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 아버지 시대 이래로 조금도 바뀌지 않는 게 있었다. 비록 인체 해부에 숙달돼야 한다는 목적하에 공손한 태도로 실습이 이뤄지긴 하나, 해부 자체는 여러모로 보나 평범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해부는 시신 훼손이자 모독으로서 우리 종種의 가장 어두운 금기를 깨는 행위인데도, 아직까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10대인 학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메스를 들고 부패해 가는 시신 주위에 모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에는 으레 인간의 살을 도려내며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했다.

해부학 교실에서 자행되는 비인도적 행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지도 교수들은 은연중에 우리에게 심오한 가르침을 주었다. 죽은 자들 주변엔 말 못 할 비밀이 소용돌이친다는 것. 의사는 목소리가 아니라 감정과 본능을 감춰야 한다는 것. 어떤 감정도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 감정은 곧 미숙함을 상징하기에 무시하고 부정해야 한다는 것. 죽음을 마주했을 때 취약성을 드러내면 의학계의 골칫거리로 전락한다는 것.

수시로 치르는 객관식 테스트에서 우리는 정답을 고르는 동시에 그 답이 옳다고 확신하는 정도를 1, 2, 3으로 표기해야 했다. 이렇게 하면 정답으로 믿고 고른 건지, 아니면 그냥 찍은 건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지나친 자신감에는 벌칙이 따랐지만, 3을 선택해서 맞으면 보너스 점수가 나왔다. 시험마다 최대 150퍼센트의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기를 쓰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러한 채점 방식이 지식뿐만 아니라 태도까지 가르치려는 의도임을 간파했다. 대학은 학생들을 박식하면서도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려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의술을 펼칠 때는 우물쭈물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그랬다간 불호령이 떨어질 터였다.

그런데 지나친 자신감에는 단점이 있다. 오만함과 성찰적 실천이 함께 가지 않기 때문이다.

멜로즈 교수에게 찍힌 날 오전, 우리는 신경과 전문의들의 매서운 눈초리 앞에서 한 사람씩 환자를 진찰했다. 나는 역시나 멜로즈 교수에게 할당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대단히 어려운 케이스가 떨어졌다. 내 환자의 특이한 안구 운동 패턴은 극히 드물어서 웬만한 교과서엔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멜로즈 교수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움츠러들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면서 신경 해부학적 징후를 어떻게든 설명하려 애썼다. 벨이 울리고 다음 환자에게 옮겨 가려는데, 뜻밖에 멜로즈 교수의 굳은 표정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전에 그 MND 환자 말이야, 레이첼." 멜로즈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 내버려 둬야 한다고 했던 자네 주장이 옳았어. 그 일은 내가 고맙게 생각하네."

나는 아버지에게 그 일화를 들려줬다. 그게 시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아버지는 의사로서 살아온 수십 년간의 세월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 생각엔 너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무뎌질 때가 올 게다. 차갑게 변하고 싶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단다. 안 그러면 버틸 수가 없거든."

나는 멜로즈 교수의 일상이 어떠할지 곰곰 생각해 봤다. 운동 장애 전문가로서,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온갖 끔찍한 진단을 내려야 했다. 파킨슨병, 진행성 핵상 마비, 피질 기저 핵변성, 다계통 위축증.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 만큼 두렵고 암담하고 잔인한 질병들이다. 환자들의 삶을 산산이 부서뜨리는 폭탄선언을 수십 년간 쏟아내면서도 다정함과 인간미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까? 나라면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 중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부인과 전문의는 은퇴를 코앞에 둔 교수였다. 나보다 앞서서 수많은 여성들이 애써 태연한 얼굴로 그와 마주했을 것이다. 나는 전투라도 치를 듯한 기세로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어린 자상한 미소가 내 방어적 태도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괜찮다면, 레이첼. 당신을 의학도가 아니라 그냥 환자로 대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병증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아는지 혹은 모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이론이 실제 경험과 똑같진 않거든요. 그렇게 진행해도 괜찮겠어요?"

괜찮았을 뿐만 아니라 순간적으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가 환자의 기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속옷까지 벗은 채 무방비한 상태로 누워 있긴 했지만, 지역 보건의의 전화를 받은 뒤 처음으로 다시 안심할 수 있었다.

조직에 열을 가하는 투열 요법은 참으로 매력적인 치료법이다. 고주파 전류로 가열시킨 금속으로 환부를 절개하면, 환부가 떨어져 나가는 동시에 지져져서 혈액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살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기 때문에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나는 목숨이 간호사의 손에 달린 양 꽉 잡았다.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간호사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용감하게 잘 버틴다고 말해 주었다. 고마워서 껴안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토록 작은 친절이, 이토록 간단한 접촉이 두려움을 이겨 내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그동안 왜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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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0-27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신간소개에서 본 것 같은데, 나중에 조금 더 찾아봐야겠네요.
잘읽었습니다.
오거서님, 일교차 큰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오거서 2021-10-27 22:1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무탈하심 것 같아서 여느 때보다 댓글이 반가움이 큽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시길! ^^