팔아가며 열심히 일했는데 순수하게 제품의 품질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이슈들로 인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는다면 많이 억울할 듯 하다. 저자의 심정이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이러한 이름과 관련된 이슈들의 얘기가 얼추 마무리되고 아성다이소는 또다른 위기들을 맞는데, 쭉 읽으면서 참 이 책의 저자이자 회장님께서 위에서 말한 이름 이슈와는 또다른 마음 고생을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많이 하셨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기들이 찾아온다. 이후엔 그동안 일반인들이 알지 못했던 어떤 또다른 이야기들이 나올지 궁금하다.

우리는 다케시마 후원기업도 아니고 일본기업은 더더욱 아니다. 심지어 다이소산교도 그런 일에는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았다. 회사차원에서 이 일과 무관하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하고 기자 간담회,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사이버수사대에도 수사를 의뢰했고, 매장마다 안내문을 써서 붙여놓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루머는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이소라는 브랜드명을 공유하다 보니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우리는 독도사랑 운동본부와 독도사랑 업무협약을 맺고 후원을 시작했고, 그 활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정말 일본 기업이라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일본에서 난리가 났다. 아성다이소를 일본 기업으로 알았던 일본 네티즌들이, 다이소산교가 독도사랑 운동본부를 후원한다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 일로 다이소산교 측이 우리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 우익단체로부터 협박도 받았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은 단호했다. 우리가 일본 기업이었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이소산교는 단지 우리의 전략적 사업파트너일 뿐이다. 다이소산교는 아성다이소의 무역하는 모기업인 한일맨파워를 통해 구매를 한 것이고, 한일맨파워는 저가 생활용품을 일본에 수출한 것이다.

그런데 비즈니스 협력관계를 맺으며 다이소 브랜드명을 공동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일반인들의 오해를 가져온 것 같다.

이를 두고 일본 기업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 외국 기업이 아닌 회사가 얼마나 될까. 삼성전자와 네이버는 외국계 지분이 60%에 달한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을 외국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국내에 회사가 있고 경영권을 갖고 있으면서 고용이나 생산활동을 통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나라 기업이 아닌가.

물론 다이소산교가 지분을 이유로 경영에 참여한다거나 매장운영에 대해 관여하는 부분은 전혀 없다.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한 적도 없으며, 브랜드 로고 자체도 다르다. 아성다이소에 대한 의장등록도 우리가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순수 토종 한국 기업이다.

오히려 요즘은 다이소산교가 우리의 매장운영 노하우와 물류시스템 등을 벤치마킹하고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아성 관계사에서 투자설립한 하스코(HASCO)와 다이소산교의 다이소차이나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 아성다이소는 내가 창업해서 30년간 이끌어온 순수 토종 한국 기업이란 점이다.

무척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나마 천만 다행인 것은 다이소산교와 거래절벽을 겪는 동안 국내 균일가 매장이 급성장을 거두었다는 것. 만약에 국내의 내수사업이 없었더라면 위기를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매출도 연 20%씩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매장도 늘고 취급 상품 수도 2만 개를 훌쩍 넘다보니 하루에 수백만 개씩 상품이 팔려나갔고 또 그것을 채워 넣어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바닷가재는 성장 과정에서 몸이 커지면 껍질을 벗는다. 이때 껍질을 벗지 않으면 단단한 껍질 속에 갇혀 일찍 죽게 되기 때문이다. 바닷가재 수명이 얼만지 아는가? 탈피만 제때 하면 길게는 100년 이상 살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바닷가재의 장수비결은 바로 ‘탈피‘에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물류센터야말로 바닷가재의 껍질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물류 개선에 통 큰 투자를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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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필드 2023-07-05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관점으로 생각을 못했던거 같아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공유 사회로 접근하는 글로벌시대의 협업방식이네요 국수주의 입장이 아닌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는게 필요한거 같아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7-05 11:59   좋아요 2 | URL
예 저도 책 읽기 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읽으면서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말씀주신것처럼 다양한 측면으로 보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러저러한 업종에 종사하려고 하는데 그 업종의 전망을 어떻게 보느냐는질문도 많이 받았다. 이것 역시 멍청한 질문이다.

