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라마 <질투의 화신>을 본방 사수하였다. 다음 주 종영을 앞두고 사랑의 결실를 맺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어느 한 순간 정해지는 것인지 질투와 같은 그 무엇인가에 이끌려 촉발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무엇이 됐든간에 사랑의 감정에 휩쓸리면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한다. 드라마는 유쾌하게 볼 수 있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어떠할런지…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평정심을 잃게 된다. 아마 남녀에 차이가 없을 것이다. 평상시 같으면 전혀 하지 않을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유나 과정보다 결과에만 치우치는 과잉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성의 반대편에 있는 감정이 심신을 좌지우지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마침 읽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독립기관」에서 도카이의 생각과 죽음의 이유가 드라마에서 구애하는 좌충우돌 상황과 관련된 것 같아 밑줄긋기 해둔다.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 는 것이 도카이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어떤 거짓말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든 여자는 어느 시점에 반드시, 그것도 중요한 일로 거짓말을 한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도 물론 거짓말을 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아무튼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들의 아름다운 양심이 상처받거나, 그녀들의 평안한 잠이 방해받거나 하는 일은 -- 특수한 예외를 별도로 친다면 -- 일어나지 않는다. (166)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당겨집니다. 로프로 이어진 두 척의 보트처럼. 줄을 끊으려 해도 그걸 끊어낼 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는 잘못된 보트에 이어졌던 거라고 우리는 뒤늦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단언할 수 있을까? 생각건대 그 여자가 (아마도)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거짓말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론 의미는 얼마간 다르겠지만, 도카이 의사 또한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사랑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본인 의지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타율적인 작용이었다. 제삼자가 나중에야 뭘 좀 아는 척 왈가왈부하고 자못 서글프게 고개를 내젓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을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을 뒤흔들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분명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단순한 기교의 나열로 끝나버릴 것이다. (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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