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들을 뚫고 하고 싶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선 삶의 속도, 습관의 관성을 높여야 한다. 그저 남는 시간에 하면 되겠지, 하고 마음먹는다고 절로 되는 게 아니다. 일정한 속도가 붙은 습관만이 분주한 일상에 널린 일거리들 사이에서 제 기능을 발휘한다. 내겐 독서와 글쓰기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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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권 꺼내기도 빠듯하다는 걸 미리 알고서도 매일 읽지도 않을 책을 서너 권씩 가방에 넣고 다닌다. 그래서 비싼 가방, 싸구려 가방 할 것 없이 수명을 단축시킨다.
여행을 갈 때면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밤에 시간이 조금 남는데, 그 짧은 시간에 읽을 책들을 다른 것들보다 먼저 챙긴다. 여행지에서 낮에 보내는 12시간만큼 모두가 잠든 밤, 홀로 보내는 1시간을 기대한다.
난 호시탐탐 죽은 고기를 탐하는 하이에나처럼, 도서관과 서점을 드나들 기회를 노린다. 학교 애들한테 축구를 가르치며 함께 뛰거나, 늦은 밤 중역 의자에 몸을 기대고 영화를 보는 것 정도를 제외하곤 별다른 취미도 없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 가는 곳이 도서관, 서점이다.
내가 번 돈 중에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미미하다. 그마저도 대부분 책을 사는 데 쓴다. 그럼 나머지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렇게 강박적으로 책을 탐하면서도,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
오랫동안 이 같은 내 행동에 대해, ‘난 왜 그러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분석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깨닫는다. 그건 분석할 대상이 아니라, 그런 여러 사실이 나라는 인간을 설명하고 있음을. 무척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사람도 어떤 부분에선 지극히 비효율적인 일을 용인한다. 어쩌면 그런 부분이 ‘그게 바로 나’ 내지는 효율이라는 가치를 뛰어넘는, 그 사람이 지향하는 바에 가깝다고 할 만한 게 아닐까.
앞으로도 이렇게 내 시간과 돈을 사용하며 대부분 생을 보낼 것 같다. 이런 일을 하며 즐거워하고 만족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 가성비로 보자면, 잠을 즐기는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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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얕은수로 해결할 수 없다. 내 얕은수는 선생님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아이들에겐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아이들의 기력이 소진되길 바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그 노력이 하늘에 닿으면, 하늘은 아이들에게 잠을 선사한다.
밤 10시의 공기는 내가 호흡할 수 있는 가장 달콤한 공기다. 그 공기 속엔 얼마간의 자유와, 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아이들의 입김의 녹아 있다. 20여 년 전의 그것처럼 달콤하고 적당한 청량감이 있다. 오늘도 난 밤 10시의 공기 속으로 걸어 나왔고, 과거의 나와 대화하며 긴 시간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글의 마지막 문장에 다다랐다.

오늘날 가장 극한의 환경은, 글쓰기 외에도 감각적인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은 곳이다. ‘유혹’은 ‘역경’보다 치명적이다.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살며 비생산적인 활동에 몰입한다. 핫한 영화를 미뤄두고 글쓰기를 시도하는 건 무척 어렵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TV는 글 쓰는 사람에게 백해무익한 물건이라고 말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편안하다. 글쓰기는 치열한 생각 속에서 태어난다. 안락의 유혹은 달콤하다.
또 다른 어려움은,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전업 작가가 아닌데 글을 쓰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에겐, 어디에서 쓰느냐보다 언제 쓰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많은 이는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낮엔 직장에서 전투를 벌이고, 밤엔 육아 때문에 틈을 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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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구도 어리다고 보지 않을 나이가 되고,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내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예전엔 웃는 게 가장 쉬웠고, 일상적이었는데 말이다. 난 지금도 무표정을 장착하고 자판을 눌러대고 있다. 웃긴 일 없는데 한번 웃으려면 꽤 에너지를 써야 한다. 예전엔 웃을 때 나 스스로 밝아졌다는 자의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우습게 보인다는 자의식이 생긴 듯하다. 나도 별수 없이 무뚝뚝한 아저씨가 되어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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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에서 봤던 ‘그랜드캐니언’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수많은 사람이 관광을 위해 몰려가는 그랜드캐니언은 사실상 상처 받은 거대한 협곡이다. 오랜 세월 동안 빙산에 긁혀 부서지고 천재지변에 무너진 결과 탄생한 곳이다. 깊은 협곡, 바위산에 깊게 새겨진 흔적을 가진 그랜드캐니언은 상처투성이의 장소다. 그 상처를 보고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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