업종이 좋으면 개나 소나 다 뛰어들어도 돈을 번다는 말이냐? 업종이 나쁘면 모두 다 손해를 보고? 불황인 업종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호황인 업종에서도 망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드는지를 알아야할 것 아닌가(사양 산업이 있음을 내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장사나 사업을 꿈꾸는 이유는 봉급생활자보다는 많은 수입을 얻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궁극적으로 아이템은 보물찾기처럼 당신이 열심히 찾으러 다니면 드디어 찾게 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백만장자들은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하게 된 일‘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그 일을 사랑하고 즐김으로써 ‘능력과 적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일‘로 바꾸어 버렸다고 했었다. 저 멀리 숲속 어딘가에 괜찮은 아이템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라.

그것은 남들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편리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게 저절로 당신 눈에 들어와야 한다. 그런 것이 눈에 저절로 들어오지 않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이템을 찾아헤매는 수많은 사람들은 피고용인, 즉 봉급생활자로 일하는 게 더 좋다고 본다.

실제로 수십 년간 사람들을 고용하여 온 나의 경험에 따르면 절대로 사업이나 장사를 하면 안되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가장 공통적 특성은 시키는 것만 하는, 그 이상은 하지 못하는(혹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아이템이 당신 눈에 저절로 보여야 한다는 말은, 어 이게 왜 없지? 라는 뜻이다.

(스테인리스 제품은 재고가 있어도 썩거나 변질되지 않으므로 언젠가는 팔아먹을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인 경우 그 장사나 사업은 틀림없이 망한다.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중략)- 고객을 기쁘게 하는 것이 그 비결임을 알게 된다.

수많은 알바생들은 새겨들어라. 매일 매시간이 고객을 미소 짓게 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알바하는 동안 그게 체화되지 않으면 다른 기회를 잡아도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배고프지 않았기 때문이야. 인터넷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 이미 부자였거든." 부자들은 사업 아이템이 눈에 보여도 하지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성실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로 안다. 영업이건 장사이건 간에 성실하게 임하면 세상이 곧 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천만에!

사람들은 상품을 보고 구매를 하기보다는 그 상품을 파는 사람을 보고 구매하는 경우 충성도가 높다. 왜? 신뢰하니까. 일단 신뢰를 받으면 김밥을 팔건 고등어 자반을 팔건 팔리게 되어 있다. 그게 기업화된 게 일류 백화점이다.

총각네 야채가게, 책 백날 읽으면 뭐 하냐. 신뢰의 법칙을 깨닫지 못하는데. 자, 타인에게 신뢰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야 한다. 인터넷 쇼핑몰도 마찬가지. 상품과 가격으로만 승부하려고 하지 마라. 판매자가 누군지 시시콜콜 알려라. 그게 신뢰를 받는 비결이다.

물론 신뢰를 배신하면 절대로 안된다. 신뢰를 받는 만큼 약속을 배로 지켜라. 그게 돈을 긁어모으는 비결이다.

그 대신 네 얘길 해라. 그게 너를 파는 방법이다.
(너를 파는 것과 너를 자랑하는 것은 다르다. 혼동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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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상에선 한국공조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회사가 배경인데 읽다보니 김치냉장고로 유명했다는 얘기가 나오길래 혹시나하고 찾아봤더니 역시나 있었다. 위ㄴㅇ딤채로 유명한 ㅁㄷ공조 를 모델로한 이야기인듯 하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죄송합니다."
입에서 자동으로 사과가 튀어 나갔다.
이건 무릎반사 같은 거였다. 한 번 뼈에 새긴 버릇은 13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맘 같아서는 옆에 두고 계속 갈구고 싶지만 잠재적인 위험인물은 미리 쳐내는 게 상식이다.

임기응변으로 김강현을 설득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지금은 원론이 정답이다.

세 달. 제법 긴 시간이지만 새로운 제품을 기획해 출시하고 그것이 성과를 얻기까지는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이었다. 특히 내가 담당한 가전제품은 더했다.

