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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끊기의 기술 - 우리를 멍청하게 만드는 거짓 통찰의 함정들 12
헤닝 벡 지음, 장윤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4년 6월
평점 :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못 배운 설움을 대를 이어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부모는 아등바등 자식 교육에 헌신적이었다. 자고로 가방끈이 길어야 어디 가서 무시 안 당한다는 인식 때문에 21세기 MZ 세대는 사실상 가장 높은 학력을 갖춘 인류가 되었다. 과연 많이 안다고 과연 행복할까? 지식은 행복만을 주는 건 아니다.
반대로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도 있다. 너무 많이 아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전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IT 강국답게 폰으로 못 하는 게 없다. 사소한 것도 검색하고 공부하다 보면 작은 병도 크게 키운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은 '건강염려증'을 안고 산다. 조금만 증상이 나타나도 대학병원을 찾고 인터넷을 뒤져 병에 관한 정보를 캐낸다. 이러다가는 없던 병도 생길 판이다. 생각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고민을 불러 병을 키운다. 당장 생각을 멈추고 생각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고? 바로 책 《생각 끊기의 기술》을 읽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정보 사이에서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힘든 상황은 물론이고, 너무 많이 알아서 위험에 노출된다. '스마트폰이 인류 발전에 진보를 가져올 것이다', '노동 시간을 줄여준다'라고 했던 사람 반성하길 바란다. 스마트폰이 출시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어 있다. 퇴근 후에도 이메일과 메신저로 업무를 보고 주말, 휴가지에서도 그렇다. 취미였던 SNS는 잘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알게 되는 투 머치 정보를 의식 없이 얻게 된다. 손가락만 올리면 되는 숏츠에 중독되어 활자로 된 책이나 다양한 사고를 유발하는 영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뇌가 점점 퇴화하고 있는 것만 같다.
책은 인간의 뇌가 지극히 적은 정보를 다루도록 설계된 탓에 많은 정보를 얻더라도 실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21세기 인류는 감당할 수 있는 지식을 초과해 타인에게 제공하면서 '진실 착각 효과'에 바탕을 두고 사람들을 조정한다. 자주 보면 볼수록 자기도 모르게 보고, 듣고, 먹고, 사는 인간의 인지 편향을 이용하는 상술을 펼치기도 한다. 그게 바로 마케팅의 일환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을수록 어리석음은 더욱 커진다는 말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 얼마 전 내가 당했던 사건이다. 네이버나 넷플릭스 계정에 모르는 사람이 접근했다는 알림을 몇 번 받았던 게 화근이었다. 뉴스나 인터넷에서는 보이스피싱을 필두로 한 다양한 피싱 사례를 알려주지 않나. '나는 당하지 말아야지'라면서 학습했던 정보에 내가 당해 버렸다.
이성을 잃었던 거다. 비슷한 일이 생겼던 경험, 뉴스에서 피싱 사기를 예방하는 법을 알고 있었는데도 뇌를 마비되어 버렸다. 메일이 해킹되었으니, 본인 확인 후 비번을 바꾸라는 메일을 의심 없이 링크 타고 들어가서 바꾸었다. 해커에게 내 비번과 아이디를 떠먹여 준 꼴이 된 것.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 메일 주소는 네이버 공식 계정이 아니었다. 이런 것도 자세히 못 보고 혹하고 속은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는 나를 멍청하게 만들었다.
물론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가 추가된 상황처럼 불안은 일어나지 않을 일을 대비하고, 계획하기 위해 인간을 움직이게 했고 발전했다. 하지만 불안을 다스리지 못하면 과잉된 사고와 불안으로 오히려 번아웃, 무기력증, 공황장애, 우울증이 동반된다. 모든 건 과하면 탈이 나게 되어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이대로 살아? 아니다, 우리의 명쾌한 저자이자 독일에서 손꼽힌다는 뇌과학자 '헤닝 벡'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자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생각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12가지 요소를 제시하며 반복적인 생각의 틀을 깨주어야 합리적 판단을 이끌어내며 더 나은 미래로 도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머릿속 지식은 정말 어제보다 나은 삶을 주는가?
- 우리는 세상을 이해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 지금 이 순간의 기준으로 미래를 예상할 수 있나?
- 잘게 쪼개진 개인들의 생각이 사회를 부순다
- 원칙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 골치 아픈 미래를 떠올리기 싫은 이유
- 쓸 데 없는 문제부터 풀지 마라
- 세상 모두가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아
- 시시하고 편협한 항의는 통하지 않는다
- 굳이 복잡한 길을 선택하는 어리석음
- 왜 우리는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는가?
- 혹시 비관주의를 즐기고 있는 건 아닌가?
뇌는 생각보다 둔하고 바보 같고 차츰 늙어간다. 입꼬리에 미소만 지어도 근육의 움직임을 인식해 '행복하다'라는 신호로 인식한다. 가짜 미소를 날려도 행복호 르몬이 나온다는 거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 집착하지 말고 편하게 흘려보내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규칙을 지켜야 사회질서가 확립되지만 개인의 규칙은 조금 깨져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을 가져 보라고 권한다.
변화 없는 익숙함은 뇌를 멈추게 만들고 자신을 좀 먹게 한다. 과거에 연연하다가 현재와 미래까지 망치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 책 속에 들어 있다. 불안이 있어 인생을 설계하고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지만, 실패를 인정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진보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줄 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