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얕은수로 해결할 수 없다. 내 얕은수는 선생님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아이들에겐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아이들의 기력이 소진되길 바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그 노력이 하늘에 닿으면, 하늘은 아이들에게 잠을 선사한다.
밤 10시의 공기는 내가 호흡할 수 있는 가장 달콤한 공기다. 그 공기 속엔 얼마간의 자유와, 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아이들의 입김의 녹아 있다. 20여 년 전의 그것처럼 달콤하고 적당한 청량감이 있다. 오늘도 난 밤 10시의 공기 속으로 걸어 나왔고, 과거의 나와 대화하며 긴 시간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글의 마지막 문장에 다다랐다.

오늘날 가장 극한의 환경은, 글쓰기 외에도 감각적인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은 곳이다. ‘유혹’은 ‘역경’보다 치명적이다.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살며 비생산적인 활동에 몰입한다. 핫한 영화를 미뤄두고 글쓰기를 시도하는 건 무척 어렵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TV는 글 쓰는 사람에게 백해무익한 물건이라고 말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편안하다. 글쓰기는 치열한 생각 속에서 태어난다. 안락의 유혹은 달콤하다.
또 다른 어려움은,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전업 작가가 아닌데 글을 쓰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에겐, 어디에서 쓰느냐보다 언제 쓰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많은 이는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낮엔 직장에서 전투를 벌이고, 밤엔 육아 때문에 틈을 내기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