설계-검증-시제품테스트-인허가-유통협상-시생산-재검증-양산으로 이어지는 굵직한 프로세스만 해도 웬만한 제품은 일 년을 훌쩍 뛰어넘는 게 이 바닥이었다. 그러니 하루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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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당하는 건 아니니까.
그건 제법 큰 위로가 되었다.

난 뿌린 돈을 버리고 올 만큼 자존심에 죽고 못 사는 사람도 아니다. 아마 놈은 굴욕감을 주려고 그런 짓을 한 모양이다만 갑질도 상대가 그렇게 받아들여야 갑질이다. 나는 10만 원이면 능히 굴욕 따윈 고이 접어 품속에 넣어둘 수 있다.
‘이런 건 잘 써줘야 이기는 거지‘

배고프면 비관적이게 되는 법이다. 우선은 뭐라도 먹자.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인 삶을 산다. 나 또한 그랬다. 수 없는 선택을 했고 그 결과 주어진 삶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B와 D 사이에서 내게 찾아온건 기회(Chanc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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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7-04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 당하는 건 아니니까...촌철살인입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7-04 22:12   좋아요 1 | URL
이야기 맥락상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되는데 그 때 자기자신의 멘탈을 잡기위해 했던 말인데 뭔가 느낌이 있어보여 밑줄쳐보았습니다.
 

오늘 읽은 부분에선 저자가 다이소를 창업하기 전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금의 다이소와 같은 사업모델들을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전세계를 손수 발품팔고 다녔던 저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다이소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해당 내용은 본인이 밑줄 친 부분을 참조하면 알 수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일본기업으로 충분히 오해할만 했다는 저자의 가슴아픈 고백이 진정성있게 느껴졌다.

균일가 소매점은 언제 생겼을까? 무려 140여 년 전인 1879년, 프랭크울워스(Frank Woolworth)가 뉴욕에서 문을 연 ‘파이브센트 스토어‘가 세계 최초 균일가 소매점으로 알려져 있다.

울워스의 균일가 소매점이 큰 성공을 거두자 그 뒤를 이어 파이브 앤 텐(Five and Ten), 닉클 앤 다임(Nickel and Dime), 다임스토어(Dime store) 등 비슷한 점포들이 잇달아 생겨났다. 닉클은 5센트, 다임은 10센트를 의미하는 단어다.

바르셀로나, 알리칸테 등 지중해 연안 도시들은 눈부신 바다와 작열하는 태양을 맘껏 즐길 수 있어 일조량이 부족한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다.

대나무 중에서도 특히 최고로 치는 모죽(毛竹)은, 땅밑에서만 4~5년간 수십 미터까지 오로지 뿌리를 내리는 데 집중한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어느 날 갑자기 뾰족 솟아올라 하루가 다르게 크는 것 같지만, 이미 땅 밑에서 오랜 시간 든든하게 뿌리를 뻗었기에 지상에 나오자마자 쑥쑥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내실을 다졌어도 비바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대나무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마디를 만든다. 대나무에게 마디는 상처이고 시련이고 좌절이겠지만 그 마디가 곧 성장을 지속시켜주기도 한다.

특히 야노 회장은 물건 보는 눈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성격까지 급하다고 업계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정신력과 의지력만큼은 정말 강한 사람이었고 본받을 만했다.

그는 사업을 하다 7번을 망하고 8번째 좌판부터 다시 시작해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니 일을 대하는 각오 또한 비장했다. 또다시 실패하면 할복자살하고 말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그의 꿈은 자살하지 않고 제 명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냉정하고 집요했다. 특히 상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엄격했다.

"어디서 이런 쓰레기를 가져와요?"
샘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담당자가 보는 앞에서 심하게 모욕을 주기 일쑤였다.
평소에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 면도 많았지만, 상품을 고를 때만은 눈빛이 달라졌고 성격도 예민해졌다. 그러니 웬만한 업체들은 그런 그를 견디지 못했다. 

수많은 업체가 납품을 시도했지만 야노 회장의 높은 기준을 통과하는 업체는 몇 곳 되지 않았다.

야노회장은 ‘이런 걸 팔겠다고 가지고 온 거냐‘며 가혹할 정도로 퇴짜도 많이 놓았다. 하지만 참았다. 아니, 참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인생에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과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나를 참게 했다.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일은 일로써 풀어가자고 마음을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오기도 생겼다. 언젠가는 일본 다이소보다 더 나은 균일가숍을 내리라 마음속에 새기며 그와 만나는 시간을 나 자신을 담금질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나라마다 원가와 품질 경쟁력이 다르므로 국가별로 특성에 맞는 제품을 발굴했다. 이를테면 베트남에서는 고무나무 원료로 만든 주방용품과 세라믹 화병을, 태국에서는 유리 제품과 포푸리 방향제, 인도에서는 스테인리스 주방용품, 브라질에서는 도자기, 포르투갈에서는 코르크 제품, 스페인에서는 리사이클 유리, 영국에서는 커피 필터를 소싱했다.

비록 가격은 100엔 짜리일지라도 품질에 대해서만은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저가 생활용품 소싱에 관한 한 누구보다 많은 경험과 정보를 축적하고 있었기에 야노 회장과 그토록 오랜 시간 거래를 할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본 다이소와 한국 다이소를 구분해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일본 다이소는 주식회사 대창산업(大創産業)이 운영하는 100엔숍이다. 그러니까 상호는 ‘크게 번창한다‘는 의미의 대창산업이고, 브랜드를 ‘大創(대창)‘의 일본식 발음 ‘다이소‘로 표기한 것이다.

한편 한국 다이소의 상호는 (주)아성다이소이고 브랜드가 다이소다. 앞에서 밝혔듯 ‘아성‘은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러니까 일본 다이소는 일본식 발음으로 다이소산교(대창산업)이고, 한국 다이소는 (주)아성다이소 다. 별개의 두 회사지만 다이소산교가 지분출자를 하면서 다이소란 동일한 브랜드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독자의 혼란을 줄이고자 일본 다이소는 ‘다이소산교‘ 로, 우리는 ‘아성 다이소‘ 로 표기를 통일해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이거 정말 1,000원 맞나요?"

다이소산교에 버블붕괴가 천우신조였던 것처럼, 아성다이소에도 외환위기가 기회였던 것이다.

야노 회장이 다른 경쟁업체에 물건을 납품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한국 균일가 숍에 대한 지분투자를 요구했었다.

야노 회장이 거래를 그만두자고 하면 언제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으니, 계약상 거래 보장같은 것을 할 수 없다면 지분투자라도 받아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스코이븐프라자는 아성코퍼레이션의 알파벳 약자인 ‘ASCO‘를 브랜드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해외에 진출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은 브랜드명이었지만, 일반 소비자가 보기엔 좀 생뚱맞고 발음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다이소는 ‘다있소‘를 연상시키는 어감이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난 다이소라는 브랜드명 때문에 이후 혹독한 곤욕을 치르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100호점이나 낸 아스코이븐프라자를 다이소로 덜컥 변경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같다. 이 브랜드명이 이토록 오랜 기간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될 줄 몰랐다.

만일 아스코이븐프라자라는 점포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적어도 그랬다면 오늘날 일본 기업이란 오해는 받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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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7-04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이소를 보니 일본에서
한창 유행하던 샤꾸엔샵
생각이 나네요.

싸고 좋은 물건이 존재하
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7-04 15:10   좋아요 1 | URL
싸고 좋은 물건이 과연 있을지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오늘 읽은 부분 중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다이소가 일본이 원조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레삭매냐님께선 이미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100엔샵이 워낙에 유명했던지라 다이소같은 소매점의 원조가 일본인 줄 알고 있었는데 미국 뉴욕에 ‘Five cent store‘ 라는 곳이 세계 최초 균일가 소매점이라는 것과 더불어 유럽쪽에서도 이와 유사한 Retail(소매점)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일본의 100엔샵(샤꾸엔샵)도 결국 미국이나 유럽쪽에서 벤치마킹 해온거라는 걸 처음 알게 되어서 읽으면서 좀 새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